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2. 08. 14.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요5:1-9) | |
작성자 : 윤관 | 작성일 : 2022-08-21 |
첨부파일: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주일).hwp(32K) |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저희들이 올려드리는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지역마다 각기 다른 자연재해로 힘든 지금, 집중호우로, 또 가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우리나라를 일으켜주시고 도와주시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우리의 삶과 심령 가운데, 모든 결박을, 주님 말씀의 능력과 권세로 끊어주시고, 새 생명의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이 시간, 교회에서 그리고 각자의 처소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께, 하나님 말씀의 권능과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1-9)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
예수님이 가는 곳에,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다녔나? 왜? 예수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요6:1-2)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많은 사람이 따랐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필요하도록 창조하셨다. (고전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인 인간들은, 살려주는 영이 필요하도록 창조하셨다.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요,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 우리가 예수님의 필요를 느껴야, 믿고 따를 수 있다.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1. 예수님은 왜 오셨는가?(1-2).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1)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오셨다.
유대인의 명절은 절기인데, 절기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주는 때, 시간이라는 말이다. 베데스다 양문 곁에 있는 연못가에서 역사가 일어났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안에서, 주님을 만났다. 양문은 성전에서, 희생 제물로 드려지기 위해, 양들이 들어가는 문이다.
따라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이, 유월절에 하신 역사라고 보인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양문 곁의 베데스다 못가에 찾아가, 거기서 병고에 신음하는 자들을, 고쳐주셨다.
(2)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오셨다(3-4).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미신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데, 맨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미신으로 신음하는 자가 많다. 길을 모르면, 헤매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길과 진리를 알고, 우리 처지를 알기에, 찾아와서 고쳐주고, 진리를 깨닫게 하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께 고침을 받고도, 자기를 고쳐준 분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이런 사람을 향해, 병을 고쳐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해주고, (14中)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모든 병이, 죄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의 병은, 죄 때문에 왔음을, 깨닫게 해주셨다. 또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 주고, 구원해 주는 분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문제가 인간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님이 찾아와 주셔야, 구원받을 수 있고, 주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만이 구원받는다.
(3) 인간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 오셨다(5-6).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낫고자 하느냐며, 소망을 주셨다.
38년 된 병자는, 어느 누구보다 예수님의 도움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사람이었다. 38년의 긴 기간을, 병과 싸우고 있으니, 그는 몰골은 말이 아니고,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지치고, 쇠약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움직일 수 없는 사람에게,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사역할 때, 대개 육체의 병으로, 영적으로 눌린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예수님이 움직일 수 없는 자를 찾아와서, 소망을 주셨다. (마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책망하자, 그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은 말씀했다.
(9:12-13)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병든 자와 죄인을 구원하려고 오셨다.
2.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1) 병든 사람이다(5-6).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든 사람에게 예수님이 절실히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 사람은 3가지, 중요한 병을 앓고 있었다. ① 그는 육신의 병을 앓고 있었고 ② 절망이라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으며 ③ 주님을 모르고 있었기에,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는 육신이 병든 자, 마음이 병든 자, 영이 병든 사람도 있다. 육신이 병든 자는, 육신의 고통을, 마음이 병든 자는, 마음의 고통을, 영이 병든 자는, 영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고통과 괴로움을 당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분이다.
(2) 실패한 사람이다(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자신은 인생의 경쟁에서, 실패한 자라는 고백이다.
그의 실패는, 건강한 사람과의 경쟁에서의 실패가 아니다. 병자들과의 경쟁에서 조차, 이기지 못한 치명적인 실패요, 38년 동안 계속 된, 실패다. 이 사람은 실패를 통해, 삶의 용기를 잃어버렸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패한 사람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에 실패했는가? 우리 마음에 나는 실패자로 느끼는 순간, 예수님을 찾게 된다. 예수님은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다. 서양 속담에 「나의 실망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실패해서, 인생에서 좌절했을 때, 하나님은 그 실패와 실망이 변하여, 성공되게 만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내가 실패했을 때, 예수님께 나오기만 하면, 그 실패가 변하여, 새로운 축복의 계기가 됨을, 믿기 바란다.
(3) 소외된 사람이다(7).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이 사람은 꼼짝 못하는 사람이다. 아주 느릿느릿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갔다.
경쟁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된, 철저히 소외된 자였다. 이 사람에게는 경쟁자들만 있을 뿐, 도와주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냉엄한 현실 속에, 사회로부터 소외된, 고독한 사람이었다. 오늘 이 세상에는, 상황에 따라, 버리는 사람도 있고, 버림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경우도 있다. 버림받은 사람들은, 외롭고 고독하다고 느낀다. 엘리야도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자신만 홀로 남았다고, 고독을 말했다. 그러나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는, 고독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회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주위로부터…, 교회에 나오지만, 군중 속외 고독, 소외감을 느끼는 분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소외감을 느껴보았던 분이기에, 도울 수 있다.
(마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고 했다. 예수님은 당시 소외 계층을 찾아다녔다. 그들을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그들에게 하늘나라를 소개하는, 역사를 일으키셨다.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은, 병든 자다. 또한 실패한 자들이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이런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찾아오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자신이 이렇게 느끼고 있는 분들은, 예님께 나오고, 주변에 이런 분이 있다면, 예수님을 소개해 주시기 바란다.
3. 그가 어떻게 고침을 받았는가?(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38년간 병과 싸우느라, 지칠 대로 지친 사람에게, 먼저 예수님은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었다.
고난을 극복하기 원한다면, 강한 소망이 필요하다. 강한 소망을 가진다면, 믿음으로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절망을 느끼는 분은, 고난을 극복하려는 강한 소원을 가져야 한다. 또한 강한 의지는, 순종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때 고침 받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난다.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는 원망이 많았다. 아직 예수님이 그를, 온전히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의 주님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강렬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8-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다. 스스로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주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소망을 가졌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순종하여 일어섰다.
긴긴 세월, 육신의 고통으로 인해, 삶의 의욕이 떨어진 병자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생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이었다. 병을 치료해 주는, 능력의 말씀이었고, 생활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었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스스로 일어섰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일어나 가려고 하다가, 기적을 체험했다. 오늘 우리는 육신에 병이 들었는가? 인생에 실패했는가? 사회로부터 소외당했는가? 베데스다 못가인 이 자리에서, 찾아오셨던 그 주님을 만나기 바란다. 예수님이 우리를 치유해서,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오셨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나서,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점은, 예수님께 나왔고, 말씀을 듣고, 믿고, 말씀에 순종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예수님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던 나병환자는 (마8:2)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믿고 구함으로 구침받았다.
중풍병으로 누워, 몹시 괴로워하는 하인을 위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한 백부장이 그랬다(마8:5-10).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도 그랬다(막5:25-34). 믿고 구함으로 구침받았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짐을 벗기고, 자유하게 하는 분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믿음의 고백이 있는 사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죄로부터의 자유, 인간을 억압하는 병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이 놀라운 축복을 소유하게 된다. 이것은 많은 돈을 들여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 지식, 명예, 등 어떤 것을 주고서도, 바꿀 수가 없는 보배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놀라운 변화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 병자다. 우리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패자였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믿고 순종하라. 그러면 우리의 삶에 모든 질병이 변하여, 건강하게 되고, 실패가 변하여, 성공하게 되고, 소외된 감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기를 축원한다. //
기도하겠습니다. 베데스다 못에, 소망을 두고, 38년 동안 고통 중에 살던, 병자처럼, 나의 소망을 그 어떤 곳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 두는, 온전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걸을 수 없는 병자를 향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신 주님, 저희들도, 좌절과 절망의 자리에서 지금 곧 일어나, 주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내 인생의 소망과 생명이 되시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만나,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큰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은, 모든 것을 능히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의심치 않음으로, 지금 내가 주저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대히 걸어가는, 그런 믿음의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
이전글 : 2022. 08. 07. 주님을 감동시킨 믿음(마8:5-13) | |
다음글 : 2022. 08. 21. 예수 그리스도(행3:1-10)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