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30716 성령 충만의 비결은 예배(엡5:19-21) | |
작성자 : 윤관 | 작성일 : 2023-07-23 |
첨부파일: 성령 충만의 비결은 예배(주일).hwp(90K) |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영과 진리로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하나님 말씀을 떠나, 내 뜻대로 살아가는 저희들의 삶을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고, 때와 시기를 분별하며,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말씀으로 거듭나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날마다 이 세상과 죄악을 이기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 엄청난 폭우와 홍수로, 많은 인명피해를 입고, 곳곳이 침수되고, 댐이 넘치고, 산사태로 엄청난 피해를 보는, 재난 중에 있습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저희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전쟁의 위기와 모든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참된 예배자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이웃을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길 원하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19-21)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지난주에 세상은 점점 악해지는데,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드렸다. ① 세월을 아끼며 살아야 한다. ②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이해해야 한다. ③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만 한다고 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삶을 살려면, 4가지가 필요하다.
① 서로 화답하며 ② 주께 노래하며 ③ 하나님을 찬송하며 ④ 피차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 4가지는, 모두 분사형으로 사용했다(동사적 형용사). 동사의 의미를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 설명하고 보충하는 역할을 말한다. 앞에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을, 보충하는 말이다.
따라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① 서로 화답하며, ② 주께 노래하며, ③ 하나님을 찬송하며, ④ 피차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4가지는 예배와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실패하지 않고, 승리하고, 성령으로 충만함의 비결은, 예배에 있다는 말이다.
예배와 삶은, 분리될 수 없다. 예배에서 성공하면, 삶에서 승리하고, 삶에서 승리한 자가, 예배에도 성공하게 된다. 예배의 실패자는, 삶에서도 실패하게 되고, 삶에서 실패했기에, 예배에 나와도, 온전한 예배자가 되지 못한다. 이처럼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 서로 화답하고 찬양하라(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성령으로 충만하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라고 했다.
‘화답하다’의 뜻은, 시나 노래에 반응하라는 말이다.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프살로)고 했다. 성도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함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 찬양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 사항이다.
(계14:3中)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속량함을 받고, 구원받은 자들이 찬양할 수 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자신이 어떤 은사를 받았다며, 스스로 높이는 영웅이 되려고 하지 않고, 교회 생활 단체 생활에, 합당한 모습이 된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적 교제에 힘을 썼다.
① ‘시’(프살모스)는 ‘문지르다.’(프살로)에서, 유래했는데, 현악기를 문질러, 나는 소리다. 그러므로 시는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면서 드리는 찬송이다. ‘프살모스’는 구약 성경의 시편을 가리키는 용어로, 영어 성경은 ‘시편’을 ‘Psalm’으로 번역했다.
신약 시대에는 유대인의 전통을 이어받아, 예배할 때, 하나님을 기도 형식을 포함하는 시를 지어서, 악기를 연주하며 불렀다(고전14:26). 기도가 포함된 찬송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반드시 하나님을 높이며, 기도하는 진짜 찬양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② ‘찬송’(휨노스)은, 영어에서 ‘hymn’의 어원이다. ‘시’(프살모스)가 구약의 단어라면, ‘찬송’(휨노스)’는 인물을 칭찬하는 노래를 휨노스라고 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높이는 노래가 찬양이다.
③ ‘신령한 노래’(오다이스 프뉴마티카이스)는, 일반적인 성가곡을 말한다. 하나님께 내게 행하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는, 간증과 같다.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면, 찬양이 넘쳐나게 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 등, 여러 형태의 찬양을 말한 이유는, 하나님께 가져야 할, 찬양의 마음을 극대화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창조의 목적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의 은혜를 찬양함은,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다. 성도들끼리 모인다고, 자동으로 영적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도들끼리 모여도, 세상 교제로 끝날 수도 있고, 도리어 영적인 삶을, 더 황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면 성도들끼리 모였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라고 했다. 찬양하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 교제하라는 말씀이다. 찬양하는 가운데 서로 교제하면,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만든다. 군인들이 힘든 훈련을 이기는 방법으로, 함께 군가를 부르면서 훈련받는다.
노래는 마음과 생각을 묶어, 하나 되게 만든다. 성도가 함께 모여, 같은 노래로 찬양하면, 그 가사와 곡조를 통해,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믿음을 북돋아 준다. 함께 찬양하다 보면,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받고, 힘을 잃은 영혼이 힘을 회복하고, 신앙이 식어버린 영혼이, 뜨거운 신앙을 회복하게 된다.
따라서 성도는 모여, 찬양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그때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모일 때 남을 험담만 하면, 돌아갈 때 허탈해진다. 그러나 함께 힘을 다해 찬양하고 기도하면, 새 힘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교제가 되기를 바란다.
예배에 모인 성도들은, 항상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나오지 않지만,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뜨겁게 찬양하며, 서로를 격려하여, 함께 찬양하며 나아가면, 모두 주님께 마음을 열고, 찬양하게 된다. 교회는 영적 흐름이 중요하다. 영적 흐름을 위해,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해야 한다.
먼저 믿은 신앙의 선배가 드리는 예배의 자세가 중요하다.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보기보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우리 모습을 본다. 그들은 우리 모습을 보고, 건성으로 노래하는지? 전심으로 노래하는지? 금방 파악한다. 만약 건성으로 예배한다면, 새 신자는 하나님은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은 분명히 무엇인가 있다고 판단한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때, 다른 사람들도 도전받겠지만, 가장 먼저 자신이 은혜를 받는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주님을 느끼게 된다.
깊은 찬양의 세계로 들어가, 마음으로 찬양하고, 영으로 찬양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경배와 찬양은 건성으로 드리면, 아무 유익이 없다. 온 맘을 다해 찬양하고, 전심으로 경배하기를 바란다. 그때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빛줄기가 내림을 경험하게 된다.
2. 하나님께 감사하며(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기서 ‘범사’와 ‘항상’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께, 범사에 곧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일이 발생하든지 상관없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예배할 때 감사하면 분명히 큰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억울하게 많이 매 맞고, 옥에 갇혔다. 그런데 그들은 기도하고 찬송하자, 놀라운 일이 발생하였다.
(행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그뿐만 아니라, 거기서 한 영혼이 주님을 만나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처럼 아무리 힘들고, 억울한 상황이라도, 주님께 감사하고, 경배하면, 땅이 흔들리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고, 기쁨으로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 그리스도인은 항상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가?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를 믿기 때문이다.
욥은 어려움을 당했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빼앗기고, 종들이 죽고, 자식들이 죽었다. 그때 이렇게 고백했다. (23:10)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통과 슬픔은, 모두 나를 단련하는, 하나님의 도구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바울은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다. 아무리 큰 아픔과 고통이 있어도, 주님께 감사하며 나아가면,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부어주시고, 결국 내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순금같이 회복된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적은, 낙심과 좌절이다. 낙심하고 좌절하면, 세상을 이길 수 없지만, 성령으로 충만하면, 낙심하고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일어서 승리할 수 있다. 이처럼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일어서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법은 범사에,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한다.
성도는 왜 항상 감사해야 하나?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는 주 예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과 능력을 경험하고, 믿음으로 일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축원한다.
3. 피차 복종하라(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4개의 분사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지속하는 방법이라 했다. 그런데 복종하라는, 22절 이하에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의 기본 원칙으로 나타난다.
성령 충만한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 복종이지만, 동시에 가정생활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세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지속하려면, 서로 복종해야 한다. 복종한다는 말은 어떤 상대방의 아래에서 정렬한다는 의미다.
복종은 마치 군인이, 상관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오와 열을 맞춰서, 정렬해있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서로 다른 사람 아래에 서서, 섬기는 자세로 살아야 함을 보여준다.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을 짓밟고, 그 위에 일어서야 한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원칙이다.
그러나 성도의 삶은 그렇지 않다. “함께 살아가는 삶, 피차 복종하는 삶”이다. 서로 짓밟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남을 더 낫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 왜 우리는 피차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가?
①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서 있는 삶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영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엄격한 청교도 윤리를 앞세워서, 성공적인 혁명이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혁명은,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라면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혁명이 되었다. 결국 실패한 혁명, 즉 민란이 되고 말았다. 말씀이 없이 개혁하려고 하면, 다 같이 망하게 된다. 나의 만족과 이익을 위해 살지 말고, 서로 서로의 짐을 지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왜 서로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살아감이, 바로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삶이라고 했다. (엡6: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성도는 사람들을 대할 때, 주님을 대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이런 자세가, 성도들의 삶에 나타나야 할, 피차 복종하는 삶이다. 교회 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적은, 시기와 다툼과 분쟁이다. 다툼과 분쟁이 있으면,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실 수 없다.
② 그리스도인의 삶은 불신자의 삶과 달라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달라야 한다.
죄인들은 복종을 원하지 않는다. 교만하기 때문이다. 복종은 타락한 인간, 부패한 인간, 세속에 물든 인간은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낫게 여기라는 ‘ㅅ’받침을 ‘ㅈ’으로 바꿔서, 남은 자기보다 ‘낮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살게 되기에, 주님께 복종하는 삶이 된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마지막 필요는 ‘피차 복종하는 삶’이다.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사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 교회가 되어, 정말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역사하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4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로 화답하며, 주께 노래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피차 복종하는 삶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예배와 관련이 있다. 신앙생활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예배에 성공하고, 신앙생활을 잘하면, 세상에서 실패하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배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
주님 저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겸손과 온유함으로 피차 복종하며 섬기는, 삶이 되게 하시고, 날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로 감사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며, 복음을 널리 전하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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