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10월 4일 설교 - 두려워 말라 낙망하지 말라(습3:14-17)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1-09-08 |
두려워 말라 낙망하지 말라(습3:14-17)
(14-17)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질 때, 어딘지 모르게, 위태로움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하나 남은, 잎사귀 같다고 느껴진다. 코로나 질병으로 힘들고 어려워, 우울하고, 어둡기에, ‘코로나 블루, 코로나 블랙’으로, 어려움을 표현한다.
경제적으로, 없는 자는 없기에, 더 서럽고, 힘들다. 권력을 가진 자는,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라고 우기며, 법망을 피해나간다. 말세라 이단들은 독버섯같이, 곳곳에 일어나고 있지만, 교회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싸우느라, 대항할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범죄는 오늘, 이 시간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로 불안하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거나, 하나님이 숨은 것처럼, 자신을 감추고 계신다고 느껴져서, 낙심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스바냐는 ‘쩨파니야’, 짜판(숨다) + 야(여호와) = ‘여호와가 숨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힘들고, 고통당할 때,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며, 의심도 하고, 낙심하기도 한다. 이때 하나님께서, 힘들어하는 백성에게, 두려워 말라, 낙망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셨다.
1. 스바냐는 누구이며, 활동하던 시대는 언제인가?(1: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다. 히스기야는 선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유대 민족을 심각한 도덕적, 종교적인 부패 속에, 빠져들게 했다. 그래서 종교 혼합주의가 성행하여, 예루살렘 성전 안에, 우상인, 태양신 숭배가 성행했고, 바알과 아세라 숭배, 강신술과 매춘행위가, 무섭게 확산되었다.
므낫세가 죽고, 그의 아들 아몬이, 왕위를 계승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아몽는 2년 뒤에, 암살당해서, 8살의 그의 어린 아들이, 뒤를 잇게 되었다. 그가 바로 요시아 왕이다. 나이는 어렸지만, 정말 훌륭한 왕이었다. 암담한 시대, ‘요시야’(여호와가 도와주신다) 때, 스바냐가 활동했다.
이처럼 어두운 시기에, 유대와 예루살렘은 물론이고, 이웃 민족들마저, 갈대아 사람들에게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메시지를,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들었다. 그래서 스바냐는 백성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이 말씀을 듣고, 백성들은 절망에 빠졌다. 나라꼴은 엉망이고, 사람들은 심각한 부도덕에 빠져있는데, 하나님의 심판이 멀지 않았다니…, 그래서 사람들은, 깊은 절망과, 슬픔에 빠졌다.
심판이 임할 때 (2: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3장에서, 다시 스바냐를 부르시고, 백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 놀라운 구원의 약속을 약속했다.
(13上)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희망의 불씨는, 남은 자들이다. 현실은 아주 절망적이지만, 미래는 희망이 있다. 희망을 기다리는, 남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희망의 새벽을 기다리는, 남은 사람들, 모든 부패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키던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신앙을 지킨 남은 자들에게, 허락하신 격려의 메시지가, 바로 오늘 말씀이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아무리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남은 자들을 찾고 계신다. 엘리야가 얼마나 절망했는가?
(왕상19:10)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정의를 위해 싸웠지만, 아무도 그와 연합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없었다.
엘리야는 고독하다고 외쳤다. 이때 하나님은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너는 결단코, 혼자가 아니다. 남아있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남아있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새로운 역사의 씨앗을, 남겨, 새로운 역사를 이룬다. 이 시대야말로, 낙심되기 쉬운 때가 아닌가? 정치, 경제, 사회…, 우리 앞에 다가오는, 온갖 압박 아래, 우리는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남아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노래하고, 기쁘게 부르고,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라 명령했다.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의미는, 히브리어로 ‘라파’로, 그 뜻은 ‘늦추다, 끝나다, 소모하다,’ 기가 빠진 사람처럼 되지 말라는 말이다. 공동 번역에서는 ‘기운을 내라.’고 되어 있다.
2. 소망을 가지고, 기뻐해야할 이유는 무엇인가?(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① 하나님이 용서하기 때문이다(15上).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왕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네 형벌을 제거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힘을 잃어버리지 말고, 일어나라고 하신다! 왕이신 하나님이, 너의 죄를 사하셨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때때로 왜 위축되는가?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속에서, 나를 지배하는, 죄의식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했고, 당연히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을 갖지 못했으며, 양심을 위반했다는 이 죄의식이, 우리를 괴롭힌다. 그래서 삶의 의욕과 용기를 상실한다.
그러나 주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 형벌을 제거하였다.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자유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았을 때, 우리를 정죄하는 어떤 소리에서도, 우리는 자유롭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니, 죄로 인하여, 죄책감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며 낙심하고, 기가 죽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두려워 말라, 낙심하지 말라, 기죽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도, 용서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용서 때문에, 우리에게 이 용서가, 내게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두려워 말고, 낙담하지 말고, 기죽지 말아야 한다. 이 사건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탕자의 비유다.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오는 아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눅15:21)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런데 (22-23)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자녀의 지위로,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자녀의 영광스런 지위를 회복시켜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인데, 왜 위축되어야 하는가?
② 원수들을 쫓아내주기 때문이다(15中).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 말씀의 의미는, 너희들이 과거에 잘못한, 모든 형벌을 제거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를 쫓아내었기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③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17上).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왕이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면,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면, 왜 의기소침하고 있는가? 왕이신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실천적 무신론자’라는 말이 있다. 생각으로는 믿지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이런 분들이 없기를 바란다. 교회는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하지만, 찬송도, 기도도 하지만, 내 삶에서는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신다.”라고 했다. 힘을 잃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스바냐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신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너무 힘에 겨워질 때마다, 우리는 나 혼자라는, 고독 속에, 지치고 쓰러진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마28:20中)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항상 내 곁에 계시며, 나와 동행하시며, 임재하신 하나님을 보고, 힘을 얻기 바란다.
유대인의 미드라쉬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느 날 다윗 왕이, 반지 세공사를 불러서 ‘나를 위한 반지를 만들어라, 내가 큰 전쟁에 승리하고,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고,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넣으라.’고 명령했다. 반지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곳에 새겨 넣을, 글귀로 고민하다, 지혜의 솔로몬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그때 솔로몬이 알려준 글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다. 다윗왕은 만족하고, 큰 상을 내렸다. ‘기쁜 상황도 지나가니, 함부로 교만하지 말고, 슬픈 상황도 지나가니, 좌절하지 말고, 항상 의연한 태도를 가지라.’는 뜻이다.
3.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17中).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①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다(17上)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하나님은 함께 하시는 것만 아니라,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불안하지 말고, 힘을 내라. 용기를 내라.
②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17中).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면 무엇하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아무 소용이 없다. 더구나 원수가 된다면, 낭패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잠잠히 사랑하고, 즐거이 부르며 기뻐한다.”고 사랑을 고백했다. 이 얼마나 달콤한, 사랑의 고백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더럽고도, 악한 자들이었다. 하나님 앞에, (롬5장) 말씀처럼, 우리는 ‘연약한 자’(6). ‘아직 죄인이었다’(8), ‘원수였다.’(10).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고백하시며,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시카고의 한 작은 예배당에서,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는 세 살 된 소녀의 장례식이었다. 이제 마지막 순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관이 놓여 있는 장소 앞에 나가, 고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작별하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때 초라하고, 더러운 한 남자가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옷은 찢어지고, 때가 묻었으며 바지는 질질 끌렸다. 그의 눈은 붉고, 온 몸은 알코올에 찌듯이, 술 냄새가 났다. 이 남자는, 바로 죽은 세 살짜리 소녀의 아버지로, 알코올중독 술주정뱅이였다. 거지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자기 딸이 죽어서, 누워 있는, 관 앞으로 갔다. 그의 손은, 아무도 모르게, 죽은 딸이 신고 있는 신발을 벗겨 훔쳤다. 항상 훔치고, 그 돈으로 술을 마시던, 버릇처럼, 그날도 이 사람은, 싸구려 술을 사서 마시려고, 죽은 딸의 발에서 벗겨, 훔친 신발을, 35센트에 팔았다.
이런 사람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은, 이러한 자에게, 사랑과 은혜로, 복음을 허락해 주셨다. 그는 내 남편이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나도 사랑한다는 그의 아내의 사랑의 음성에, 이 사람은 꺼꾸러지게 되었다.
이 사람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피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엎드렸다. 이 사람이 바로, 시카고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유명한 복음전도자 ‘멜 트라더’이다. 수많은 술주정뱅이가, 전도자 ‘멜 트라더’의 복음 증거로, 새 사람이 되었다. 사랑은 참 위대하다. 허다한 허물을 덮어준다.
사랑은 지옥도, 천국으로 변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의, 옹색한 단칸방이, 진시왕의 ‘아방궁’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속삭임은, 어떤 음악보다, 더 감동적이고 황홀하다. 이런 사랑을 잊고 살아가므로, 스바냐 선지자는 말씀한다.
힘을 내라.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전능자시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사랑해주시니, 힘을 내자,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기가 꺾이지 말고, 더 이상 낙망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역사의 운행자이심을 믿고, 믿음으로 일어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가슴이 답답하고, 메어지는 아픔을 간직하고, 신음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때에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내도록 은혜를 주십시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만큼,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두려워하거나, 낙망하지 말고, 끝까지 힘을 내고, 용감하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기뻐하는지를 알고, 이 말씀을 믿고, 이 말씀 앞에서, 새롭게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글 : 2020년 9월 27일 설교 - 좌절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왕상19:1-8) | |
다음글 : 2020년 10월 11일 설교 - 절망 중에서도 소망(행27:20-26)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