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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40317 위로하시는 예수님(요14:1-6)
  작성자 : 윤성은 작성일 : 2024-03-20
  첨부파일:   위로하시는 예수님(주일).hwp(93K)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 때, 매우 들떠 있었다. 이제 예수님께서, 큰 영광을 받게 되신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그런데 예수님은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이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니, 제자들은 근심에 싸였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다 포기했는데, 제자들만 남겨놓고,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한다고 하니까, 제자들은 근심에 싸였다. 또한 (13:2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제자들이 배반한다고 했고, 자신이 할 수도 있으니, 불안했다. 제자들은 가룟가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13: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확신이 없으면 불안하다.

  자신은 죽어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13: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니 제자들은 마음에는, 근심과 불안이 싹텄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걱정 근심을 알고,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그것이 오늘 본문 말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알고 계셨다. 베드로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리라 알고 계셨다.

  예수님이 잡히시면, 나머지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리고 떠날 것을, 다 알고 계셨다. 세상의 죄를 홀로 지고, 십자가에 달려,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죽으셔야 했다. 심지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이 짊어진 인류의 모든 죄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버림을 받으셔야 했다.

  고통이 크면, 다른 사람들에게 눈을 돌릴 여유가 없지만,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을 위로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3:1). 예수님은 우리도, 끝까지 사랑하신다. 따라서 우리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왜 제자들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했는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보다, 자신들의 당면한 문제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우리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부족하면, 걱정 근심이 생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근심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어라(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주님은 체포되고 십자가에 달릴 때, 제자들이 크게 당황하고, 근심하게 된다고 알고 계셨다. 예수님을 상실하면 두려움이 나타난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의 근심을 제거하고, 평안을 주기를 원했다. 제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너희가 하나님을 믿듯이, 나를 그렇게 믿어라.” 했다. 제자들은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항상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히 믿고 있었다. 이처럼 내가 너희와 함께함을 신뢰하라고 말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항상 너희와 함께하시면서, 돌보고 계심을 믿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내가 너희 눈에,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너희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믿어라.” 하셨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의 믿음은, 그렇지 못했다.

  마치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던 때와 같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을 때 (20:25)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도마에게 나타났을 때, 도마는 의심을 떨쳐버리고, (28)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눈으로 보고 믿는, 낮은 수준이 아니라, 보지 못해도 믿는, 높은 수준에 올라가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16:13-15)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성령님이 이 땅에서 하시는 사역은,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사역이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사역이다. 성령님의 사역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성령님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강조하면, 위험할 수 있다.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님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인데, 성령님을 너무 강조하면, 예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충분히 받지 못할 수 있다. 이단이다. 예수님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예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게 됨은,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님이, 그렇게 역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이, 제자들을 실망하게 하는 분이 아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했어도, 예수님이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면, 모든 근심을 이겨낼 수 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니, 이 말씀을 늘 명심하면서, 살아가기를 축원한다.

2. 예수님의 약속을 붙잡아라(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 아버지 집’은, 하늘나라, 곧 천국을 말하며, 가장 평안한 곳이다.

  ’거할 곳‘은, 임시로 있는 곳이 아니라, 영원한 집이다. 성경은 천국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① 천국이 하늘나라로 불림은,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히11:16上).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사도 바울이 천국을, 셋째 하늘이라 했다. (고후12:2上)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첫째 하늘은 대기, 둘째 하늘은 우주, 셋째 하늘은 천국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모든 사역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다.

  (막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이처럼 천국은 하늘에 있기에, 천국이라고 불린다.

② 천국은 ‘성’으로도 불린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거하기 때문이다(히11:16下).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계시록에는 천국을 ‘새 예루살렘 성’이라 했다. (계21: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③ 천국은 ‘낙원’으로 불린다(눅23:43下).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천국이 너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④ 예수님은 천국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부르셨다.

아버지의 집은 평안한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말씀했다. 천국 곧 하나님 아버지의 집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만큼 넓은 곳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꽉 차서 들어갈 곳이 없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천국은 사망이 없고, 애통함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눈물이 없다. 아버지가 우리를, 온전히 돌보아 주는 곳이다. 듣기 좋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언제나, 참된 것만 말씀하시는 진리이시다.

  (14:2中)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천국이 존재하지 않고, 영화롭지 않고, 거할 곳도 많지 않다면, 진리의 예수님은, 그 사실을 말씀해 주셨을 것이다. (2下)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제자들을 버려두기 위함이 아니라, 제자들이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가신다고 했다.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실 뿐만 아니라, 다시 오셔서 제자들을 영접하여, 그곳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을 공원에 내려주고, 아버지는 잠시 손님을 만나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공원에서 놀고 있으라고 말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손님을 만나고 돌아오는데, 자동차가 고장 났다. 아버지는 마음이 급했지만, 아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꽤 지난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벌써 밤은 깊었다. 그때까지 아들은,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휘파람을 불며 놀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으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때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왜 미안하세요? 아빠는 말씀하신 대로, 오셨잖아요?” 예수님의 약속도 같다. 예수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시간은 많이 흘러, 주변은 어두워졌다. 혹시 예수님이, 약속을 잊으신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여전히 믿으며, 신뢰해야 한다. 예수님은 때가 되면, 말씀하신 대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접하여, 예수님이 계신 곳에 있게 하신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곧 오신다. 이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일이, 거의 다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3.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다(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천국이 아무리 좋아도, 가는 방법을 모르면 불안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 돌아가신다고 이미 말씀하셨다.

  (7: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따라서 예수님은 본문을, 이런 뜻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너희도 아버지 집으로 오는 길을 알고 있으니, 장차 아버지 집에서 함께 만나 영원토록 같이 살게 될 것이다.”

  그러자 도마가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지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셨는데, 아버지 집이 어디인지, 우리는 전연 알지 못한다. 불안하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안 계시는데, 어찌 아버지 집을 찾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있을 수 있는 질문이다. 이에 예수님은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제자들이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할 필요는 전연 없었다.

  첫째 하늘은 어떻게 지나가며, 둘째 하늘에 있는 많은 별들을 어떻게 지나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셋째 하늘로 가야 하는지, 염려할 필요가 전연 없다. 예수님은 이미 그 이유를 말씀하셨다. 다시 와서, 친히 아버지 집으로, 인도해 주시니, 천국 가는 길을, 스스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낯선 곳에 가서, 길을 잘 몰라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그때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마침 잘 되었군요. 지금 제가 그곳으로 가고 있는 길이니, 제가 모셔다드리지요. 함께 가세요.” 그러면 얼마나 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오른쪽으로 얼마 가서, 왼쪽으로 돌고, 한 참 가다가 무슨 건물이 나오면, 우회전하고, 얼마쯤 가면 거기입니다.” 이렇게 방향을 설명해 주는 것보다, 직접 안내해 주면 얼마나 더 쉬운가? 지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 집으로 가는 방향을 말씀해 주시는 대신, 제자들의 손을 붙들고, 직접 아버지 집으로 이끌어 주시니, 제자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갈 수 있으니, 이 땅을 떠날 때, 어떻게 될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진리의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오셔서, 우리 손을 붙들고, 친히 영화로운 아버지 집으로,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로운 아버지 집에서, 생명이신 예수님이 주신, 영생을 누리게 된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 잃은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모두 찾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①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함을 믿어라. ② 내가 너희에게 한, 거처의 약속을 믿어라. ③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다. 이를 믿어, 불안하지 않고, 주님의 위로하심이, 항상 넘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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