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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1년 1월 10일 - 때늦은 소원(눅16:19-31)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21-09-08

때늦은 소원(16:19-31)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아침,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연일 최강 한파에, 폭설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추운 날씨 가운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계속 확산되고 있고, 나라의 정치도 경제도, 갈등과 혼란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 땅의 모든 교회들과 성도들이, 이 고통의 때를 잘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영육 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땅에 살아가며, 반드시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음을 알고, 내세를 준비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제 속히, 교회의 모든 예배와 모임들이, 그리고 성도들의 모든 신앙의 일상들이, 온전히 회복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19-31)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

(4: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바란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면서, 행동하는 사람이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미래의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본문 바로 앞에는 불의한 청지기비유가 나오는데,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다가, 쫓겨날 위기에 처하지만, 쫓겨난 다음을 생각해서, 주인에게 빚진 자의, 빚을 다 탕감해 준다. 자기 돈도 아닌데, 탕감해 준다.

남의 돈으로, 인심 썼다. 분명히 잘못하였다. 그래서 옳지 않은 청지기지만, 예수님께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셨다. 마지막 결과를 염두에 두고, 오늘을 행동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끝을 보고 살기에, 미래지향적인 신앙을 갖게 된다.

마지막에는 하나님 앞에 모두 서야 하기에, 하나님이 없다는 어리석은 말이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을 하지 않는다(14:1).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거지도 죽고 부자도 죽었다.

죽음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기에,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하며, 구원받은 사람은, 올바로 살아야, 하나님을 보게 된다. 우리 인간들은, 사형 언도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다.

왜냐하면 죄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사형 언도를 받고, 집행순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사자가, 우리 이름이 부르면, 죽어야 하는데, 우리는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착각해서, 이 땅에서 영원히 살기위해, 장기계획을 세우지만, 마귀에게 속아, 죽음을 잊고 사는 것이다.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마귀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게, 온갖 방해를 다 한다. 자신의 영혼에 대해, 준비하지 못한 자를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라고 했다.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죽음을 준비할 수가 있는가? 유언장을 만들고, 재산을 정리하고, 묘지를 준비함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인가? 물론 그런 것도, 죽음에 대한 준비이지만, 중요한 준비는, 하나님을 어떤 모습으로,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면, 헛것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는,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따라서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어도,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반면에, 거지로 불쌍한 인생을 살았어도, 죽음을 준비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짜 웃는 자이기 때문이다.

1. 지옥은 어떤 곳인가?

(5:22)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성경에 지옥, 13번 나오는데, 11번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지옥이 없다, 자기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 ‘지옥 가라고 해도, 정말 화를 낸다. 왜 지옥이 없는데, 지옥에 가라고 하면, 화를 내는가? 그의 마음속에서, 지옥이 있음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23) “그가 음부에서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다. 한마디로 해서, 절대로 가면, 안 되는 곳이다.

(1)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곳이다(24).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음부에 간 부자는, 불꽃 가운데서, 뜨거워 몸부림쳤다. 뜨거운 물에 조금만 데어도, 고통스러워 소리를 지르는데,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을, 괴롭지 않겠는가?

원래 지옥은 헬라어로 게엔나(γεέννα)인데, 히브리어 게 힌놈’(힌놈의 골짜기)에서 유래됐다. 힌놈의 골짜기는 365일 쉬지 않고, 각종 쓰레기가 타고 있었고, 인간이 제물이 되어, 태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온갖 벌레와 울음이 있었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타는 곳이 지옥이다.

(2) 목마름의 고통이 있는 곳이다(24).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물 한 방울을 외치는, 고통을 상상해 보라. 물 없는 곳에는, 동물도 식물도 살 수 없다. 생명이 살 수 없는 곳, 고통만 있는 곳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목마름이 없다.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목마름을 대신하여 (19:28) “내가 목마르다며 고통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3) 조그만 소원도, 이루어질 수 없는 곳이다.

음부에 간 부자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그의 소원은 무엇인가? (24)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얼마나 애절한 소원인가? 매정히 뿌리치기에 너무도 간절하다. 저라면 물을, 마음껏 부어주겠다. 그러나 이러한 조그만 소원도, 전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곳이 음부다.

형제들에게 증언하여,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27-28).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자신은 늦었지만, 남은 식구라도, 이곳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있지만, 이러한 간절한 소원도, 조그만 소원도 이루어 질 수 없는 곳이니, 절대 음부에 가서는, 안 된다.

2. 천국과 지옥의 차이점은?

본문에서 지옥과 천국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천국과 지옥을 결정짓는 2단어가 있다. 그 단어는 위로괴로움이라는 단어다.

(1) 천국은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곳이다(25).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위로는 헬라어(파라칼레오)인데, ‘파라’(곁에)+‘칼레오’(부르다)의 합성어이다. “곁으로 부른다.”는 뜻이다.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하는데,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곁에 불려진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다. 영어로 위로를, Comfort이다. ‘’(com)함께, 포트(fort)요새, 포르테(forte)‘이다. 위로는 그의 필요를 채워주는, 실질적인 힘이다. 강한 힘이 함께 하여 줌을 말한다.

성령님은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을 불러서, 함께 해주심으로, 괴로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신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갈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영접해주시고, 우리의 눈물을 친히 닦아주시고, 제자의 길을 가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였느냐 하며, 위로해 주신다. 우리가 세상에서 지불한 모든 고난, 환란, 눈물, 슬픔대하여, 충분히 보상을 받으며,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들어가는 곳에는, 위로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죄에서 구원받음으로, 하늘나라의 시민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백성이다. 그러기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지옥은 극도의 고통만 있을 뿐이다(23).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왜 지옥이 고통스러운가? 뜨거운 불도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뜨거운 풀무 불에 들어갔지만, 아무런 고통을 당하지 않았다.

머리카락 하나도, 그슬리지 않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 생명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과 단절된 곳이기에, 긍휼과 희망이 없는 곳이다. 위로가 없는 곳이, 지옥이다. 위로 없는 가정을 생각해 보라. 이런 가정은, 소유가 많아도, 고통이 있는, 지옥과 같은 곳이다.

그 반면에, 가난해도 위로가 있으면, 견딜 수 있다. 힘들어도 따뜻한 격려가 있다면, 인내할 수 있다. 따뜻한 격려와 위로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시원하게 하는가? 어느 누구도 위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도 없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대통령이나 거지나 위로가 필요하다.

3. 그러면 부자는 왜 지옥엘 갔고, 나사로는 왜 천국에 갔을까?

부자였기에 지옥에 갔고, 거지였기에 천국에 갔는가? 아니다. 부자라고, 지옥 가는 법은 없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다윗도 부자였다. 그러면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가 무엇인가?

(1)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부자는 자기의 입으로, 지옥에서 회개에 대하여 말했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만일 선행으로 지옥을 면제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남은 식구들에게 가서, 이야기 좀 해주십시오. 나는 착한 일을 하지 않아 지옥에 왔으니, 너희가 이곳에 오지 않으려면, 선행을 많이 해라.’

이렇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선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는 내가 천국에 도달하는 그 날, 나는 천국 문에서, 하나의 현판을 볼 것이다. 그 현판에는 오직 회개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쓰여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그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들이어야 한다.

부자는 나사로를 형제들에게 보내, 증언하게 해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부탁했을 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 지니라고 했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부자는 살아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3) 부자는 하나님의 도우심, 긍휼히 여김을 받지 않았다.

여기 나오는, 거지의 이름은 (20)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인데, 부자는 (19) “한 부자가 있어라며 부자의 이름은 없다. 부자는 이 땅에 살 때,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던 사람인데, 왜 이름이 없나?

사람들은 이름 한번 내보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특별히 부자들은, 세상에서 다 유명하다. 하지만,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무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들은 그렇지 않다. (고후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무명한 자 같지만, 유명한 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하셨다. 부자는 자기 뜻과 힘과, 능력으로 살았다. 물질로 살았다. 쾌락으로 살았다. 명예로 살았다.

하지만, 나사로(라자로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았다. 그의 이름의 뜻으로 알 수 있나? 나사로는 히브리어로 엘아자르인데, ‘’(하나님) + ‘아자르’(돕다, 구원하다.)이다. 나사로는 하나님의 도움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말이다.

부자는 자기 뜻과 힘으로 살았기에, 이 땅에서 마음껏 살았는지 모르지만, 죽어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반면에 나사로는, 이 땅에서의 삶은 비참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기에, 죽어서는 하나님의 도움(구원, 은혜)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 있나요? 내 힘과 능력으로 살고 있나요? 하나님의 은혜로 사나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성도들이 되자. 부자는 자신이, 왜 지옥에 왔는지 알았다. 부자는 너무나 중요한 영적 원리를,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

이 땅에서 그 사실을 알고 믿었어야 했는데, 그는 지옥에 가서야, 하나님의 은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부자의 오해했다. ‘만일 죽었던 사람이, 지옥을 경험하고, 그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복음을 전하면, 다 믿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와 선지자에게,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씀한다.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가 거듭남은, 이적을 통해 이뤄지지 않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된다.

정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복음을 증언하면, 사람들이 다 믿을까요? 오늘 우리가, 기적이 없기에 믿지 못하는가? 그렇지 않다. 11장에 등장한, ‘나사로, 본문과 같은 이름을 가졌고,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면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사실을 알고 보았던,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나? 아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면, 아무리 놀라운 기적을 보고, 경험해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문제이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자.

저는 전도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저희 ○○○, 이 땅에서 아주 착하게 사셨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돌아가셨다. 그러면 저희 ○○○, 지옥에 가셨나요?“ 믿지 않으셨으면, 지옥이라고 하면, 자신도 그 지옥에 가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만은, 지옥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소원을 알기 바란다. 자신은 이미 늦었지만, 남은 식구라도, 이곳에는 절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우리 형제는 (28)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하는, 지옥에서 들리는, 때늦은 소원이다.

형제들아,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정말 후회하니, 제발 믿으라는 소원이다. (29)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성경이 정확하니, 성경대로 믿어라. 지옥에 간 사람도, 이 땅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간절히 소원한다.

그런데 천국에 가는 사람이, 지옥에 가는 사람의 소원만도, 못해서 되겠는가? 복음을 전하는 길만이, 지옥 가는 길을 막는다. 다른 사람은 못 구해도, 내 가족이라도 구원하자. 우리는 눈물로 그들이, 지옥 가는 길을 막아서야 한다. 내 영혼은, 정말 준비되었는가?

우리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가? 지옥에서 들리는, 때늦은 소원이 아니라, 이 땅에서 간절하게 소원하고 기도하여, 음부에 갈 수밖에 없는 자들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자.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내세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땅에서도, 천국의 소망으로 살게 해 주시고, 변함없고 영원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해 지옥가는 사람이 없도록, 구원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지체하지 않고, 전심으로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증거하는, 십자가 복음의 증인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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