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2. 10. 16. 진정한 영접(눅7:36-50) | |
작성자 : adminstrator | 작성일 : 2022-11-08 |
첨부파일: 진정한 영접(주일).hwp(32K) |
하나님 아버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가을이 점점 깊어가는 계절에, 거룩한 주일, 감사와 기쁨으로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주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으며, 향유를 부어, 감사와 사랑을 표현한 여인처럼, 지은 죄를 회개하며, 주님을 진정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내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겸손과 사랑과, 헌신의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교회에서, 그리고 각자의 처소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주님 앞에 참된 예배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며,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36-50)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
바리새인은, ‘분리주의자, 갈라 치는 자’라는 말이다. 자신은 너희들과 같지 않은, 엘리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의 식사초청을 받아, 집에 들어가 앉아 계실 때, 그 동네의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이 여자는 이름은 없고, 성경은 ‘죄인’이라 했다. ‘죄인’은 유대인이 지극히 싫어하는 ‘창녀’에 대한 표현이었다. 따라서 성경은 ‘창녀’라고 하지 않지만, 이 여자는 창녀일 가능성이 있다.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 은혜다. 은혜를 입으려면, 주님 앞에 나가야 하는데, 세상을 의식하면, 나갈 수 없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유명 인사를 초청하면, 동네 사람들은 연회장 주변에 모여, 초청인사와 대화할 수 있었다. 또한 손님을 초청하였을 때에는, 손님을 다음과 같이 접대했던 관습이 있었다.
① 손님이 도착하면, 그 집의 하인은, 깨끗하고 시원한 물로, 손님의 발을 깨끗이 씻어 주었다.
② 손님이 식탁에 앉으면, 하인은 손님의 머리 위에, 약간의 장미 기름을 뿌려주었다.
③ 존경하는 랍비가 방문했을 때는, 주인이 직접 나가서, 랍비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정작 엘리트 신앙의식을 가진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하고도, 귀한 손님으로 여기며 대접하지 않았다.
1. 왜 예수님을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지 않았나?(39-40)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하지 않았다. 선지자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선생님으로 불렀다. 절대로 구원에 필요한 구원자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필요한 선생님으로 보았다. 그 이유를 2가지로 발견할 수 있다.
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몰랐고 ② 예수님을 진정 몰랐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들보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죄인인 줄 몰랐다.
그러나 이 여자는 달랐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다. 자신이 죄인이기에, 예수님을 정성껏 영접했다. (37-38)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① 눈물로 그 발을 적셨다. 눈물은 그녀의, 진실한 마음을 보여준다.
②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 머리털은 생명의 상징으로, 생명을 다해, 간절히 사랑한다는 표현이다.
③ 발에 입 맞추었다. 발에 입을 맞춤은, 깊은 존경을 표시하는 행동이다.
④ 향유를 부었다. 주님을 진정으로 원하는 표현이다. 이런 행동들이 계속되는 미완료 시제로 쓰였다. 죄인임을 알았던 이 여자는,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요, 희망이었다.
그러나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해서 영접했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예수님이 상대적으로 필요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 여자의 넘치는 헌신을 지켜보던, 시몬의 마음속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왜냐하면 당시 랍비들은, 의인과 죄인을 구별하여, 죄인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또 여자와는 공개적으로 대화하지 않았다.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죄인을 멀리하지 않고, 행동하게 나두시는 예수님을 보니, ‘예수는 선지자도 아니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비웃었다.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여기서 이 사람은, 경멸적인 의미로, 이 친구, 이 양반이라는 의미다.
‘만일 선지자라면’ 이 말은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선지자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수가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누구며, 죄인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몰랐으니, 예수는 선지자도 아니다. 이런 의문이 시몬의 마음에 있을 때, 예수님은 시몬의 의문을 아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의문에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예수님은 질문형식으로 물었다. (41-42)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은 (43)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판단이 옳다…“고 하셨다. 구원은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또 다시 (48)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라며, 그녀의 죄를 용서를 선언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롬3:10)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를 보시면,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다.
그런데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따라서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 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 수 있다. 이 여자는 ‘자신은 죄인이다.’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모습이다.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음란했던 죄, 거짓말했던 죄, 믿지 못했던 죄를 뉘우치고, 주 하나님 안에서 살겠고,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것이 회개다. 그러나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지만, 회개는 없고,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껍데기 신앙이었다. 그러나 이 여자는, 회개의 모범을, 주님께 보여주었다. 어떤 모습을 했는가?
① 죄를 애통했다(38).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죄인 됨에 대한, 애통함이 수반되어야 한다.
자기 죄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고, 그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뉘우치지 않음은, 성경이 말하는 회개가 아니다. (약4: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고 했다. 고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의 심각성을 알고, 비통해 함이 회개다.
② 주님 앞에서 겸허했다(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그녀는 감히, 예수님 앞에 설 용기가 없었다. 주님 앞에 마주 설 수 없는 죄인이므로, 오직 주님의 은총을 바랐다.
‘나 같은 죄인이,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의식이 중요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고백이 나온다. (사6:5)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라고 고백한다. 죄인 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고개를 뻣뻣하게 들 수 없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고, 그 은혜를 구하는 자세를 지닌 사람은, 진정 회개의 깊은 단계에, 들어간 사람이다.
③ 주님께 헌신함(38).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이 여자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죄인’으로 불리던 여자였다. 그의 입술은, 많은 남성들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도구였다.
그녀의 머리털은, 남성들을 유혹하는 정욕의 도구였다. 그 향유는 남성들을 유혹하려고, 몸에 바르던 죄의 수단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이제 거룩하신 주님을 섬기는데, 쓰기 시작했다. 그의 생각이 변했다. 행동이 변했다. 삶이 변했다. 더 이상, 죄의 병기가 아니라, 의의 병기로 드려지기 원했다.
후회와 회개는 다르다. 자기 잘못으로부터 돌아섬이 회개요, 그렇지 못하면 후회다. 이 여자는 자기 잘못으로부터 돌아섰기에, 전적으로 회개했다.
3.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 임한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본문에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2종류로 나온다.
(1) 바리새인 시몬
바리새인 시몬은, 자신의 집으로 예수님을 초대하였다. 외적으로 보면 완벽하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는가? 예수님이 지적하시는 모습을 보라.
(44中)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이 말씀들은,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푸대접했음을 지적하는 말이 아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한 장본인이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지 않았다. 시몬은 자기 자신을 의로운 사람으로 생각했기에,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도 없었다. 외적으로만 모셨을 뿐이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처럼 무례하게 행동하였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시몬은, 주님을 청하여 식사를 대접했지만, 마땅히 드려야 할 경배는, 드리지 않았다.
(2) 죄인인 여자
그러나 죄인 여자는 (44)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中)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中)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그녀는 자신은 죄인임을 알았고, 예수님만 나를 구원할 수 있음도 알았다. 진정 예수님을 알았기에, 자신의 힘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님을 섬기기를 원했다. 그녀는 한 마디로, 주님을 진정 사랑했다. 주님은 이 여자의, 거짓 없는 사랑을 보셨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종교는 거짓이요, 헛된 것이다. 신앙은 주님을 전인적으로 사랑하는, 행위의 소산이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대하는, 시몬주의 신앙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님을 사랑하는가? 내가 죄인임을 깨달을수록, 주님을 사랑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다.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많은 죄가 사하여졌기에, 하나님을 많이 사랑한다는 말이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했지만, 예수님께 대한 참사랑의 행위는 없었다.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지만, 주님께 대한 찬양도, 감사도, 봉사도 없이, 살아가지 않는가? 살펴보자.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48中)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녀의 죄는 용서받았다. 이 여자는, 살아서는 사람대접을 받을 수도 없고, 죽어서는 지옥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용서를 받았으니, 구원의 감격이, 기쁨으로 넘쳐 났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바리새인은 자신이 의인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상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했는가? //
죄를 회개하며 주님께 나온 여자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주시고, 평안을 허락하신 주님, 저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정으로 영접하여, 구원받은 기쁨과 감사를 드리며, 나의 가장 귀한 것들을 드리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뒤로, 발 곁에 서서, 눈물로 발을 적신 회개와 겸손,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사랑과 헌신으로 영접함을, 저희들에게도 주시옵소서.
내 죄가 드러날 때에,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음을 믿으며, 십자가의 사랑을 풍성히 누리며 사는, 믿음의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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