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3월 29일 - 자신의 신성을 밝힌 예수님(막12:35-37)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0-03-29 |
첨부파일: 자신의 신성을 밝힌 예수님.hwp(21K) |
자신의 신성을 밝힌 예수님(막12:35-37)
본문은 짧지만,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공생애 주간의 셋째 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3가지 계략으로 나왔다. ① 바리새인은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 문제를 예수님께 물었다.
②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은, 부활에 대해 질문했다. ③ 율법 전문가들인 서기관은, 율법에 대해 예수님을 시험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12:34下)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그들의 계략은, 완전히 실패했다.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시험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질문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주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구원의 기회를 주었다. (34中)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라고 말씀했다. 우리도 역시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임을 믿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분들이, 되기를 바란다.
1. 예수님의 질문(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들의 계략이 전부 실패하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칠 때, 바리새인들에게 물었다. (마22:41-42)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본문의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들인데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니이다.”라고 말했다. 그 대답을 듣고, 예수님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라고 했다. 이처럼 서기관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일반 백성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여겼다.
여리고의 맹인거지 바디매오도,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다(10:47).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백성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쳤다(마21:9). 성전에 있던 어린이들도, 예수님을 보면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쳤다(마21:15).
이처럼 그 당시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생각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물론 그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 곧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온다고 말씀했다.
(삼하7:12-13)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여기서 “다윗의 씨”는, 솔로몬이 아니다. 그의 나라와 왕위는, 영원히 견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 다윗의 자손은 그리스도이다. (시89:3-4)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여기에서 다윗의 자손도, 그리스도다. 그 외에도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예수님 당시에는, 다윗의 자손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하나의 칭호가 되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름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예수님이 바리새인에게 한 질문을 생각해보자. (마22:42上)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그러자 서기관들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42下)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 예수님은 그 곳에 모인 백성들을 향하여, 이와 같이 말씀했다.
(35中)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그러니까 서기관들의 대답에 문제가 있음을, 예수님이 지적했다. 물론 서기관의 대답이, 틀리지 않았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대답이, 충분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일 뿐이라고만 여겼다. 이것이 문제였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들은 이렇게 여겼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리스도는 다윗처럼 막강한 힘으로, 모든 대적을 물리칠 것이다. 그리고 다윗처럼, 위대하고 찬란한 나라를, 건설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지닌, 위대한 인물로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보았지, 신성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람으로만 보았지, 하나님으로는 여기지는 않았다. 이것이 문제였다. 만일 그리스도에게 인성만 있고, 신성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게도, 자신을 구원할 구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는 반드시, 신성이 있어야 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윗의 자손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계속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도 이런 대답이 함께 나와야 한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가졌다. 사람이 된 하나님, 성육신 한 하나님이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서기관들처럼, 그저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하려는가? 아니면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겠는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자신의 신성을 밝혔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며, 확실히 고백하며 대답하기를 바란다. 주님의 인도함에, 잘 순종하고 따르기를 바란다.
2. 예수님의 설명(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성경을, 절대 소중히 여겼다. 일점일획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언제나 성경에 충실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았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밝히기 위하여, 성경을 인용했다. 예수님이 인용한 성경은, (시110:1) 말씀이다.
(시110편)은 다윗의 시다. 전통적으로 메시아 시편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시110:1上)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앞에 나오는 주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내 주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런데 다윗이 메시아, 그리스도를, 내 주라고 불렀다.
서기관들은 그리스도를, 그저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때 다윗은 분명하게,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라고 불렀다. 다윗이 자기의 자손을, 어떻게 주라고 불렀는가? 다윗의 실수였나? 아니면 다윗의 개인적인 생각이었나? 아니다.
본문 말씀과 같이,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 만일 그리스도에게 인성만 있었다면, 그리스도가 사람이라면, 다윗은 그리스도를, 자기 주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리스도는 신성이 있기에, 하나님이기에, 다윗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라고 불렀던 것이다.
(시110:1中)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며,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면서, 구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는 원수가 있기에, 그리스도를 대적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원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리스도를 죽였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발아래에 놓일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는, 패배한 자의 목을, 발로 밟게 된다(수10:24). 즉 그리스도는, 승리할 것이며, 그의 원수는 패배할 것이다.
그 때까지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한다. 이는 하나님의 우편에, 실제로 어떤 의자가 놓여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같은 영광을 누린다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적으로 뜻하는 말씀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성경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밝혔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임을 말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주, 다윗의 하나님임을 말씀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늘 영광을 주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다. 조금 전에, 사두개인들이 나아와, 예수님을 시험하며, 부활에 대해서 물었다.
그 때 예수님은, 모세의 책들 중에,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성경에 쓰인 시제를 들어서, 부활이 있음을 말씀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고, 야곱의 하나님이었노라고, 과거형으로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면서, 현재형으로 말했다. 사람 편에서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성경의 시제를 통하여, 모세의 글에서도, 분명히 부활이 있음을 밝혔다. 이번에도 예수님은, 성경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밝혔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성경에 쓰여진, 하나의 대명사에, 그 초점을 맞추었다. 어떻게 다윗이, 그의 자손인 그리스도를 “내” 주라고, 부를 수가 있었는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성경의 일점일획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정확무오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소중하게 여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사람들의 반응(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예수님은 (시110:1)의 말씀을 인용해서, 다윗은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라고 불렀다고 말씀했다.
다윗은 그리스도를,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택한 백성들인 이스라엘의 주는, 언제나 하나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막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여기에서 “주”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라는 말씀이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자기의 하나님이라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도 서기관들은 그리스도를 그저,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날, 위대한 인물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니 그들은 성경을 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그리스도의 신성, 곧 그리스도가 하나님임을 밝혔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임을 밝혔다. (마1장)과 (눅3장)에 나오는 족보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왔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왔다. 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에게 있는 신성, 곧 예수님은 하나님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했다. (마3:17中)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은 변화 산에서도, 같은 말씀을 했다(마17:5中).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금까지도 자신의 신성을, 확실히 드러냈다.
예수님은 모든 병들을 고치고,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며,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렸다. 풍랑을 잠잠하게 했다. 포도주도 만들었고, 떡과 물고기도 만들었다. 이는 예수님의 전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요2:25)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사람의 속에 있는 것도, 다 알았다. 이는 예수님의 전지성을 말씀한다.
또한 예수님은 어느 곳에라도, 계실 수가 있다(마18:20). 이는 예수님의 편재성을 뜻한다. 전능성과 전지성와 편재성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단어다. 따라서 예수님의 전지성, 전능성과, 편재성은, 예수님의 신성을 분명히 나타낸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원함과 사랑과, 긍휼의 풍성함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본문에서 다시 예수님은, 성경을 들어서, 자신의 신성을 밝혀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었다. (롬10:9)같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주, 곧 하나님으로 시인하고 믿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마땅히 보여주어야 할 반응은 (요20:28)에 기록된 도마의 고백처럼, 그들도 예수님께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마음은, 길 가와 같았다. 예수님의 마지막 초청을 거절했다.
오히려 예수님을, 신성모독 하는 자로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다. 결국 그들은, 지옥의 자식들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 나머지, 일반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본문은 이같이 끝맺음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그들은 그저, 즐겁게 듣기만 했을 뿐이다.
진정한 회개도 없었고, 믿음의 고백도 없었고, 아무런 결단도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돌밭과 같았다. 그들은 그저 예수님의 말씀을, 즐겁게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바로 넘어졌다. 불과 며칠 뒤에 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사주를 받아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중에는, 마음이 좋은 땅과 같았던 사람도, 있었다. (눅23:50-51)에 나오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다. 온 공회가 예수님을 대적했지만, 공회의원으로 제자가 되었다(요19:38).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의 마음도, 좋은 땅이 되어서, 잘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하여, 구원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이전글 : 2020년 3월 22일 - 서기관들을 물리친 예수님(막12:28-34 | |
다음글 : 2020년 4월 5일 - 무화과나무 잎 옷과 가죽 옷(창3-10, 21)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