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6월 21일 - 믿음의 임계점을 통과하라!(수6:1-20)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1-08-10 |
첨부파일: 믿음의 임계점을 통과하라.hwp(26K) |
믿음의 임계점을 통과하라!(수6:1-20)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환경을 만나거나, 힘든 문제들이 닥쳐올 때, 오히려 말씀과 기도가 힘을 잃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한계 상황을 만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때에, 믿음으로 돌파하면, 신앙이 크게 성장합니다. 어떤 물질이 바뀔 때의 온도나 압력을, ‘임계점’이라고 합니다. 물은 100도가 임계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1기압 하에서, 100도가 될 때, 끓기 시작합니다. 순수한 철은 1,538도에서 녹고, 2862도에서, 끓는다고 합니다.
성도들 중에, 평상시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병들거나,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힘든 환경에 처하게 될 때, 오히려 말씀과 기도에서 멀어지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일도, 소홀히 하는 경우를 보게 되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럴 때에, 어떤 모습입니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고, 한 번 더, 기도하고, 한 번 더,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전심으로, 뜨겁게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결단하고, 고난을 견디고 이겨낼 때, 환경의 임계점을 돌파하고, 놀라운 기도 응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나라 전체가, 아니 전 세계가,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한, 큰 두려움에,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든, 지금의 상황 가운데, 성도는 우리 앞에 닥친 위기보다, 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환난을 믿음으로, 돌파해야 할 때입니다.
어떤 위기나 한계 상황에서라도, 이를 돌파하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경 속의, 믿음의 사람들은, 오랜 기간, 오직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의 분량이, 하나님에게 까지 차게 될 때, 그들에게 나타나셨고, 응답하셨습니다.
1. 임계점(critical point, 臨界點)이란?
임계점이란, 어떤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바뀔 때의 온도나, 압력을 말합니다. 물질이 근본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온도와 압력’이 있습니다. 물은 100도가 되어야, 끓게 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99도에서 100도로 넘어가는, 어느 찰나의 순간에, 끓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99도에서는 절대 끓지 않는데, 물을 수증기로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은, 바로 1도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100도가 임계점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에는, 이러한 임계점이 있습니다. 하나의 상태가, 다른 상태로 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임계점을 넘어야 합니다.
사람이 ‘섬세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작은 자극까지 느끼고,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을 컵에 부어 보면, 신기하게도 물은 컵의 높이보다, 약간 더 부푼 순간까지도, 넘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물의 표면장력이 서로 붙잡아주기 때문이며, 그러다가 단 한 방울의 물이, 더해지는 순간에, 바로 흘러넘치게 됩니다.
이때 넘치는 양은, 마지막 더해진 한 방울이 아니라, 컵에 물이 쑥 내려가기까지, 흘러넘치게 됩니다.
이 넘치기 직전의 순간을 ‘임계점’이라고 하며, 이 아슬아슬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결코 많은 양의 물이 아니라, 단 한 방울입니다. 사람의 내면도, 이와 같습니다. 내면의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에는 임계점에 이르고, 곧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주체할 수 없는데, 그것이 인생의 끝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면 성도에게, 영적인 임계점은 무엇입니까?
2. 영적인 임계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임계점을, 잘 통과한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믿음의 충만한 분량을 채운 사람에게,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은, 그가 엘리사의 명령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갔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까지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왕하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 장군에게 임계점은, 일곱 번째 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리고 성이, 함락되기 위해서는, 엿새 동안 매일, 한 번씩 돌 돼, 일곱째 날은, 일곱 번을 돌아야 했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비 오기를, 일곱 번 기도할 때, 임계점을 넘어, 구름이 나타났습니다. 만약 여섯 번째에서 멈추었다면,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왕상18:44-45)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이처럼 하나님의 임계점까지 참고, 기다린 자만이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신 양을, 다 채웠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인생은, 장거리 경주와도 같아서, 참고 견디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구하고, 인내하는 자에게, 언제나 선하신 분입니다. 신앙생활에도 임계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임계점을 넘어야 응답하시지만, 우리는 그 임계점을 깨닫지 못하고, 그 직전에 포기하기 일쑤입니다.
기도하면서도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 다른 시도를 하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며,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의 임계점을 통과할 때, 응답을 받을 수 있음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 가장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새벽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가장 중요한 순간이, 가장 절망적 순간일 수 있으며, 그때가 바로,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입니다. 가장 어둡고, 가장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그 때를, 뚫고 나가야 합니다. 그 과정을 잘 통과해야,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영적 임계점은 무엇입니까? 생명과 구원이신 예수님, 보혈을 지나,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영적 임계점입니다. 성령의 임재가 영적 임계점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고난을 통과할 때에도, 낙심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나갈 때, 임계점에 가까운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난의 골짜기에서, 기도의 양을 채우고, 헌신의 양을 채우며, 힘든 상황을 바꾸려 하기보다, 내 자신을 바꾸며,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임계점을 돌파해야 합니다.
물은 100도에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온도가 충족되어, 끓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이전의 물과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됩니다. 어떤 시험에서, 합격 기준이 60점이라면, 59점을 맞은 사람은, 불합격입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라도, 60점에 도달하지 못한, 모든 사람은 합격할 수 없습니다. 혹시 59점을 맞아, 너무 아깝고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도 합격점을, 통과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임계점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임계점까지, 얼마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걸까요?
물질이 근본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온도와 압력이 있는 것처럼, 우리 신앙에도, 임계점이 있습니다. 100도에서 끓는 물은, 99도에서는 절대로 끓지 않습니다. 99도까지는 단지 뜨거운 액체인, 물 일 뿐입니다.
하지만 100도가 되면, 물은 끓기 시작해서, 곧 기체로 변해, 증기를 만들어 내고, 그 증기의 힘은 기관차를 움직이고, 기관선을 움직입니다. 단지 1도를 높인 것으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는, 아무리 에너지를 가해도, 가시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인격이 변하는 것도 그렇고, 많은 사람이 성공을 눈앞에 두고, 포기하는 일도 그렇고, 수십 년, 신앙생활을 했어도,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내 모습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세상의 모든 변화에는, 임계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성공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포기합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굳게 결심했지만, 임계점을 넘어서지 못한 것입니다. 임계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그 가운데 보람과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노력하고 있는데, 성과가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이, 바로 나의 임계점이기에, 그 때를 잘 견디고 인내해야 합니다.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현재 99도의 삶입니다. 임계점을 넘어, 형질의 변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변화됨이고, 거듭남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언젠가, 내 습관이 바뀌는 순간, 내 품격이 달라지는 그 때가, 바로 임계점에 이른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 임계점을 넘어서, 내 안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3. 풀리는 인생, 묶인 인생
살다 보면 ‘풀리는 인생’도 있고, ‘묶인 인생’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경 속의,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들은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았고, 특별한 기회로 생각했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견고한 믿음과 노력으로, 임계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임계점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 1도가, 더 올라가서, 100도가 될 때에, 비로소 물이 끓는 것처럼, 그 1도의 차이가, 묶이는 것과, 풀리는 것의 차이를 만듭니다. 그러나 결단코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 1도를 올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끊임없이 간구해야 합니다.
마지막 1도를 넘는, 임계점을 돌파하지 못하면, 낙심하고, 시험에 들게 됩니다. 마귀는 바로 그 순간에, 1도를 다른 것으로, 채우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임계점을 돌파한 순간, 묶인 인생이 풀리는 인생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기도로 임계점을 통과하시기 바란다.
처음에는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지만, 갈수록 한계를 느끼고, 기도 시간은 줄어들어, 기도보다 염려 속에,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우리 모습은 아닙니까? 끓지 않던 99도의 물은, 100도가 되어서야, 급격한 반응이 일어나서, 액체가 기체로 승화되는 것처럼, 영광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1도, 1초, 0.01mm의 차이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기도는, 1도의 벽을 허무는 승부, 0.01mm 차이를, 넘는 승부입니다. 이것을 넘어서, 승화되는 순간에, 세상은 바뀝니다. 물질이 근본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온도와 압력이 있는 것처럼, 이 임계점은 물질뿐만 아니라, 인간의 발전에서도, 존재함을 알아야 합니다.
4. 신앙의 임계점
임계점은 모든 일에, 존재합니다. 물은 반드시, 100도가 되어야 끓고, 증기기관차는 수증기 게이지가, 반드시 212도를 가리켜야,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각기 다른, 임계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조급함 없이 그저 내게 주어진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 그것이 성도의 신앙의 삶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길을, 흔들림 없이, 참고 인내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 그런 믿음의 여정이, 오늘 나의 삶이 되길 소망하며, 신앙의 임계점에서 기다리는 복! 그런 복된 우리가 되기 원합니다.
(대하1:6-7)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그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시니“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드린 일천 번제는, 하나님의 충만한 임계점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임계점이 있습니다. 기도의 임계점, 순종의 임계점, 예배의 임계점입니다.
(수6:3-5)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6일 동안, 매일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아, 모두 13바퀴를 돌면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논리도, 이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포기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15-16)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금 당장, 빨리’ 응답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과, 또한 ‘온전한 순종’입니다. 아브람이 이삭을 바치는 순간, 엘리야가 구름 조각이 나타날 때까지, 기도한 순간이, 신앙의 임계점입니다.
(창32:24-25)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야곱이,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도록, 끝까지 기도한 순간이, 임계점을 돌파한 순간입니다.
(창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우리 인생의 임계점은, 언제였습니까? 내 신앙생활에서의, 임계점은 어느 순간이었습니까?
우리에게 아직,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기다림과 인내를, 훈련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99도에서, 100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를, 미움과 분노 대신 용서를, 애통과 슬픔 대신 기쁨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내 힘으로 안 되기에, 성령님께 의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여전히 악하고, 내 속에도 여전히, 죄의 속성이 남아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인내’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참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약1:3-4)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 내 인생의 임계점을 돌파하라!
어떤 사탄의 유혹과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만을 바라보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신앙의 임계점, 내 인생의 임계점을 돌파해야 합니다.
(시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임계점을 통과했습니까? 임계점 앞에서, 포기해 버린 적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지금 내 모습은 어떻습니까? 설교를 들을 때, 졸리기만 하고, 머리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어느 순간에, 그 말씀이 나를 주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 말씀이 은혜로, 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거절만 당하다가, 어느 순간에, 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전해지는 것을 체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믿음의 임계점입니다. 이 순간을 넘기면, 우리는 믿음의 시련을 통과한 강건한, 영적인 성도가 되는데, 많은 사람이, 그 순간을 넘어서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모든 것을 이겨낸, 영적 기쁨과, 한층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기에, 또 다시 일어나, 기꺼이 도전할 수 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그때가 바로, 승리를 코앞에 둔, 마지막 임계점임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가 수도권과, 우리 대전에서, 다시 확산되고 있기에, 두려워 떨며, 교회들과 성도들도, 위축되기 쉽다. 그러나 지금, 환난을 당하지만, 결코 담대함과 평안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고통의 임계점을, 돌파한 사람들 가운데,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죽음 같은 임계점을, 돌파하는 믿음이, 바로 성도의 부활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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