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40616 여호수아의 유언(수23:6-13) | |
작성자 : 윤성은 | 작성일 : 2024-06-20 |
첨부파일: 여호수아의 유언(주일).hwp(93K) |
(6-13)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마지막 말 ‘유언’이다. 다 아는 청개구리 우화에서도, 유언은 들어주려고 한다. 하물며 자신이 사랑했던 부모님과, 예수님의 유언을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개구리만도 못한 사람이다. 인간은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기에, 바른 믿음과, 신앙을 전수해야 한다.
일정한 시점에서, 생애를 정리하고, 유언을 남길 필요가 있다. 유언장을 미리 남기면, 2가지 유익을 준다. 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생애를 점검할 수 있다. ② 나의 자손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 있다.
오늘 말씀은,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모든 땅을 분배한 후, 20년간 태평 시대를 보낸 다음, 인생 말년에 백성들과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유언한 내용이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처음에는 열심히 순종했지만, 그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실로 두려운 일이다.
모세도 다윗도 솔로몬도, 예외가 아니다. 모세는 가데스에서, 하나님의 명을 어겨,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윗 왕도 말년에 교만하여, 인구조사로 범죄했다. 일천 번제로, 하나님 마음을 감동하게 했던 솔로몬도, 말년에는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종한 인물이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비교할 때, 화려하지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우리도 마지막 말년이, 멋진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진짜 아름다운 신앙은, 끝까지 성실한 사람이다. 여호수아의 유언을 통해, 우리는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1.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는 삶을 살라.
23장에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구절이다. 13번이나 나온다. (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8)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주인공이지만, 자신이 그 일을 이루었다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셨다 했다. 내가 용맹스럽고, 지혜와 능력이 뛰어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싸워주셨고,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미래에도 우리를 위해, 승리하게 만들어 주신다고 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고백했다(3, 5). 그런데 인간은, 기회만 주면, 자기의 잘남을 드러내고 싶은, 교만한 마음이 있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의 승자로, 가장 강대한 민족을 이루었기에, 교만의 위험 가운데 처해 있었다.
사람은 물질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많이 누린다면, 탐심이 가득하여, 총명을 잃게 된다. 마음이 교만하여진다. 기도 없이 물질을 누리거나, 고침을 받으면, 주님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의 은혜를 인정하라.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다면, 겸손하시기 바란다.
여호수아는 이런 사실을,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간절히 당부하고 있다. 우리가 겸손으로 무장한 신앙고백을 하면, 우리 미래는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맛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마음이 있는가?
은혜를 입은 사람은, 항상 감사가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여호수아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모세, 바울, 다윗…,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맛있는 음식을 줄 때, 받는 사람의 반응이 똑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주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 그냥 입에 넣고, 어떤 사람은 ‘주는가 보다’하며, 인사 한번하고 간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고맙다. 잘 먹겠다.’ 하면서, 정말 고마워한다. 다시 만났을 때도 “그때 그 음식 맛있었다.”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아는 사람인가? 진정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온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주신 복을 인정하고, 기뻐할 때, 그 복보다 더 큰복을 주신다.
(2) 충성스러운 사람이 된다.
마리아는 귀신 들렸지만, 자유롭게 되었다. 창녀의 몸으로 구원받는 은혜를 체험했다. 그래서 그녀는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아낌없이 깨뜨려, 주님의 발에 부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섬기는 봉사, 바치는 시간, 드리는 예물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일꾼들의 공통점은, 먼저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은혜받지 않고 일을 하면, 그것처럼 어색한 일이 없다.
은혜받지 않고 헌금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금과 같다. 속일 수밖에 없고, 풍성할 수가 없다. 모두 부을 수 없다. 인색할 수밖에 없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없다. C.T 스터드는 캠브리지 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수재로, 크리켓 챔피언이었다.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수양회에 참석하고 난 다음에,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때 주변의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지나친 헌신이 아닌가?” 그때 스터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이 사실이면, 내가 그를 위해서 바치는 그 어떤 희생이라 할지라도, ‘지나친 희생’일 수 없다.”고 말하며, 헌신했다.
(3) 용서하는 사람이 된다.
요셉은 자신을 애굽 땅에,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만났을 때, 근심하지 말고 한탄하지 말라고 하였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냈다고 형들을 위로했다(창45:5).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던 이유가 어디에 있나?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흘러넘치는 은혜를 받으면, 용서하는 자가 된다. 다윗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기에, 자기를 저주하는 자들을 용서했다.
왜 용서하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처는 치유되지 않으면, 독이 되고, 치유하면 약이 된다. 상처는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고,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
2. 여호와를 사랑하라(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여호수아는 구체적으로, 여호와를 사랑하는 법을 말했다.
(1) 하나님을 가까이하라(8)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하라.” 가까이(다밬)는, ‘달라붙다, 추격하여 잡다.’는 말이다. 이 말은 아담과 하와가 연합하여 한 몸이 되었다는 말로 사용되었다.
주님과 하나 될 때,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 부부도 사랑하면 가까이한다. 거리를 두면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이함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하셨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떠난 가지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성도들은, 주님을 가까이해야 한다. 가까이하면 닮게 된다. 부정적인 생각에 젖고, 자포자기하고, 원망, 불평, 한숨만 쉬고, 중상모략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하면, 그를 닮아서, 혐오할 만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링컨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부정적인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 그들은 병균이다.” 부정적인 사람은 병균이다. 우리 영혼까지 썩게 만든다. 삶을 긍정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하면, 삶이 달라진다.
(2)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7).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12-13)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하나님의 법도를 버리고, 우리가 세상에 빠지게 되면, 우리 영은 죽게 된다. 내 사명이 죽고, 능력은 사라진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아주 용맹스러운 전사들이다. 그중에 아파치 종족은 가장 용감했다. 아파치족이 총을 갖게 되자, 그들은 신출귀몰하는, 게릴라 전투의 거장이어서, 백인들은 아파치족이 나타나면, 꼼짝없이 당해야만 했다. 미국 정부는 그들을 회유하기 위해, 2가지 정책을 썼다.
① 그들에게 거대한 땅을 주고, 평화롭게 마음껏 살도록, 인디언 보호구역을 만들어 주었다.
② 그들에게 매달 먹을 것을 제공하고, 보조금을 지급하였다. 가족당 1,500달러씩, 무조건 지급했다. 그 뒤로 아파치 인디언들은 무력해졌다. 일할 필요가 없고, 무장할 이유가 없어, 마약과 술독에 빠졌다.
강력한 아파치 종족도, 삶은 호박처럼 완전 무기력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나약한 술주정뱅이,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타협은 이처럼 무섭다.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서, 살진 오리가 되면, 날지 못하게 되기에, 결국 잡아먹히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타협하면, 생명을 잃고, 능력이 사라진다. 머리 깎인 삼손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면, 스스로 사악한 욕망에 사로잡혀, 패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
(3) 말씀을 떠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라(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성경을 읽는 이유는, 단순히 성경 지식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여기에서 가장 강조된 부분은, 지키는 부분이다. 듣지만 말고 듣고 지키자. 예수님은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다.
인생의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해줘야, 맺을 수 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막는 대상이 우상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것도 들어가면 안 된다. 인류 역사상 전성기를 누린 나라와 교회를 보면, 성공의 비결은 한 가지다. 철저하게 그리스도께 붙어서 순종하였다.
마르틴 루터 이후에 독일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순종했다. 주님께 철저히, 하나가 되었기에, 독일 문학은 성경을 통해 이루어졌다. 독일음악은 찬송을 통해 이루어졌다. 독일의 법학과 철학이, 하나님의 탐구가 되었다.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으로 움직이자, 유럽과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3. 바른 신앙을 남기자(수24:14-15).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하나님 말씀만 붙들고 살았던 여호수아는, 평생을 통해, 나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과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사랑하는 동료에게, 바른 신앙을 가지라고 유언을 남겼다.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많이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잘생긴 사람이든, 못생긴 사람이든, 지위가 높은 사람이든, 미천한 사람이든, 사람은 다 죽는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 늙은 사람이 더 일찍 죽는다고 할 수도 없고, 건강한 사람이 더 오래 산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죽음을 먼저 준비하는 삶이다. 우리가 죽으면, 반드시 천국과 지옥이 있다. 죽음 뒤에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심판이 있다.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는, 죽음은 모두 인정하면서,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순교자들의 유언’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받던 시절, 하루는 로마 군인들이 카타콤을 습격했다. 카타콤에 숨어 있던 기독교인들을 모두 잡아 끌어냈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광장의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기 시작했다.
순교자들은 서서히, 십자가 위에서 숨졌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자, 로마 군인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서서히, 십자가 주변에 모여들었다. 십자가에 처형되는 성도들의 자녀가, 부모님을 찾아왔다. 그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자기 부모를 향하여 “엄마! 아빠!” 불렀다.
십자가에 달린 부모들은 “얘야 얼른 도망가거라. 나처럼 예수님을 믿다가, 붙들려 죽으면 안 된다. 어서 도망가거라!” 이렇게 외치지 않았다. “얘야 무슨 있어도, 예수 믿는 것은 포기하지 말아라. 비록 나는 먼저 죽지만, 천국 간다. 거기서 다시 만나자…”
부모들은 십자가에서 죽어 가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유언을 남겼기에, 그들의 자녀들도 예수님을 믿고, 또 그 자녀들도 신앙을 가지게 되어,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오늘 우리는, 내 사랑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남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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