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1년 1월 24일 -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눅23:39-43)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1-09-08 |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눅23:39-43)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을 힘입어, 오늘도 자비와 은혜를, 구하러 나왔습니다. 저희가 진실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실 때, 합당하지 못한 것을 다 드러나게 하시고, 저희들의 잘못을 돌이키고,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올바른 마음을 주시옵소서.
오늘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저희에게, 죄악 된 세상에서 오염되어, 강퍅해진 마음들을 녹여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잃어버린 소망과 기쁨을 되찾고, 흘려버린 은혜와 능력을, 다시 회복하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
요즘 너무도 가슴 아팠던, 정인이 사건을 아실 것이다. 입양한 부모를 잘못 만나서, 학대를 당하다가 무참히 짓밟혀서, 어린 생명을 잃게 되었다. 반면, 최재형 감사원장은, 두 아들을 입양하여, 훌륭하게 키웠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라진다.
인생은 만남이다. 출생을 통해, 제일 먼저 부모님을 만나고,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난다. 또 사회를 통해서, 이웃을 만난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 선배, 후배, 스승을 만나게 된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을 통해 결정된다. 여자는, 좋은 남편을 만나야 행복하고, 남자는, 좋은 아내를 만나야 행복하다.
학생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실력이 생기고, 스승은 뛰어난 제자를 만나야, 가르치는 보람을 누리게 된다. 자식은 부모님을 잘 만나야 하고, 부모는 자식을 잘 만나야 한다. 인생에서 만남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모든 만남에는, 좋은 만남과, 나쁜 만남이 있기에, 좋은 만남이 되려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
① 좋은 만남 : 과거에는 가난하고, 형편없던 사람도, 좋은 사람 만나서,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또한 중한 병에 걸려, 소망을 잃고 살던 사람이, 좋은 의사를 만나서, 건강을 회복한 일도 많다. 공부 못하던 학생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성공한 예도 많다.
성경을 보면, 바로 왕은 요셉을 만났기에, 7년 가뭄을 이기고, 세계를 먹여 살린, 왕이 되었다. 나아만 장군은 하녀를 잘 만나, 엘리사 선지자를 소개받아서, 나병을 치료받을 수 있었다. 모세는 바로의 딸 공주를 만나, 왕궁에서 훌륭하게 자라나,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다.
② 나쁜 만남 : 나쁜 친구를 만나서, 인생을 실패한 사람들도 많다. 고라가 반역을 일으켰을 때, 그를 따랐던 사람들은, 다 같이 망했다. 아간의 범죄로 이스라엘은, 조그만 아이 성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이처럼 내가 어떤 만남을, 갖게 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라진다.
그러므로 좋은 만남을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 모두에게는, 좋은 만남의 축복이 있기 바란다. 그런데 우리 인생 가운데, 특별히 꼭 만나야 할 분이, 계신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을 만난 병자는 나음을 입었고, 귀신들린 자는, 예수님을 만나 온전해지고, 맹인은 눈을 뜨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졌다.
고기잡이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 대사도 베드로가 되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인간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넘치는데, 어떤 축복이 임하는가? 따라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축복을 살펴보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1.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를 받는다.
본문은,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힐 때의 장면이다.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는 가운데 있고, 양 옆에는 악한 짓을 하며 살던, 행악자들이 달려 있었다.
사형당하는, 인생의 마지막에,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었다. 진정한 만남은, 공간적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이다. 이들 중의 한 강도는, 묵묵히 고통을 견디시는, 예수님에게서 거룩하심을 발견하고, 그분이 메시야임을 믿게 되었다.
마지막 순간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행악자들은, 왜 내가 여기 달려서, 죽게 되었는가?’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한 사람은,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다. (마27: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막15: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행악자들은 강도였는데, 처음에는 모두 똑같이 예수님을 욕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십자가 위에서 변화를 일으킨다.
(40-41)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우리는 우리 죄 때문에 당연히 벌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곁에서, 똑같이 고통당하는,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이렇게 변화되었다. 이렇게 고백한 사람을 향하여, 예수님은, (43中)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강도는 약탈자, 행악자이다. 흉기로 사람들을 위협하여, 돈과 생명을 빼앗기에, 중형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극악무도한 강도가, 마지막 순간, 예수님을 만나자,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된다. 물질만 쫓고, 명예만 쫓던, 세리 삭개오가, 베푸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딤전1:13上) 바울은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 변하여 전도자 바울이 되었다. 욕심쟁이 야곱이 변하여, 경건한 이스라엘이 되었다. 역사를 보면, 평범한 구두수선공인 무디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변화하여, 훌륭한 전도자가 되었다.
방탕하여 20세가 되기도 전에, 사생아를 낳고,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진 어거스틴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 기독교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성자가 되었다. 한국 초대교회의 유명한 부흥사, 김익두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평양의 유명한 깡패였다.
동네사람들은 장날만 되면, 깡패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장에 갈 정도로, 아주 유명한 깡패로, 소문 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집마다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이 왔다. 사람들은 부고장을 받아보고서 ‘에이 그놈, 시원하게 잘 죽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김익두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의 장례식에, 많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죽었다고 하던 김익두가, 뜻밖에 제일 앞좌석에 버티고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놀랐다. 사람들은 속으로 ‘저 놈은 너무나도 악독해서, 염라대왕조차 데려가기를 싫은가보다.’하면서, 슬금슬금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때 김익두가 벌떡 일어나, 그 자리에 모두 서라고 하자, 사람들은 도망가다가 다 제자리에 앉았다. 김익두는 ‘여러분 안심하세요, 이 김익두가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음을 알리려고, 불렀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잘못한 것, 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부터 새롭게 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그가 진정으로 변했는지 시험해보려고,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물바가지를 흠뻑 뒤집어 씌웠다. 그러자 김익두는 물을 툭툭 털면서 ‘옛날의 김익두가, 죽었다는 사실로 인해, 기뻐하라. 그 김익두가 살아있었다고 하면, 너는 벌써 요절이 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여름철에 보따리를 걸머지고, 산을 넘고 있었다. 너무 더워, 빨리 올라가서, 정상에서 바람을 좀 쐬고 가야지 생각하고, 참고 올라갔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기에, 웃통을 다 벗고, 불어오는 바람에, 쉬고 있었다.
그런데 술 취한사람이, 올라오더니, ‘너 왜 나보다, 먼저 올라왔느냐?’면서 때렸다. 김익두 목사님은, 그냥 맞았다. 한참 때리는데, 대항하지 않으니까, 숨을 몰아쉬면서, 씩씩거리자, 목사님은 말했다 ‘형님 다 때렸소?’ 그러고 악수를 했다. 김익두 목사님은, 힘이 아주 좋았기에, 술 취한 사람은 꼼짝 못했다.
그때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다면서, 내가 김익두야!’했다. 그는 ‘아이쿠 죽었다.’면서, 떨었다. ‘예수 믿기 전에, 이런 일을 당했으면, 자네는 장례식까지 다 끝났는데, 내가 예수 믿은 덕에, 네가 살았지 않았으니,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지.’라고 했다.
‘그러면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뭘 어떡해? 따라와.’ 그리고 그를 데리고, 부흥회에 참석시켜서, 예수님을 믿게 하고, 후에 그는, 장로님이 됐었다고 한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서, 변화된 간증이 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야 한다. 마음도, 태도도, 생활도,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
죽음의 순간이라도,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그 때가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바뀌는 때다. 인생 대역전 드라마가, 시작된다. 불행했던 삶이, 행복한 삶으로 변화된다.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신다. 우리가 질병으로 죽어갈 때, 실패로 좌절할 때, 우리를 찾아오신다.
나는 별 수 없다.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다고 단정 짓고, 죽은 사람처럼, 냉소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주님은 찾아오신다. 살았다는 이름만 있고, 힘과 소망을 다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찾아오신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 삶이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바란다.
2. 예수님을 만나면, 죽을 죄인도, 구원 얻는다(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죄로 인하여,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게 된다.
나폴레옹은 죽는 순간, 자신이 가장 사랑하였던 3가지를 중얼거렸다. “내 조국 프랑스…, 충성스러운 군인들…, 사랑하는 아내 조세핀…” 그의 고백에는, 인생을 마감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베토벤은 ‘친구여, 이제 희극은 모두 끝났네.’라고 고백하므로, 진한 허무와 체념을 표현했다.
그런데 의롭게 살지 못했지만, 주님을 만난 강도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확실한 보장이다. 한 치도 거짓이 없는, 말씀이다. 나중에 봐서, 건져 주겠다가 아니다. 지금 즉시, 주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다. (롬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리 도를 닦아도, 구원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눅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이 땅에는 오직, 2가지 종류의 인간만이 존재한다.
①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는 죄인이 있고, ②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죄인이 있다. 전자는 희망이 없는 죄인이고, 후자는 희망이 있는 죄인이다. 왜? 자기 죄를 깨달아야, 회개할 수 있고, 회개해야만 죄에서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를 해보면, 겉으로 볼 때는, 먼지도 없고 깨끗하지만, 장롱 위와 밑에는, 먼지투성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양심껏 살아왔다고 할 수 있으나, 세월이 흐르며, 작은 죄들이 쌓여, 큰 죄인을 만든다. 그게 죄인 줄 모르고, 죄가 쌓여 가는 줄도 모르고, 인간이 만든 법을 지켰다고 하여 ‘의인’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나가는 날, 우리의 더러운 죄가, 쌓여 있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는 죄인이기에, 심판을 피할 수 없지만 (막2:17中)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다. 병자가 고침을 받고, 건강하게 살려면, 자기의 병을 인정해야만 한다. 구원받기 원한다면, 이 강도처럼 ‘나는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야 한다. 자기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
자기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이렇게 말씀한다. (요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왜?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약속대로, 부활하셨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대속하셨고, 그 증거로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심을 믿고, 평안한 인생을 사시기 바란다.
3. 예수님을 만나야, 천국에 가게 된다(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낙원’(파라다이스) ‘기쁨의 동산’이다. 천국은, 지극히 행복 넘치는 곳이다.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를, 먼저 낙원으로 인도하신다. 예수님은 구원을 요청한 자들에게, 다음에 한번 검토해보겠다.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하지 않았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셨다. 흉악한 죄인이, 낙원을 들어가는 복은, 엄청난 기적이며, 엄청난 장래의 약속이다.
그는 흉악한 죄인, 강도였다. ‘못된 짓’만 하면서, 인생을 살아온, 살인자다. 행악자인 그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후, 자신의 영혼을 부탁했더니, 예수님은 즉각, 그의 죄를 용서해주셨다. 천국까지 함께 하겠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해야만, 천국 가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만난 강도가, 살아오면서 한 일이, 무엇이었나? 그가 남을 도와주며,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한 일이 없었다. 도리어 강도짓만 일삼던, 정말 악한 자다. 못된 짓만 했던 자인데, 예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고, 그와 함께, 오늘 낙원에 있겠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강도는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알고, 자기 자신을 맡겼기 때문이다. 착한 일은 그 다음이다. 선한 일은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 같은 몹쓸 죄인 살려주셨으니, 그 은혜 갚으면서 살겠다.’는 마음에서, 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 같은 죄인은, 천국에 갈 자격 없다고, 스스로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너는 구제불능이다’는 마음은, 마귀가 주는 속삭임이다. 절대 속지 말라. 지금까지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나? 괜찮다. 지금 예수님을 만나라.
예수님께 내 인생을 부탁하면, 죄를 용서받고,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으니, 다시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죄를 지을 가능성은 있다. 그래도 예수님께 나오면, 예수님이 주시는 힘으로, 죄를 이기게 된다.
인생은 다 죄인이다. 예수님 양편에 있는, 두 강도는, 극악무도한 죄인, 만인이 싫어하는 죄인이었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그를 싫어한다. 평생 죄만 짓다가, 사형을 당했다. 평생 좋은 일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그 죄가 오늘,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예수님을 만났다.
그가 본 예수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34中)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강도는 예수님이, 자신들을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를 듣고, 자신을 용서하고, 구원해주실 수 있음을 깨닫고, 구원을 청원했다.
(42)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은 (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낙원의 반대는 지옥이다. 무서운 고통만 있고,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은 없다고 하지만, 그 말에 절대로 동조하면 안 된다.
지옥은 ‘없다.’고 말한다고, 분명히 있는 지옥이 없어지지 않는다. 믿음 좋은 성도가, 불신자 친구를 전도하는데, 그 친구는 믿기는커녕, 친구의 신앙을 비웃으며, 오히려 심하게 반대했다. 그래도 친구의 구원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복음을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믿음의 친구는, 불신자 친구에게 요청했다. “자네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종이에 이렇게 써보게. 오늘밤 내가 죽는다면, 나는 지옥 간다.” 자꾸 강권하기에, 그 친구는 마지못해,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하고, 약속대로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종이에 썼다.
그런데 ‘오늘 밤에 내가 죽는다면, 나는 지옥에 간다.’고 쓰니까,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진짜 죽어서, 지옥에 가면, 어쩌나.’하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 날 밤, 한잠도 자지 못했다. 공포와 괴로움 속에 지냈다.
점점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친구는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얻게 되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다. 이 고귀한 생명을, 아끼기 바란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영생하는, 천국을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시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 우리 삶이 변화되어, 죄인이 의인이 되고, 불행한 자가 행복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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