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12월 20일 -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구원하시리로다(사25:9)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1-09-08 |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구원하시리로다(사25:9)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아침, 주님의 전에서,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기쁜 성탄절, 이 땅에 오신, 구주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마라나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지금, 코로나가 크게 확산되어 ‘거리두기’는 강화되고 있고, 국민들은 각자의 소견대로 분열되고, 갈등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님! 저희들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성탄의 찬양과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나,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성도나,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을 성도들이, 함께 부르는 찬양이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은, 이 세상에서 당했던, 모든 고난과 아픔을, 다 벗겨주고, 위로해 주는 날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기다렸다. 그때 놀라운 은혜를 받았고,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기다렸다‘(카바)는, ’함께 묶다, 쳐다보다,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의 강조형이다. 주님과 함께 하나가 된 자, 천국 잔치에 모인 성도들은, 세상에서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여호와의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다리던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간절히 기다린 자들을, 결코 허망하게 만들지 않고, 반드시 그들을 구원해 주신다. 그들의 기다림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고, 허망하게 보이지만,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며, 이 땅에 보이는 것을 소망하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자리로, 이끌어 주신다는 말이다.
우리들이 2020년을 기억할 때,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온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가, 가장 큰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 확진자가 크게 증가하고, ‘거리두기’가 강화되어서, 우리의 몸도, 마음도 크게 위축되지만, 성탄절을 기다리는, 기쁜 마음은, 변함이 있을 수 없다.
지금은 교회력으로 ‘대림절, 대강절, 강림절’기간이다. 이는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강림절’, 인간 편에서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대강절’이 된다. 성경은 약속을 기다리는 책이다. 구약은 약속하신 구원자, 메시아가 오실 것에 대한 기다림이고, 신약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림이다.
대림이란 ‘도착, ~을 향하여 오다'는 뜻의 라틴어 ‘아벤투스’(Aventus)에서 온 것으로 예수님의 탄생과 재림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12월은 세상 달력으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달이지만, 교회력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희망으로,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달이다.
1. 대림절의 중요한 4가지 의미는 무엇인가?
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밝히 전하는 기간이다.
②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쁨과 간절함으로, 내 안에 모시고, 영접하는 기간이다.
③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참회와 순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기간이다.
④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이다. 즉, 나의 죄를 회개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대림절이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기뻐하는 것만이 아니라, 메시아의 탄생을 고대하던, 그 믿음 그대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렸으니” 우리 기독교는 기다림의 종교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참된 신앙은 '기다림'을 통해 성숙된다.
좀 더 빨리 가겠다고, 새치기 하거나, 끼어들기 해봐도, 결국은 결코 빠르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 기다림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기다림은 자연의 법칙이며, 하나님의 법칙이다. 신앙의 근본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다림이다. 근거 없는 기다림이 아니다.
멈춤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며, 새로운 창조의 시간이다. 기다림은 결코, 낭비가 아니며, 또 나를 무기력하고, 지루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다림을 말할 때에, 시므온과 안나처럼,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다림을 말한다.
① 시므온의 기다림(눅2:25-32).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시므온의 노래’로 잘 알려진 이 말씀은,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던, 시므온의 참된 기다림의 신앙을, 보여준다. 시므온은 그 기다림의 은혜로, 아기 예수를 보게 되었고, 그 아기를 안고 감격하여, 이 노래를 부른 것이다.
약속을 붙들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주어진다. 시므온은 오랜 세월,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렸고, 그 기다림대로, 하나님은 나타내 보이셨다. 시므온은 그 기다림의 시간동안에, 자신을 경건하게 지켰으며, 성령에 충만했다.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
② 안나의 기다림(눅2:36-38).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이 여인은, 84년을 홀로 살면서, 성전에서, 온갖 고난과 외로움을 이겨내면서 살았다. 그녀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
그때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 이스라엘 남자는 누구나 태어나면,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성전에 와서 예물을 드렸다.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8일 만에, 성전에 들어오셨다. 그때, 안나는 기다리던 예수님을 만났다.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난, 첫 사람이 되었다.
안나는 자기처럼, 메시아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전에서 만난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언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구원과 위로를 성취한, 메시아로 오셨음을 믿고, 선포한다. 그러면 그 기다림은, 이제 모두 성취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는 자다.
이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 초대교회에서 마지막인사는 ‘마라나타’ 곧 (고전16:22下)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였다. 사도요한은 (계22:20)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기도로, 계시록을 끝맺고 있다.
2. 성탄절을 맞이하는, 성도의 기다림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라 (시130:5-6).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 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주의 약속은, 더디지 않다. 혹시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노아는 대홍수가 올 때까지, 120년을 기다렸다. 아브라함은 기다릴 수 없는 중에, 25년을 기다려, 100세에 아들을 얻었다.
요셉은 감옥에서 13년을 기다려, 애굽의 총리로 세워졌다. 모세는 왕궁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려, 민족의 지도자,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 받았다. 욥, 다윗, 다니엘, 이사야, 하박국, 사도 요한, 바울……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기다릴 수 없는 중에, 기다림으로 쓰임 받았다.
성경 속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 모두가, 기다림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때를, 참고 기다린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오래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자가, 하나님의 큰 복을 받으며, 조급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도 없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도 없다.
기다린다는 것은, 주님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내가 타야 할 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차가 오는 것을 놓치지 않고, 계속 바라볼 것이다. 인생도 기다림이다. 기다림으로 서로가 만나고, 기다림 속에 생명이 태어난다. 기다림 속에 자라나고, 성숙한다. 인생은 기다리며 산다. 아침을 기다리고, 봄을 기다린다.
하루하루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큰 죄가 있다. 다른 모든 죄는, 여기에서 생겨난다. 그것은 조급함과 태만함이다. 인간은 조급함 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태만함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기다림은 수동적이며, 나약한 사람들의 체념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조급함이 신앙을 망치고, 인생을 망친다. 아브라함의 조급함으로,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고, 인류역사의 큰 불행이 되었다. 기다림은 영적인 문제이다. 사탄은 기다리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기다림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물론 기다린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기다리느냐가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은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가능하다.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며,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다. 그러면 지금 우리들은, 무엇을 기다리며, 무엇이 이루어지길 소망하는가? 예수님이 내게 오심, 나와 함께 하심,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크고 간절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하고, 우리나라도 크게 확산되어, 냉랭하고 불안한, 사회 분위기이며, 교회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더하고 있다. (시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구원이시오, 전부이시다. 혹시라도 그분의 응답은, 더디어,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분도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 우리가 시므온과 같이 기다리며 그분만 바랄 때 마침내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② 준비하며 기다리라(마25:1-10).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 다섯 명은, 미련하여, 등이 있었지만,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기름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예상보다, 늦게 오는 바람에, 기름을 가지지 않은,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 ’열 처녀 비유‘는, 우리에게 미리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 준다.
(눅12: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그냥 기다리지 말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말씀했다. 등불을 켜고 있으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나타나고, 드러나도록 한다는 뜻이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모습이, 밤에 켜진 등불처럼, 누가 보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잘 나타나도록 하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가지고, 준비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해마다 대림절을 맞이하며, 철저히 살펴봐야 한다.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③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기다리라(시27:13-14).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함께함을 믿었다. 그리고 여호와를 강하고, 담대하게, 기다리고 기다렸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었다면, 다윗처럼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여호와의 선하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왜 인가?
그 당시 처녀가, 임신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족과 이웃들의 수치이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이며, 또한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가능은 없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상한 마음과, 지친 몸에, 새 힘과 위로와, 희망을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은 그 아들의 이름을 ‘임마누엘’로 하라 말씀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나와 함께하고 계심을, 굳게 믿으시기 바란다.
(약5: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는 지금, 믿음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상식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믿을 만하니까 믿고, 이해할 수 있을 만해서 믿는다면, 그것은 성도의 믿음이 아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인내이다. 믿음은 기다림으로 완성된다.
지금 코로나 상황가운데, 일상생활이 많은 부분이 무너지고, 고통스러워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다. 지금은 대림절 기간이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고,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하며, 힘을 내시기 바란다.
성도는, 주님의 성탄을, 더욱 기다리며 기뻐해야 한다. 주님께만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잃고, 고통 가운데서, 메시아가 오시기를, 구원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핍박과 순교의 때에, 구세주 주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지금 우리들도,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가 속히 종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속히 나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소상공인들과 서민들의 고통이, 속히 끝나기를, 가족들과 편안하게 만나,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대화할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은 안전하게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함께 어울리기를 기다린다.
모두가 평범했던 일상들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성도들은 마음 놓고 함께 교회에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기를 고대한다. 이런 간절한, 기다림이 있다는 것은, 현실이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지금 이와 같은 시련의 시간들은, 성도들의 믿음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다.
참으로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스스로 믿음을 지켜내지 않으면, 안될 시기를 살고 있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지금의 코로나 상황이,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시간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분별해야 한다. 이와 같은 때에, 믿음을 잃지 않고, 더욱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
기도하겠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영접하며 감사합니다. 기쁜 성탄절, 이 땅에 나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마라나타! 다시 오시는 주 예수님을 고대하며, 더욱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이전글 : 2020년 12월 13일 - 너희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마5:13-16) | |
다음글 : 2020년 12월 27일 -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마16:13-18)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