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40811 빛을 발하라(사60:1-3) | |
작성자 : 윤성은 | 작성일 : 2024-08-17 |
첨부파일: 빛을 발하라(주일).hwp(92K) |
(1-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지금 우리는 모두, 힘들고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라 안팎에 이상기후 현상으로, 폭염, 가뭄, 홍수가 큰 피해를 주고 있고, 지구촌 곳곳에 전쟁 소식은 그칠 줄 모르고, 그 위험 수위를 더하고 있다. 이런 상황 중에, 더욱 어려워지는 경제적 상황들로, 불안과 고통이 더해가고 있다.
높은 실업률과 고물가, 고금리에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때와 시기를 올바로 분별하며,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본문은 BC 8C,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범죄와 타락으로 쇠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점차 다가오는 분위기였다.
얼마 가지 않아, 바벨론에 망하고, 포로가 된다고 했다.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망하겠지만, 하나님은 약속하고 명령하신다. “이스라엘은 포로 위치에서 돌아와, 그 후에 만민에게, 복음의 빛을 발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씀은, 바벨론 포로 귀환을 의미하지만, 후대의 신약시대의 예언이다.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빛을 발하라고 말씀하신다. 고통도 사명이다. 세상이 어둡고 캄캄할수록, 빛은 더욱 필요하다. 어둠이 심하면 심할수록, 빛의 진가는 발휘된다. 지금은 빛을 발할 때다. 우리는 어둠의 자녀였기에, 빛을 비추기 위하여 일어나야만 한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어둠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빛이 되신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빛이 되신 예수님은, 빛을 비추어 주셨다. 우리는 발광체가 아니다. 반사체다. 하나님의 빛을 받아, 세상에 비추는 빛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빛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1) “일어나라…” 명령했다. ‘일어나라’(쿠미, 쿰 명령, 2인칭, 여, 단수 동사)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면서 하셨던, 그 단어이다. (막5:41)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탈리다 쿠미) “소녀야 일어나라.”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죽었던 야이로의 딸이 살아났다. 이처럼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분이다. 낙심하여 주저앉은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하신다(쿠미). 지금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말씀한다. 앉아 있는 사람에게 내리는, 강력한 명령이다.
‘쿠미’라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일어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모든 문제에서, 일어나기를 바란다. 어둡다고 불평하면서 있지 말고, 속히 일어나라는 뜻이다. 누구에게 명령했나? 바로 앞을 보면, 여성형으로 명령했다.
(사59:21)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언약’(베리트)과 ‘나의 영’(루히)이 여성형이다. 따라서 빛을 발하는 자는, 언약을 받아들인 자, 하나님의 영이 임한 자들에게, 일어나라는 말이다. 그리고 빛을 비춰야 한다. 예수님이 비추신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비추어야 할 빛은, 과연 무엇인가?
1. 구원의 빛이다(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임하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명령을 받는 대상은, 야곱 중에서, 죄에서 떠나 구원받은 ‘시온’이다. 시온은 포로에서 구원받는, 백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어두움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영광의 영적인 빛을 비춰주시고, 영적인 어두움 가운데서, 신음하며, 절망하던 이들을 건져 주신다. 사도 바울은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빛의 자녀 삼기 위해, 빛을 보내주신다. 빛이 임하면, 빛의 자녀가 된다. 어두움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로 변화된다. 세계 3대 참회록은 ‘어거스틴의 참회록, 루소의 참회록, 톨스토이의 참회록’이다. 이 참회록을 비교해 보면, 상황이 다르고, 과거의 모습도 양상이 다르다.
변화되는 과정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들 모두가,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저들의 노력으로 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찾아오셨다고 고백한다. 생각지도 않게 여호와의 빛이, 그들의 삶 속에 비추었고, 그들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방탕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경건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인생을 헛되게 살았지만, 이젠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한다. 우리도 전에는, 어두움의 자녀들이었는데, 하나님이 우리 삶에 빛을 비춰주어서, 구원하여 주고,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혹시 패배 의식 속에서,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며 살아왔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빛이다. 어둠 속에 갇힌 심령이, 이 빛으로 구원받았다. 따라서 이제 일어날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언하여,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한다.
우리가 복 받은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이 빛을 통해 구원받았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 구원의 빛을 비춰야만 한다. 구원의 빛이,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도록, 구원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힘써 감당해야 한다. 좌절과 슬픔으로 가득 찬, 절망적인 어둠이, 물러가게 해야 한다.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미’ 빛이 이르렀다. 영광이 임했기에,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원천적인 능력이 있다. 거울과 같은, 반사체에 빛이 이르면, 빛이 반사되고, 그로 인해 주변은 밝아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의 빛을 받은 자들이다.
그것을 그냥 담고 있거나, 흡수해서, 나타내지 못한다면, 있을 수 없다. 여기서 ‘네 빛’은, 하나님의 백성이 스스로 만들어낸 빛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메시아를 통해서, 그들에게 나누어주신 빛이다.
2. 소망의 빛이다(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어두움과 캄캄함은, 죄와 죽음, 악한 영의 세력을 의미한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될 그들은, 어두움이 덮이게 된다. 소망이 다 사라지고, 어둠에 있게 된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려움이 문제가 아니라, 절망이 문제다. 죄와 죽음의 세력이, 온 인류를 덮었지만, 절망하지 말라. 새 생명을 주려고, 주님은 빛’으로 오셨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망하지 말고,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외친다. 어두운 터널만 보고, 절망에 묻히지 말고, 소망을 가지고 일어나, 빛을 비추어야 한다. 교회는 어두워진 세상에 유일한 희망이다. 하나님의 빛을 보고, 기뻐하고, 기적을 체험하자.
‘토니 멜렌데즈’(Tony Melendes)는, 어머니가 임신 중 약물부작용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토니는 어렸을 때, 우연히 기타를 접한 뒤, 반드시 스스로 연주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16세 때 아버지의 도움으로, 기타 연주를 시작했고,
이후 스스로, 기타 악보와 잡는 법을 연구하고, 손가락이 아닌, 짧은 발가락으로 연습을 시작하였다. 감각적인 리듬감을 타고난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가락 기타를 연주했고, 가는 곳마다 많은 팬들과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그가 능숙하고, 아름답게 기타를 연주할 수 있게 되자, 그 이후에 꿈은, 바로 절망에 빠진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난과 역경, 도전과 희망 등,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전파하는 강연과 연이은 연주 초청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토니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나의 목표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토니 멜렌데즈는 “발가락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좋은 결과는, 오랜 노력의 산물이다.”라며,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하는 동안, 어떤 어려움이 와도, 포기 하지 않는, 끈기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기적이라고요? 당신에게 팔이 있다는 것이, 내가 보기엔 기적입니다. 할 수 없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토니는 훗날 ‘희망의 선물’이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연주를 마친 뒤, 친구들이 기다리는 무대 뒤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군중들 사이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불구가 된, 젊은 여인을 보았다. 그녀의 팔과 다리는 비틀어져 있었다. 그녀는 내가 지나갈 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려고 애썼다. 나는 출구를 향해 걸어가다가 멈추고, 그녀에게로 되돌아갔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손을 뻗치면서 말했다. ‘토니 당신 때문에, 희망이 생겼다!” 토니 멜렌디즈는 빛을 비춰주는 사람이다. 움직일 수 없는 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손이 없는 불구였지만, 절망을 이겨내고, 예수님을 통해 소망을 찾았다.
소망의 빛이, 그의 가슴을 비추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비추어 소망을 갖게 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이 소망의 빛을 다른 사람에게도 비춰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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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이 희미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갈수록 점점 더 어두워져 간다. 따라서 우리는 소망의 빛을 비추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임하심은, 그가 그들에게 후광이 되어준다는 의미며, 구원과 영광이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빛의 원천은 아니다. 우리는 반사체다. 마치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해 주듯이, 거울이 햇빛을 반사해서, 그늘진 곳을 밝혀주듯이, 우리의 사명도 하나님 영광의 빛, 구원의 생명 빛을 전하는 역할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고, 그 안에 머물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빛을 보낼 수 있게 된다.
3. 복음의 빛이다(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의 영혼을 부탁하셨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빛은 더 빛나게 된다.
복음은 위기를 겪을 때마다, 빛을 발했다. 지금은 빛을 발할 때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진리의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서, 어둠에 있는 자들이, 빛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빛이 없기에, 사람들이 어둠에서 헤매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살아갈 때, 믿음에서 떠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이웃과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하게 되고, 그들도 범사에 잘되고, 형통함을 맞보게 된다고 말씀한다. 캄캄한 바다에서, 배들이 항구로 돌아올 수 있는 이유는, 등대가 있기 때문이다.
등대를 보고, 배들이 항구로 와서, 정박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시대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영혼이 많다. 이런 영혼을 위해, 진리의 빛을 발산하면, 어둠에 헤매는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고, 모여들게 된다. 이제 일어날 때가 되었다. 복음의 빛을 드러내려면,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인간적으로 손해로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 이 땅에서 또 하늘에서, 백 배의 복을 받는 비결이다. 따라서 우리는 잠깐의 고난 때문에, 복음의 빛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딤후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러므로 이제 일어나,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어둠이 물러가고, 온 세상이 진리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산 위의 등불로서 빛을 널리 비춰야 한다. 탤런트 김혜자 권사님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에는, 아프리카에서 행했던 선교와 구호 사역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비참한 상황을 들러보던 한 여인이, 하나님께 불평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혜자 권사님 본인 심정도 그랬다. “하나님! 당신은 왜 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그래 맞다. 참으로 불쌍하다. 그래서 너를 보내지 않았느냐?” 사람마다 말은 무성하게 잘한다. 비판도 잘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기에,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사명을 감당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남을 탓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어나 빛을 발할 때, 축복의 사람이 된다. 빛을 발할 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빛을 발할 때, 우리를 영화롭게 해 주신다.
일어나 빛을 발할 때, 하늘의 복을 약속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부디 일어나 구원의 빛을 발하여야 한다. 소망의 빛을 발하여야 한다.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온 세상은 어두움 가운데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즉 복음의 빛이, 이스라엘에 비추었고, 온 세계가 이 빛으로 나아왔고, 지금도 나아오고 있다. 복음의 빛을 발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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