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4월 12일 - 복음을 아는 신앙인(롬1:1-4)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0-04-12 |
첨부파일: 복음을 아는 신앙인1.hwp(24K) |
복음을 아는 신앙인(롬1:1-4)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소망과 기쁨이 넘치는 부활절 아침/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시는 성도님들께도/ 그리고 각 가정에서,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성도님께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가,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대로, 주님이 부활하셨다. 이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주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의 확신과 소망 가운데, 이 땅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천국 시민으로서 긍지를 누리며 살도록 하셨다.
저는 목회자로서,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다면, 참으로 우리나라가 복음으로 충만하여, 잘 사는 나라,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세상 열방과 족속들에게 끼치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는, 안타깝게도 불신자들이 많고, 이단과 사이비가 너무 판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한 것은, 이번 코로나19사태를 통해, 많은 이단들의 실체가 파헤쳐지고 이단과 사이비에 빠졌던 사람들이 하나 둘, 미혹된 것을 깨닫고 돌아오고 있어, 이러한 때 교회와 성도는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 복음의 능력으로, 저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복음전도에 힘써야 한다.
요즘 여러 차례, 방송에 공개된 이단의 실체를 보면, 그들은 성경 속의, 가장 좋은 이름들을 다 도용하여, 거짓 진리로 사용하고, 또 이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강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 침투하고, 교회 안에 슬그머니 들어와, 교회를 무너뜨리고, 성도들을 유혹하여 넘어뜨린다.
특별히 “코로나 감염병”을 통해, 이 땅에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경고 앞에,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무릎 꿇고 기도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이단 사이비들”로 인해,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더 이상, 고통과 시련을 당하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한다.
성도가 이단들을 대적하고 승리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복음으로 무장해야 한다. 요즘 정말 안타까운 것은, 여러 미디어에, 점쟁이들과 무당들에 대한 광고가 많이 나온다. 각종 신문, 여러 일간지 등에 실린, 무속인 광고가 왜 그렇게 성행하는가? 많은 사람이 찾기 때문이다.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왜 과학과 지식이 발달한 현대사회에, 사람들은 무속인들을 찾아가, 자신의 인생을 상담하는가? 그 이유는 사람이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해서, 그 누군가의 도움과 인도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다른 어느 때보다, 세상은 교회를 비난하고, 그리스도인을 공격한다.
그들이 주장을 들어보면, 사실 우리가 듣고 반성해야 할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부분, 왜곡되고 편파적인 시각으로 비난하지만, 너무 격분할 필요가 없다. 대적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한 적보다, 더 큰 동기부여는 없기 때문이다.”
고대 지중해에, 로마와 카르타고가, 패권을 두고 싸웠다. 싸움은 500여 년 간 지속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로마가 승리했다. 카르타고 장수 “한니발”에 대한 원한이, 뿌리 깊었던 로마는, 카르타고를 포위하고, 불사르자는 의견이 들끓었다. 로마는 관용의 국가이기에, 적들에게 불태우지 않았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지 못하고, 카르타고를 불사르자고 했다. 이때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끝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분노하는 여론을, 잠재울 수 없었고, 스키피오는 불타는 카르타고를 보면서, 울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스키피오의 눈물”이다. 그가 왜 울었는가?
불타고 있는 카르타고에서 “불타는 로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로마는 카르타고로 인해, 경거망동하지 않았고, 대비하는 태세를 갖추었다. 그런데 적들을 완전히 제거하자, 긴장이 풀리고, 결국 내분이 일어나 멸망했다. 지금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도, 악한 것들의 공격에,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
올바른 진리가 선포되지 않으니까, 점쟁이들과 무당들을 찾아간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올바로 알고,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리인가? 오직 복음만이 참된 진리이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하나님이 바울을, 사도로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먼저 선택한 이유는, 이 나라 이 민족에, 복음을 전하여, 복을 받게 하자. 더 나아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알고, 전하는 신앙인이 되자.
1. 복음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2-3).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복음은 복된 소식, 기쁨의 소식이다.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소식, 기쁜 소식이다. 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가? 창세기로부터 시작한 구약의 말씀들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 예수님”에 대해 예언했다.
예수님은 여인의 후손으로 오고(창3:15), 베들레헴에 태어난다(미5:2).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고(사7:14),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고(렘23:5-6), 은30에 팔리고(슥11:12), 부자의 무덤에 장사되고(사53:9). 무덤에 계속 계시지 않고,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한다(시16:10).
특히 (사53장)은 “고난당하는 종”에 대해 말한다. 이렇게 구약성경은,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언했는데 주님은 성경대로 오셔서, 예언을 성취하신 분이시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며, 따라갈 수 있다. 지금도 세상에는, 자신이 구원자라고 하는, 자칭 예수들이 많지만, 그 누구도 구원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돌아가셨다. 그래서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다.
이단들은 예수님을 실패자라고 말하지만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했다. 예수님은 오직 내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요14: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으로도, 천사의 모습으로도, 오시지 않고,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인간이 되신 그 이유는, 죄를 짊어지고 죽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기쁜 소식을, “복음”이라고 한다.
복음은 히브리어로 “베소라”라 하는데, “아름다운 소식”(사40:9, 61:1), “기쁨의 소식”(사41:27)이다. 말씀이 “바사르”(육신, 몸)가 될 때, “베소라”(복음)이 된다(요1:14). 복음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다는 약속이다. 가장 기쁜 소식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복음”이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영원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가 모두 용서받도록 하신 것이, 참된 복음이며, 다른 복음은 없다. (요일4:2-3)에서,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영마다, 적그리스도라고 했다.
2. 복음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한다(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함이 능력이고,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한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우리 인간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는 마지막이 되지만,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만약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끝났다면, 우리 인생은 소망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지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인간이기만 하셨다면, 우리의 삶에는 구원이 없다. 사람들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인정한다.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실존하신 분이며, 역사를 기원전(B.C)와 기원후(A.D)로 나누는, 중심이 되셨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못한다. 또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이적과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종교적, 윤리적으로는, 본받을 만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에, 우리 인생들에게 소망이 있다. 인간 되신 예수님만 믿으면, 우리의 삶에는, 부활의 역전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아픔도, 눈물도, 질고도 모두 아시며,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다.
우리의 고통과 눈물, 괴로움을 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예수님께 구하면, 사망권세를 이기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부활을 주신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슬픈가? 고통이 있는가? 눈물이 있나? 그것은 당신의 업보이다. 당신의 전생에 죄가 커서 그러니, 그냥 감당하라고 한다.
가난도, 고통도, 모두 다 당신의 업보니까, 그냥 순응하고 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눈물이 있느냐? 고통과 괴로움이 있느냐?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내게 구하고, 너의 인생을 바꾸어 주는 복음의 능력을 받으라고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우리의 인생은 소망이 있고, 역전할 수도 있다. 내 인생이 역전되기 원하고, 내 삶에 주님의 이적을, 경험하기 원하는가? 하나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며 온전히 믿고 의지하기 바란다.
우리의 삶에서, 이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 되신 예수님만 믿고 붙들면, 역전은 일어나지 않으며 부활의 역사는 없다. 그러므로 죽음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부활로 예수님은, 죄가 없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었다.
(사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안다고 하시며, 아실뿐만 아니라 친히 도와주겠다. 너희에게 자유함을 주며, 구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의 모든 성도님들은, 부활의 능력을 믿고, 또 힘입어, 끝까지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한다.
3.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이다(4下).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를 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라고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예수님은 인간만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면 “그리스도”란 무슨 뜻인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메시아라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인정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만을 믿고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준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구세주, 메시아로 믿고, 고백한다는 의미이다.
사도 바울은 원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핍박자요, 복음의 훼방자였다. 하지만 복음과 연결되는 순간, 하나님의 사도로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났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든지, 복음을 깨닫고 복음과 연결될 때, 삶의 변화가 나타난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복음과 연결된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바울은 복음을, 삶으로 온전히 체험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은, 생명력 없는/ 말뿐인 복음이 아니다. 이 복음은 나를 변화시킨 복음이요, 지금도 내 속에서, 역사하는 복음이요, 내가 생명을 걸고 확신하는 복음이라고 말한다. 가장 능력 있는 복음은, 내가 체험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있어,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맥 빠지는 것은 없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어떤 제자는 선지자라고 대답하고, 어떤 제자는 엘리야라고 하며, 또 다른 여러 사람들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주장은 그만두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예수님은 그들 각자의 고백을 원하셨다. 그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했고, 예수님은 기뻐하시며, 그를 칭찬하셨다.
예수님은 지금도, 다른 어떤 사람들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고백을 듣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어떤 사람은 전도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더라. 누가 그러는데, 기도하면 응답이 있다고 하더라.” 이것은 진정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증인이었다(1)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며, 증인은 그가 본 것을 증언한다. “예수님은 힘과 능력이시고,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이 되고, 예수님만이 나의 소망이다.”라고 말하는, 내 신앙, 내 간증이 있어야 한다. 내가 믿는 예수, 내가 믿는 복음, 내가 체험한 복음을 증언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인간되신 예수님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이 되어야, 그때 거기에 구원과 은혜가 있고, 삶에 변화와 역전이 있다.
우리나라에 많은 목회자들 가운데, 분명 문제가 되는 사람이 있고, 또한 거룩한 교회로서 합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교회들도 있다. 성도들 가운데도, 불신자들보다 더 추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이러한 때, 나 자신을 더욱 돌아보게 된다.
구약성경 가운데, 하나님 앞에 가증하고, 부패한 선지자들이 많았다. 성전 예배도, 하나님의 백성들도 심히 부패했다. 종교개혁 이전 중세에는, 교회가 더욱 어둡고 부패했으며, 성직자도 이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도, 하나님 보시기에 부패했다. 그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 복음만이, 진리요, 생명이었다.
날마다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돌이켜 회개하고, 나아갈 길은 복음밖에 없다. 죄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밖에는 없다. 이것을 믿어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원자가 되고, 주님이 되어야, 삶에 변화가 온다.
결론이다. 말세가 이르면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미혹을 받으며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한다고 말씀하셨다. 참으로 우리 주변에 많은 이단과 사이비가 일어나 판치고 있을 때,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복음으로 확고히 서야 한다.
복음을 분명하게 알고, 어떤 속임수와 유혹에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미혹된 자들을 건져낼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복음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또한 모든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님, 코로나의 역설을 아십니까? 코로나19로, 수많은 생명을 잃게 되고, 세계 나라마다 강도 높은 이동 제한에, 학교도, 공장도 문을 닫고,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한없이 위축되었지만, 이로 인해 지구촌의 공기는 맑고, 깨끗해진 역설적인 현상,
유럽의 대기오염도가 40%이상 줄어들고, 대기오염이 심각하기로 유명한 인도에서도, 밤 별자리 관측이 가능하게 되고, “세계의 굴뚝” 중국은, 대기의 질이 크게 개선되었고, 또 이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미세먼지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수치와 모욕과 고통을 참으사,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주님이 이 땅 오신 목적, 이것이 십자가 사랑의 역설이며, 예수님의 부활로 반전되었다.
오늘 우리 삶에 슬픔이 있고, 근심이 있고, 눈물이 있고, 죽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영광의 하나님, 그를 믿고 온전히 의지하는 삶으로, 인생이 역전되기를 원하십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요, 주님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슬픔의 옷이 변하여, 찬송의 옷을 입으며,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부활의 놀라운 주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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