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2. 10. 02. 진짜 같은 가짜(삼상15:17-23) | |
작성자 : adminstrator | 작성일 : 2022-11-08 |
첨부파일: 진짜 같은 가짜(주일).hwp(32K) |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영과 진리로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불순종과, 이 세상에 속한 탐욕을 변명하며 핑계하는, 저희들의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내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예배를 드리게 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교회에서 그리고 각자의 처소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들께,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이 땅에 풍성한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17-23)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
거의 모든 것에는 가짜가 있다. 가짜 보석, 그림, 도자기, 의류, 식품…, 또 직업도 가짜가 많다. 가짜 의사, 변호사, 목사, 교수, 공무원…, 사고가 생겼을 때, 가짜 환자들, 가짜 유족들도 나타난다. 가짜와 진짜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 진짜보다 더 그럴듯한 가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진짜보다 더 그럴듯한 가짜는, 신앙 세계에도 있다. 하나님의 선지자 같지만, 가짜 거짓 선지자들이 있다. 신앙 같지만 구원받지 못할, 거짓신앙도 있다. 진리같은 비 진리, 신앙 같은 불신앙, 진실 같은 거짓, 겸손 같은 교만, 헌신 같은 욕심, 가지각색의 가짜들이, 신앙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다.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고 잘생긴, 미남이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명령했다. (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한 마디로 아말렉을 쳐서, 그에 속한 모든 것을, 진멸시키라고 했다. 사울이 혹시, 잘못 알아들을까 봐, 사무엘은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너무 무자비하게 들리지만, 명령한데는 이유가 있다. (1) 이 명령은 ‘헤렘’인데, ‘하람’(금지하다, 바치다, 전멸하다.)에서 나왔다. 우상을 멸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다.
(2)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괴롭혀왔던, 원수들 중의 원수로,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특별히 뒤에 처지는 나약한 사람들만 골라 죽였던, 아주 악랄한 민족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래 전에, 아말렉을 심판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출17:14中)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 사울은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심판하려는 때를 알고 있기에, 하나님께 왜 그래야 하느냐고, 질문하지 않았다. 이제 사울이, 철저히 순종하는 것만 남았다.
사울은 백성들을 소집했고, 아말렉의 전 지역을 부셨다. 승승장구하면서 나아가는 곳마다, 대승리를 거두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잘 이행하는 듯했다.
1.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2가지를 행하지 않았다(8-9).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1)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았다. 즉, 죽이지 않았다. 하나님은 분명히 죽이라고 했는데, 사울은 왕을 사로잡았고, 다 진멸하지 않았다. 아각 왕을 사로잡고, 죽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의 관행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 상대방 왕을 잡아다가, 승전기념으로, 궁중의 노예로 삼았다.
(12中)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사울은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 자기 이름, 명예를 위하여, 죽이지 않았다. 자신이 자비로운 사람임을 드러내기 원했다. 그래서 인본주의, 신념은 신앙 같지만, 참된 신앙이 아니다.
(2) 양과 소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죽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의 명령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들이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였다. 원하지 않았다. 사울은 자신의 뜻, 자기 욕심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명령을 변경했다.
자신의 계획과 욕심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수정하고, 변경해서 이행했다. 이것이 사울이 보여 주는, 거짓된 순종의 모습이다. 최초에 불순종했던 아담의 범죄는, 따먹지 말라는 열매를 따먹은 것이다. 그 불순종으로, 아담과 모든 인류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이것이 믿음임을 보여주셨다. 선악과 하나 따먹은 것이, 그렇게 큰 죄이고, 그렇게 무서운 형벌을, 내릴 수 있는가? 그러나 바로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할 때, 꼭 기억해야 될 부분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
불신자는 불순종을 대단치 않게 보지만, 신자는 불순종을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한다. 90점 이상이면 A급이다. 그래서 90%를 순종하면, A급 신자가 아닌가라,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하라는 것이다. 내 기준에 맞춰서, 수정한 순종은, 불순종이다.
이러한 불순종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실망하게 만든다. 사울의 불순종을 보면서 하나님은 (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하나님이 사무엘을 불러서 후회한다(나함, 한숨을 쉬다.) 했다. 사무엘은 그 말씀을 듣고, 밤새도록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 이것이 바로, 목회자의 심정이다. 성도들의 잘못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사랑하는 자의 마음이다.
(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아침 일찍, 사무엘은 사울을 찾아 나섰으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까, 갈멜에 기념비를 세우고, 길갈로 갔다는 것이다. 아말렉과 싸움의 승리로, 도취되어서, 갈멜에 기념비를 세우고, 길갈로 내려갔다 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사무엘은 사울을 찾아가서 만났다.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자마자, 만면에 웃음을 띠고, 두 팔을 벌려 사무엘을 영접하고,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했다고 말했다. (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사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울의 뒤에서 양과 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사무엘이 정색을 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이행했다고요? 모조리 죽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내 귀에 들리는, 양의 소리는 무엇이며, 소의 울음소리는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다.
2. 사울의 핑계(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끌고 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빙자하여, 목적과 동기를 합리화일 뿐이다. 사울은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자기를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포장한, 이기적이고 육신적인 합리화였다. 하나님을 빙자한 합리화를, 성경은 경고한다.
우리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말한다. 교회 봉사는 물론, 직장, 사업, 가정…,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가?
저는 목사지만, 하나님만을 위해 목사가 되었고, 목회하는지, 다시 진단해 본다. 주님을 위한 생활이 올바른 신앙생활이다. 나의 직장생활이, 하나님을 위한 직장생활인가? 나의 사업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업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녀를 교육하는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부분적인 목적이 아니라, 전체 목표, 유일한 목표가 ‘하나님만을 위해서’인가 살펴보고,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것은 주님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행하는,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 회개의 모습으로,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만 행하는 금식을, 4번으로 늘렸다. 그러다 해방되었는데, 고국에 돌아가서도, 4번의 금식을 지켜야 하는지, 고민이 생겼다. 그래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 물었다.
그때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들려주신 대답은 (슥7:5-6)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위해 금식한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위해 한 것이다. 진짜 같은 가짜였다. (요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은 진리다. (잠12:17)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따라서 하나님은 진리를 말하는 자들을 좋아하고, 거짓으로 속이는 자들을 싫어한다.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하나님이 보시는, 사울 왕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
3. 사무엘의 책망(17-19).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한 마디로 사울이 교만해졌다고 책망하고, 또한 물질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다고 하였다.
(20-21)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였다… 다만 백성이…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이는 회개가 아니다. 책임전가일 뿐이다. 물론 백성들이 짐승을 몰고 왔다. 사울이 왕인데, 가축을 몰고 왔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정말 이 사건의 책임이, 백성들에게 있나? 아니다.
사울이 목숨을 걸고 말렸는데도, 백성들이 그렇게 했을까? 사울은 명령하지 않았고, 안 본 척, 눈을 감아버렸다. 그는 겸손하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내가 범죄했다고 말했으니, 회개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코 회개가 아니다. 나의 죄를, 제발 따지지 말고, 그냥 용서해달라는 말이다.
여전히 목소리를 높여 달라고, 애걸했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겸손하게 그대로 받아들임이, 진정한 회개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령대로, 순종하고 살아야 한다. (눅22:42中)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한 사람이기에, 죄를 지을 수 있다. 문제는 잘못을 지적할 때, 성령의 음성으로 듣지 않고, 책임을 남에게 돌림이 문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은, 죄를 지적 받았을 때 겸손하게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추한 모습은 없다. 뻔히 다 아는데도,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지적했다. (창3:11中)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하고, 아담에게 물으셨다.
그때 아담이 (12)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며, 좋은 아내라고 감탄하더니, 막상 하나님이 잘못을 지적하니까 “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 때문”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셔서’ 하나님이 이 여자를 창조하지 않고, 내게 주지 않았으면, 내가 죄를 짓지 않았을 텐데, 이게 다 하나님 때문이라는 말이다. 우리도 잘못되면, 다 남의 탓이라고 한다. 가정이 잘못되면, 부모는 자녀들을 책망하며, 자녀들은 부모를 원망한다.
나라가 잘못되면, 정치가가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이고, 재벌들이 경제를 망친 것이며, 일부 고위공직자들이 부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불찰이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 한다.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내가 아무리 잘살고, 착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인간의 자비와 생각보다, 주님의 생각을 받아들이자. 이것이 믿음이다. 나의 신앙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가짜이다. 우리 죄를 변명하지 말고, 주님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기를 축원한다. //
기도하겠다. 주님!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신, 그 말씀대로,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여,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는 은혜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행할 때에 버림을 받은 사울을 보고, 교훈을 삼으며, 이 세상에 속한 거짓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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