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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30723 예수 그리스도(행3:1-10)
  작성자 : 윤관 작성일 : 2023-07-23
  첨부파일:   예수 그리스도(주일).hwp(92K)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찬양과 경배로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을 받아주시옵소서. 먼저 하나님의 법과 진리를 떠나서, 내 뜻대로 살아가는 저희들의 죄악 된 삶을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아직 구원받지 못한 내 가족과, 또 모든 이웃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생명과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힘입고, 선포하며 나갈 때, 악한 것들이 쫓겨나가고, 놀라운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길 원하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1-10)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

무력한 사람에게는 능력이 가장 필요하다. 병든 사람은 병 고침이, 절망한 사람은 희망이, 배고픈 사람은 음식이, 고독한 사람은 사랑이, 죄에 시달리는 사람은, 죄 용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력하고, 병들고, 절망하고, 배고프고, 고독하고, 또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능력도, 치료도, 희망도, 만족도, 사랑도, 용서와 구원도 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는 무력했고, 절망을 아는 사람이다.

가난한 걸인으로, 날마다 성전 문 앞에 앉아있지만, 성전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나, 성전에서 예배받는 하나님과도, 아무 상관도 없는, 고독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받는 순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

40여 년 동안,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치료받고, 새로운 힘을 얻어,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먹을 것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자, 거룩한 공동체 일원이 되어, 더 이상 고독하지 않았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다. 그리스도인의 특권은, 나를 구원해 주고, 새롭게 변화시켜주고, 내 삶에 소망과 능력인,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베드로와 요한처럼, 이웃들이 이적을 경험하며,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도록,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가?(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베드로와 요한은, 9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다. , 기도 생활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 어디를 찾는가? 그때 내가 찾는 것이, 내가 믿고 제일 사랑하는 자를 찾게 되어 있다.

(91: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하나님은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야 할 분이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일어난 기적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일어났다. 성전에서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다가,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에 의해,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님은 (11:17)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했다.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기도하면 기적이 뒤따른다. 예수님이 내 집은 교제하는 집이다.”, “내 집은 먹는 집이다.”, “내 집은 회의하는 집이다.” 하지 않으셨다.

교회에서 먹는 것도, 교제도, 회의도 좋지만, 본질은 기도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나면서 걷지 못하던 사람은, 기도 시간에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했다. 항상 기도하는 성도가, 하나님을 교제하기에,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된다.

평생 살면서 가져야 할, 가장 거룩한 습관은, 기도하는 습관이다. 기도하는 습관이 영성이고, 능력이다. 따라서 우리도, 기도하는 습관을 갖자.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남에게 말할 수는 없다. 주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과 기쁨을 체험해야,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기쁨을 말할 수 있다. 모세는 기도로 홍해를 갈랐다. 한나는 기도로 아들을 얻었다. 솔로몬은 기도로 지혜를 얻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목숨을 연장했다. 다니엘은 사자의 입을 막았다. 우리도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이 있기를 바란다.

날마다 기도를 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었다.

(1) ‘예수의 뜻은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는 히브리어로(예수아) 구원자요, 헬라어로(예수)로 번역했다.

(2) ‘그리스도’(헬라어로, 기름 부은 자)메시아’(히브리어)의 번역이다.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 기름 부어 선택된 자다. 따라서 하나님이 구원자로 보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예수아 하마쉬아).

(3) 주라는 말이다(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에는 3가지 의미가 있다.

유대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말할 때, (아돈)라는 말을 한다. 우리는 그 상대가 되는 피조물이다.

헬라인은 주(퀴리오스)는 주인을 의미한다. 우리는 주님의 종이다.

로마인(렉스)은 나라의 최고 통치자를 말한다. 우리는 주님의 백성이다.

(19:19-20)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다.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은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은과 금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면, 놀라운 기적은 일어난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2.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전도할 수 있다.

매일 자기를 무관심과 경멸의 눈으로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을 보며, 그의 마음속에는 심한 열등감을 느끼게 되었다. 열등감은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 것인데, 그런 사람이 남을 사랑할 리가 만무하다. 나는 없는데 다른 사람은 있다고 느끼기에, 피해의식이 엄청나다.

자신을 경멸하고 무시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는 가진 자들에 대한, 소리 없는 분노가 쌓였다. 인생의 목적도 없고, 도전 의식도 없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결코 구원받을 수 없었다. 누군가 도와주어야 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갈 때, 미문에서 걷지 못하며, 구걸하는 자를 보았다. 그들은 이 걸인을 지나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그를 주목했고 우리를 보라 했다. 이 걸인은 그의 말을 듣고 무엇을 기대했을까? 당연히 물질적인 필요를 위하여, 몇 푼의 동전을 기대했을 것이다.

현대인은 물질을 너무 좋아해서, 물신을 섬기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주머니에는, 돈이 없었다. 돈이 없으니, 걸인을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질이 필요하지만, 물질이 그들의 근본적인 필요를, 채워줄 수 없기에, 물질 이상의 것이, 필요함을 알았다.

그래서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어떤 보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보배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늘 문을 열고, 주님이 응답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받고, 소망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야말로,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다. 물론 세상은 그것을 모른다.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걸인은, 몇 푼의 돈을 기대했.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줄 몰랐지만, 우리는 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며, 이 세상에서 소망을 얻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베드로와 요한은 걸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자, 놀라운 이적이 나타났다. 그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필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인생이 허무하고, 방황하고 절망하고 있는지, 근본 이유를 모른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우리 이웃의 필요에 대해,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필요를 볼 수 없다면,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 신학 대전의 저자, 중세의 유명한 성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말을 했다.

초대교회 때에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할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그 반대가 되어서, 비싼 땅과 건물과 시설과 조직과 사람들이 있다. 지금 은과 금은 우리에게 있지만, 예수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우리에게 돈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구원 받을 수도 없고, 주변의 불행한 인생을 구원할 수 없는 비극이다. 따라서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지 점검해 보고, 우리 주변의 필요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힘을 잃은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란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려면 협력해야 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함께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고(1), 베드로와 요한은, 함께 걸인을 주목했다(4). 베드로와 요한은 더불어 주목하고(5), 이적이 나타나,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8).

(1) 베드로와 요한은, 아주 대조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베드로는 아주 능동적이며, 다혈질의 사람으로, 감각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저질러 놓고,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표정에 다 나타나는 사람이다.

요한은 아주 수동적인 사람이다. 우울질 사람으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영적이고 심미적인 사람이었다. 요한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도우며, 낮아지는 위치에서 섬기는 지혜를 배웠다. 함께 하려면 섬기려는 자세를 가져라. 또한 진정한 사랑의 사도였다.

(2) 두 사람은 경쟁 관계였다.

똑같은 제자였지만, 경쟁하던 사람이다. (21)을 보면,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3차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후에, 베드로에게 죽음을 예언하신다.

자기 죽음에 대한 예언을 들으면서, 베드로는 (21)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라고 했다. 그 질문에 예수님은, (22)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한의 장래에 대해서는 참견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했다.

이렇게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사도행전에서 멋진 협력자로 등장한다. 이들이 언제 이렇게 변했나? 성령을 체험하면서,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이제 두 사람은, 함께 기도하러 가고, 함께 성전에 올라갔다. 그리고 함께 전도한다. 또한 이 두 사람은, 함께 핍박을 받고, 고통의 자리에 함께 서게 된다.

바로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며, 성령의 역사다. 예수님을 건성으로 알던 때의 친구가 있는가? 이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영성이 깊어졌으면, 그만 만나야 하는가? 아니다. 성령을 통하여, 둘이 같이 기도하고, 같이 전도하는 동역자로 발전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령을 체험해도, 그들의 성격을 아름답게 쓰신다. 베드로는 무슨 일이든지, 저질러 놓고, 항상 나중에 수습하는 삶이다. 그래서 걷지 못하는 자를 향해 (4) “우리를 보라 (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만약에 그때 요한이 아니 왜 꾸물거려요, 지금 예배 시간이 다 됐으니, 빨리 갑시다.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어나 걸으라니, 어떻게 된 것 아니요했다면, 위대한 역사가 일어났을까? 불행한 영혼을 붙들고,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을 때, 요한은 배후에서 말없이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본문만 아니라, 그 후 계속해서, 함께 행동하고, 함께 고난을 받는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복음의 증인으로 살기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함께, 협력 관계를 이뤄야 한다. 복음을 위해, 함께 엎드려 기도하고, 복음을 위해 함께 고난받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다.

혼자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기에,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셔, 함께 일하도록 하셨다. 걷지 못하는 자가 일어나, 걷게 된 다음,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을 전했다. (3:14-16)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걷지 못하는 자를 낫게 하신, 예수님이 누구신지 자세히 소개한 후, 복음의 핵심을 전했다.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베드로가 선포하는 복음은 무엇인가? 걷지 못하던 자를 낫게 하신 주님께서, 죄를 용서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실 수 있으니, 그러므로 회개하고, 용서받으라는 말이다. 소망이 없이 살았던 분이라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삶에 희망을 얻어라.

죄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죄를 용서받아, 새 소망과 기쁨을 가지고, 주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길 축원한다. //

주님, 세상이 우리에게 은과 금을 구할 때,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먼저 사람의 영혼을 주목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과 권세를 힘입어,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시옵소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의 걸인에게, 예수 그리스도! 그 능력의 이름을 선포할 때,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믿고 나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내 안에 나와 함께 계시며, 동행하시는 주님, 치유와 회복의, 그 능력의 이름을 선포하며, 복음을 널리 전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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