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8월 2일 -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1-3)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1-08-10 |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1-3)
(엡2:1-3)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이전의 상태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말한다. 우리가 거듭나기 전, 본래 모습을 ‘진노의 자녀’라고 표현한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녀가 부모에게 속한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다는 말이다. 이런 우리를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창조 이전부터,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정하셨다. (엡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다. (사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영광을 돌리려면,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리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1. 죄와 허물로 죽었던 인간(창3:6上).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죄는, 하나님의 자녀가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난 것이다. 죄의 사전적 의미가, ‘과녁을 벗어남’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과 구별된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이 죄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을 선택했다.
그들은 범죄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죄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와 세상에 속한 자들의 싸움은, 가인과 아벨로부터 시작되었다. 죄는 영향력이 있어서, 아담과 하와에게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녀, 또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번성했다.
세상에 속한 죄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어, 자신을 위해서라면, 동생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고, 세상 것들을 추구하는, 세상에 속한 자들을, 하나님의 때에, 모두 심판하실 것이다.
죄인들, 심판 받을,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좋아하는 대로’ 사는 삶이다. 세상에 속한 자들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도, 하나님 말씀도 아니다. 오직,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창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이처럼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사는, 인간 중심의 삶, 우리 본성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며, 이기적이며, 하나님의 영광에도 무감각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진노는, 허물과 죄뿐인 우리에게, 합당하고, 의로우신 반응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원수로 행동하였다.
(엡2:2-3)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먼저 본문에서, 영적인 원수가 되는, 세 가지를 주목하시기 바란다. 이것은 ‘세상 풍조’,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육체의 욕심‘이다.
① ’세상 풍조‘는, 이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을, 죄악으로 이끄는, 이 시대의 악한 사조나, 흐름, 세상의 악한 규범과 제도, 잘못된 철학 등을 말한다.
②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탄 마귀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도덕적으로 악한 영향을 미치며, 영적 파괴를 행하는 존재이다. ③ ’육체의 욕심‘이다. 여기에서 육체는, 우리의 ’육적인 신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한 성품, 잘못된 성향’을 말한다. 성경은 우리 육체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부패한 욕심과 본성이, 우리를 죄악의 길로, 인도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세상과 마귀와, 육체의 지배를 받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고전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사도 바울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전, 죄인의 상태는, 이 세상 풍조를 따르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했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으며, 오직 그 사랑하심과,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하셨다고 말한다.
2.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우리를 살렸다(4-5).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어떻게 살리셨는가? (요1:1-4)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으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하나님은 흑암에 있던 자들을, 하나님의 빛의 자녀로, 죄에서 돌아서도록, 부르셨다. 나온 자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지으셨고, 구속하셨고, 지명하여,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신다.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을, 어떻게 살리시고, 구원하시는가?
(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다. 예수님이 없이는 나를 살릴 수 없다. 이만희나, 장길자. 다른 이단의 교주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다.
이들이 새로운 피조물이요,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 ‘성도’다. (레20:24下-26)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세상 속에서 선택하심으로, 세상과 구별하여 세웠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세상과 구별된 삶이다.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야만 한다. 세상 어떤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채운다는 것은, 성령으로 채워짐을 말한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함은, 계속되어야 한다. 소멸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성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해서 충만히 채우지 않으면, 구원은 받았어도, 그 마음은 반드시, 세상의 어떤 것으로든, 채우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갈5:13-14)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종류대로 만드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지만,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하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사랑의 모습이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주신, 새 계명이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 그리스도로, 새로운 피조물인 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온 맘 다해, 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며, 나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형제와 자매를 넘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내게 죄를 범한 형제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용서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것이다. 이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그 사랑을 증거하셨고. 마침내 신약에서 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확증하셨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또 다시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요즘 같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상황가운데 살다 보면, 자칫 나도 모르게, 세상적인 방법을, 좇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 불신자들과 구별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때로 신앙생활을 좀 적당히 할까? 하는, 유혹을 받을 때도 있다. 이와 같은 때, 우리는 나의 영적 신분을, 생각해야 한다. 전에 우리의 상태는, 어두움이었다. 어두움은, 죄와 불의와 죽음을 상징한다. 본문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한다.
그때 우리는, 죄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살았고, 육체를 따라 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섰을 때,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 실패자로 판명될 사람도 있고, 실패자로 보이지만, 성공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3. 빛의 자녀들처럼 살라(엡5:7-8).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여기서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때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사람으로 거듭난, 이후를 말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 받은 자기 영적 신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너희가…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를 ‘주 안에서 빛이요, 빛의 자녀들’이라고 말씀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빛의 자녀들처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①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그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치관’은, 좋고 나쁨, 가치판단에 대한, 기준을 의미한다. 따라서 빛에 속한 사람은, 어두움에 속한, 세상 사람들과는, 가치관이 달라야 한다. 지금 기독교는, 세속화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교회 안에, 세속의 물결이 밀려오고, 신자들이 세속화되어 가고 있음을 본다. 구원의 진리를 전하지 않고, 기복신앙을 전하는, 목회자들도 있다. 그러기에 기독교 신앙을, 현세적인 축복을 위한 방편으로, 알고 있는 신자들이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3년 믿고, 부자가 못되었다면, 잘못 믿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해야 할, 이유이다.
② 빛의 열매를 맺는데, 힘써야 한다(엡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여기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은,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가리킨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한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데, 미흡한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지도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을 해롭게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한다. 성경에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그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왔을 때, 도로 내놓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 불신자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과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르다’며,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될 것이다. 요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공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을 받고, 공격받은 것은, 그들이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이유가 아닙니까?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소금은 그 짠맛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빛도 그 밝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세상 사람들과 확실히, 구별된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도답게 행하는 것을, 포기하면 안 된다. 소금은 형편에 따라서, 맛이 바뀌는 법이 없다. 빛도 마찬가지로, 형편에 따라서, 빛 됨이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 선을 행할 수 있는 데도,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 역시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항상 선을 행하는데, 힘씀으로 빛의 자녀로서,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③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데 힘써야 한다(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했는데, 여기서 ‘시험하여 보라’는, ‘찾아보라는 뜻이 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기쁨을 위해,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간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대표적 가치관이, 쾌락주의이다. 사도 바울은, 말세의 사람들은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할 것’이라고 했다.
(딤후3:4中)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이 말씀이, 현실이 된 세상이다. 이는 그만큼,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기가, 어려운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돌이나 나무로 조각하고, 금, 은을 부어 만든 것을, 섬기는 것만, 우상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가리켜, 우상이라고 한다. 돈도, 사람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이다. 요즘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어 있는 경우나, 또 쾌락이 우상이 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쾌락을 얻기 위해, 아낌없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그러나 바울은 (딤전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라고 했다. 지금 우리는, 세속화된 사회에 살아가며, 쾌락주의 유혹에, 직면하고 있다. 각자에게 그 종류는 다를지라도, 세상 즐거움을 좇아가다, 신앙에 큰 손해를 보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하루하루 힘껏 일하며,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주일까지 내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면, 하나님께 죄가 된다. 주일을 지킴으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니지만, 주의 날을 거룩하게, 구별해서 지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긴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하나님의 자녀, 곧 빛의 자녀가 되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신분입니까?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과 권세를 주셨다. 그러기에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또한 내 속에는, 본질적으로 죄를 지으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본성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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