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40310 언약궤 안의 내용물(히9:3-5) | |
작성자 : 윤성은 | 작성일 : 2024-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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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친히 임재하시는 영광스러운 곳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 예배를 받으시고, 말씀을 주시는, 아주 거룩한 장소다. 죄를 용서하시는 은혜의 장소다.
성막은 언약에 따라, 제사와 제물을 땅에서 드렸는데,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었다. 이 땅에 만들어진 성막은, 영광스러운 하늘 성소의 그림자요 예표였다. 성막의 기구 중에, 가장 먼저 증거궤를 만들라고 말씀하시고, 증거궤는 지성소 안에 있었다.
지성소는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이 세상에 오신(요일2:2),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보여 준다. 언약궤’는 ‘증거궤, 법궤, 하나님의 궤’로도 불렸다. 이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이 있었다. 이 내용물들 하나하나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1)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4中). -
예수님은 말씀을 먹이는, 선지자 직을 보여 준다.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언약궤 안에 있던 만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담아두라고 했다.
(출16:33) “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만나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유일한 양식이었다.
하나님은 메추라기도 먹게 하셨다.
그러나 주식은 만나였다. 매일 새벽에, 일용할 양식으로, 지면에 내렸다. 백성은 그것을 거두어, 다양하게 조리하여 먹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는 하나님이 만나를 먹이신 이유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라 나온, 무리의 굶주린 배를,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이셨다. 만나는 영생의 떡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요6:31下)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했다. 예수님은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자,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요청했다. 주님은 (48-51)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다.
(2) 아론의 싹 난 지팡이(4下). -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상징한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대제사장의 역할은, 백성들이 죄를 지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므로, 백성이 죄 사함을 얻도록, 중보 역할을 하는 직분이다.
(민17: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성막 안에 두었던 마른 지팡이에서, 불과 하룻밤 사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다. 자연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기적이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했다. 그런데 이 기적은, 심각한 죄와 심판을 배경으로 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정하여 세우신 권위엔, 반드시 순복해야 한다. 그런데 광야에서 레위인 제사장인 고라와 다단, 아비람, 등이 당을 짓고, 이름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민16:3)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특히 이때 하나님께서 율법을 수여하고, 새로운 체계를 세워가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출애굽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모세와 아론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그들을 대적함은, 곧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께 도전함과 마찬가지다. 이 반역 사건에서, 인류 역사보다도 앞서, 사탄이 교만한 마음을 품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보다 높아지겠다고 대적한, 장면을 발견한다. 그것이 죄의 출발점이다.
(사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고라의 반역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여겨서, 가족까지 심판하셨다. 그 상황을 불평하던 백성을 전염병으로 치셨다. 아론은 번제단의 불을 담은 향로를 들고, 백성에게로 신속히 달려가 중재함으로, 죽음의 전염병이 멈추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문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 열둘을 취하고, 그들의 이름을, 지팡이에 쓰고,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써서, 언약궤 앞에 두라고 명령하셨다.
(민17: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지팡이에서, 싹이 날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를 통해, 더 이상 백성 중에 이런 원망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셨다.
아침에 보니, 아론의 지팡이에서, 하룻밤 사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열렸다. 부활에 대한 상징으로,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 사건 속에는, 죄의 원초적인 모습과 하나님의 심판과 대제사장의 중보와 속죄와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는 기적의 부활이 들어 있다.
결국 그것은 그리스도가, 온 인류의 속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없이할 수 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 수 있다.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의 역사를 계시한다. 사건에서 결과적으로 말함이 ‘부활’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시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다.
(3) 십계명 돌판(4下). - 예수님의 왕 직분을 상징한다.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십계명 돌판은, 하나님께서 친히 글씨를 새겨 넣으셨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것은 옛 언약의 중심에 있기에, 다양한 상징적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십계명은, 언약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옛 언약의 말씀인, 율법을 완성하시고, 새로운 언약이 된다. 십계명은 진리의 말씀, 토라의 압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진리 자체다(요14:6). 십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서다.
율법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명령하신다. 예수님은 말씀을 따라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이 계시하는, 바로 그 하나님이시고 통치자시며 심판자이시다. 언약궤 안에 있는 율법은, 죄를 범한 백성에게, 죽음을 요구한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어 정죄한다. 율법을 어기는 자에게는, 죽음을 선고한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2. 언약궤 위에 속죄소와 영광의 그룹들(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언약궤 위는 속죄소라고 불렸는데, 순금으로 만든 두 개의 그룹이 날개를 편 모양으로 세워져 있었다.
(출25:17-22)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1) 속죄소는 조각목을 도금하지 않고, 그룹들을 포함한 전체를, 한 덩어리 순금으로 만들었다.
‘속죄소’(카포레트)는 (카파르)‘덮다, 가리다, 칠하다’에서 유래했다. 속죄의 기본 개념은, 죄를 지우거나 없앰이 아니라, 희생된 피로 덮어서, 드러나지 않게 만든다.
그것이 영구적이어야, 영원히 죄가 없어지는 결과가 된다. 속죄소는 1년에 단 하루, 유대력으로, 7월 10일, 대 속죄일이다. 1년 동안 굳게 드리워졌던, 지성소 휘장이 열리는 날, 대제사장이 자신을 위해 속죄한 후,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속죄제 염소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이 속죄소 위와 앞에 뿌린다.
(레16:15-16)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속죄일은 1년에 단 하루, 백성의 대표자이며, 제사장의 대표자인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한 해 동안, 온 회중의 죄를, 속죄하는 날이다. (16:17)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의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마치고 나오는 순간까지, 그 누구도 회막 안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돌판들이 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드러내어 정죄하고, 죄의 형벌은 사망임을 상기시켜 준다. 그런데 그 위에, 속죄의 피가 덮인다.
희생의 피로 죄를 덮고, 율법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킨다. 이는 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피로 덮어, 죄인이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다. 하나님과의 화해의 표시가 속죄이니, ‘속죄소’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이루어지기에 ‘은혜의 자리’나 ‘자비의 자리’라고도 한다.
(2) 속죄소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제단에 바친 희생제물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린, 보배로운 피를 상징한다. 대제사장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 모두가 그림자와 설계도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따라서 속죄소도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사도 바울이 쓴, (롬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여기서 언급된 ‘화목제물’은 헬라어 원문은 ‘힐라스테리온’인데, 히브리서에서는 ‘속죄소’로 번역했다. (히9: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힐라스테리온’은,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 히브리어 ‘카포레트(속죄소)’의 번역했다.
따라서 (롬3:25)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속죄소로 세우셨으니…”라고 번역해야 한다. 황소와 염소의 피는, 궁극적인 속죄를 이룰 수 없다. 동물의 피는, 사람의 죄를 영원히 사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아닌, 흠 없는 자기 피로, 속죄를 이루셨다.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서, 자신을 속죄 제물로 삼으셨다. (히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우리는 이런 것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해결된, 신약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명령하신 성막에 관한 모든 상징과 비유를, 마음에 간직하고, 이제는 실체가 되신 예수님의 신비와 사랑을 날마다 묵상하며, 하나님 중심이 되는 예배와 삶이, 거룩함을 향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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