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31126 말씀을 능력으로 쓰는 사람(고후4:1-6) | |
작성자 : 윤성은 | 작성일 : 2023-12-06 |
첨부파일: 말씀을 능력으로 쓰는 사람(주일).hwp(86K) |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저희들이 올려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점점 추워지는 날씨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모든 상황 중에도, 끝까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 마지막 때에, 말씀과 기도의 삶으로,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하며, 복음 전도의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삶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무능해 보일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말씀에 문제가 있기보다, 말씀을 맡은 사람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를 갖고 있어도, 게임기로만 활용한다면, 게임기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무리 강력해도, 쓰는 사람들에 따라 달라진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다. 하나님 말씀은 능력이 있는데, 왜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가? 우리에게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으로 나타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1) 믿는 사람의 낙심은, 복음 증거의 장애가 된다(1).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라고 했다. 4장에는 3번이나 반복한다.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낙심은 복음의 능력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아, 하나님께 두었던 소망을 포기한다면, 낙심한 모습이다. 낙심하면 포기한다. 낙심하면, 소망을 포기하고, 움직이기를 포기하고, 역사 만들기를 포기하고, 헌신하기를 포기하고, 사명 완수하기를 포기한다.
(2) 낙심이 무서운 이유.
낙심하면 사람들은 밥도 먹지 않고, 꼼짝 안 한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는데, 마귀가 낙심의 화살을, 마음에 꽂아 넣으면, 모든 일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래서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낙심은 포기하게 만들기에, 포기하지 말라.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된다. 그런데 참 묘하게, 죄짓는 데는 움직인다. 그래서 낙심할 때 움직이면, 죄짓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낙심했다.
낙심하니까 원망하고, 원망하니까 망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을 보고 낙심했다. 낙심하자 뿔뿔이 흩어졌다. 오합지졸이 되었다. (왕상19장)에, 능력의 엘리야 선지자가 낙심하자,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했다. 능력의 선지자가 무능해졌다.
왜 복음에 힘이 없는가? 마귀가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를 낙심하게 만든다. 교회에 대해서, 이상한 소리를 듣게 만들고, 교회 다녀도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내가 무슨 힘이 있느냐면서, 기도하지 않는다. 낙심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되는 것만 보여, 힘을 잃게 됨이 낙심하게 된다.
(3) 낙심하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한다(눅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해선, 기도해야 한다. 낙심을 이기는 길은, 기도해야 한다. 낙심하는 이유는, 기도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악한 마귀가, 낙심의 화살을 쏴도, 기도의 방패, 믿음의 방패로 막으면,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는 말은, 주님만 바라보는 인생이 되었음을 말한다. 날씨에 따라, 민족성도 달라진다. 유럽에 있는 민족들 가운데, 우울한 사람들이 많다. 밤낮 비오니까 그렇다.
비 내리는데 사는 사람, 흐린데 사는 사람, 구름 낀데 사는 사람은 우울하다. 잘 웃지 않는다. 독일 병정 같다는 말은, 표정이 없다는 뜻이다. 반면 햇볕이 쨍쨍 쬐는 곳에 가면, 일사량이 많기에, 사람들이 생글생글 웃는다. 거지도 생글생글 웃고 다닌다. 멕시코는 매우 낙천적이다. 그러므로 햇빛을 많이 보라.
영혼의 햇빛은 예수님이시다. 영혼의 햇볕이 되신 예수님을 보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다. 우리 몸도 햇볕을 쬐어야만 건강해지듯이, 우리도 하나님 바라보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에 곰팡이가 끼고 썩게 된다. 자꾸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집에서 기도하지, 새벽기도 뭐 하러 가냐.’
추우면 추워서 안 간다고 하고, 더우면 더워서 안 간다고 한다. 마귀가 낙심하게 만들어서 그렇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위로가 있다. 예레미야는 낙심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애3: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그렇지만 다시 하나님을 바라봤다. (19-22)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다시 주님 바라보자, 소망을 품었다. 절망은 그리스도인과 어울리지 않는다. 낙심하지 않는 남자가 진짜 남자다. 낙심하지 않는 여자가 진짜 여자다. 지도자는 낙심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낙심을 이기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2. 정결해야 한다(2上).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능력으로 쓰는데, 또 다른 장애물은 죄다.
(1) 숨은 부끄러움은 무엇인가?
있지도 않으면서도, 있는 척하는 위선이다. 그다음 속임으로 행하게 된다. 말씀도 능력이 있지만, 죄도 능력이 있다.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는, 죄를 지으면 무엇인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죄를 짓는다.
사기 치면, 돈이 생기고, 도둑질해도 무엇이 생긴다. 우리는 죄는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죄는 무엇을 준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만족을 준다. 그래서 비전에는 2가지 있는데, 말씀의 비전과 죄가 주는 비전이 있다. 죄는 이후의 심각성을 모르기에, 죄를 받아들이기에, 무너지게 된다.
죄는 교회를 점점 굳게 만든다. 우리가 간이 굳어질 때, 간암, 간경화가 되듯이(간에 시멘트 뿌리는 것과 똑같다), 교회도 굳어져 간다. 찬송을 한 줄만 불러도 눈물 나고, 예배에 대한 감격이 있다. 교회 근처만 와도 감동이 있었다. 새벽기도 나왔을 때, 엎드려 통곡하며 감격했지만, 지금은 없다.
죄를 받아들였기에 그렇다. 목사인 저도 마찬가지이다. 죄를 범하면 감동이 사라진다. 신경질 나고, 감동이 사라진다. 찬송을 불러도 감동이 없다.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다. 굳어짐을 깨뜨리는 방법은, 철저하면 회개하고 주님 앞에 서야 한다. 그때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진실한 모습, 정직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깨어진 모습으로 서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일하신다. 능력 있게 일하신다. 문제는 말씀의 능력이 아니라, 내가 문제다. 내가 정결해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란다.
(2) 혼미하게 하는 영을 물리쳐야 한다(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악한 마귀가 혼미하게 만들기에, 말씀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마귀는 우리 마음을 혼미하게 만든다.
마귀가 우리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면, 중요한 것은, 못 듣게 된다. 중요하지 않은 것만, 듣게 된다. 하나님 말씀의 중요한 핵심은 잊어버리고, 목사가 말씀을 증거하다가, 실수하는 경우만 생각난다. 예배 시간이 졸리게 된다. 이상한 생각 품게 만든다. 악한 영이 혼미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다.
혼미하게 하는 영, 마귀가 지배하는 문화는, 영적인 무력감에 빠지게 만든다. (4) “그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악한 마귀는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만든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의 능력으로 탁월하여, 건설적인 주도권을 쥐고,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비판만 하지 말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변화시켜야 한다.
이 분야가 썩어서, 문제가 있다고, 불평하지 말고, 이 분야는 우리의 밥이다. 거기에 들어가서, 변화시켜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능력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노래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수 되어서 BTS나, 블랙 핑크처럼 되어, 멋지게 부르라. 그래서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라.
의사가 되려면, 확실한 의사가 되라. 사람은 제대로 고치는, 암도 고치고, 불치의 병도 고쳐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예배를 통해 능력을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3. 겸손해야 한다(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에 이르게 되어도, 주님이 하신 일이다. 따라서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전도자는 내가 복음을 전함으로, 사람들이 구원받았다고 말하면, 절대로 안 된다. 많은 종이,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다가, 타락하고 망했다.
모세는 지팡이로,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 지팡이에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모세의 손에 그 지팡이가 들려졌기에,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누군가 구원을 얻으면, 내가 그를 구원할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를 붙들어 쓰신 주님께, 구원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능력이 내게, 있는 것처럼, 교만하면 안 된다. 많은 영혼을 구했다고 해도, 우리를 전파하고, 드러내면 안 된다. 예수님을 높이는 대신, 복음을 수단으로, 내 주장을 하지 말고, 내 영역을 넓히거나, 내 이권을 주장한다면, 이는 우리를 전파하는 모습이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는 일은 귀한 일이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주님의 도구일 뿐, 구원의 주체는 주님이시다.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도록, 성령님을 통해서, 빛을 비춰 주셨다. 그래서 자랑할 게 우리는 없다. 우리를 전파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공의는 나타나지 않고, 고약한 냄새 나는, 인간의 일들이 나타나기에,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전파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사람들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주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복음이 증거되는 일이라면, 많은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주님 때문에 멸시와 천대, 오해와 비난을 받아도,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복음 전하는 일은, 가장 영광된 일이다. 이 땅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대접받지 못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복음을 전한 자들이, 큰 영광을 누리게 된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확장하는 일은, 가장 소중한 일임을 깨닫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포기하지 말자. 혼미하게 하는 마귀는, 좌절시킨다. 밤낮 낙심하게 만든다. 혼미하게 하는 영을 주어, 죄짓게 만든다. 우리의 남은 인생,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힘있게 쓰임 받는 종이 되기 위해서, 죄짓지 말아야 한다.
혼미하게 하는 악한 영을, 물리쳐야 한다. 믿음의 동역자들이, 항상 모여 있어야 한다. 모여서 격려하고 예배를 드리면, 마귀가 들어 설 자리가 없다. 겸손해야 능력있게 쓰임을 받고 오래간다. 하나님 앞에 능력 있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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