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2. 06. 05. 칠칠절(래 23:15-22) | |
작성자 : adminstrator | 작성일 : 2022-06-09 |
(15-22)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이것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제물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제물로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마리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이니,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
(레23장)을 보면, 7개의 절기가 나온다. 절기는 히브리어로 (모에드)인데, ‘정한 때, 정한 장소, 정한 모임’을 말한다. 따라서 절기는, 하나님이 지정한 때에, 지정된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준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언제, 어떻게 구원하려는지, 보여주는 시간표이다.
오늘 말씀은 칠칠절(샤브옷)인데, 초실절로 부터 7주간이 지난날이기에, 칠칠절이라고 한다. 또 다른 말로 오순절이라고 한다. 7주간 이튿날 까지 합하여, 50일이 되기에, 5순(旬)은, 열흘 순이 5번이 되는 50이 되었음을 말한다.
맥추절은 밀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곳에 모여, 기쁨을 나누는 절기다. 오순절은 성령강림으로 이 예언은 성취되었다(행2:1-4).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 정리가 안 되서, 성령강림절과 맥추절을 따로 지키고 있는데, 성경적으로 분명히 잘못이다.
1. 그러면 7절기는 무엇인가?
(1) 유월절은 양력이나 음력이 아니라, 유대력으로 1월 14인데(5),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양을 잡아 피를 뿌렸는데, 그 피를 볼 때에, 죽음의 사자가 지나갔다.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양을 잡았다(출12:6).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음으로 성취되었다. 예수님은 해가 지기 전인, 환한 대낮 오후 3시에 운명하셨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해질 시간이 아니지만, 초자연적으로 해가, 빛을 잃게 하심으로(막16:33),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셨다.
(2) 무교절은 이스라엘의 모든 누룩을 찾아, 땅속 깊이 묻는 절기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무덤 속에 들어감으로 성취되었다.
(3) 초실절은 가나안에 들어가, 농사지어 처음 추수한 보리를, 안식일 이튿날 드리며 감사하는 절기다(9-14).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되었다(고전15:20). 역사적으로 봄에 속한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루어졌다.
(4) 칠칠절, 맥추절, 오순절은 같은 절기이며, 밀을 추수하고 감사하기에, 맥추절이라고 한다. 초여름에 드리는 절기다(15-22). 여름(카이쯔)은, 끝(케쯔)과 어원이 같기에, 마지막 세대라 한다. 이 마지막 기간은 뿌려진 씨를 가꾸고, 돌아보는 기간이다. 이 절기는 신약 오순절 때, 성령강림으로 성취되었다(행2:1-4).
(5) 나팔절은 유대력으로 7월 1일이다(23-25). 칠칠절과 나팔절 사이는, 가장 긴 4달이다. 이 4달의 기간을 “농사기간”이라고 부른다. 나팔절의 특징은 나팔을 불면, 백성들은 다함께 모여,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것이다(마24:30,31).
재림 때에, 성도들의 휴거가 있다(고전15:51,52). 구름 속으로 들림 받아,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살전4:16,17). 재림의 언약 성취는, 마지막 나팔 때이다(계10:7, 11:15). 그러므로 재림 신앙으로 무장해야 한다.
(6) 속죄일은 유대력으로 7월 10인데, 대제사장과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덮는 날이다(26-32).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준, 은혜의 선물인 예수님의 복음을 배척하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으려고 하기에, 민족적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속죄일 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준다(슥12:10-12, 13:1). 그래서 속죄일이 되면, 회개의 영이 임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여, 구원받게 될 것이다. 이제 이방인의 때가 차면, 유대인에게 회개의 영이 임하여, 민족 공동체적으로 영접하게 된다(롬11:25-27).
(7) 초막절은 유대력으로 7월 15인데, 추수를 거두고 기뻐하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성되는 날이다(33-44). 추수를 마친 후에,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는, 하나님이 제정하고, 이미 이루셨고, 현재도 이루고 있고, 이루어 갈 것이다.
여호와의 7절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다. (골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지금도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이단 하나님의 교회이다. 이들은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안상홍의 생일이 1월 14일이에, 유월절이 안상홍이라고 한다. 성경에 어디가 그런가? 유월절의 실체는, 바로 예수님이다. 따라서 그림자나, 가짜를 붙들지 말고, 실체인 예수님을 붙들어야 한다.
절기는 구약의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약에서 그대로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신실함과, 성경의 정확함을 보여주니, 올바른 종말론이 정립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2. 칠칠절의 의미
(1) 떡 두 개를 흔듦(17).
“너희의 처소에서, 십 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칠칠절은 ‘십 분의 일’(이사론) 2개로 만들 떡인, 2개의 떡을 가져다가, 흔들어 드렸다. ‘십 분의 일’은, ‘십일조를 하다’(아사르)며, 아솨르(축적하다, 부해지다, 부유하게 만들다.)는 말과 동일시된다. 이 단어는 의인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복을 말한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믿음에 대한 ‘보상’(잠22:4)을 말한다. 반대로 자신을 의지하여, 스스로 풍부하려고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는 말로, ‘아사르, 아솨르’가 사용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자를 상징하는, 떡 2개를 가져다가, 처소에서 흔들어 드렸다(요제).
유대인과 이방인이, 불로 상징되는 성령으로 인해, 하나의 떡(몸)처럼, 하나님이 받는다는 예언이다. 죄로 죽은 자들이, 성령으로 생명을 얻고, 하나 됨으로 성취되었다(고전12:3, 엡2:18, 3:6). 마귀는 자꾸 분열시키지만, 성령님은 하나로 뭉치게 해서, 연합과 일치를 이룬다.
무교절 제사에는, 누룩을 철저히 금했는데, 맥추절에는 누룩을 넣으라고 했다. 그 이유는 누룩에는, 2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의 누룩이 있다. 나쁜 의미는, 죄악의 부패성을 상징한다(출12:15, 고전5:6-8). 그러나 좋은 의미로 쓰일 때는, 천국의 확산을 비유한다(마13:33).
따라서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복음이 땅 끝까지 확산하여, 퍼져 나감을 보여준다(행1:8).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예수님이 승천하면서, 약속한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며,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강림은, 초대교회가 탄생하는 시발점이다.
오순절은 바로, 교회의 탄생일이 되기도 한다. 이방인은 무시당하며 살았다. 그런데 성령님을 주어서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도록 했다. 이방인인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은혜를 주어,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게 함을 풍성하게 만드신 은혜에 감사하며, 더욱 주님을 위해 살아가기 바란다.
(2) 제물이 희생됨(18-19).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이것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제물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제물로 드릴 것이요.” 하나님께 소제, 전제, 번제, 속죄제, 화목제물을 드렸다. 짐승들이 피를 흘려서, 희생제물이 되었듯이, 예수님의 피의 복음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제는 피를 부어드리는 제사다. 화제는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복음이, 충만한 곳에 성령님의 역사가 있다. 예수님의 보혈은 죄를 제거하고, 성령을 초청하고, 성령의 역사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드러낸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 하는 곳에, 복음이 충만하다.
하나님의 복음에는 절대로, 예수님의 피가 빠질 수 없다.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에, 예수님의 피의 증거가 나타난다.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충만하게 된다.
(3) 노동을 금함(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오순절에는 아무 노동을 하지 말아야 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은사를 받음은, 우리의 힘이나 공력으로 받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우리는 다만 기도할 뿐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성령강림한 역사는, 하나님이 한 일이므로, 우리의 노동이나 행위를, 자랑할 수 없다.
(4) 이방인을 위해 곡물을 남겨 두라(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 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밭의 곡물을 벨 때, 남겨두어야 했다. 그 이유는 2가지다.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해, 남겨두어야 했다. ① ‘가난한 자’(아니)는, 상속받을 것이 없는 자,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자들에게, 성령님의 은혜를 베풀어준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신다.
② 남의 나라에, 거하는 거류민을 위해, 남겨두어야 했다. 거류민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의미한다. 오순절 날에 있었던 성령의 은혜에는, 이방인인 우리가, 참여함으로 성취되었다. 유대인에 의해 자녀의 떡이 거절당했고, 가나안 여인 같은 우리 이방인에게, 그 부스러기가 떨어졌다(마15:26-28).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은 계속 거부한 반면,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다(행13:46). 그래서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져, 교회를 이루게 되었다. 성령으로 이방의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는 역사가,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된다.
가난한 자를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은 은혜를 입은 자라면, 다른 사람에게 은혜 베풀 줄 아는, 삶을 원한다. 내가 누구에게 큰 은혜를 입고도, 은혜를 베풀 줄 모르고, 자신만 위한다면, 비난을 받게 된다.
남겨두라고 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되, 그들의 입에 떡을 넣어주라고 말씀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수고하여, 먹도록 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을 돕되, 무조건 적선하는 식의, 도움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자를 도울 때는, 스스로 땀 흘려 일해서,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일자리가 없어 궁핍한 자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해주도록 힘써야 하고,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가난한 자라면 다른 성도들과 함께 힘을 합쳐, 구조를 개선시켜 나가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고 게을러서 가난하다면, 게으름을 책망하고, 근면함을 가르쳐,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일할 자리가 있고, 일할 힘도 있지만, 게으름 때문에, 일하기 싫어서 가난하다면, 근면하도록 가르치고, 계속 일하기 싫어한다면, 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결론이다. 절기를 지킨다는 말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한다는 말이다. 절기를 감사함으로 지키는 자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영육간의 모든 평강의 복을 준다고 약속했다(출34:24).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바로 감사하는 생활이다. 이방이었던 우리를 구원해주신 절기에, 감사의 교훈을 새롭게 하고, 잃어버린 감사를 새롭게 하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오순절을 맞아,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다시 한 번 헤아려 보고, 감사하는 자가 되고, 감사가 넘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신 것처럼, 죄악 된 세상에서 저희들을, 구원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험하며, 구원받도록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성령이 강림하신, 맥추절 칠칠절 오순절을 기억하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고 따라가며,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알곡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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