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6월 14일 - 가치 있는 삶,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버려라(빌3:7-9)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0-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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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삶,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버려라(빌3:7-9)
‘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다.' 버리는 것은, 곧 잃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어떻게 얻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버리는 게, 얻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법칙이나 상식에는 전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세상은, 더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내게 있는 것을 지키고, 놓치지 말고, 붙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른 것을 차지하고, 움켜쥐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모든 것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것, 의지하는 것, 움켜쥐고 있는 것, 자랑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 내가 어깨에 힘주고 있는 것, 나를 포장하고 있는 것, 그 모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러나 바울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근거를 말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입니다. 나를 생각하면, 그 어느 한 가지도, 포기하거나, 버릴 수 없지만,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포기하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지만,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라면, 기꺼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모두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 제가 주님을 진정 사랑합니다.’ 이 고백이 있다면,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버릴 수 있습니다. 그토록 자신의 배경을 믿고, 자랑하며 살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삶의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혀, 자기 것을 붙잡고, 살던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적인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입니다.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로마 시민권자로서의 특권과, 뛰어난 가문에, 또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당시 최고 학벌인, 가말리엘에게 공부했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유대교에 충성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생각하고, 교회를 박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붙잡는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다음, 모두 바뀌었습니다. 모두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배설물’(스퀴발론)은, 사람의 몸에서 나온 똥이나, 음식물 쓰레기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버린 것에 대해, 미련마저도 가지지 말라고 말합니다. 누가 자기 배설물을, 아깝다고, 다시 돌아가 챙기려고 하며, 누가 자신이 배불리 먹고, 버린 쓰레기에, 미련이 남아서, 다시 쓰레기통을 열고, 뒤져 건져내겠습니까?
그 누구도, 어떤 아쉬움이나,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까? 여전히 물질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지금도 세상의 것들이, 좋아 보이고, 이전에 즐기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까?
이것은 배설물로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여전히 자신의 지식이나, 지위나, 재물에, 큰 가치를 두고 있습니까? 이는 쓰레기로 여기지 않고, 여전히 보물로 생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버리고, 쓰레기로 여겨야 할 것들을, 계속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가치를 두고 있다면, 주님을 따르는 삶이 아닙니다. 이제껏 나름대로, 가치를 두고, 내가 의지했던 것들을, 한 순간에, 모두 포기함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게 해가 되는 것이라면, 붙잡을 이유가, 결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관점의 차이로,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가치관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가치의 기준이 ‘자기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깨끗이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바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인데, 이제부터 무엇을 붙들고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까?
교회 역사를 보면, 바울의 출생과 회심, 순교에 대한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60여 년을 살며,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30년은, 자기 의로움에 빠져, 자기중심의 삶을 살다가, 예수님 만난 다음,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후 30년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예수님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 고백합니다. 네로 황제 때 붙잡혀, 참수형을 당해 순교한 바울이, 30여년 동안 이룬 업적은, 놀랍습니다. 신약성경 27권 중에, 13권을 기록했으며, 생명을 바친, 3차 선교여행을 통해, 온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마지막 로마 감옥에 갇혀서도, 많은 책을 기록했고, 또 그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위대한 사도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깨달았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바울이 다 버릴 수 있었던 것은,
(1)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입니다(8下-9上).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바울이 모든 것을 버리고, 얻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는 오직 믿음으로 누리는, 그리스도인의 축복이자, 특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얻을 수 있는 가치, 그 이상입니다. 사도 바울이 얻고자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귀하고,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바울은 이 진리를 발견하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 되는 것은, 모두 다 버렸습니다.
(2) 우리는 먼저 버려야 합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를 얻을 때, 모든 것들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모든 것들을 붙들고 있다 해도, 실상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먼저 모든 것을 다 버려야, 주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버릴 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충만하게 채우십니다.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때, 우리는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버려야 것들은, 특정 항목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먼저 선행되지 않고는, 우리가 주님께 다가가려는 노력과 헌신은, 다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의지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그리스도 외에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여전히 내게 있습니까? 참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2.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 입니다.
오늘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살아갑니까?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온 가족과 자녀들을, 경제적 풍요를 말할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가치관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러한 우리의 정상적인 생각을, 뒤집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초대교회들 가운데, 아주 모범적인 교회였지만, 그들 안에도, 몇몇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 문제가, 지도자들끼리의 다툼이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지금 빌립보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특히 몇몇 문제들 가운데, 소위 지도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내세우는/ 명함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지도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랑하는 그 이력들은, 모두 ‘배설물’ 즉 ‘똥’이라고, 아주 간단하고, 극단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의 이력을 아주 상세히 들며, 인간적인 조건으로 말하자면,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뒤지거나,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랑거리라면, 자신은 자랑할 것이, 누구보다 많다는 말입니다. (빌3:4)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고후11:18)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바울은 여러 사람들보다, 더 월등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다 해롭고, 무익한 것으로 여기며, 더러운 배설물처럼, 여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그런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말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를 얻고, 그 진가를 누리기 위해서,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고후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지금 그가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는 말은, 예수를 알기 전에는, 그런 것들이 그의 삶의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가치가 되고, 최고의 자랑거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까?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만을, 가장 귀한 가치요, 그래서 예수님 외에,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인간적인 자랑에 속한 모든 것과, 마음으로 의지할만한, 모든 것들을, 다 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혹시, 배설물을 움켜쥐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그런 나는 아닌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3.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까?
(1) 가장 가치 있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눈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눈으로/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어떤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그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쓰레기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하등의 살 가치조차도 없다고 여겨서, 잡아서 때리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의 가치관은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의 것들을 최고로 여기며, 세상의 학문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무식한 예수쟁이들은,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출세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권력층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서 공회에 넘겼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자, 그동안 자신이 의지해 왔던 것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진정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이제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도 고상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므로, 세상의 것들은, 마치 배설물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그리스도를 위한 삶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영원하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사시므로, 죽는 것 까지도, 유익하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되는 것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바울의 간절한 기대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그는 살든지 죽든지, 그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재판을 앞두고 있는 죄수로서, 옥에 갇혀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자신이 죽든지, 살든지, 중요하지 않았으며, 그의 관심은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데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도 얻고, 명예도 얻고/ 예수님도 얻고, 물질도 얻고/ 예수님도 얻고, 인기도 얻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예수님과 함께 육신적인 유익도, 즉, 모든 것을 다 갖겠다고 합니다. 혹시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중요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해 행했고, 오직 예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좋았고, 오직 예수님을 얻는 것이, 그의 기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의 삶을 살았습니다. /
바울은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기뻤고, 복음 전도하는 것이, 기뻤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위해, 핍박받는 것이 감사했고, 죽을 수 있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몰라줘도, 예수님이 알아준다는 사실에 만족했고, 오직 예수님으로 만족했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했고, 행복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가치있는 삶을 살려고 한다면,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사라질 것이지만, 주님을 위한 것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금방 사라져 버릴, 세상 것들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것들입니까?
(2) 가장 가치 있는 삶은, 남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고,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영혼입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가치를,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귀중한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이, 이렇게 가치 있는 것은, 그 영혼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하며, 특히 영혼구원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돕는, 가장 가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영원한 것이, 진정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리고 인간의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요, 인간의 영혼을 위해 사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공 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가치 지향적인 삶’을 살려고, 결단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성공만 쫓아 살다가, 늙어서야,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지 못했음을 후회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위해, 생명까지도 걸어야 합니다. 꼭,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가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작가며,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는,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지 않으면, 믿음을 증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처럼 주님을 위해, 내가 가지고 있던,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 목숨까지 아낌없이 드리면, 반드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줄 믿고, 항상 감사와 기쁨으로,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 깊은 관계를 갖기 위해, 계속 달려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바울의 삶의, 궁극적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성도의 삶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시선을 고정시키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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