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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0년 9월 27일 설교 - 좌절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왕상19:1-8)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21-09-08

좌절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왕상19:1-8)

 

(1-8)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

우리가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누군가, 혹은 무엇이, 우리 앞길을 가로막으면, 하던 일은 하기 싫어지고 짜증나며, 만사가 귀찮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마음이나 기운이, 꺾인 상태가 좌절이다. 좌절할 때 나타나는 반응은, 공격적이다. 어떤 대상에게, 손상을 입히는 말과 행위로, 나타날 수 있다.

공격의 대상은, 타인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하나님이 될 수도 있다. 좌절로 인해, 공격대상을 찾으면, 누가됐든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상처를 입힐 수도 있고,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좌절은 자포자기하고, 또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

좌절에서 우울증으로 발전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죄책감과 자학, 슬픔과 욕구 불만과, 의욕상실과 절망에 처하여, 모든 즐거움으로부터 자기를 차단시키고, 차라리 죽기를 원하다가, 자살을 시도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 이런 데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

좌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극복될 수 있고, 극복해야 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좌절을 경험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믿음의 영웅, 모세도, 엘리야도, 다윗도 좌절한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좌절할 수 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분리되었는데, 남 유다는 약400년 간, 20왕이 다스렸다. 8왕은 선한 왕이고, 12왕은 악한 왕이었다. 북 이스라엘은, 240년 동안 이어졌는데, 19왕이 모두다, 나쁜 왕이었다. 그래서 12+19=31명이, 나쁜 왕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한 왕이, 본문에 나오는 아합왕이다.

아합은 이세벨’(함께 거하지 않다.), 시돈왕의 딸과 결혼했다. 이세벨은 첫날밤부터 아합에게, 바알 신당을 세워달라고 했다. 그 후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으나, 종교 혼합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 벌로, 36개월간, 비를 내리지 않게 해,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승리를 거두고, 거기서 그들을 다 죽였다. 그 후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그 소식을 듣고, 화가 난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했다. 가뭄에서 구한 엘리야를, 받들지 못할망정, 죽이겠다는 협박했다. 공포에 떨게 하려는 의도, 말려 죽이려고 했다.

당당하게 바알 선지자 450, 아세라 선지자 400, 850명 대 1, 대결하던 엘리야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세벨 왕후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 엘리야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가? 나약한, 한 여자 앞에서, 벌벌 떨고 있다. 엘리야는 좌절하였던 것이다.

1. 좌절한 엘리야의 반응

두려워 광야로 도망하였다(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엘리야는 혼자 도망쳤다. 엘리야는 북쪽, 이스라엘에서, 남쪽 유다의 남단, 브엘세바까지 도망하였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고, 36개월간 비가 오지 않던 곳에, 비를 내리게 하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마차 보다 앞질러 달렸다.

또한 850명의 우상 숭배자들을 처단했던,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다. 그러나 이 능력의 종 엘리야가, 연약한 여자 이세벨을 두려워하여, 멀리 멀리 도망쳤다. 위기 앞에서는,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엘리야처럼 두려워하여, 도망칠 수 있다.

사람들을 피했다(3-4).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엘리야는 브엘세바에, 자기 사환을 남겨 두고, 혼자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간 다음,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았다. 이곳은 사람도, 집도, 음식도, 물도 없는, 광야였다. 위기를 당해서 두려워지면, 대개는 피할 곳과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 우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안전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아직 좌절에 이르지 않은 사람이다. 자기 앞에 닥친 위기가, 너무나 커서, 낙심하고, 좌절하면, 그 때부터는, 사람을 피하게 된다. 위로도, 격려도 도움도, 다 귀찮아지게 된다. 혼자 있고 싶어질 뿐이다. 위험신호다.

죽기를 구하였다(4).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라고 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죽기를 구했다.

사환을 브엘세바에 머물게 할 때, 무엇인가 이상했다. 혼자 광야로 들어가는 모습이, 조금 수상했다. 정처 없이, 걷기 시작할 때, 심히 의심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하나님께, 좌절에서 나오는 소리, 심각한 우울증에서 나오는 소리를,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기 생명을, 취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제 정말 괴롭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제 그만 나를, 저 세상으로 데려가 달라. 만사가 다 귀찮다’, 이렇게 엘리야는, 극심한 좌절감에 빠졌다. 좌절한 사람이, 무슨 말인들, 하지 못하겠나? 좌절한 엘리야는 자포자기했다.

2. 이런 증세가 우울증 증세다.(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이 장면을, 정신과 의사들은, 엘리야가 우울증 환자가 된, 순간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그런데 문제는, 현대인의 대부분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인생을 사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짜증만 난다.

항상 안절부절 하며, 불안해한다.

남과 어울리기를 싫어한다.

상대방 말을 듣지 않으며, 시간과 날짜에 대한, 착각을 자주한다.

남의 이름을 자주 잊으며, 최근에 일어난 사건을 자주 잊어버린다.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한다.

몹시 의심이 많아 남을 잘 믿지 않으며, 지나치게 공격적이 된다.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며, 폭발할 것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

쾌활했다, 우울해졌다가 하는, 기복이 심하다.

사소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자물쇠를 잠그고도, 안 잠근 것 같아,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확인하게 된다.

자신을 자신만만하게 여기다가, 금방 초라하게 본다.

이런 증세가 심하냐? 심하지 않으냐?가 문제이지, 대부분의 사람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키토라는 성서학자는, 엘리야에게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4가지를 발견하였다.

죽음을 피해서 도망가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가장 생존력이 강한, 로뎀나무 밑에 누워서, 그 나무의 의미를 모르는 엘리야를 이해할 수 없다.

가시나무 같이, 날카로운 로뎀나무 아래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불을 토할 듯한, 강했던 엘리야가, 그토록 약해진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3. 엘리야의 좌절 극복

엘리야는 어떻게, 좌절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가?

도움을 받아들였다(5-6).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하나님은 우울증에 빠진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셨다. 그리고 로뎀나무 밑에서, 자고 있는 엘리야를 어루만지셨다. 사랑의 터치가 있었다. 그리고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주고 일어나서 먹으라.’고 할 때에, 엘리야는 거절하지 않았다. 사랑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았다.

천사가 준, 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다.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엘리야는 천사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 너무 지친 육체가, 힘을 얻도록 했다.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는, 군소리 없이 먹고 마셨다. 천사가 날라다 준, 양식을 먹고, 4040야를 걸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외로울 때, 주님은 누군가를 보내, 우리를 돕고자 한다.

우리가 낙심하면, 누군가를 통해서, 우리를 위로하고자 한다. 우리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 누군가를 보내어, 우리를 격려하고자 한다. 우리가 상처를 입고, 고통당할 때, 누군가를 보내서,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고자 한다. 우리가 주리고 목마를 때, 누군가를 통해서, 먹이고, 마시게 한다.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하여 죽기를 구할 때, 하나님은 누군가를 보내어, 도와주고자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좌절하여, 눈이 어두워서, 주님의 손길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자포자기 하면, 사람의 도움도, 천사의 도움도, 하나님의 도우심도, 보지 못할 수 있다. 어리석게도 물리칠 때가 있다.

답답한 현실 가운데, 속이 상하고, 섭섭한 마음이 사무쳐서, 하나님의 숨은 뜻, 감추어진 사랑을 보지 못하고, 차라리 죽기를 구할 때가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엘리야처럼,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을 만났다(8-9).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천사가 가져다 준, 떡과 물을 두 번씩 먹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유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렸고, 주의 제단을 헐었다.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 오직 나만 남았는데,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한다고 했다. 열심이 유별했기에, 이세벨의 위협으로 인한, 좌절도 컸다. 그래서 실망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서, 직접 말씀하셨다.

(11-1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크고 강한 바람이 있었고, 또 지진이 있었다. 불이 있은 다음에,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셨다. (18)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나님을 만났을 때, 엘리야는 모든 오해가 풀렸다.

이세벨이 자기 생명을 취하려 하고, ‘오직 나만 남았다.’, 착각할 때는,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자기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 7,000명을 남겨두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는, 좌절을 딛고, 굳건히 일어설 수 있었다.

이처럼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만남, 즉 교제를 통해서, 해결된다. 좌절하고 낙심하여, 자포자기로, 차라리 죽고 싶어질 때,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오해가 풀어지고, 좌절이 극복될 수 있다.

사명을 다시 주었다(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세우라는 사명을 주었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장차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라. 또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 선지자로 삼도록 명했다. 사명감을 가질 때, 좌절감을 이길 수 있다. 아니 우울증에 빠질 틈이 없다.

 

현실 문제를 부딪쳐 나갔다.

아무리 도움을 받고, 아무리 하나님을 만났다 할지라도, 엘리야가 현실을 부딪쳐, 나아가지 않았더라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난, 호렙산 굴에서, 남은여생을 마쳤더라면, 여전히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엘리야가 호렙산 굴에서 나와, 사마리아의 아합과 이세벨을 대면하지(21:17-29) 않았더라면, 엘리야는 좌절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좌절했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 현실을 부딪쳐, 승리였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손에, 결코 죽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한 다음에, 엘리사가 보는 가운데,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회리바람을 타고, 영광스럽게 하나님의 품에 갔다.

현실을 도피해서는,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힘을 얻고, 하나님을 만나, 그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진 다음에는, 이제 현실을 부딪쳐,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용기를 내어, 다시 한 번, 도전하기 바란다.

다마레이장군은, 적군에 패해 도망하다가, 자살하려고 했다. 칼을 들어 자살하려고 할 때, 개미 한 마리가,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조그만 먹이를 물고 가다가, 쓰러지고, 또 물고 가다가는, 또 쓰러지는 것이었다. 다마레이는 재미있어서 따라갔다. 69번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70번째에 개미굴로 들어갔다.

다마레이는 외쳤다. ‘나는 이제 겨우 한번, 실패했지 않느냐?’ 그는 다시, 용기를 얻어 나가, 승리의 장군이 되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전쟁터다. 한 번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라. 엘리야처럼, 좌절하신 분이 있나요? 아니면 주위에, 그러한 분들이 있나요?

사람들을 피하여, 혼자서 외롭게, 광야의 길로 들어간 분이 있나요? 좌절한 나머지,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는 분들이 있나요? 지쳐서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잠 든 분이 있나요? 하나님이 누군가를 보내어, 돕고자 할 때, 깨어 일어나셔야 한다. 거부하지 말고, 도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힘을 의지하여, 호렙산에 가서, 하나님을 만아야 한다. 못된 고집과, 체면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모든 오해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일어나라. 현실을 담대히, 부딪쳐 나아가라. 좌절을 극복하기 원하시는 분들에게, 주님의 구체적인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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