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11월 15일 -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1-6)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1-09-08 |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1-6)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아침,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나라 안팎으로 어둡고, 힘든 위기 가운데,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하오니, 저희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교회로’, 교회마다 회복되고, 부흥하며, 모든 예배가 온전히, 세워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복음 전도와,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저희 교회와 성도가 되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나, 영상을 통해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 모두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6:1-6)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나요? 혹시 나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은 아닌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고, 여호와를 힘써 알기를 갈망하는, 귀한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란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인물들 중의, 한 사람 잘 알려진, ‘코닐리어스 밴더빌트’는, 해운업과 철도 산업으로 재벌이 된 사업가요, 자선가로, 미국 명문 사립대학 ‘밴더빌트’ 대학은, 그가 기증한 학교다. 1척의 보트로 시작한 해운업에서, 증기선사업으로, 그 후 철도사업으로 ‘철도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밴더빌트는 신앙에는 관심이 없고, 부와 명예가 그의 신앙이며, 존재 이유였다. 그의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흑인 하녀가 그를 위해, 찬송가를 불러주었다 그 곡이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였다.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되시네.‘ 그 순간 밴더빌트는, 조용히 찬송가 가사를 음미했다. 그의 입술이, 조금씩 떨려왔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 저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겸손한 약자가 된다. 그리고 쥐고 있던 것을, 모두 놓는 순간, 인생의 새로운 빛을 찾게 된다. 신앙은 사망을 삼키고,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킨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안다고 했는데도, ‘하나님을 알라.’고 했다. 그 이유는 실상 그들이,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 잘 알지도, 온전히 믿지도 못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책망하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어야 한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계획과 사랑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원하시고, 기뻐하시는지 알고 있는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믿기에, 호세아 선지자는, 힘써 여호와를 알라고 했다. 지금 코로나19로,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누고, 신앙의 삶을 나누지 못하기에, 위기다. 우리가 온전히 알아야, 치유될 수 있고, 회복될 수 있다.
1.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 위하여, 이렇게 하라고 호소한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1上).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소한, 첫 번째 내용이다.
호세아가, 이렇게 외친 이유는, 무엇인가? ‘호세아’는 구원자라는 의미이다. 호세아의 소명은,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하는 것이다(1:1-2). 호세아는 결혼해, 3명의 자녀(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를 얻게 된다. 자녀들의 이름의 의미는 ① ‘이스르엘’(하나님이 씨를 뿌릴 것이다.)
② ‘로루하마’(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③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죄를 범했지만, 이 모든 죄악의 뿌리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하나님을 버렸으니,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도 버렸고, 우상숭배도 하게 되었다. 부부 관계에서 배우자를 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단지 배우자를 버리는, 문제만이 아니라, 수많은 문제들을 가져온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만 버리는, 문제만이 아니라, 수많은 문제가 생긴다.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호3:1中)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포기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하셔서,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외쳤다. 이는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가장 근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외침이었다.
그렇다면 호세아가, 그렇게 외친 이유는 무엇인가? (1下-2)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그들의 찢기고, 상처 난 것들을 고쳐주시고, 싸매주셔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버렸기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만신창이가 된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의 삶에도,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문제들이 있다. 이 모든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찾으면,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내 문제와 아픔을, 해결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진정 일어서고자 한다면, 치유와 회복을 기대한다면, 오로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그들은 치유와, 회복의 소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때, 하나님의 치유가, 급속히 임하고, 하나님의 온전한 회복과, 참 생명을, 경험할 수 있다.
(2)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호소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기를 원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말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전혀 몰랐기에, 호세아가 하나님을 알자고, 말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막5: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귀신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임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지식이었다.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순종하고 따르지 않으면,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경험을 통해 알 때, 진짜 아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진정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얼마나 선한 분인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니,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을 떠났기에, 죄를 더욱 범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외쳤다.
(3) 호세아가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3中).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변함없으심을 말한다.
이스라엘에서는, 가을부터 새해가 시작되기에, 봄에 내리는 비가, 늦은 비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늦은 비가 오는데, 많은 비가 온다. 새벽이 되면, 새벽빛이 밝아오듯, 하나님은 항상 신실한 분이다. 반드시 여호와를 알기를 힘쓰는 자들에게, 자기를 들어내시고, 그들에게 풍성한 은총을 베푸신다.
고멜이 남편 호세아에게, 신실하지 못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다. 그러나 호세아는, 그런 고멜을, 한 결 같이 대했고,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결 같이 신실하게 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시다.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고멜이 호세아에게 돌아가야 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가운데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맞아주신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2. 이스라엘과 유다의 문제점은, 무엇인가?(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하나님의 경고와, 하나님의 징계를 무시하고, 범죄를 고집하였다.
그들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음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문제였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용어가 나온다. ‘인애’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인데, 이것은 언약된 사랑, 충성(신뢰)를 의미하며,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상대를 변함없이, 신실하게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상황이 좋든, 좋지 않든, 한결같은 마음과 자세로, 상대방을 대함이, 바로 인애이다. 하나님은 인애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시며, 당신의 백성들을 대하실 때, 인애를 가지고 대한다. 당연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인애를 요구하신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는 말이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녀를 낳게 했다. 음란한 여자 고멜을 맞이했는데,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들과 딸을 낳았다. 고멜이 집을 나가자, 호세아가 값을 치루고, 고멜을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호세아에게 알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변함없는 신실한 사랑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알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이 만난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실하게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함이,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먼저이다. 웅장한 예배, 세련된 예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이더라도,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인애가 있는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애는,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았다.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인애가 없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하셨는가? (4上)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라…”고, 하나님은 한탄하셨다.
인애가 없었던 그들,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변하고, 저렇게도 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한숨 지었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선지자들’이나, ‘내 입의 말’은, 같은 뜻이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들에게 경고하셨고, 그 말씀대로 그들을 징계하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심판하신다. 그들의 잘못을, 빛처럼 다 드러나게 만드신다.
3.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에게, 참으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했다. 제사와 번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제사 제도를 만드셨고, 기뻐하신다.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 없이 드리는, 제사와 번제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인애를 가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 드리는 것을 기뻐하신다.
다시 말해, 인애는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상대를 변함없이, 신실하게 사랑하는 태도’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변함없이 사랑하는 분인지를, 온전히 아는 것을 뜻한다. 지금 하나님은 진실하게, 예배하는 자들을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이 자리에, 우리 모습이 어떤지, 살펴보기 바란다. 내게는 인애가 있는지, 나는 진정,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힘쓰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인애란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상대를 변함없이, 신실하게 대하는 태도’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면 오늘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람인가? 인애가 있어야만,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힘써야만, 우리 예배도, 모든 신앙생활에도, 의미가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결론이다. 지금 우리는, 호세아의 외침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한다. 말씀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말씀으로 죄를 멀리하고, 악을 근절해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똑바로 알고서,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다.
우리 인생은, 잘 될 때도 있고, 형편이 힘들어 질 때도 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늘 한결같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애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바르게 알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제사보다, 번제보다, 인애와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인애로써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란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 추수 때에, 가라지로 버려지는 자가 되지 않기를 축원한다. //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새롭게 하여,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저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는,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환경을 초월하고, 문제 상황을 뛰어넘는, 흔들림 없고,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 드리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애의 삶으로, 마지막 추수 때에, 가라지가 아니라, 알곡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상급 받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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