제 목 : 겉모습에 속지 말자. | 조회수 : 1215 |
작성자 : 이병진 | 작성일 : 2015-05-02 |
겉모습에 속지 말자.
이병진 목사
자동차가 필요한 사람이 있었다. 여기 저기 알아보다가 가격도 저렴하고 좋아 보이는 자동차를 발견하였다. 저렴한 가격의 차를 구매하고 타고 다니던 중에 점점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시동이 가끔 꺼지고 원하는 대로 조종하기가 어려워져 자동차 정비하는 곳에 가서 알아보니 침수되었던 자동차였던 것이다. 침수차는 겉모습도 좋고, 주행도 얼마 달리지 않은 겉모습이 좋은 차였다. 하지만 타고 다니기에 결코 좋은 차는 아닌 것이다.
신앙에 있어서도 비슷한 것 같다. 사람들이 왜 이단에 넘어가는 것일까? 얼마 전에 한 한의원을 방문했다. 참 분위기가 좋은 곳이었다. Client(의료대상자)와 Worker(한의원의 직원) 사이에도 좋은 관계가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한방차도 나누어 먹게 되어 있었고, 구운 계란도 자율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서로 대화 가운데에도 참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좋게 느껴졌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약간의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건물에 있다는 교회에 가보았는데 문은 닫혀 있었고, 어떤 사람도 만날 수 없었고 한쪽 잘 보이지 않는 상단에 주보수거함을 발견하여 그 주보를 가지고 와서 살펴보니 더 이상했다. 설교의 내용은 무슨 암호와 같아서 알아보기 어려웠고, 설교자는 담임목사가 아닌 다른 목사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그 이름을 찾아본 결과 그 곳은 정통교단에 속해 있는 교회가 아닌 이단교회가 분명했다.
사람이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믿는 것이 모두 진리는 아닐 수도 있다. 어떠한 특별한 현상들(예를 들어 금가루, 금니로 변화는 현상, 떨림, 울부짖음, 웃음현상 등)이 나타났다고 해서 이 모두 성령의 역사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성령은 믿는 자들을 통해 역사하시고 그 역사하심 가운데 신유, 방언, 예언 등이 있다. 하지만 모든 특별한 현상이 다 성령의 역사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 무당도 병을 고칠 수 있고, 이단에서도 방언(성령의 방언은 아닙니다.)과 같은 현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이 성령이 역사하시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의 역사를 알 수 있을까?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10장 10절)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있는 것이 참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이러한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다. 우리는 근신하고 깨어 있어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말씀이 있다. 세상의 유혹에 현혹되지 말고 깨어 분별하여 마귀의 종노릇하지 말고 하나님 자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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