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2월 9일 - 기도에 대해 가르친 예수님(막11:20-26)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0-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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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대해 가르친 예수님(막11:20-26)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많이 가르쳤다. 그러나 제자들은,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했다. 예수님과 그들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항상, 그들과 함께 하면서, 갈 길을 친히 인도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배가 고플 때면, 배불리 먹여주었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니, 제자들은 기도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다(요16:24). 또 예수님이 깨어 기도하라고 했을 때도, 그들은 졸거나 잠들어 있었다.
그만큼 기도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곧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갈 것이다. 그 후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가면, 제자들은 필요한 것을, 어떻게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을까? 오직 기도를 통해서, 공급받을 수 있기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기도를 가르쳤다.
1. 하나님이 한 일을 기억하라(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전날 예수님은, 잎사귀만 있었던 무화과나무를 심판한 후에,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심판했다.
날이 저물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성 밖으로 나가서, 베다니로 갔다. 아침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베다니를 나와서, 예루살렘을 향했다. 그러던 중, 그들은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았다. 그 전날 베다니로 갈 때는 어두웠기에, 무화과나무를 보지 못했는데, 무화과나무는 뿌리째 말랐다.
잎, 가지, 줄기, 전체가 말랐다. 무화과나무는, 완전히 죽어버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단순히,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한 것이 아니라, 심판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는 뿌리째 말라서 죽었고, 예수님의 심판으로,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된다.
예수님이 말씀한 바와 같이(막13:2), 예루살렘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렸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다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한 바와 같이, 천지는 없어져도,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눅21:33). 말씀한 대로, 다 이루어진다.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그 전날 예수님은, 잎사귀만 있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했다. 그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말씀을 들었고, 그 다음날 아침에 제자들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았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 무화과나무에게, 말씀한 것이 생각나서,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에게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라고 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다. 그 때 그들은, 전날 예수님이 한 일을 생각했다. 이것이 능력 있고, 효과적인 기도를 드리는, 첫째 원리다.
과거에 하나님이 한 일을,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전에 하나님이 한 일이 없다면,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거에 하나님께 기도했고, 결과가 좋았기에,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능력 있는 기도를 하려면, 하나님이 한 일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했다. 그들은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수많은 연단을 받았다. 그 후에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말씀이 신명기다. 신명기를 읽으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속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씀이 있다.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신명기에만 20번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난관들이, 기다리지만, 하나님은 이같이 명했다. “너희가 어떤 문제를 당할 때마다, 이미 내가 너희를 위하여 행한 일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고, 건너게 하고,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고, 아말렉 전투에서 이겼던 일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돕는 손길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성경과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한 일들을 회상해보면, 지금도 앞으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역사할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한 일들을 생각하면, 더 힘 있게 의지함이, 바로 효과적인 기도를 드리는, 첫째 원리다.
2. 하나님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베드로의 말이 끝나자, 예수님은 대답했다. “그들” 곧 제자들에게 대답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대신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에케테 피스틴 데우)고 했다. 직역하면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이다.” 우리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선하기에, 믿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에 무슨 능력이 있는 것처럼,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믿음 자체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모든 능력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홍해가 갈라졌을 때를, 잘 생각해보자. 모세의 믿음이 커서, 모세의 믿음이, 홍해를 가른 것인가? 아니다. (출14:13中)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전능한 하나님이, 홍해를 갈랐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만 한다. (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선하므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때때로 우리는 바라는 것을, 고집할 때가 있다. 이는 옳지 못하다. 하나님은 선하기에, 우리가 기도하면, 가장 좋은 것으로 주니,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면, 기도가 얼마나 능력이 있고, 효과적인지를, 비유적으로 말씀했다.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진실로” 예수님의 말씀은, 항상 진실하다.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모두 다 이루어진다.
“누구든지”는, 나도 포함되는, 은혜로운 말씀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할 수가 있다. 때로는 산처럼 큰 문제가,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전능하기에, 그 문제를 해결해준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은 전능하고, 선한 하나님을 의심하면 안 된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고, 이미 말씀했다. 우리의 믿음 자체에는, 아무 능력이 없다.
따라서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아무리 많이 반복해도,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능한 하나님은,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분이기에,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선함을 믿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믿어야 한다.
(마17: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겨자씨는 아주 작다.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산을 옮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전능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다시 이 사실을 강조했다.
우리가 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하는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구하지도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겨자씨의 믿음을 생각해보자. (마13:32)은 예수님이, 말씀한 바와 같이,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다.
그러나 점점 자라서, 풀보다 더 커지고, 나중에는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정도로, 큰 나무가 된다. 기도했는데도, 응답을 받지를 못했는가? 그렇다고 해서, 기도를 중단해버리면, 그것은 겨자씨의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다. 겨자씨의 믿음은 그럴수록, 더욱더 간절하게 매달리는 것이다.
(눅11장)을 보면, 벗에게 떡 세 덩이를 구하는 사람이 나온다. (눅18장)을 보면, 재판장에게 원한을 풀어달라고, 조르는 과부가 나온다. 그들은 다 응답을 받았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겨자씨의 믿음이다. 태산처럼 큰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그 산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이 그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질 것이다. 전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지 않을 수 있다. 그 산이 우리에게, 유익할 경우다. 그 때 하나님은, 지혜를 주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다.
기도의 둘째 원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이다. 그리하면 능력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기에, 우리 기도에 응답한다. 하나님은 선하기에, 좋은 것으로 응답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능력 있고, 응답 받는 기도의 둘째 원리다.
3.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서서 기도할 때에.” 유대인은 서서 기도했다. (눅18:9-14)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도 서서 기도했고, 세리도 서서 기도했다. 그런데 기도할 때의, 몸과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한다.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혐의”(티, 무엇)가 있다는 말은, 마음에 무엇이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마음에 무엇을 품은 원한을 없애려면, 그 사람을 용서해야만 한다. 왜 우리가 우리에게, 허물이 있는 자를, 용서해야만 하나?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와 같이 밝혔다.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우리가 남의 허물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는데도,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도 우리의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않는다.
우리 허물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에,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듣지 않는다. (26) “(없음),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하시리라.“ 우리 성경을 보면, 26절이 있지만, 26절에는 괄호 안에 “없음”이라고 써놓았다. 무슨 말인가?
마가복음의 원본은, 오늘날 남아있지 않다. 단지 서기관들에 의해 기록된, 마가복음의 여러 사본들만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초기에 기록된, 사본들을 보면, 26절에는, 아무 말씀이 없다. 다만 보다 후기에 기록된, 몇몇 사본들을 보면, 26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다.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이 초기 사본들에는 없고, 후기 사본들에는 기록되어 있다. 후기 사본들보다는, 초기 사본들이 더 권위가 있기에, 26절을 표기하되, 후기 사본들이, 담고 있는 말씀을, 성경에 기록하지는 않았다.
마가복음의 원본에는, 그 말씀이 없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마6:14-15)에서, 예수님은 같은 말씀을 했다.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나님도 우리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구원받았다. 그럴지라도 우리 육신이 약하기에, 계속 죄를 짓는다. 따라서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한다. 이미 몸은 깨끗하게 씻었더라도, 더러워진 발은 계속 씻어야만 한다.
(사59:2) 말씀처럼,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다. 우리에게 죄가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아니한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려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길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있어야 한다.
형제들을 용서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함과 같이, 서로 용서하자(엡4:32).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능력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 효과적인 기도를 드리는, 셋째 원리다.
(요14:12-13)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이 한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해서, 뿌리째 마르게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일, 곧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일도 할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이와 같이 큰일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예수님이 행하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 또 효과 있는 기도를 드림으로, 우리들이 큰일을 행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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