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31015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출25:8-9) | |
작성자 : 윤성은 | 작성일 : 2023-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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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출25:8-9)
(8-9)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하나님은 죄인과 만나주기 위해, 모세에게 성막을 주셨다. 광야에서 성막이 없었다면, 모두 죽었을 것이다. 불순종하여 1세대는 죽었지만, 2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성막은 죄인을 살리는 곳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동물의 제사를 통해, 다시 살려주신다. 동물이 희생되어 죽었기 때문이다.
성막은 하나님께 제사를 통해, 죄인이 소망을 얻는 곳이다. 죄인이 주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곳의 모형이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니까, 배워야 하고, 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구약에서 성막은 중요하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기 때문이다.
성막을 통해, 예수님을 더 확실히 알 수 있고, 구약이 예수님의 그림자이니, 성막을 통해, 예수님의 실체를 깨달을 수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정확한 숫자와, 치수를 주신 것이, 방주와 성막이다. 정확한 숫자와 치수를 주신 이유는, 정확하게, 숫자와 치수대로 만들지 않으면,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방주는 고페르 나무로 만들라고 명령하셨고, 성막은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하셨다.
다른 나무로 만들면,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고페르 나무와 조각 목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나무들이다. 구속의 역사를 말씀한다. 만약 다른 나무로 방주와 성막을 만들면, 구원의 역사에서 끊어진다는 말씀이다.
인간의 생각으로, 다른 나무와 다른 치수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음을, 하나님은 인간에게 보여준다. 이렇게 하나님은 성막은 조각 목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셨고, 성막에는 제사와 많은 성막의 기구들이 있다.
이것을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다. 그런데 원어로 보면, 성막을 통하여 원어에 나타난, 성막의 기구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쉽다. 번역된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기 어려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발견하게 된다.
1. 성막은 어떠한 곳인가?(출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장소라는 말씀인데, 여러 가지로 말한다.
(1) ‘성소’(미크다쉬) 거룩한 것(곳), 봉헌된 것(곳), 이란 뜻이다. 이 단어는 카다쉬(거룩하다, 성별하다, 예비하다.)라는 뜻에서 나왔다. 성소는 세상과 분리되어, 거룩하고 성별 된 장소이며, 거룩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며, 선택된 자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예비 된 곳이다. 거룩한 자가 아니면 죽게 된다.
하나님은 성막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절대 제사를 받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 외에는, 제사를 받지 않았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자신 생각대로 드리는 예배는, 절대 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보혈 없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은 받지 않는다.
교회가 타락하여, 우상을 섬기는 장소가 되면, 하나님은 예배를, 받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은 예배받는다.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제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고, 예배를 받게 된다.
(2) 증거의 장막이다.
하나님이 말씀이 증거되는 곳을 말한다. (민17:7)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증거의’(에두트) 하나님의 계율, 증거 판의 뜻이다.
이 단어는 ’우드‘(되돌리다, 반복하다, 증거 하다, 엄숙히 경고하다)에서 유래했다. 하나님은 증거의 장막에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면서, 반복하고 죄지은 자를 되돌려, 회개하게 하고, 엄숙히 경고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 진리의 복음을 전파하는 곳이다.
(3) 하나님과 만나는 회막이다(출27: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회막’(모에드)은 “계절, 회막, 절기, 시간”이라는 뜻이다. (야아드) ‘정하다, 만나다, 모이다, 약속하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회막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만나는 날짜, 시간, 장소, 표시를 나타내는 장소다. 이 장소에서 하나님은 만나주겠다고 약속했기에, 다른 장소에서는 절대 만나지 않는다.
주님은 정한 날짜, 시간, 장소, 표시를 알아야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절기이며,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절기를 모르면,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며, 말씀이 전파되는 곳이고, 하나님을 만나 제사하는 장소로, 속죄가 이루어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예배하고,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진 곳의 모형이다. 주님이 피를 주고, 사신 교회다.
2. 성막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는가?
성막은 세마포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기에, 밖에서는 절대 안을 볼 수 없다. 성경에서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가 규빗인데, 45.5cm 약 50cm다. 그래서 쉽게 설명하기 위해, 50cm로 계산하겠다.
성막은 가로가 25m 세로는 50m, 문은 동쪽 중앙에, 10m로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밖에서는 볼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선, 성막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밖에서는 절대로 판단할 수 없게, 하나님의 성막은 만들어졌다.
이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절대로 예수님을 알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막 밖에서 하는 소리는 상상에 불과하다. 예수님 안에 들어와야만 알 수 있다. 성막 안으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바로 번제 단이다. 이 번제 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교회 안으로 처음 들어오면,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다음에 물두멍이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물두멍을 만난 사람은, 중생 체험을 하게 된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면, 중생을 경험하는데, 이것은 바로 영적으로 새롭게, 다시 태어남을 말한다.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겨서, 거듭나게 된다. 이렇게 거듭난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교회 안에 들어온다고, 아무나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김을 받은, 중생 경험을 하고, 완전히 구원받은 백성들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마당 안에 성막은, 2로 나누어진다.
① 넓이는 5m, 길이 15m, 높이 5m다. 앞에 있는 것은 성소다. 길이는 10m로서, 성소에는 떡상, 촛대, 향단이 있다. 성소는 거룩한 장소를 말한다. 성소와 지성소의 사이에는 휘장이 있다.
(출26:33)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② 지성소(코데쉬) ‘거룩한, 성결한, 예비하다’에서 왔다. 성소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단수로 표현되어 있고, 지성소는 복수로 표현된 최상급으로 되어 있다.
지성소가 더 거룩하면서, 가장 성결한 장소임을 말한다. 둘째 칸을 지성소라고 하는데, 길이, 넓이, 높이가 5m이다. 정육면체로 되어 있다. 성경에서 이렇게 정확하게, 정육면체를 이루는 곳이, 솔로몬이 지은 지성소와 계시록에 나타나는 새 예루살렘이다.
이 장소는 아주 거룩한 하나님이, 임재하는 장소다. 이곳에는 법궤와 속죄소가 있다. 하나님 말씀이 있고, 속죄받을 수 있는, 법궤 뚜껑인 속죄소가 있다. ‘속죄소’(카포레트)는, (카파르) “칠하다, 속량하다, 속죄하게 하다.”에서 나왔다. 칠하는 곳, 속량하는 곳, 속죄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속죄소는 바로, 하나님이 직접 피로 속량해 주신 곳이며, 예수님의 피가 칠해져, 속죄함을 받게 하는 장소다. 이 장소가 바로, 골고다 십자가에 죽은 곳을, 예표 한다. 예수님의 피 없이는, 절대 속죄함을 받을 수가 없다. 예수님의 피가 칠해져서, 죄인이 다시 살아난다.
성막의 벽은 금판으로 세우고, 성막의 지붕은 네 겹으로 씌었는데, 안에는 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꼰 베실로, 천사 모습이 수놓아져 있다. 그 위에는 염소 털로 된 천으로 덮였고, 그 위에는 붉은색으로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덮었고, 맨 위에는 해달의 가죽으로 된 포장을 덮었다.
성소와 지성소 안에, 절대 외부 빛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으며, 광야의 비바람에 노출되어 있어도,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는 교회가, 이 세상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절대 무너지지 않음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고, 진리의 복음이 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겉에서 성막을 보면, 하얀 세마포 울타리와 해달의 가죽만 보이게 된다. 세마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이다. 반면에 해달의 가죽은, 예수님의 고난과 흠모할 만한 아무것도 없는, 인간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지신 분이다. 예수님을 밖에서만 보면, 절대 경험할 수 없다. 성막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인성만 본다. 그러나 교회 안으로 들어와, 진정한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 인성과 신성의 예수님을 만나야, 구원의 확신을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3. 성막을 배우고, 알아야 하는 이유는?
성막이 예수님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모형이다. (계21:22) ”성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어린 양이 성전이라고 했다. 성막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성막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면, 진정한 구속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 성막은 성도의 삶의 모형이다. 성막을 통해, 진정한 신앙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여준다.
성막은 교회 모형이기에, 구약에는 제사이지만, 신약에는 예배다. 예배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 (엡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신약의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용서받고, 구원받은 성도가 모인 곳이 교회다. 구원받은 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이 반드시 계셔야 한다. 예수님이 없는 교회는, 거짓된 교회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교회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성막은 하나님이 설계했기에,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구원의 길, 성도의 삶을 설계하셨다.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이루어져야, 구원이 임한다.
성막을 배우면, 어떻게 구원이 이루어지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선택하셨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 깨닫게 된다. 성막은 죄와 저주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주셨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40일간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다. 율법으론 절대, 구원받을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율법은 죄를 생각나게 하고, 정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의 모양, 설계도를 함께 주셨다. 성막은 죄인이 와서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워지는 장소다. 바로 죄지은 인간이,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음을 말한다.
율법만 주셨다면, 저주로 끝이 날 것인데, 복음의 성막을 주셔서, 죄인이 은혜받고 구원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막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막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배우게 되며, 영적인 삶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성막을 더 깊이 연구하고 공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야 한다. 성막은 밖에서만 보면, 세마포와 해달의 가죽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외모적인 것으로만 예수님을 판단하고 떠나버리게 된다. 진정으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성막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확실하게 만나야 한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고,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고, 죄 사함의 은혜를 체험할 때, 구원의 확신이 생긴다. 구원의 확신이 들어오면, 절대 흔들리지 않기에, 성막을 통해 주님의 깊은 은혜 속에 들어오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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