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4월 26일 -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창5:21-24)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0-04-26 |
첨부파일: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hwp(22K) |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창5:21-24)
창5장에는 아담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이 계보에는 “○○는, 몇 세를 살고 죽었더라.” 이와 같이 끝나지만, 오직 에녹만은 예외다. 그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에녹은 히브리어로 “하녹”이라 하는데, 구약의 “나실인”처럼 하나님께 “봉헌된 자, 전수자”라는 뜻이다.
에녹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다.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이다. 에녹은 그 당시 사람들보다, 훨씬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직접 하늘나라로 옮겨졌다. 에녹의 승천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넘어, 인간이 가야 할, 천국이 있고, 인간의 영혼은 결코 죽지 않는, 영원한 존재임을 말해준다. 오늘 본문의 에녹은 장차 들림 받는 성도들의 모형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장수하는 것이, 꼭/ 복을 받은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 땅에서 오래~ 사는 것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눈물도 슬픔도 없고/ 아픔도 죽음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삶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 성도님들은,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며 누리시는, 하늘나라 백성이 되신 줄로 믿는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동행”은 단순히,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살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 곧 에녹의 뜻이 되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면, 에녹도 싫어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에녹도 기뻐했다. 즉, 에녹은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했다.
성도들에게, 최고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고, 순종하는 데 있다. 혹시 말씀을 읽고, 들을 수도 없을 만큼 바쁘다면/ 기도할 수도 없고, 예배할 수 없을 만큼 바쁘다면/ 이는 분명 하나님 앞에서, 잘못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면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1. 장차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믿었다(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에녹이 살았던 시대는, 홍수심판이 있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타락한 시대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어둡고 타락했던 그 때, 어떻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는 말인가? 에녹은 우리와 같이, 죄를 짓고 살던, 평범한 인물이었다.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했다.
(22-23)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은 365세를 살았는데, 그 중 300년 간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65년 동안은 그렇지 못했다는 말이다. 아들 므두셀라가 태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을 낳은 이후에, 에녹의 삶은 달라졌다. 그러면 무엇이 에녹의 삶을, 바꾸어 놓는 전환점이 되었는가? “므두셀라”는, 무트(죽다) + 솰라흐(보내다) = 즉, “그가 죽으면 (홍수심판)을 보내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에녹을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상상해 보자.
“에녹아! 에녹아! 정녕 세상이 심히 악해져, 거룩하고 의로운 나 여호와가, 더 이상 죄악을 용납할 수 없어, 이 세상을 심판하겠다. 장차 네가 아들을 낳으면, 심판의 징표로 그 이름을 므두셀라라 해라.” 에녹은 아들이 태어나자 “므두셀라”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볼 때마다 “저 아이가 죽고 나면, 하나님이 심판하겠다고 하셨는데…”라고 하나님 말씀을 떠올리며, 심판의 경고를 생각했다. 이렇게 에녹의 삶의 변화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깨달았던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에녹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아들 딸 낳고, 평범하게 살았다. 하늘로부터 난, 특별한 자들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선지자가 아니어도/ 직분자가 아니어도/ 그 누구라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평생에 지은 내 죄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낱낱이, 숨김없이, 모두 다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염두하고 산다면, 심판이 너무 두렵고 떨려서라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애쓰게 된다. “위기의 신학”으로 잘 알려진 “라인홀드 니버”는 현대인이 심각한 부도덕에 빠지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는다면, 아니 그 심판이, 오늘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세계대부호가 된 알프레드 노벨이, 프랑스 여행 중에, 호텔에 배달된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신문기사에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사망”이란,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사실은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사망했는데, 그 이름을 잘못 기록한, 오보기사였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본 노벨은, 큰 충격을 받았다. “죽음의 상인?” 그는 하루 종일 호텔에 머물면서, 삶과 죽음을 생각했다.
“만약 내가 이대로 죽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뭐라고 평가할까?” 세계적인 발명가라는 명예와, 엄청난 부를 얻었지만, 쓸모없었다. 그 무엇도 생명과는 무관한, 그런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스스로를, 역사의 죄인이라고 생각했다.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만든 다이너마이트가, 살상 무기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벨은 심한 죄책감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했고, 그 기금으로, 노벨상을 제정하도록 했다. 자신이 죽었다는 신문의 오보가, 노벨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에녹은 아들 므두셀라가 죽으면, 심판이 시작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했다.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는 순간부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 정말로, 므두셀라가 죽었을 때, 홍수의 심판이 있었나요?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8-29上)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187+182=369, 노아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 므두셀라의 나이였다.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므두셀라는 성경에서 최고로 장수한 자로, 969세를 살았다.
그런데 (7:11-12)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 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있었다. 므두셀라가 969세로 죽던 해다. 노아가 태어났을 때, 므두셀라는 369세였다.
노아가 600세에, 므두셀라가 죽자, 그의 이름의 뜻대로,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쏟아지는, 노아의 홍수 심판이 시작되었다. 에녹은 아들을 볼 때마다, 장차 올 심판의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2.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믿었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뜻에 순종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우리 삶을 보면, 사람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부부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다투고 싫어져서,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나?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과의 동행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축복이며, 은혜이다.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았는데, 가인의 후손인 라멕은, 그 이름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에녹은 아담의 7대 손으로(유1:14), 경건한 셋의 후손이지만, 똑같이 아담의 7대 손으로, 타락한 삶을 살았던, 가인의 후손은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가인의 후손 라멕은, 이렇게 외쳤다.
(창4:23中-24)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가인의 후손 라멕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뽐내듯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죄악된 삶, 타락한 삶을 살았다. 그 결과 그들은, 노아 홍수 때, 모두 죽었다. 그러나 에녹은,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상에 빠져 살지도 않았다. 에녹은 300년 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에녹도 65년 동안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지만,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하신,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말씀하시며, 역사하신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면, 올바른 신앙생활은 할 수 없다.
(시14:1上)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실존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오직 세상과 자신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은 없다’ 하며 살고 있다.
사람이 오직 자신만 바라보고, 이 세상에만 온통 관심을 쏟으면/ 그 무엇도 볼 수 없고, 어떤 음성도 들을 수 없다. 그들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세상 욕심과 이기심으로 살기에,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보이지도 않고,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다. 결코 이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상을 주신다(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동행하다.”는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행동을 했다는 말이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하나님께 어떤 상을 받았나?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①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옮겨졌다. 죄의 삯인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는 놀라운 복을 받았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면, 죄를 용서받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모든 것이 성도에게 주시는 상급이다. 그러나 그중에 가장 큰 복은,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복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이 원하는 복을 바라지만, 하나님이 없는 복은, 진정한 복이 아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믿음은, 지옥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주었다. 십자가에서 죽어가던 강도는 (눅23: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그 날 강도는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갔다. 강도는 심판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자신을 믿음으로 맡겼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에 많은 불신자들이, 지옥으로 던져지지만, 성도는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진다. (살전4:17)을 보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믿는 자들은 공중에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된다. 육체적인 죽음을 보지 않고, 홀연히 변화된 몸이 되어, 공중에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된다.
②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칭찬을 받았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칭찬을 받은 것은, 정말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옛날에는, 왕을 위해 목숨을 버려 충성한 자를 “충신”이라고 하고, 부모님께 효도한 자를 “효자”라 하고, 남편을 지극히 모신 자를 “열녀”라고 부르며, 그들의 행실을 칭송하고 누각과 비를 세워서 기념하도록 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칭호가 주어졌으니, 이보다 더 큰 명예는 없다.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상 주신다는 믿음으로, 일해야 한다. 육신으로 사는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 믿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충성한 만큼, 상을 받는다.
(고전3:8中) “…각각 자기의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또한 (잠8:17中)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주시고, 상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간절히, 전심으로 찾아,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은 상을 주시기 바란다.
결론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부부의 날, 스승의 날 등, 많은 기념일 들이 있다. 특별히 다음 주일은, 어린이 주일이다. “에녹”은 “봉헌한 자, 드려진 자, 전수자”라는 뜻이다. 에녹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며, 자녀들에게 신앙의 삶을 전수했다.
지금 나는 자녀들에게, 어떤 삶의 자세를 보여주며, 어떻게 신앙을 전수하고 있나요?/ 에녹은 자녀를 낳기 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지만, 자녀를 낳은 후에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래서 에녹의 자녀들은 태어나고 부터, 아버지의 경건한 삶의 모습을 보았고, 어릴 때부터 이 경건의 삶의 훈련을 받았다.
지금 내 자녀는, 부모인 나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님, 이제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단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란다. 말씀으로 마치겠다.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다시 보이지 아니 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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