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40204 마음을 같이하라(빌2:1-4) | |
작성자 : 윤성은 | 작성일 : 2024-02-16 |
첨부파일: 마음을 같이하라(주일).hwp(93K) |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영과 진리로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먼저 주님 앞에, 저희들의 모든 악하고 추한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고 정결케 해 주시옵소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며, 겸손과 사랑으로 서로 섬김으로, 세상 속에 성도의 정체성과 향기를 드러내며, 주님과 복음을 증거하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특별히 구정 명절을 맞이하며, 갑절의 영감과, 강하고 담대한 믿음과, 성령 충만함을 주셔서, 세상에서 본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이 시간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을 받아주시고, 성령 충만함의 은혜를 더하여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구정을 앞두고 있다. 구정의 가장 큰 의미 중에 하나는 ‘동행’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동행 없이는 완벽할 수 없다. (전4: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구정에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명절을 보내게 되는데, 서로가 정을 나누고, 힘을 실어주는 기회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이면, 무엇보다도 마음을 같이함이 중요하다. 아니라면 모여봐야, 오히려 불편하다. 따라서 가족이 하나 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구정에는 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감사는 우리 삶이, 하나가 되는 마법의 열쇠다. 감사를 통해 아픔과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서로가 감사하며,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는 마음으로, 사랑과 희망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빌립보서가 기록될 당시, 바울은 사슬에 매인 채, 로마 황제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를 바울에게 보내서, 바울의 옥바라지를 하게 했고, 많은 물질도 함께 보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에 감사해서, 편지를 보냈다. 그것이 빌립보서다.
바울은 그의 매임을 걱정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말씀으로 위로했다. (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먼저 따뜻하고, 애정 어린 말씀으로, 그의 매임을 걱정하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를 위로했다.
그런 후에,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더하여주려고 권면했다.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려면 (27下)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한 마디로, 빌립보 교회 성도에게, 하나가 되라 했다.
흔히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한다. 가족도 하나가 되어야 하고, 교회도 하나가 되어야 하고, 국민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 함께 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족들이, 명절에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람과 하나 되기 위해, 하나님을 적으로 만들면 절대 안 된다.
1. 하나가 되는 요건들(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하나 되는 교제의 요건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1) 그리스도 안에서의 권면이다.
‘권면’(파라클레시스)은 ‘곁으로 부르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잘 권면하여,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한다.
교회와 가정에는 믿음이 약하거나, 시험에 빠진 성도가 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하다고 책망하거나, 소외시키면 안 된다. 바울 사도가 교회에 대해, 성령 안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권면한 것처럼, 성도들도 서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권면해야 한다.
(2) 사랑의 위로다.
빌립보 교회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권면만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사랑의 위로도 있었다. 권면이 말씀으로 바르게 세운다면, 위로는 사랑으로 감싸줌이다.
‘위로’(파라뮈디온)는 설득하고 격려하는 일이다. 권면과 같지만, 더욱 부드러운 의미로, 고통에 빠진 자에 대한 태도다. 사랑 없는 위로는, 진정한 위로가 아니다.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성도는 연약한 형제를, 사랑으로 위로해야 한다.
(3) 성령의 교제다.
빌립보 교회는, 성령님과의 교제가 있었다. 성령님은 그들 가운데 계시면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다. 다양한 은사도 주셨다. 또한 성령님의 열매도 맺게 하셨다.
‘성령의 교제’(코이노니아)는, 성도가 피차 행해야 할 참여요, 태도다. 성령의 교제는 교회의 힘이다. 교회가 성령의 교제를 떠나면, 인간적인 교제가 되고, 인간적인 교제에는 파당이 생기며, 파당이 생기는 곳에는, 분쟁이 생긴다. 결국 성령 없는 교제는, 교회에 해악을 끼친다.
(4) 긍휼과 자비다.
성령님은 빌립보 교회 성도를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푸셨다. 성령님은 (롬8:26-27) 말씀처럼,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셨다.
‘긍휼’(스플랑크논)은, ‘내장, 심장, 사랑’을 의미한다. 긍휼은 이웃의 사정과 형편을, 나의 일과 같이 여기는 마음이다. ‘자비’(오이크티르모스)는 ‘불쌍히 여기다. 가엽게 여기다’는 말이다. 자비는 긍휼에서 비롯된, 아파하는 마음으로, 외적인 표현이다.
오늘도 우리는, 주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로 살아간다. 주의 긍휼과 자비가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연약한 이웃이나, 어려움에 빠진 자들에게, 주님이 우리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신 것처럼,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는, 성령님의 교제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긍휼과 자비도 있었다.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들은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다.
(요17:21中)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고전12:13中)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우리는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 예수님이 기도대로, 성령님은 우리의 하나 됨을 이루셨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한다면, 이는 예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일이다. 또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며, 성령님의 역사를 소멸하는 일이다. 예수님이 바라시고, 성령님이 이루신 대로, 하나 됨을 힘써 지키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2. 하나 됨의 비결(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빌립보 교회도, 완전하지 못했다. 분쟁하고 있거나, 분쟁의 조짐이 있었다. 따라서 교회가 하나 되는, 비결을 제시했다.
(1) 마음을 같이 하라.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고전2:16下)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이미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주어졌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기에, 모두 마음을 같이해야 했다.
‘마음을 같이 하라’는, 같이 한 가지만 생각하라는 말이다. 같은 생각을 해라.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마음이 서로 같아질 수 있다. 자신만 생각하면, 결코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없다.
(2) 같은 사랑을 가지라.
빌립보 교회 성도는,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의 위로를 받았다. 예수님은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했다.
‘같은 사랑’은, 사랑의 대상이 일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받은,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해야 했다. 그 사랑의 대상 역시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도들이 연합하여, 사랑할 대상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3) 뜻을 합하라.
빌립보 교회 성도는, 성령님의 교제가 있었다. 이제 그들의 몸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그들 중에 계신, 성령님의 전이 되었으니, 성령님을 따라 영의 일을 생각하며, 그들의 뜻을 합해야 했다.
‘뜻을 합하여’라는 말은 ‘영혼을 같이하여’라는 말이다. 영혼을 같이한다는 말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 즉 전인적으로 그 뜻을 같이함을 말한다. 지식으로만 같이 하면 부족하다. 감정만 같이해도 안 된다. 전인격, 즉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같이해야, 뜻이 합쳐진다.
(4) 한마음을 품어라.
성령님은 빌립보 교회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한마음, 곧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서로에게 자비를 베푸는 마음을 품어야만 했다.
한 마음을 품어도, 하나만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나만 생각해야 하는가?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내가 하는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생각해 보고, 행동하기를 바란다.
(행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었다.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 될 때, 그들에게는 큰 권능과 큰 은혜가 임했다. 이것이 하나 됨의 복된 결과다. 반면에 (갈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가정에서 가족들이, 교회에서 성도들이, 또 나라에서 국민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모두 멸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 되지 못함의 비극이다. 우리는 모두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3. 하나 됨을 위한 실천 방안(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여기서,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이 있다.
(1) 다툼으로 하지 말라(3上).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1: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성도 중에는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다툼으로 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다툼’(에리데이아)은 이기적인 욕망이다. 자기를 드러내며,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육신의 욕구를 뜻한다.
제자들이 서로 자기를 높이며, 으뜸이 되려 할 때, 그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눅22: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각자가 자기를 높이려 하면, 서로 간에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서로 다툼이 있으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 일에든지, 다툼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다툼이 왜 생기는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먼저 내세우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보다, 나를 먼저 앞세우면, 결코 화합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자기를 드러나게 하려는 이기적인 욕망을 없애야 한다.
(2) 허영으로 하지 말라(3上).
“…허영으로 하지 말고…” 허영’(케노독소스) 공허한 영광, 유익 없는 영광, 말대로, 헛된 영광을 뜻한다. 서로 다투며 자기를 높여보았자, 헛된 영광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아무 일에든지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힘써 구하기를 바란다.
(3)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3中).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하나가 되려면, 아무 일에든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한다. 나보다 우수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겸손한 마음은, 다툼과 허영의 반대다. 다툼과 허영은, 자기를 높이려 든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은, 자기를 낮춘다. 아무 일에든지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긴다. 그때 비로소 하나 됨이 이루어진다.
각자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다툼 대신 일치를 이룰 수 있다.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삶을 사심으로, 마침내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게 했다. 따라서 겸손이 교회 일치에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분명히 알게 해준다.
(4) 자기 일을 돌아보라(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대개 자기 일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남의 일에 대해서 불평한다.
따라서 먼저, 자기 일을 돌보면서, 자기가 맡은 일부터, 열심히 해야 한다. 그렇다고 각각 자기 일만 돌보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자기 일이 제일인 줄 알고, 자기 일이 전부인 줄 알고, 다툼과 허영으로 하기 쉽다. 그러므로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야 한다.
나의 일에 충실하지 못하면서, 남의 일에 대해, 불평하려 들지 말자.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자. 내 일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다른 사람들의 일도 귀하게 여기며,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모두가 협력하기를 바란다.
사도 바울은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로 끝맺는다. 성도들의 마음이 갈라지면, 목회자는 근심할 수밖에 없다. 목회자가 근심하면, 성도들에게 유익이 없다. 목회자에게 즐거움이 있을 때, 성도들에게도 유익이 있다. 하나 됨의 비결도 알았고, 실천 방안도 알았다. 문제는 우리의 순종이다.
말씀을 들었으면, 말씀을 지켜야 한다. 우리 모두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자. 교회에 대한 말씀을 가족에게도 적용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큰 권능과 큰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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