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내용
•홈  >  말씀과찬양  >  설교내용
  제  목 : 20240623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왕하19:1-4)
  작성자 : 윤성은 작성일 : 2024-06-29
  첨부파일: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주일).hwp(94K)

  (1-4)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먹을 것이 없어, 주려 본 사람만이, ‘배고픔의 아픔’을 느낄 수 있고, 실패의 쓴잔을 마셔본 사람이, 실패의 비참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전쟁을 몸으로 체험해 본 사람만이, 전쟁의 비참함을 알 수 있다. 저도 6.25 전쟁을 겪지 못해서, 전쟁의 비참함을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힘들었던 군 생활을 생각하면, 나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매년 6월이 되면, 나라의 소중함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본문에 나온 히스기야 왕은, 기원전 7세기경, 남 유다 왕국을 통치하던 왕이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는 강하시다, 또는 여호와의 힘’이라는 뜻이다.

  히스기야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54세까지 29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고, 선정을 베풀려고 애쓰던, 참 좋은 왕이었다.

  (18:3-5)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그러나 동시대에 ‘앗수르’라는 악질적이고, 호전적인 민족에게, 항상 침략과 위협을 받았다. 그들은 포로의 가죽을, 산 채로 벗기기도 하고, 손을 자르고 눈알을 빼고, 혀를 잘라내는 잔악한 짓을 예사로 했다. 또한 피정복 민족을 타국으로 이주시켜, 민족의식을 말살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못된 민족이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심한 말로, 왕과 왕이 섬기는 하나님의 성호를 모독하는 욕설을 퍼부었다(18:27-35). 이 소리를 듣고, 왕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슬픔의 표현),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나라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사야는 선지자는 (19:6-7)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글을 받아 들고, 성전에 올라가서 울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19:14-).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날 밤에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죽이셨다. 산헤립 왕은 본국에 돌아가 신하의 칼에 죽고, 긴 기간 동안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나라를 잃었다. 중국은 수 천 년 동안, 우리나라를 침략했다. 북한은 주일 아침 남침하는 사변을 통해, 거의 나라를 빼앗길 뻔하였다. 이러한 아픔은, 겪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역사는 되풀이된다. 역사를 똑바로 알지 못하면, 반드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된다.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성공하는 사람은,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실패하지 않는다. 가장 아픔을 당한 민족은 이스라엘인데, 그들은 또다시 아픔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루살렘 서쪽에, 나치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관(야드 바쉠)이 있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이다. 출구에는 “망각은 우리로 하여, 다시 포로가 되게 하고, 기억은 우리로 하여, 자유민이 되게 한다.”는 글귀가 있다. 용서는 해 주어야 하지만 만행을 잊으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픔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 아픔의 장소 맛사다(맛짜다, 요새)

서기 73년경, 사해 근처 ‘맛사다’라고 불리는 요새에서, 969명의 유대인이,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로마의 침략에, 3년 동안 끝까지 항거하였으나, 로마 장군 ‘플라비우스 실바’(Flavius Silva)가 이끄는 제10군단의 로마 군인과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 15,000명은, 외벽을 쌓았다. 흙산이라 진입할 수가 없었는데, 인공언덕을 쌓아 진입로를 만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때 유대인 지도자 ‘엘 아자르’(El azar)는, 유대인 전사들에게 이런 요지의 연설을 남긴다. “이 모든 일은, 동족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이며, 이러한 처벌이, 적군인 로마 군에 의해 자행되지 않도록, 우리가 스스로 심판하도록 합시다.

  따라서 내일 아침에, 로마 군에 잡혀서 온갖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오늘 밤에, 우리가 아직 자유의 몸일 때, 스스로 영광의 죽음을 택합시다.” 이 말에 감동한 각 가족의 가장들은,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 다음, 남자들이 한곳에 모여, 열 명을 추첨하여, 그 열 명이 나머지 사람들을 죽였다.

  남은 열 명이, 한 명을 추첨하여, 아홉 명을 죽인 후, 그도 최후로 자결하였다. 이런 비극의 흔적이 남은 곳이 ‘맛사다’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초급 장교가 되면, 맛사다에 올라, 이렇게 외친다. “맛사다! 다시는 함락되지 말라!” 이런 역사의 쓰라림 위에, 오늘 이스라엘은 굳건히 세워졌다.

  나라와 자유에 대한, 고귀함을 말해 주는 이야기이다. 나라가 망하면, 가정도 망하고, 자신도 망하게 된다. 힘이 없으면 망하고, 죽을 수밖에 없다. 나라가 잘되어야, 그리스도인도 행복하다.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국경은 없지만, 조국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힘에는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왕하6장). 사람은 보이는 힘만 믿으려고 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힘이, 더욱 크다. 미국은 세계 제일의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월남전에서 패했다. 그들이 무기가 부족해서 패했는가? 아니다. 그들은 정신에서 패배했다. 공산주의는 유물론 사상이다.

  이스라엘은 1억의 아랍군을 상대로, 100분의 1도 안 되는 인구를 가지고 싸웠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생존을 위해 싸웠기에,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전쟁이 나자, 그들은 고국 이스라엘을 향하여 비행기를 탔기에, 그들의 정신상태가 먼저 이길 수 있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희생이 필요하다.

2. 어떻게 해야, 정신력이 강해질 수 있는가?(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사실을 믿었기에, 하나님께 문제를 가지고 와서, 기도 했다.

  하나님의 도움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신다.’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아무리 크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낙심하면 안 된다. 든든한 도움을 줄 분이 기다리고 있는데, 낙심하고 절망하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따라서 낙심하지 말라.

  가까운 친구나 친척은, 자주 도움을 청하고, 신세를 지면, 멀어지기가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도움을 청하고, 은혜를 구할수록, 하나님은 더욱 가까워진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가 갈라지는, 위대한 일을 보게 된다.

  함께 기도할 사람을 찾았다. (2)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자들을 보내면서, 굵은 베옷을 입혔다, 이는 회개의 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히스기야는 현재 임한 위기가,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이 회개의 표시로, 굵은 베를 입었음은 물론이고, 자기 사자들에게도, 굵은 베를 입혀 선지자에게 보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다.

  히스기야는 왕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선지자에게로 가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하시는 일을 먼저, 주의 종에게 보인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인생의 상담자이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도 부지런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종을 찾는 일에도, 열심을 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 명쾌한 답이 있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히스기야는 환난과 징벌과 모욕이, 하나님의 징계라 했다. 우리의 고난도, 죄에서 오는 경우가 있기에,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히스기야는 (4)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랍사게가 앗수르 왕의 보내심을 받고 와서, 하나님을 비방했다고 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니, 참을 수 없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겼기에, 분통하게 여겼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사람들이 할 때, 거룩한 분노를 느껴야 한다. 그리고 남은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67년 6월 전쟁 당시에, 이스라엘의 국방부 장관은, 전방에 병사들을 내보내 놓고, 자신은 방송국에 앉아서 (시27:1-3)을 낭송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전쟁터에서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국방부 장관의 확신에 찬, 시편 낭독을 듣던 병사들의 마음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서, 일당백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었다. 하나님이 내 편이라고 믿는 사람을, 누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무기에서 나오는 힘과는, 비교되지 않는 힘이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있으면, 병력수가 많다고 이길 수 없다. 미디안에게 이스라엘 백성은,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드온이 일어났을 때, 전쟁에 나가서 싸우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모두 32,000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줄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줄이고 줄인 결과, 300명이 되었다. 그 300명이 나가서, 메뚜기같이 많은 미디안 군대를 물리친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인가? 전쟁은 사람의 수에 있지 않고, 더구나 화력에 있지도 않다는 뜻이다.

  나라의 힘은, 주님 안에서, 하나 된 정신이며, 더 나아가 기도하는 힘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주님이 진노하시면 막을 자 없고, 그분을 당할 자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주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면, 우리를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다.

3. 어떻게 하나님을, 내 편으로 삼을 수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을 섬기면, 복을 천대까지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을 배반하면, 3-4대까지 저주하신다고 하셨다. 왜 북한이 못살게 되었는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 믿고,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을 대적으로 만들게 되어, 저주를 받게 된다. 우리는 우상을 섬길 자유가 있지만, 내가 우상을 섬긴 대가로, 그 공동체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면,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복을 천대나 받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있는 공동체가 잘 되려면, 하나님을 올바로 섬겨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애국이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올바로 섬길 때, 백성들은 복을 받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지금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기도 생활을 게을리하거나, 또는 전혀 하지 않을 경우, 영적 양식을 먹을 수 없게 되면, 사탄과의 영적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 사탄은 참소하는 자이다. 우리 잘못을 주님께 고발하는 자다.

  이렇게 사탄의 참소가 있으면, 공의의 대 재판관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징계와 형벌을 피할 수 없어,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눅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사탄은 지금도, 우리를 요구하고 있다. 밤낮 참소한다.

  (계12:10下)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참소하는 자가 있다고, 좌절하지 말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눅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신다.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여 준다.

  그뿐 아니라, 어떠한 사탄의 참소라도, 막아 주실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죄를 지었던 사람임을 잊지 말자.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죄를 용서해주시고, 참소를 막아주신다. 그러므로 자신 자신을 용서하자. 이웃 나라에 당했던 수모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 이웃 나라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민족이 되자.

 "

  이전글 : 20240616 여호수아의 유언(수23:6-13)
  다음글 : 20240630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옵소서(합3:1-6)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