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5월 3일 - 구원의 방주(창6:13-14)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0-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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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방주(창6:13-14)
성경을 잘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은 신구약 66권을, 1권으로 묶은 것으로, 1,600여 년 동안, 40여 명의 다양한 기록자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당시 시대적 상황과 배경, 그리고 지리적 환경을 모르면, 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구약성경을 이해하기는, 더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약에 나타난, 몇 가지 원리를, 먼저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구약에 나오는 많은 사건들과, 인물들, 제도들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어떻게 이루어질 지를, 예표하고 있다.
이러한 틀 안에서, 구약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을 “모형론 혹은 예표론”이라고 한다. 구약은 “예표, 모형”이고, 신약은 “실체, 원형”이다. 구약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는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는 그림자와 실체로, 건축으로 말하면 “모델 하우스”와 “실제 건축물”,
영화로 말하면, “예고편”과 “본편”처럼, 구약성경에는 장차 오실, 실체이신 예수님에 관한 모형이, 많이 나타난다. 출애굽 때의 유월절 어린양은, 장차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광야의 놋뱀은, 장차 예수님이 십자가에 높이 달려, 인류의 구원자가 되실 것을, 예표 한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물로 드려지는 것은, 장차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예수님을 예표한다. 오늘 말씀 가운데, 노아의 방주는, 예수님이 장차 그의 피 값으로 세우실, 교회를 예표 한다. 이 시간 노아의 방주에 대해,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겠다.
1. 노아의 시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다(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노아 시대는 참으로, 죄악이 가득했다. 마음에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했고,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하여, 하나님의 법에서 떠났다.
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세상이었다(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노아가 살던 시대는, 일부일처가 아니다. 힘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의 아내로 삼았다. 그 기준은 외모였다. 믿음은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좋아했다.
하나님은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자를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믿음의 후손인, 셋의 자손들이, 믿음이 타락하여, 육신 중심의 삶에 치중하여, 외모만 보고 결혼했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육신의 정욕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즉 육신이 기준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함께 하다”는 히브리어로는 (딘)이다.
“(옳고 그름을) 다투다, 재판하다”는 의미다. 인간과는 더 이상, 누가 옳고 그른지, 다투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더 이상 육신을 따르는 자들을,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제는 침묵하시며, 심판을 준비하시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 상황을 말한다.
② 죄악이 땅에 가득했다(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부패와 포악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내면도 외면도, 모두 악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했다.
(6-7)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그들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고, 죄 된 삶을 선택했기에, 하나님의 기쁨과, 교제의 대상이 아니었고, 이제는 하나님께, 근심과,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 세대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성적으로 타락했으며, 인간의 생각과 계획이, 너무 악해서, 죄악이 넘쳐흘렀다. 세상 어디를 봐도, 온전한 곳이 없었다. 죄는 본질을 변질시켜서, 수많은 죄악을 낳았다. 이렇게 인간의 모든 문제는, 죄로 말미암아 발생된다.
질병, 고통,/ 음란, 살인, 죽음, 등/ 모든 문제가, 죄로부터 온다. 죄는 인간을 죽게 만든다. (롬6:23上) “죄의 삯은 사망이요…”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고 하면서, (3下) “…그러나 그들의 날이, 백 이십 년이 되리라고 하시니라.”고 하셨다.
③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다(15). 그들의 날이, 백 이십 년이 되리고 했는데, 그들이 죄에서 돌이킬 수 있는 기간을, 120년 준다는 의미다. 120년이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데, 충분한 기간이다. 노아는 120년을 동안 방주 만들었고, 방주에 들어가지 않은,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홍수에 죽었다.
결국 회개하지 않았기에, 홍수에 멸망했다. 노아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노아”는 “쉬다, 위로하다, 안식하다.”라는 의미이다. 노아는 심판에서 구원하고, 인류에게 진정한 안식과 위로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하나님은 물로 멸하시는 심판가운데, 방주를 미리 준비시켜 놓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셨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할 때, 구원과 참된 안식과 위로를, 주시는 분이시다(요14:27). 장차 재림하셔서, 불로 심판하실 때, 성도들을 구원하여, 참된 안식과, 위로가 있는,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사명으로 알고, 방주를 만들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노아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인다. 노아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심판 날에는, 과연 누가 어리석은 자인지 알 수 있다.
2. 타락한 세상에서, 노아는 여호와의 은혜를 입었다(8-9).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①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8).
원어 (노아 마짜 헨 브엔네 아도나이) 직역하면 “노아는 주님의 눈 안에 (있는), 은혜를 발견했다.”이다. 은혜”(헨)는 “하난”(은혜, 호의를 베풀다, 긍휼히 여기다, 간구하다.)에서 유래한 단어다.
따라서 은혜를 입었다는 “호의를 베풀다, 긍휼을 간구했다.”는 뜻이다.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보았다. 하나님 눈 안에서, 죄인들을 당연히 쓸어버려야 하는,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을 보았다.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이, 은혜임을 깨달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조롱해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할 것을 믿었다.
그런 노아를 하나님은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하셨고, 구원의 방주를 짓기까지, 120년 동안 그의 곁에 함께 하셨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였다.
②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로, 하나님과 동행했다.
이는 노아가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타락한 세태에, 물들지 않았다는 의미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이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 노아는 하나님만 따라 걸었기에, 그 세대의 악한 환경에 물들지 않았고, 그들의 죄악 된 풍습을, 따르지도 않았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를 입혀 주셨기”때문이다. 스스로 의로울 수 없는 인간을, 죄에서 건져주시고,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여호와의 은혜가 있었다. 노아는 여호와의 긍휼을 간구했기에, 그 시대 사람들이 모두, 물로 심판 받을 때,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을 받았다.
오늘, 죄악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도, 이러한 구원이 필요하다. 구원은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자에게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에게, 그 구원의 비밀을 말씀해 주셨다.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이 사람들을 살펴보시고, 죄악이 가득하다고 판단하시고, 먼저 죄를 지적하고, 죄로 충만한 땅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했다.
하나님은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노아에게 고페르나무(잣나무)로,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다.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역청”(코페르)은, “속량, 속죄”의 뜻이며, “(카파르) “덮다, 속죄하다, 화해하다, 지워버리다.”에서 왔다.
고페르나무”(잣나무)로 방주를 만들고,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역청으로 안팎을 칠해야 한다. 역청을 칠하도록 한 이유는 ’피의 대속물을 드림으로, 속죄함을 받는다.‘는 의미다. “대속물 안으로 들어오면, 속죄함을 받는다.”는 의미다. 예수님 안에서 대속을 받는다.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방주의 창문은, 하늘로 향해 만들도록 했다. 옆을 보면, 주변 환경이 보여서, 더욱 힘들어진다. 오직 위만 바라보아야 한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방주에는 “키, 노, 돛, 닻”은 없다. 방주는 물결을 헤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떠있기만 하면 되는, “뜨는 배”이기 때문이다. 방주는 “키”가 없다. 방주를 운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교회도 하나님이, 주관하셔야 한다. 하나님이 선장이시니, 우리를 안전하게 이끌어주신다. 문은 옆으로 냈다.
방주의 입구는, 단 하나며, 살기 원하는 자는, 방주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방주의 문이 닫히고, 홍수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노아의 시대와 같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도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구원의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심판받을 세상에서,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한다.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교회의 모형이다. 역청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주님의 보혈을, 우리 심령에 칠해야만 한다.
다른 길은 없다. 오늘 이 시대가, 믿음으로 살기가 힘들다고, 낙망하거나, 포기하거나 결코 뒤돌아, 서서는 안 된다. 갑갑하다고, 방주에서 나오면, 결단코 안 된다.
3. 방주는 무엇인가?
“방주”는 히브리어로 “테바”인데, 구약성경에 두 번 등장한다. 노아의 방주(창6:14)와, 아기모세의 갈대 상자(출2:5)이다. 노아의 방주는, 초대형 테바이고, 모세의 갈대상자는 최소형 테바 이다.
그런데 이 “테바”는 단순히, 떠 있는 배만,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 히브리어에서, 테바는 “귀중품을 넣는 안전한 금고”를 의미한다. 노아와 모세는, 모두 하나님의 귀중한 보물들이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보물임을 믿고 사시기 바란다.
노아의 방주, 모세의 방주는, 물 위에 떠 있기만 하면 되었기에, 키나 노나, 돛이 필요 없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 세상을 헤쳐 나가야만,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조정해서 이끄신다는 의미며, 내 인생의 주인은, 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말씀한다.
하나님이 홍수로 지면을 쓸어버릴 때, 노아와 그의 가족만은, 귀중품을 다루듯이, 하나님의 금고에 들어가게 하셨다. (7:16中)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방주 문은, 하나님만 열고, 닫으실 수 있다.
하나님이 방주 문을 열자, 노아가 들어갔고, 하나님은 방주 문을 닫았다. 노아가 문을 닫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보며, 그때도 노아는, 방주 문을, 열 수 없었다. 따라서 노아의 방주는, 죽어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온 자들을, 구원하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노아의 교회를, 모이는 교회라고 한다면, 모세의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아가는 교회이다. 교회는 모여서 은혜를 받고, 죄악 된 세상으로 나가, 죽어가는 저들을 구원해야 한다. 은혜를 받은 후에, 세상으로 나가는 교회, 모세의 방주가 되어야만 한다.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려면,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주님의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나타난다. (막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5월은 가정의 달이며,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내 자녀들을 볼 때마다,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소중한, 보물처럼 여긴다면, 그들이 구원의 방주 안으로, 꼭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방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키우시기 바란다. 지금 많은 가정들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귀로 들을 수 있고 마음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우리 가정에 내 자녀들은 세상에서 죄악에 물들고, 죄에 빠져 살지 않는, 은혜가 우리 자녀들에게 넘쳐나기를 축원한다.// 말씀으로 마치려고 한다.
(딤후3: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노아는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했다.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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