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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30903 다윗 왕과 므비보셋(삼하9:1-8)
  작성자 : 윤성은 작성일 : 2023-09-05
  첨부파일:   다윗 왕과 므비보셋(주일).hwp(94K)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찬양과 경배로 올려드리는, 저희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먼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 저희들의 삶을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고, 주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해 주시옵소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와 은혜를 주심에 감사드리며, 세상 끝날까지, 잊지 않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 예배를 통해,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교회와 성도 위에, 충만하게 임하시길 원하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1-8)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쫓아다녔다. 그러니까 분명 다윗의 원수인 자손이다. 따라서 다윗은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내릴 조건이 없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의 손자에게, 요나단 때문에 은총을 베풀어주었다.

  요나단은 다윗과 막역한 사이였고, 다윗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삼상18:1-4)을 보면, 다윗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이고 난 후, 사울 왕 앞에 서서 말을 마친 후에,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었고,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고,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언약을 맺게 된다.

  ‘요나단’은 ‘요’(여호와)가 ‘나탄’(주다) = 여호와가 주셨다. 예수님의 모형이다. 요나단이 다윗과 맺은 언약은, 자기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힘을 썼지만, 어떤 상황이라도, 너의 생명을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언약이었다. 예수님과의 언약은 어떤 경우라도, 우리를 지켜주겠다는 언약이다.

  다윗과 므비보셋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보게 된다. 다윗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했다.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와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한다고, 예언했다. 언약의 자녀가 된다는 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보여준다. (1)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피하던 어려웠을 때, 요나단이 베풀었던 호의와, 그와 오래전에 맺은 언약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윗은 사울 집안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기를 원했다. ‘은총’(헤세드)은, 서로에게 주어진 책임을, 신실하게 이행하는 영원한 사랑을 말한다. 누가 은총을 받았나?

1. 장애가 있는 사람(3).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다윗은 사울 가문에, 아직 목숨이 살아남은 자가 있는지 물었다.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은총을 베풀겠다 했다. ‘언약’(베리트)은 ‘가른다’(카라트)에서 유래했다. 언약을 몸이 갈라져 죽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다윗도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려 했다.

  다행히, 사울 가문에 남은 자가 있었다. (삼하4:4)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므비보셋의 다리가 절은 이유는,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시바가 도망치다가, 아이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다리’(라글라임)는 쌍으로된 두 다리다. ‘저는’(나케) ‘치다, 때리다, 죽기까지 맞았다’라는 뜻이다. 두 다리가 죽어버린 불구였다.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정상이 아니다.

  죄지은 우리 모습은, 하나님께 맞고, 죽을 모습이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나님께 맞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기에,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전하게 지어주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서 먹어, 죽고 말았다. 정상에서 벗어나, 비정상적인 죽은 인생이 되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은, 장애가 있다. 우리도 이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없다.

  걷는 것도 불편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살아가는 삶이 므비보셋의 삶이다. 우리도 아담 안에서 죽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는, 불편한 삶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선택하고,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 나를 살려 주셨다. 하나님의 ‘은총’(헤세드)이다

  (고전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첫 사람 아담, 생령이 되어서, 육신의 생명을 주었지만, 죄를 지어 죽은 영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죽은 영을 살리는 분은,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므비보셋처럼 죄악으로, 영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자를, 구원해 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다. 내가 죽은 영이었고,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게 되며, 감사가 나온다.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므비보셋이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왕의 후손이 노예(4-5).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다윗 왕이 시바에게, 므비보셋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윗 왕이 즉시 사람을 보내, 므비보셋을 데려왔다. ‘로드발’(로 드발) ‘로’(아니다) + ‘드발’(초장)=초장이 없다. ‘다바르’(말하다)에서 유래했다. 말씀이 있으면 초장이요, 없으면 역병이다.

  ‘암미엘은 암미(나의 백성은) 엘(하나님)이다. ‘마길’(마카르, 팔다, 노예가 되다)에서 유래했다. 므비보셋이 마길 집에 있음은, 므비보셋이 마길에게 팔려, 그의 노예가 되었음을 말씀한다. 우리도 므비보셋처럼 죄악에 팔려, 사망의 왕노릇하며 노예의 삶을 살고 있었다.

  사탄의 미혹에 빠져, 결국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죄로 팔리게 되었으며, 생명을 사망으로 바꾸게 되었다. 므비보셋의 힘만으로는, 절대 마길의 집에서 나올 수가 없다. 우리도 내 힘으로는, 절대 사망의 왕 노릇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롬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아담 이후의 모든 자들은, 다 죽었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다. 이 죄 때문에, 사망에 팔릴 수밖에 없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망에서 건져졌다. 므비보셋을 마길의 집에서 데려온 것처럼, 우리도 사망에 빠져나올 수 없었는데, 주님께서 직접 불러내어 주셨다.

  ‘그를 데려오니’(라카흐, 붙잡다, 택하다, 옮기다.)이다.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을 찾았다.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여, 므비보셋을 찾아, 항상 자기 상에서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존재로, 옮겨주었다. 예수님은 죄악에 팔려, 사망의 노예가 된 나를 선택하여 주셨다.

  죄악의 자리에 있는 나를 찾아, 죄악에서 끌어내서, 하나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다. (골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흑암의 권세에 팔린 나를, 예수님이 건져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옮겨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속량해 주셨기 때문이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데려옴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나타내 준다. 다윗은 즉시 므비보셋을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죄악의 자리에 있기를 기뻐하지 않고, 자신과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사망에 가운데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즉시, 생명의 아들 나라로 옮겨주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은총을 베풀어주신다.

3. 은혜로 회복(6-8).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므비보셋을 데려온 후, 원래 사울의 밭을 주면서, 영광을 회복시켜 주었다. 사울의 밭은 왕의 밭이라 크고 좋았다. 다윗과 항상 상에서 같이 먹는 은총을, 므비보셋에게 베풀어주었다. 자녀처럼 받아주었다. 엄청난 은총을 받았다. 절름발이로 끝날 인생인데, 다윗을 만나서, 자기 가문의 영광을 회복 받았다.

  이때 므비보셋은, 죽은 개 같은 나를, 돌봐주느냐고 고백했다. ‘개’(켈렙)는, 경멸의 대상, 원수가 된 세력이란 뜻이다. (빌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성경에 말씀하기를 개들은, 행악하는 자, 몸을 상하게 하는, 율법주의자들을 상징한다.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려는 자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주인 없는 개처럼, 쓰레기를 뒤지며, 먹고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잔혹한 개가 되어,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고, 혐오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므비보셋이 다윗 왕 앞에서, 자신을 개로 표현했다.

  내가 율법으로 완전히 죽어서, 주인 없는 개처럼,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이러한 나에게 왕께서 어떻게,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줄 수 있느냐는, 므비보셋의 고백이다. 자신은 은혜를 받을 만한 조건이, 하나도 없다. 다윗의 원수 가문인 자신에게, 다윗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음은, 있을 수 없는 은총이다.

  ‘므비보셋’은 ‘파아’(바람을 불게 하여 흩뜨리다) + ‘보쉐트’(부끄러운, 우상) = (우상을 타파하는)이다. 원래 이름은 ‘므립바알’(메리브 바알, 바알과 경쟁하다)이었다(대상8:34). 므비보셋은 다윗을 만나, 모든 죄악의 수치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무서워하지 말라.’ 주님은 온유한 음성으로 우리를 불러, 무서워하지 말라 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추악한 죄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는데, 다윗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이루어졌다.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의, 의를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나의 대속물로 주셨다. 율법 아래서 죽었던 자들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의를 세워주셨다. 우리도 율법 아래서, 죽었던 개와 같은 존재들이다. 주인 없이 인생을 배회하면서, 영원한 지옥 불 못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주인이 없는 개는, 병에 걸려도, 고침을 받을 수 없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면서 산다. 먹지 못하니 성격이 난폭해진다. 므비보셋이 바로 우리다. 죄로 인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평생 마길 집에서 살아야 했다. 사망의 자리에서, 영원히 살아야 했던 인생을, 십자가로 생명의 자리로 옮겨주셨다. 이것이 은혜다.

  우리는 엄청난,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율법 아래에 있던 자이며, 나의 의를 주장하던 자로, 사망의 노예였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영원한 주님의 복음으로 사는 복을 받았다. 주인 없는 개로 살았던 내가, 이제는 주인이 있는 개로 변했다.

  주인 있는 개는, 절대 굶지 않는다. 먹을 것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주인의 마음에 기쁨이 될까를 고민하면 된다. 집에 들어왔을 때, 주인을 제일 먼저 반기면서 꼬리치면, 주인은 개를 키우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밥 주는 주인도 몰라보고, 으르렁거리며 주인을 물어버리면, 발로 차 버릴 수밖에 없다. 이제 하나님의 의로 구원받았다면, 주님 은혜를 알고, 충견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해 놓고,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자신의 의를 나타낸다면, 주인을 무는 개와 같다.

  이제부터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가나안 땅에 정탐하러 간, 갈렙처럼 충견이 되어야 한다. 갈렙의 이름이 개다. 갈렙은 최선을 다해, 주인의 뜻에 따랐다. 좋은 친구는 좋은 일은 물론이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속담이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셨다. 우리도 주님을 위한 고난을 즐겨야 한다. 이제부터 충성스러운 개처럼,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다윗이 요나단을 인하여 므비보셋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푼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된 저희들에게,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큰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요나단과의 우정과 사랑을 끝까지 잊지 않고, 그 약속을 실천한 다윗의 믿음과 신실함을 본받는 저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죽은 개 같던 므비보셋이,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듯이,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과 영생의 은총을 받은 것을, 절대로 잊지 않는 성도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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