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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31203 수전절의 예수 그리스도(요10:22-27)
  작성자 : 윤성은 작성일 : 2023-12-06
  첨부파일:   수전절의 예수 그리스도(주일).hwp(702K)

  하나님 아버지, 한 해를 돌아보며 마무리하는 12월!

거룩한 주일, 영과 진리로 올려드리는 저희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먼저, 지나온 시간 돌아보며, 주님 앞에 회개하오니, 저희들의 이기심과 불순종을 용서해 주시고,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시옵소서.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추운 겨울이 오고, 어둡고 험난한 세상 풍파 속에서라도, 결코 믿음이 위축되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평안을 누리며, 감사와 기쁨의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거룩하지 못했던 삶을 회개하며 ‘교회 중심’, ‘예배 회복’으로,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하며, 복음 전도의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성령 충만한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2-27)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 겨울이다. 인생도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온다. 겨울이 되면 어두움, 밤이 길어진다. 인생도 ‘겨울’을 맞이하면, 죽음을 맛보는 시간이 온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67년에 참수형을 당하게 된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바울은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찬 겨울이 오기 전에 내게로 오라고 부탁한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4:9)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딤후4:21)고 했다. 순교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수전절의 예수님인데, 때는 겨울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사역 말기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건들을 기록했다. 초막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하셨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삯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책망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선한 목자로서, 자기 양들을 잘 알고, 그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양들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심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원했다. 또 수전절에는,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는 주제가 다루어진다.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그래서, 크게 박해받게 된다. 그리고 너희들이 믿지 않지만, 내가 행하는 일은 믿으라고 하시고, 표적을 행하시게 된다.

1. 수전절(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수전절은 닦을 수(修), 성전 전(殿)으로, 성전을 깨끗이 하여, 봉헌했다는 뜻이다. 히브리어로는 하누카(봉헌)라고 한다.

  헬라어(엥카이니아) ‘엔’(안) + ‘카이노스’(새로운) = 더럽던 성전을 새롭고, 깨끗하게 하여, 봉헌함을 의미한다. 하누카 절기는 구약에는 없었고, 신약 바로 전인, 중간기에 생긴 절기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은, 사울, 두 번째 왕은 다윗, 그다음은 솔로몬이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남쪽은 남 유다, 북쪽은 북 이스라엘로 나누어진다. 북 이스라엘은, BC 722에 아수르에게 멸망 당했고, 남 유다는 BC 586에 바벨론에 멸망 당한다. 또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의해, 페르시아는 그리스에 의해, 그리스는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 당한다.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나라가, 바로 그리스다. 그리스의 첫 번째 왕은, 유명한 알렉산더대왕이다. 알렉산더는 20대 초반부터, 전 세계를 정복하고, 33살에 요절한다. 이 알렉산더대왕 밑에는, 셀류코스, 프톨레미, 카산더, 리쉬마쿠스, 4장군이 있었다. 대왕이 죽은 후 이들이, 각 영토를 나누어 지배했다.

  그러나 카산더와 리쉬마크스는, 의문사로 죽고, 셀류코스와 프톨레미 장군이, 본격적으로 영토전쟁을 벌인다. 이 시기에 유대 종교가 허용되었고, 대제사장은 실질적, 유대민족의 최고지도자였다. 이때 아주 못된 자가 나오는데,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다.

  그는 성전을 더럽히고, 마지막 예수님의 재림 전에 등장하게 될, 적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이다. 에피파네스 4세는, 유대인 8만을 죽이고, 유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성전을 더럽힌다. 안식을 폐지하고, 율법 공부를 금지 시키셨으며, 제우스신을 성전에 가져다 놓고, 왕의 생일에는 돼지 피를 바치게 했다.

  유대인들이 불결하게 여기는 돼지의 피를, 성전 안에 뿌린다. 이를 거역하는 사람들은, 심한 고문을 당했고, 교수형에 처했다. 안티오쿠스 4세는, 스스로 ‘에피파네스’라 했다. ‘신이 나타났다’라는 의미로, 자신을 신격화했다. 이런 만행에, ‘마카비’(망치, 뿌리 뽑는 자) 가문이 일어나 혁명을 일으킨다.

  마카비 가문은, 성전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옷을 찢고 통곡하였다. 신실한 제사장들을 세워, 성전을 정결하게 했다. 성전에서 우상의 제단을 헐고, 새로운 제단을 만들어 봉헌하고, 무너진 곳을 수축했다. 성전을 탈환해보니, 정작 성전 안의 촛대에, 기름이 하루치밖에 없었다.

  성전에서는 거룩한 기름만 사용할 수 있는데, 거룩한 기름은, 급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하루치의 거룩한 기름이, 무려 8일 동안, 성전 안을 계속 밝히는, 기적이 일어났다. 8일 동안 꺼지지 않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이날을 기념하여 하누카(빛의 절기)가 시작되었다.

  주전 164년에 그들을 물리치고, 다시 성전을 봉헌할 수 있었다. 수전절은 이날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메노라 촛대는, 7개의 촛대에 불을 밝히지만, 하누카 시즌에는 9개의 금촛대에 불 밝힌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과 8일 동안 불을 밝혔음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겨울인 12월 중순, 8일간 계속되었다.

  수전절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마지막 구원을 얻은 때였다. 요한은 수전절의 영적 의미가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에게 주어진, 마지막 구원의 기회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은 주님께서 하신 마지막 공적 설교와, 이를 거부한 유대인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마지막이 다가오기 전에, 더러워진 우리 마음에,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선포하며, 불빛을 밝힘으로, 깨끗하게 만들어,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면하시지만, 예수님을 거부한 유대인에게, 믿지 못하면 심판이 있음을, 보여주는 절기이다.

2. 성전 안에서(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예수님은 수전절에,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걸어서 다니셨다. 행각에는 지붕도 있고, 그 양편에는 기둥이 받치고 있으며, 또한 가운데에는 통로가 있었다.

  이러한 행각은, 쌀쌀한 겨울철에, 추위를 피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되었다. 이 행각이 헤롯 성전 안에 있었다. 이 행각은 오래된 건물이었고, 솔로몬이 직접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기관들이 회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주님은 이 행각을 왕래하시면서, 활동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사역 말기인 겨울에, 이곳을 왕래하시면서, 여러 가지 가르침을 베푸셨다. 요한은 이곳에서 일어났던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예수님께서 솔로몬 행각을 거니실 때, 유대인들이 몰려와서 주님을 에워쌌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얻으려고 에워쌌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확실한 말씀을 듣고 싶었다. 그들은 주님에게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합니까?’ 하고 추궁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면, 분명히 메시아라고 밝히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주님에 대해 날카로운 감정을 가지고 대했다. 예수님을 찾아와서, 더 이상 모호한 말로, 우리를 헷갈리게 하지 말고, 자신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분명히 말하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마치 예수님이, 교묘한 말재주로 자기 정체를 숨기면서, 자신들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이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8:24)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자기를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강조해서 말씀했다. 예수님 말씀은 그들에게 이제 유대 종교를 버리고, 주님을 선택하라고, 촉구한다고 생각했다. 유대인은 이러한 예수님의 요구를 듣고 당황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음을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정말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인지, 분명하게 말해주기를 요구했다. 주님이 행하시는 말과 행동을 보면, 주님의 말에 동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거부했기에, 주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을 겪고 있었다.

  예수님은 이전부터, 자신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라고 선언하셨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했다고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증언했지만, 메시아로 인정하기를 주저했다. 이들은 말씀이 아니라, 전통의 가르침과 다르다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3. 믿지 않은 이유(25-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 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분명히 정체를 밝히라고 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했지만, 너희가 믿지 않았다고 대답하셨다. 이미 침례 요한은, 예수께서 주님이 메시아임을 증언했다. 그리고 주님 역시, 가르침과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언하셨다.

  (요8:58)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기도 했다.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하셨다. 유대인이 정직한 마음으로, 그 말을 들었다면, 주님을 믿었을 텐데,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고 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신 이적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증언하였다. 병을 고치신 일과, 죽은 자를 살린 일은, 주님이 생명의 주인임을 나타내고 있다.

  바다 위를 걷고, 풍랑을 잠잠하게 한 일은, 주님이 자연을 주관하는, 창조주임을 보여준다. 권능 있는 주님의 교훈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신 일은 모두 주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임을 증거했지만, 이러한 증거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 사건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맹인을 보시고, 고쳐주심을 보고도, 이 세상에 빛을 주시는 주님임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믿음이 없었기에, 이렇게 많은 증거를 두고, 또 다른 증거를 요구했다.

  그러면 왜 유대인들은, 이 많은 증거들을 보고도, 주님을 믿지 않았나? 예수님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기의 양은, 그들의 목자인 자신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의 양이 아니었기에, 주님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에, 예수님의 교훈과 행하신 일들을 보고서도, 믿지 못했다. 거듭된 증거를 보고도, 믿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사탄에게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춰 주어야만, 믿을 수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교회를 다니고, 성경도 배운다. 그러나 예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은, 결국 주님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계속 예수님에 대해 듣지만, 결국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등만 하게 된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①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② 예수님은 “나는 그들을 안다.” 하셨다. 예수님은 자기 양을 분명히 아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예수님께 주셨기에, 그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양을, 하나도 잃지 않으실 것이다. (마7:21下)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의 뜻대로 믿고 있는가?

③ 주님은 “그들은 나를 따른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순종한다. 양이 목자를 따르듯이, 주님의 백성도 주님의 뜻을 따른다.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④ 주님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자기 백성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예수님은 이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생명을 드리셨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이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지나가면 기회는 없다.

⑤ 주님은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선언하셨다.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그 누구도 그의 백성을 해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탄에게, 절대로 놓아주지 않으신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면, 어떤 위협에도,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주님의 손에서 왜 빼앗을 수 없는가?

  (29-30)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아무도 그 손에서, 그 양을 빼앗을 수 없다. 하나님은 만물보다 크신 분이며,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기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그 음성이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주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인가? 상식도 종교도 아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악인은 진리가 밝히 드러날수록, 더욱 악하게 대응한다. 성경을 잘 알아야,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다. 그리스도가 없는 종교는, 소망도 기쁨도 없다. 사탄에게 속게 된다. 마지막이 다가오기 전에 우리삶의 어두운 부분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를, 다시 거룩하게 만들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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