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명’이 있는가?(이찬용 집사 ) | 조회수 : 959 |
작성자 : 조정열 | 작성일 : 2014-09-17 |
생명보다 더 소중한 사명이 나에게 있는가?
무리들은 자신의 ‘필요’를 따라 예수님을 찾는다. 병 낫기를 위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말씀을 듣고 은혜 받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필요가 채워지면 떠난다. 반면 제자들은 부름을 받는다. 그 부르심 앞에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간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4:19~20)
그럼 “나는 무리인가, 제자인가?” 제자로 부름 받았으나 무리로 살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무리로 살고 싶은 게 아닐까? 아무래도 제자는 조금 불편하다. 나는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두려워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어려울 때 도와주시고, 죄 지으면 따뜻하게 즉각 용서해주시고, 나의 삶에 너무 깊게 개입하시지 않는 정도의 관계를 원하지 않은가? 근본적인 변화를 원치 않은가? 부담 없는 관계 원한다. 그러므로 사명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먹고사는 문제로 가득 차게 되고, 하나님과 사명 중심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먹고사는 것 중심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그동안의 삶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해 주는 왕으로 삼고 싶어 했고, 제자들은 예수님 좌우편에 앉는 지위를 갖기 원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오직 자신의 사명을 이루실 뿐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다. 자신의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그 일을 이루신 것이다. 예수님의 관심은 사명에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관심을 따라가야 생명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진리인 것이다. 사명과 멀어지면 생명과 멀어진다, 생명의의 관계가 어떻게 가능한가? 사명을 이루고자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사명을 이루자면 생명을 걸어야 한다. 그냥 되는 것은 없다. 자신의 사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투자해야 한다. 꿈이 있다고 말만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걸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감동할 만큼,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결심하실 만큼, 아무것도 안하고, 적당히 죄 짓는 삶을 살면서 꿈을 이룰 수 없다. 예수님, 베드로, 바울의 삶이 나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삶이다.
사명을 이루어가는 삶은 나의 생명보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사명이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할 수 있다. 사명은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꿈이 아니다. 사망의 세력을 잡고 있는 원수를 물리치고 예수님 주신 사명을 이루어 가는 전쟁의 과정이다. 감사한 것은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님께서 이미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를 멸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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