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6월 28일 -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3-10)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1-0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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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3-10)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가 풍성하시며,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인데, 왜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고난과 시험을 만나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무엇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지,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하는지, 그리고 이 고난을, 언제까지 당해야 하는지, 그 고난이 길지 않다면, 견디겠지만, 우리가 그것을 잘 알지 못하기에, 너무나 막막한 것이 문제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구나 이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코 나만 당하는 고난이 아니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생은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에게도,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도 있고,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당하는 고난도 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면, 기쁘고 행복하며, 모든 일이 순조롭고, 복된 결과만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큰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가 있다. 어둡고 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 할 때도 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욥의 고난과 승리를 통해, 이와 같은 질문에, 대답한다.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며,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도, 시험을 당했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도, 수많은 고난을 당했고, 믿음의 사람 다니엘도, 사자굴에 던져지는 환난을 당했다.
성경 속에,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험난한 고난을 통과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주의 길을 가는 성도에게도, 많은 환난과 고난이 있다. 시험을 당할 때, 기쁘게 여기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 바란다. (약1:2-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을 피하기보다, 믿음으로 통과하기를 원하신다. 나름대로, 교회도 잘 다니고, 예배에 빠지지 않고, 봉사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헌신도, 헌금도 힘껏 하는데…, 왜 이런 고난이 있는가? 하며, 크게 낙심하고,
믿음이 흔들리는 성도를 볼 때, 너무 안타깝다. 지금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은 신앙의 훈련과, 연단 과정이기에, 통과해야만 한다. 원망하고 불평할 때, 실패하게 된다. 고난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시험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며, 참고 인내할 때, 승리할 수 있다.
그것이 시험을 통과하고, 승리하는 성도의 믿음과 지혜이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내게 다가오는 환난과, 시험을, 담대히 통과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 피하도록 하시는 분이 아니다. 견디고 이기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신다.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지, 그 목적도, 의미도 알지 못해, 괴로워하며 힘들어한다. 그러기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해야 한다.
왜 나에게, 이런 시험을 주셨는가? 어떻게 해야,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겸손하게 구할 때, 우리가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내 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통과하게 하신다.
(10절)에 ‘그가 아시나니’에서, 그는 누구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욥이 가는 길을 알고 계셨다. 욥은 의인이요, 비록 사단의 요청에 의해서, 시험을 받고 있으나, 결국 그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게 될 것을, 하나님은 믿고 계셨다.
또 ‘내가 가는 길’이라고 한 것은, 욥의 인생을 말한다. 믿음의 사람, 의인도,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힘든 시험을 만나게 되지만, 끝까지 참고 견디며, 믿음으로 통과하면, 하나님은 몇 배로 갚아주신다. 그 믿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의 믿음이다. 욥은 모든 고난 받는, 의인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당한 고난들을 살펴보면 ① 첫째로, 재산을 모두 잃는 고난이다. 욥은 부자였다. 양이 칠천이요 낙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며, 종도 많았다고 성경은 말씀한다(1:3). 한 마디로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던 그가,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평생토록 애써서,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빼앗기고, 거지가 될 때에,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겠는가? ② 둘째로, 자식으로 인한 고난이다. 재물을 잃어버린 고난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자식을 잃는 것에 비교 할 수 있겠는가?
욥은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맏아들 집에서 잔치를 하는데, 큰 바람이 불어, 집이 무너지면서 열 남매가 다 죽었다. 세상에 이런 고통이 어디 있겠는가? 자식으로 당하는 고통은 뼈를 깎는 것처럼 아픈 고통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③ 셋째로, 아내로 인한 고난이다. 모두 다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오직 한 사람, 아내가 곁에서, 고난 중에 함께 하며, 서로 위로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힘이 되겠는가? 그러나 욥의 아내는 (2:9)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하며 떠났다.
④ 넷째로, 욥은 건강을 잃었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으며 잿더미에 뒹굴었다(2:7-8). 그뿐인가? 친구들이 위로한다고 찾아와서, 오히려 욥을 괴롭히고, 조롱했다. (4:7上)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잘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고통은 갈수록 심해졌다. 이런 고통 속에서, 욥은 정말, 믿음을 버린 사람처럼, 절망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낙심의 말을 한다. (13:24)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하나님까지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욥은 이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마지막 기대까지 잃어버린, 최악의 영적 침체에 빠졌다. 이와 같은 때에, 어떻게 욥은, 극심한 고통을 이기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는가?
1. 욥은, 고난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을 찾는데 집중했다(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성경은 욥을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고 말씀한다.
참 놀라운 사실은, 고통 가운데에도, 욥의 호소와 기도는, 문제를 붙잡고, 이를 위해 간구하지 않았다. 욥은 잃어버린 재산을, 다시 회복하게 해 달라고, 호소하지 않았고, 자신의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욥은, 지금 무엇에 집중하며, 간구하고 있는가?
(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욥은, 그가 처한 상황 속에, 고통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가?’ ‘내가 어떻게 하면, 그의 처소에, 나아갈 수 있는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있다.
(8-9)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욥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심에도,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욥은 하나님을 찾지 못해, 탄식했다. 왜 욥은, 자기의 고난 때문에, 호소하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가? 왜 하나님을 찾지 못해, 탄식하며, 기도하고 있는가? 바로 이것이, 욥의 믿음이다. 의인 욥의, 믿음의 수준이다. 욥의 믿음의 수준은, 문제 해답을 말한다.
욥은,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하나님을 찾는데, 생명을 다해 부르짖었다.
욥에게, 가장 큰 시험은, 무엇이었는가?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자녀들을 다 잃은 것도, 아내가 떠나고, 친구를 잃은 것도 아니다. 건강을 다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욥에게 가장 큰 시험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지, 찾는 것이, 욥의 고난이었다.
우리는, 지금 내가 당하는 시험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 해답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찾을 때, 문제는 해결되고, 시험을 통과하게 된다. 우리의 싸움은, 눈에 보이는, 현실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뜻을 깨닫게 되는, 영적 문제이다.
2.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와, 의미를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4-5).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욥은 지금, 무엇에 집중하며, 몸부림치고 있는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찾으며, ‘왜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고난을 주신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데, 집중하고 있다. 고난 가운데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기를 호소하며 기도하고 있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와, 시험을 만난다. 우리는, 문제와 시험은, 고통이라고 생각하지만 고통에는 뜻이 있다. 아무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 그 고난을 통하여, 새사람이 되고,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가?
고난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난이, 나를 연단하는, 훈련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의 신앙적 나태함도, 교만함도, 연약함도, 연단과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육체의 가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그 육체의 가시가, 더 강하고, 담대한 그리스도의 종이 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고후12:10)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성도의 고난의 유익은, 장차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욥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 믿음에 흔들림이 없었던 것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욥은 지금, 자신이 처한, 고난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만나서, 왜 고난을 당하게 되었는지, 고난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데, 집중했다. (4-5)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고난을 당할 때, 먼저 회개하며, 기도해야 한다.
참고 기다리며, 오히려 믿음으로, 감사하며, 찬양하기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탄식하며,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마귀는 이런 것을, 가장 기뻐한다. 고난을 가장 빨리, 통과할 수 있는 것은, 감사다. 고난을 잘 통과할 때, 승리의 기쁨이 찾아온다.
어둡고 막막한 나의 상황은, 캄캄한 동굴처럼, 절망적이지만, 믿음으로 통과할 때, 저만치 밝은 빛이 비치는, 터널처럼 소망이 넘친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난의 터널을 통과했다. 욥은 알 수 없는, 고난이 찾아왔지만, 고난을 이기고, 갑절의 복을 받았다.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믿음으로 견디고 이기면, 고난의 동굴이, 축복의 터널로, 바뀔 줄 믿으시기 바란다.
유명한 TV 앵커였던 ‘데이비드 브린클리’는 ‘하나님은 가끔, 빵 대신, 벽돌을 주시는데, 어떤 사람은 원망하면서, 그 벽돌을 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지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벽돌을 주춧돌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고 했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사람들은 화창한 날씨를 고대하지만, 매일 날씨가 좋으면, 사막이 되고 만다. 비바람은 거세고, 귀찮지만 그로 인해, 새싹이 움트게 된다. 고난 뒤에는, 생명의 역사와, 축복이 찾아온다.
3. 욥은 결국, 자신을 단련하신 후에, 순금같이 나오리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고난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결국 하나님의 뜻, 고난을 주신 목적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그러나’라는 접속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① 욥이 고난 중에,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짖고 찾았지만, 직접 만날 수 없었고, 그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내가 가는 길을, 다 아시고, 계신 것을 신뢰했다.
② 욥은 왜 이런 고난을 당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고난이 주는 의미를, 점점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이, 순금같이 나오게 되는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고난이 주는, 놀라운 유익이며, 고난 속에 숨겨둔, 하나님의 비밀이다.
이 놀라운 비밀을 발견한 욥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고백을 하고 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은, 지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극심한 고통과, 시련의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순금은, 절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광석을 캐내어 부수고, 열을 가하는, 여러 번의 공정을 거쳐, 불순물이 없는, 순금이 될 때, 비로소 값어치가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연단을 주시는 것은, 성도의 믿음에,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순금을 만드시기 위함이다.
성경에서 믿음의 순도를 말할 때, 종종 ‘순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지혜’와, ‘귀하고 소중한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순금을 만들려면, 연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용광로에서, 노폐물이 제거되어, 순금이 되듯이, 고통의 과정은, 내 안에 남아있는, 죄악의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거룩한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한번 순금이 된 이후에는, 다시 광석으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왜 하나님은 성도에게, 즉시 복을 주시지 않고,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하시는가?
(벧전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그것은 내 믿음을, 순금같이 빛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영국 격언에 ‘잔잔한 바다에서는,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망망대해의 거친 파도를 경험한 사람이, 훌륭한 선장이 될 수 있다. 고난은, 연단과 훈련의 과정이다. 사람은 고난과 시험의 과정을 통해, 인격도, 신앙도 성숙된다.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물론 '단련'의 과정은, 쉽지 않지만, 아니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나를 완성시킨다.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인가!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순금이 된다.
순금 같은 믿음! 불순물이 전혀 없는, 100 퍼센트의 정결함과,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으로, 어둡고 죄악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 묵묵히 참고 견디며, 하나님만 찾고 찾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순금되게 하신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난의 과정을 통해, 훈련되었고, 믿음이 성숙해졌다. 지금 나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있는가?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기 바란다. 원망과 불평도 하지 마시기 바란다. 결코 소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순금같이 되어, 나올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견디고 인내하며, 고통의 훈련 과정을 통과할 때, 우리의 신앙은 아름답게 성숙되고, 순금같이 될 것이다. 저와 모든 성도님들께, 이와 같은 신앙의 훈련 과정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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