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12월 13일 - 너희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마5:13-16)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1-09-08 |
너희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마5:13-16)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아침,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코로나 바이러스 재확산으로, 확진자가 하루 900명이 넘고, 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여러 문제들로 분열되고 갈등하는, 위기가운데 있습니다.
먼저 주님 앞에 회개하오니, 저희들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때에, 예수님이 보여주신, 종의 마음으로, 어둡고 죄악 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 교회로!’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리는, 성탄의 기쁨과 찬양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나,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성도나,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이제 대림절과 성탄절이 지나면, 한해가 다하게 된다. 올 한해 우리는, 코로나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교회 역시 이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나심을 기념하며, 기쁜 마음으로, 성탄절을 맞이해야 한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전에, 4주간 동안, 성탄을 고대하며 준비하는, 교회의 절기이다. 지금 코로나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둡다 해도, 또한 이 세상의 악한 세력들과 사상들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해도,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절대로 멸망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본문 말씀을 통해, 이제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며, 또한 온전한 성도의 삶을 결단하는 은혜가, 넘쳐나길 원한다. (마5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① (1-12)절은 팔복, ② (13-16)절은, 세상의 빛과 소금인, 성도의 신분
③ (17-48)절은, 율법에 관한 예수님의 견해이다. 본문은 그리스도인들만 아니라, 불신자들도 잘 알고 있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했다. 소금과 빛은,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것이다.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고, 빛이 어두움을 밝히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힘들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1. 성도는 소중한 사람이다(13上).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14上)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5장의 말씀을 살펴보면, 10절까지는 그 대상을 ‘그들’이라고 말씀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그들은 복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위로를 받고, 그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고, 그들은 배부를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11)에 오면, 그 대상이 ‘너희’로 바뀐다.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예수님을 따르다가, 욕을 먹고, 박해를 받으면, 받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했다. 오늘 본문에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다.
여기서 ‘너희’는 강조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너희들만 세상의 소금이고, 너희들만 세상의 빛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소금과 빛의 공통점은, 둘 다 매우, 중요하다. 이 세상이 유지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 빛이요 소금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다. 예수님은 어두운 이 세상을 밝히기 위해 오신, 빛이라고 말씀했다. (고후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후4:4中) 복음을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라 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빛이라고 묘사했다. 성경에서 ‘빛’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율법, 성전, 복음을 말할 때,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본문에는, 그 소중한 빛을, 성도들에게 사용하고 있다.
너희는, 너희만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렇게, 소중한 존재임을 알라고, 예수님은 말씀했다. 지금은 지역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소금은 흔하고, 값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소금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 다음에 소중하게 여기고, 창조한 것이 물이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물이다. 바닷물에는 온갖 오염물질들이, 유입되는데 그래도 오랜 세월, 썩지 않고, 변질되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 녹아 있는, 3-4%의 소금 때문이라고 한다.
소금에는 소독과, 살균작용을 하는, 염소이온이 들어 있어서, 많은 독소들이 유입되어도, 썩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소금이 없으면 물은, 결국 썩게 되고, 쓸모없는 물이 되고 만다. 물이 소중하다면, 그 물을 썩지 않게 유지하는 소금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소금은 방부제 역할만 아니라, 모든 음식에 맛을 내는 역할도 한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또 소금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매우 소중한 역할을 한다. 이 소금 때문에 뇌 세포가 활동하고, 각종 필요한 호르몬의 분비가 조절된다.
소금을 섭취하지 않으면, 우리 몸속에 있는, 세포의 기능이 마비되어서, 생명이 위험해진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 몸에 소금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성도는 세상을 썩지 않게 하고, 맛을 내고,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① 소금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한다. 물, 불, 곡식 등과 같이, 삶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필수품이다. 따라서 소금으로서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이 없는 세상은, 영적인 생명이 끊어진 세상임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② 소금은 방부제의 역할을 한다. 생선과 고기를 보존하는데 사용된다. 따라서 소금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없는 세상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이는 반대로, 이 세상이 부패함은, 그리스도인이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③ 소금은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욥6:6上)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소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만 녹아 맛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도의 삶도, 겸손히 자신을 숨기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④ 소금은 치료제의 역할을 한다. 유대인의 문헌을 보면, 치통도 소금으로 고쳤고, 신생아도 소금으로 문질러, 그 몸을 깨끗하게 하였다(겔16:4). 소금의 삶을 사는 성도는, 이 세상 환부를 치료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⑤ 소금은 순결한 희생을 상징한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방부제의 역할과 더불어, 정결하게 하는 소금을 쳤다(레2:13). 성도 역시,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 위에 뿌려져서, 없어지는 소금처럼, 순결한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2. 성도의 삶은, 본이 되어야 한다.
빛과 소금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말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소중한 것이면, 그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알아야 한다.
소금과 빛의, 역할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의무를, 온전히 행할 때, 행복해진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리고 교회에서도 그렇다. 성도로서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산상수훈 말씀은,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강조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거나, 금식하거나, 구제해서는 안 된다. 남에게 나타내지 않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하나님 아버지께, 상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성도들이 이 세상의 빛이 되어서,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물론 자신을 자랑하거나, 드러내기 위해서, 일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 특히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착한 행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일반적으로 착한 행실은,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올바른 행동을 말한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보다,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면,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게 되지만, 본문에서 착한 행실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선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을 살라고, 예수님이 우리를, 빛이라 말한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이 말하는, 양심이나 도덕은, 그들이 만든 기준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빛이 되는 역할을 할 때, 착한 행실이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보편적인 선함이 아니라, 최고의 선, 지극히 선한 것이어야 한다.
가장 선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며,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 지극히 선한 일이다. 그러기에 성도의 착한 행실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아!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천국이 있구나, 예수님을 믿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착한 행실이다. 나를 드러내거나, 내 자랑을 사람들에게 보이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싫어한다.
오히려 나의 부족함, 연약함을 드러내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경건하지도, 구별되지도, 거룩하지도 않은, 모습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않은 태도이며, 본이 되는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이 주목한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개독교’라며 비방하는 이유는, 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인은, 적어도 넓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까, 욕하는 것이다.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빌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 여겨 보라.”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고, 또한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본이 되도록, 모든 일에 성실하며, 신뢰받는, 빛 된 삶을 살아야 한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 귀한 존재가 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나, 세상 사람들 앞에서나, 본이 되는 삶을 살기 바란다. 특별히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란다.
때로 예수님의 ’빛과 소금의 비유‘를 말할 때,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으로서의 교회’,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서의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여, 교회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지만,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은 다르다. ‘너희는 소금처럼, 세상에서 특별한 맛을 내는 존재다.’
‘너희는 빛처럼, 세상에 보여 지는 존재다.’라고 한다. 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의무와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봉사하며, 선한 일들을 베풀어야 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연의 역할’은 아니다. 교회는 예배와 설교, 복음 전도를 통해, 생명과 구원의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부름 받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3. 그러면 교회와 성도의 사명은 무엇인가?
(1) 세상의 소금이다(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교회와 성도의 참된 사명은,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① 아무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진다. ②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가치를 잃으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2) ‘세상의 빛’이다(14-15).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빛이 없는 곳은, 어둡고 답답하고 괴롭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빛은 언제나, 밝게 하는 능력이 있다. 빛은 살균하는 역할도 한다. 또한 빛은, 생물을 성장하게 하는, 능력도 있다. 그런데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면 ① 있으나 마나,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다 ② 마침내 불은 꺼지고 만다.
(3) 교회와 성도의 사명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에서, 성도의 최대 가치와, 삶의 목적은, 무슨 일로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오늘 본문에서 ‘너희’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부패한 삶을 살아가는, 어두운 세상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부름을 받은 성도와 교회가, 바로 소금이요, 빛이라는 뜻이다. 자신을 희생함으로, 하나님을 떠나, 썩어져가는 세상을 살리고, 그 어둠을 밝히는 의무가,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참으로, 교회와 성도의 사명이, 무겁게 느껴진다. 마지막 때, 지금 이 세상의 어둠이 깊고, 이 세상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가? 이것을 교회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커 보인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말하면, 세상에서 교회가, 세상의 부패와 어둠 앞에서, 무기력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하지만 세상의 어둠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말씀의 빛, 생명의 빛을 삼키지 못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상의 모든 어둠이 삼켜버렸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어둠이 삼켰던 그 빛을, 토해내었다.
주님은 오늘 말씀가운데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고 완료형으로 말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노력하면, 소금처럼, 빛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소금이 맞는가? 나는 빛이 맞는가?
내 삶을 들여다보면, 소금과 빛은커녕,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부패하고 어두운 자신의 본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 말씀하실 때, 그 근거를 우리에게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우리 안에는,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 능력도, 세상의 어둠을 밝힐 빛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세상의 부패를 막고, 이 세상의 어둠을 밝힐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생명과 구원의 역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려고 오셨다. 그리고 마라나타! 다시 오실 것이다.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임마누엘 주님이, 함께 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저희들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 되는,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통해 예수님을 보고,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세상 사람들이, 저희들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세상에 보여지는 저희들의 삶을 보고,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도록, 소금 되고 빛이 되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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