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내용
•홈  >  말씀과찬양  >  설교내용
  제  목 : 20240428 부활의 주님이 주신 사명 (마 28:16-20)
  작성자 : 윤성은 작성일 : 2024-05-08
  첨부파일:   부활의 주님이 주신 사명(주일).hwp(93K)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감당해야 할 지상과제, 사명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하셨다. 그 이유는,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다. 선교 명령은, 부활의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이다.
  교회는 온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해야 하며,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복음을 들고, 세상에 나가서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 일을 위해 존재하며,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주님이 주신 사명을 포기한 교회의 모습이다.
1. 예수님이 명하신 산(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1제자들은 갈릴리의, 한 산으로 갔다. 12제자 가운데, 유다가 죽었기에, 11 제자만이, 모일 수 있었다. 여기서 마지막 선교 명령이 주셨다.
  마태에게 갈릴리는, 갈릴리는 이방인들이 사는 땅이요(마4:15), 로마제국으로부터 억압과 착취,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기만당하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마태는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선교 명령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은 ‘예수께서 지시한 산’이 어디인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는 ‘아르벨’산이라고 생각한다.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들이 잘 알고 있던 산이며, 그 지역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이, 가장 잘 보이는 최고 전망대요, 믿음을 지키려고 대항하다가, 순교한 곳이기에, 다시 믿음의 결단을 생각하도록, 이곳이 아니었을까 생각하지만, 몰라도 된다. 
  산은 가장 높은 곳이다. 예수님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선교 명령을 내리기에, 가장 적절한 곳이다. 산은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산은 하나님의 뜻이 계시 되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고,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의 장소다(마5:1, 8:1, 17:1,9, 24:3, 26:30). 구약에서도 산은, 매우 중요한 장소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도 산이고(출3:2-),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과 율법, 성막 설계도를 받은 곳도 산이다(출32:15). 예루살렘이 아니라 어둠 속에 살던, 이방의 갈릴리에서, 세계 선교 명령이 내려졌음은, 더욱 큰 의미가 있다.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때 사람들은 2가지로 반응했다.
① 예수님을 뵈옵고, 엎드려 경배했다. ‘경배하다’(프로스퀴네오)는, 왕에 대한 경배하는 말로 사용했다. 죽음을 이기고 승리한, 예수님에 대해, 경배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② 그러나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 아직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열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몇 차례 만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에 익숙해졌지만, 그들과 함께 모인, 다른 성도 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아직 믿기에 어려운 사람도 있었다.
  그들 중에 부활한 예수님을, 처음 본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죽었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서, 그들 앞에 나타남을 보고 놀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의심하다.’(에디스타산, 디스타조)는, ‘불신앙’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믿기를 망설이는 이중적인 태도’를 말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기에,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았지만, 믿기를 망설인 이유는 무엇인가? 주저한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다. 부활 후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이, 이전 모습과 많이 달라, 알아보기 어려워서, ‘과연 저 분이 예수님인지?’ 의심했다고 한다.
  예수님을 만난 성도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처음에는 놀라움과 의심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하시는 명령을 들으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11 제자들도 처음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믿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자기 몸을 만져보게 하고, 함께 식사를 들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보고, 믿기를 망설임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죽었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 일을 믿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믿고,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하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의미를 온전히 깨달음은, 오순절에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한 후에야, 가능했다. 
2.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부활한 예수님을 받아들이기에, 망설이고 있는 형제들에게, 예수님께서 가까이 나왔다.
  이 행동은, 그들이 믿음을 갖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가까운 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면서, 부활한 예수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여러 가지 말씀으로,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 후에 제자들에게,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라는 명령을 했다. 예수님은 선교 명령을 하기 전에, 그 명령의 근거가 되는, 선언을 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하셨다. (18-20)에 ‘모든’(파스)이, 4번이 반복된다(모든 권세, 모든 족속, 모든 것, 항상(모든 날).
  이 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강조한다.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벗어난 권세는, 존재하지 않는다(모든 권세). 복음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한다(모든 족속). 교회는 그리스도가 지시한 모 든 가르침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모든 것). 예수님은 항상(모든 날), 교회와 함께 해주신다.
  ‘권세’(엑수시아)는 ‘능력, 힘, 절대적 권세’를 의미하는 말이다. 에크 + 우시아 = 본질로부터 나온다. ‘능력’(뒤나미스)는, 성령의 능력이다. 예수님은 이런 권세로, 사람들을 가르쳤고(마7:29), 병자들을 고쳐주셨으며(마8:1-13), 또 죄인을 용서해 주셨다.
  예수님은 온 우주의 권세를 다, 자기에게 주셨다고 했다. 물론 예수님은 부활 전에도,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셨다. 그분은 원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부활 전에도, 모든 면에서,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를 소유하고 계셨다(마9:6). 그러나 부활 전에는 이러한 권세가, 부분적으로 방해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모든 방해 세력을 제거하셨다. 하나님은 부활 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 아버지의 모든 권세는, 이제부터 아들을 통해 행사된다. 부활한 주님이 통치하는 왕국에, 새로운 권세가 나타났다. 복음을 전할 때, 권세가 나타난다.
  온 우주의 통치자가 되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막16:15) “…너희는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했다. 제자들은 자기 사상이나, 생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야 했다. 복음을 전하면,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할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3. 예수님의 명령은(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 가라(19上).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명령이다. 온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한 첫째 명령은 ‘가라’였다. ‘가라’(포류덴테스)는 ‘계속 가라!’는 뜻이다.
  ‘가라’는 명령은, 선교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임하고 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이때 오히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찾아와서, 유대인으로 개종해야 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은, 이방 땅에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백성이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이러한 상황이 변했다. 예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게 되었다. 모두 예수님의 영토가 되었고,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넘어서, 온 세상을 찾아가야 했다.
  지금은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복음은, 국경과 민족과 계층과 인종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야만 한다. 교회는 이 일을 위해서, 수동적으로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온 세상을 찾아가야만 한다.
(2)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19中).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예수님은 이전에,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마10:5-6) “…이방인의 길로도,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에게로 가라.”고 했다.
  예수님 자신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말했다(마15:24).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했다. 이 명령은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음을 말한다. ‘모든 민족’에는 이스라엘도 포함된다. 
  비록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그들도 복음 전파의 대상이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명령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훈련해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을,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만들라는 말이다. 참된 제자는, 스승의 생각과 삶을, 본받아 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제자로 삼으라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만들라는 명령이다. 자기 생각이나, 사상을 좇는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
  사람을 예수님에게 인도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좇아 사는 사람들을, 만들어야 했다. 사도들은 온 세상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믿은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었다(마12:46-50). ‘제자로 삼아’에는, 죄를 회개하게 만들어, 예수님을 믿게 하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게 해야 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 일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계속,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일이다.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가서 복음을 전하고, 믿은 사람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그들에게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사상과 삶을 따르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명령은, 사도들이 감당할 일인 동시에, 모든 시대의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교회가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신실하게 수행할 때, 교회는 존재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교회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지 않는다면,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최우선 과제로 받아들여야 하며, 모든 역량을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역을 통해서, 세상에는 예수님을 좇는, 수많은 제자들이 생산되게 될 것이며, 그들은 통해서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3) 제자의 표(19下).
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3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사도들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에게 ‘3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어야(밥티조)’했다.
  침례는 예수님을 믿고 연합된 자라고, 공개적으로 나타내는 예식이다. 침례는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베풀었다. 이는 침례를 베푸는 일이, 인간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로 행해짐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아야 한다.
  ‘이름으로’(에이스)는, ‘안으로’(into)이다. 그러므로 ‘이름으로’는 ‘이름 안으로, 들어가다’이다. 침례를 받음은, 예수님의 권세 안으로,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주님과 하나가 되었다면, 침례를 받아서 표시하라는 말이다.
②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킨다(20上).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다.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분부한 내용은, 계속해서 모든 세대에 가르치고, 전달되어야 한다(딤후2:2).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배워야만 한다.
  배우지 않고 가르칠 수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 갈 것이며, 더욱 든든하게 서게 된다.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 그것을 지켜 행하게, 할 책임이 있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또 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하려면,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바르게 배워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은혜이다.
  (20中)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지상명령을 하고 나서, 위대한 약속을 했다.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다. 온 우주를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예수님은, 지금도 자기 교회와 성도들을 지켜주고, 인도하심을 믿기를 축원한다.

 "

  이전글 : 20240421 침례 요한이 증언한 그리스도 (요1:29-34)
  다음글 : 20240505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 (막 10:13-16)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