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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40630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옵소서(합3:1-6)
  작성자 : 윤성은 작성일 : 2024-07-03
  첨부파일: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옵소서(주일).hwp(87K)

  (1-6)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밑에서 나오는도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끝없이 타락하고, 더욱 강퍅해지고 있다. 사람들에 의해, 환경 오염은 날로 더욱 심각해지고, 인간은 점점 창조의 모습을 상실해 버리고, 하나님과 더욱 멀어져 간다. 이때 가장 ‘부흥’의 역사가 필요하다. ‘부흥’(하이예후)은, ‘하야’(살다, 생명을 유지하다, 다시 살아나다) 이다.

1. 언제 부흥이 필요한가?

성령의 불이 꺼지고, 냉랭한 상태가 되어버린 개인과 교회, 그리고 회칠한 무덤과 같이, 이름만 있고 외형만 남은 개인과 교회는, 반드시 부흥이 있어야 한다. 계시록은 다섯 교회에, 부흥을 촉구했다.

(1) 처음 사랑을 상실한 에베소(계2:4下).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처음 사랑은 열정적인 사랑, 물불을 가리지 않고, 뜨거운 사랑이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 항상 함께 있고 싶은 사랑이다.

  에베소 교회는, 그렇게 눈부시게 빛나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자, 주님께서 책망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슴속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적 사랑이 사라짐을, 침체라고 한다. 처음 믿을 때 가졌던 열심과 각오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2) 잘못된 교훈을 따르는 버가모(2:14下).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세상과 구분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세상과 교회가 구별되지 않았다. 유다 백성이 이방 민족과 구별될 때, 거룩할 때, 언제나 강했고, 승리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이, 이방인과 구분되지 않고, 거룩하지 못할 때, 힘을 잃고 침체에 빠졌다. 교회가 세상과 확실하게 구별되지 않으면, 거룩하지 못하면, 교회는 침체한다. 성도는 능력을 잃는다. 교회가 신앙 수준을 낮춰서, 교인을 많이 얻으려고 하면, 교회는 침체에 빠진다.

(3) 이세벨의 꾐에 빠진 두아디라(2:21).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 다가오는, 사탄의 실체를 알지 못해서, 망하게 되었다.

  다른 복음을 가지고 온 무리를 받아들여, 교회가 음행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 용납하다가 온전한 믿음을 잊어버렸다. 말씀이 없으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은 말씀 위에서 교제해야 한다. 또한 회개할 기회를 주었을 때,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이 따르게 된다.

(4)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죽은 사데(3:1中).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행함이 없는 성도, 행함이 없는 교회를 말한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 전도하지 않는 교회, 헌신과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생활은 침체한 모습이다.

  거듭나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으로 살고, 악한 냄새를 풍기며 산다.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상태다. 이런 사람과 교회에, 반드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5)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라오디게아(3:15中).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성도,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고, 어느 것에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상태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반항하는 죄인들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에게 확신이 없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상태,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은 상태가 침체다. 이런 신앙을 가진 자들은, 예수님께서 토해 버리시겠다고 하셨다. 이런 사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부흥’뿐이다. 지금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하박국 선지자는 부흥을 사모하고 있었다.

2. ‘주의 일’이 부흥이다(2中).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하박국 선지자는, 주의 일의 부흥을 원했다. 우리가 사모해야 할 일도, 오직 ‘부흥’이다. 부흥을 위해 하박국은 기도했다.

  (1)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시기오놋(솨가, 옆길로 빗나가다, 그릇되게 행하다), 슬픔의 노래다. 주의 일이 부흥하기를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러면 ‘주의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하시려는 구원 사역을 말한다. ‘부흥하게 하옵소서’는 ‘주의 일이 생명 있게 하소서’라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살려 주옵소서”란 의미다. 주의 일이 부흥하면, 다른 문제는 다 해결된다는 말이다.

  유대 나라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로, 주님의 심판이 다가오는 위기에, 주의 일로 부흥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하박국은, 그토록 애타게 “부흥을 주옵소서!”라고 부르짖었다. 하박국의 기도가 나의 기도, 우리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 같이, 슬퍼하며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야곱도 실패할 때가 있었다. 야곱 가정이, 말할 수 없는 침체의 늪에서, 허덕일 때가 있었다. 야곱의 딸인 디나는,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히위 족속의 추장에게 성폭력을 당하자, 시므온과 레위가 분노해 살인자가 되자, 죽음의 공포에서 떨었다(창34장). 그때 야곱은 ‘주의 일에 대한 부흥’을 원했다. (창35장) 우상을 버리고, 벧엘로 올라가자, 하나님의 은혜가 야곱과, 그 가정에 임했다.

  교회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주님 안에 사는 능력이 충만할 때, 부흥이 있다. 유다가 사는 길은, 오직 ‘주의 일’이 부흥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하박국은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저는 이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옵소서!’ 내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 내가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하시려는 일이, 우리 가운데서 왕성하게 일어나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 ‘부흥’이라는 단어를 매우 좋아한다. 한국 교회만큼 ‘부흥’의 단어를 좋아하는 교회도 없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부흥’은, 숫자가 증가로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몰려옴을, 부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말씀을 좋아한다. “속히 이곳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와, 가득 차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하박국의 부흥은, 그들이 생각하는 부흥과는 전혀 다른 말씀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똘똘 뭉쳐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으나, 하나님의 뜻은 그들을 흩으셔서 교회를 세우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극심한 박해를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뿔뿔이 흩어졌다. 비록 교회는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일을 부흥하게 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하박국은 ‘주의 일’의 부흥을 위해, 기도 했다. 하박국 선지자 눈에 비친 유다는 (1:3中-4)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하나님의 법이 시행되지 못하고, 악이 판치는 세상이니, 하박국 선지자는 “어찌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라고 부르짖었다. 우리나라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이 해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하박국의 외침처럼,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한다.

3. 수년 내에, 부흥해야 한다(2中).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부흥하게 하옵소서는 ‘생명’을 달라는 기도다. 우리 자녀가, 죄 중에 살면, 그 영혼을 살리기 위해, 눈물로, 아픈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길, 이 민족이 사는 길이 ‘주의 일의 부흥’이다. 그러면 모두 산다. 성공한다. 그런데 (2)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라고 했다. 왜 놀랐는가? 주께 대한 소문은, 2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다도 심판하고, 바벨론을 심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박국은 자신이 소원했던, 기도가 응답 되었는데, 그 기도가 응답 되었을 때, 크게 슬퍼하고 놀랐다.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하박국 선지자와 선민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공의가 올바르게 실행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죄와 불의에 대해, 의로운 분을 일으켰다.

  성경이 말하는 부흥은, ‘하나님의 일의 부흥’이다. 하나님의 일의 부흥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를 때가 많다. 부흥의 소식을 듣고 놀랐다. 왜? (3-5)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내용이다. 하박국이 들은 소식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무리가 치러 올라온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문을 듣고 하박국은 떨었다.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지금 ‘환난 날’에 대한 소식,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소식이었다. 전쟁에 대한 소식이었다. 만약 지금 전방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마음은 어떻겠는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과 같이, 몸이 떨리지 않겠는가?

  궁지에 몰린 북한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어떻겠는가? 전쟁을 아는 사람이라면, 온몸에 전율이 흐르지 않겠는가? 북한이 다급한 나머지, 핵무기로 공격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창자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같이, 몸이 떨릴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전쟁 소문을 듣고, 뭐라고 기도했는가?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여기서 하박국이 말한 ‘주의 일’은, 전쟁의 소식이다. 심판에 대한 소식이다. 거기에는 선민에 대한 심판도 포함되었기에, 선민의 뼈를 깎는, 처절한 시련이 있다.

  주의 일에는 선민을 멸망하게 만든 바벨론과, 선민의 심판이 포함된다. 따라서 주의 일은, 선민들이 마냥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하박국이 탄식하며 기도했던 부흥은, 이런 부흥이다. 그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나고, 다시 회복되는 과정을 깨닫자, 떨릴 수밖에 없었고, 속히 빨리 지나가게 해 달라는 말이다.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이 민족을 보시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속히 이루어져, 다시 회복되는 주의 일이, 다시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맞을 짓을 했다면, 빨리 맞고, 정신 차리게 해달라는 기도다.

  하박국 선지자는 (2下)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의 진노가 있지만, 완전히 망하지 않도록, 긍휼을 잊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 기도처럼, 하나님은 죄악에 대해 진노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 사랑이다.

  십자가에는 예수님의 고난과 수고와 아픔과 희생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사랑이다. 진정한 십자가는, 뜨거운 주님의 사랑을 담고 있다. 십자가는 완전한 사랑의 주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나셔서, 온전한 사랑을 드러내신 계시다.

  그러므로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담겨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죄지은 인간이 아니라, 그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진노를 받음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게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긍휼을, 잊지 않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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