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7월 26일 -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6)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1-08-10 |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6)
(시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오늘 본문, 시편 23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잘 아는 말씀이다. 시편 전체, 150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이 시는 많은 작곡자들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졌다. 이 시는 유대인들이, 매일 암송하는 시요, 고난이 닥칠 때마다, 암송하며 기도하는 시이다.
이 시를 쓴 다윗은, 어린 시절 목동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목자인, 왕이 된 사람이다. 본문의 무대가 되는 곳은, ‘광야’이다. 광야는 푸른 풀밭도, 물도 없는, 황량하고 거친 곳이다. 시인은, 우리는 ‘광야에 사는 양’이라고 말한다. 광야의 양들처럼, 목자이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에,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시23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고백이요, 신앙이요, 간증이다. 다윗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생각했다. (시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예수님도 자신을 가리켜 ‘선한 목자’라 하셨다. 예수님이 ‘나는 선한 목자라.’ 라고 말씀하셨을 때, 본문 말씀을 인용하셨다고, 볼 수 있다.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① 양은 지혜롭지 못한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은, 멀리 나갔어도, 자기 집을 찾아오지만, 양은 그렇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뜻을 고집한다. 사람은 현명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사람이 본향을 떠나, 이 세상에서, 얼마 동안 살다가,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이 많다. 방황하고 헤매다가, 지쳐 쓰러져 죽는다.
② 양은 의존적인 짐승이다. 우리 주변에는, 인생의 행로 가운데, 목적지를 향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죽는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면서도, 자기 고집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양은 목자 없이는, 집을 찾지 못한다. 길을 잃어버린 양은, 목자에 의해서만 ‘우리’로 돌아올 수 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본향인 하늘나라를, 찾을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③ 양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방어할 능력도, 스스로 살아갈 방법도 없다. 스스로 먹을 것을 찾지 못하고,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양에게는, 자신을 보호해주고, 먹을 것과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줄 목자는, 절대적 존재다. 양은 목자 때문에 살고, 목자는 양 때문에 산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저도, 참된 목자인가, 돌아보게 된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목자인가? 요즘 참된 목자는 적고, 목장 관리인만 많다고 말하는데…, 혹시 그런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요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오늘 말씀을 통해, 시를 쓴 다윗의 심정과 신앙고백, 그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원한다.
1. 하나님의 목자 되심(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성도라고 해서, 인생에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저마다의 음침한 골짜기는 다를지라도, 우리 모두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었던 경험과/ 상처가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경험했던, 은혜의 간증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가진, 특권과 기쁨은, 하나님 자체이다.
그리스도인이, 건강과 부요, 명예와 권세 등,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믿음의 여정이 계속되고, 영성이 깊어질수록, 성도는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신앙을 갖게 된다.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며, 의지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시인은 그와 같은, 순전한 믿음의 기쁨을 전해준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 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무리를, 불쌍히 보셨다. 또한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불쌍하게 여기셨다.
(마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목자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성 어거스틴은 참회한 이후,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당신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된 만족도, 참된 평안도 없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돌아올 때, 참된 만족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양은 의존적인 짐승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고 고백할 때에, 은혜를 입게 된다. 또한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고백할 때, 양과 같이 어리석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너나없이 교만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목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양을 지키는 중에, 택함을 입었다. (시78:70-71)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그는 선한 목자가, 자기 양 떼를 향해, 가지고 있는 관심과 사랑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양 떼들이 얼마나, 목자를 필요로 하는가를 기억하며, 한 마리의 양을 구하기 위해, 생명까지 무릅썼던 시절을 생각했다.
지금 다윗은, 이런 경험들을 회상하며, 자기 백성을 사랑하며 돌보시는, 하나님을 노래한다. 주님은 목자, 우리는 양이다. 그러기에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의 목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제 다윗은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신의 삶이, 어떻게 부족함이 없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2. 하나님의 인도하심(2-3).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자의, 삶의 기쁨을, ‘인도하심’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만의, 일방적인 인도하심도, 인간의 일방적인 선택도, 아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다. 내 힘과 노력으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말한다. 또한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말한다. 즉 다윗이 말하는, 부족함이 없음은, 하나님의 의에, 부족함이 없는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원초적인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다윗 역시,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망의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신과 함께 하시는, 주님 때문이었다. 그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원수들의 해로부터 보호해주심을, 그의 삶 속에서, 수없이 경험하며 살았다. 다윗의 이러한 경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실, 구원의 예표이다.
인간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에게 매여, 일생을 종노릇하며, 살아가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주셨다.
(히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다윗의 삶은, 늘 원수들에 둘러싸인,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원수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상을 차려 주심으로, 크고 놀라운 승리를, 맛보게 하셨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 대표적인 경험은, 바로 골리앗을 물리친 사건이다. (삼상17장)에, 블레셋이, 거인 장수 골리앗을 앞세워 공격할 때, 이를 다윗의 밥상이 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을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세워주신 것이다.
3. 자족함(5-6).
”주께서 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은 ‘자족함’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습니까? 만족함, 자족함은, 마음의 영역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끝없이 욕망을 좇게 된다.
반면에, 가진 것이 적어도, 자신의 존재에 만족하며, 삶에 자족하는 사람은, 평온한 일상과 자유로운 영혼의, 기쁨을 누린다. 물론 우리 마음은, 순간순간 변하기에, 끊임없이 성찰하며, 자족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제 다윗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고 싶다는, 신앙고백으로 글을 맺는다. 이는 성경을 읽어서 배운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아는 자의 고백이다.
4. 두려워하지 않음(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기쁨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다윗은 양과 목자가, 어떤 관계인지, 너무나 잘 알았다. 그에게 목자는, 한없이 좋은 분이다. 양에게 목자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며, 양은 목자에게, 절대 의존한다. 양이 목자의 인도를 받는 것은, 생명과 같은 것이다.
지금 다윗은, 한때 들판에서, 양들을 돌보던 그때를, 생각해 본다. 목숨을 걸고, 양 떼를 지켰던 일을 생각하며, 사자의 입에서, 곰의 발에서, 양들을 지켰던, 그때를 회상하며, 노래한다.
(삼상17:34-35)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목자가 되심에 감격하며, 노래한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은, 그분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내 삶에/ 함께 하신다는 의미다.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시련이 있었지만, 그러나 주님은, 그냥 그대로 두지 않으셨다. 목자는 양을 포기하지 않는다.
시인은 이러한 반전의 은혜를, 노래한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은 역전의 주님, 절대로 자기 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를 보호하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시고, 의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시인은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향해, 마지막으로 이렇게 노래한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의 삶을 떠올려 본다. 목동이었을 때나, 왕이 되었을 때나, 그 어떤 시련이 올 때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만 의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에게 쫓기고, 아들에게 배반을 당하고, 수많은 전쟁 속에서, 목숨의 위태로움을 겪는, 시련의 삶이었다.
지금 내 삶을 돌아보시기 바란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구하며, 기도한다. 그런데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은, 너무나 세상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건강, 재물, 명예, 자녀의 성공…,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우리에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복이다.
그리고 그 복이, 완성되기까지,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따르라고 하신다. 그 과정이 광야의 시간이고, 시련의 기간이며, 연단의 과정이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가?’ ‘나의 간절한 소망을 알고 계시는가?’ 지금 하나님께서 답하신다. ‘내가 다 듣고/ 다 알고 있다.’ 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과 모습으로, 온전히 거듭나기를 기다리신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이런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이 겪은 시련은, 다 주님의 주권 아래에 있었고, 하나님이 주신 복이, 완성되는 과정이었다.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결론이다. 다윗의 삶은, 결코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 굴곡진 인생이었다. 아마 그가, 평탄한 삶을 살았다면, 이 시는,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칼이 오가고, 화살이 빗발치는 전쟁터도, 그에게는 푸른 풀밭이요, 쉴만한 물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삶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인생에도, 분명 크고 작은, 골짜기가 있다. 깊고 어두운 사망의 골짜기에서, 내가 능히 견디고 이길 수 있음은, 나와 함께 하시며,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때문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시가 언제, 어떤 상황에 있었을 때,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혹시 소년 시절, 골리앗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었을 때인지,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기약 없는 망명 생활을 할 때인지,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할 때인지, 아니면 왕으로 즉위하고, 궁정에 있을 때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제라고 명확히, 밝힐 수 없고, 아니, 우리들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그의 노년에 평안함을 얻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편23편에 담긴, 신앙의 원숙함에는, 긴 세월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와 모든 성도님도, 내 인생,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감동적인 신앙의 고백, 아름다운 신앙의 간증을 한 편의 시로,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일까, 생각해 본다.
다윗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수많은 골짜기마다, 목자이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셨다고, 노래하는 이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지금 이 시간,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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