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2월 2일 - 성전을 심판한 예수님(막11:15-19)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0-02-02 |
첨부파일: 성전을 심판한 예수님.hwp(21K) |
성전을 심판한 예수님(막11:15-19)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주간, 곧 고난주간의 둘째 날이었다. 그 날 예수님은, 잎사귀만 있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심판했다. 그리고 뒤이어서,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심판하였다. 앞에서 무화과나무는, 있어야 할 것이 없었기에, 심판을 받았다.
반면에 예루살렘 성전은, 없어야 할 것이 있었기에, 심판을 받았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심판한 내용이다. 성전의 역사를 보면 (창2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했다. 그 때 하나님이, 번제의 장소로 지시한 곳은, 모리아 산이었다.
(대상21장)을 보면, 다윗이 그 터를, 값 주고 사서, 그 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 뒤 (왕상6장)을 보면, 솔로몬 왕이 그 곳에 처음으로 성전을 지었다. 그래서 그 성전을 솔로몬 성전, 또는 제1 성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했다. 문란하게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서, 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했다. 바벨론은 성전을 파괴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갔다. 그로부터 70년이 흘렀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생활을 끝마치고,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왔다.
(에스라3장)을 보면, 그 때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다시 성전을 건축했다. 그것을 스룹바벨 성전, 또는 제2성전이라고 부른다. 그 후 (요2:20) 말씀과 같이, 예수님 당시에 성전은, 크게 재건되었다. 그 당시 로마는 헤롯왕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헤롯왕은 에돔, 곧 이두매 사람이었다.
헤롯왕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크게 재건했다. 그것을 헤롯 성전, 또는 제3성전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은, 바로 이 헤롯 성전을 심판했다. 그 결과 주후 70년, 헤롯 성전은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예루살렘 성전은 재건되지 못했다.
이것이 성전의 지나간 역사다. 그런데 성경은, 성전의 과거만 아니라, 성전의 미래에 대해서도, 밝히 말씀한다. (마24:15)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마지막 때 일어날 일을 설명하기 위하여, (단9:27) 말씀을 인용했다. 마지막 때에, 예루살렘 성전은, 일시적으로 재건될 것이다.
그러나 적그리스도가, 그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세우면서, 그 곳은 더럽힘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성전을 다니엘 성전, 또는 제4성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겔43장)을 보면, 에스겔이 이상 중에, 새롭게 회복된 성전을 보았다.
이는 장차 그리스도의 나라에 세워질 성전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다. 이 성전을 (에스겔 성전), 또는 (제5성전)이라고 부른다.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심판한 내용이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헤롯 성전, 곧 제3 성전을 심판한 것이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그런데 성전에서, 하나님께 참 예배가 드려지지 않는다면, 성전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참 예배가 드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은 심판을 받고 말았다.
1. 하나님께 참 예배를 드려야 한다(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고난주간의 둘째 날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에서 나왔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들어가, 곧장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다. 예수님은 로마군이 주둔하는 곳으로 가서, 그들을 내쫓아버릴 수도 있었다.
세리들이 세금 징수하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상을 둘러엎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베데스다 못으로 가서, 그 곳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곳으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곧장 들어갔다. 예수님의 관심은,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 또 경제적 문제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관심은 언제나, 영적인 일에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바랐다. 그들이 하나님께 참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관계를 바르게 맺으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가, 절로 해결되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에 들어갔다.
(요2장) 말씀과 같이, 그 때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모두 내쫓았다. 그 후 3년 동안,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참 예배를 드려야 함을 가르쳤다. (요4:23)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는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15中)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그 때 예루살렘 성전은, 네 종류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① 매매하는 자들, 즉 제사에 필요한 짐승들을 거래하는 자들이었다.
② 돈 바꾸는 자들이었다. 외국에 살던 사람은, 외국돈을 자국 돈으로 바꾸어, 성전 세를 내야 했다.
③ 비둘기 파는 자들이었다. 레위기를 보면,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를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④ 물건을 들고서,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자기의 개인적인 물건을 들고서, 성전 마당을, 지름길로 이용하는 자들이었다. 이에 따라 성전 안은, 사람들과 짐승들로 와글와글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짐승들의 울음소리로, 시끌시끌했다. 짐승들이 배설한 오물로 인해, 성전 마당은 많이 더러워졌고, 풍기는 악취도 심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성전 주인인 예수님이, 더러워진 성전의 모습을 보면서,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있겠는가? 당연히 예수님은, 의분을 일으켰다.
아마 (요2:15)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이때도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었을 것이고,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았다.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둘러엎었다.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도 둘러엎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물건을 가지고, 사사로이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했다.
이 때 예수님은, 성전을 그저, 깨끗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예수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성전 안은 더욱 지저분해졌을 것이다. 짐승들은 이리저리 날뛰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 위에 있던 동전들도 여기저기 땅바닥에 흩어졌을 것이다.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님이 말씀하니까,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 마찬가지로 이때 예수님은 얼마든지, 말씀만으로도, 성전 안에 있는 자들을, 다 성전 밖으로 내쫓아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은, 말씀으로 하지 않고, 과격한 행동으로, 그들을 내쫓았다.
이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들의 제사를, 얼마나 싫어하는 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그들이 하나님께 참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때 예수님은, 단순히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아예 심판해버린 것이다.
과연 그로부터, 사십 년이 지난, 주후 칠십 년,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 군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벧전4:17). 이 시대에 예수님이 와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청와대나 국회를 찾아가서, 부패한 정치인들을 먼저, 심판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의 교회를 찾아온다. 그리고는 그의 교회에서, 참 예배를 드리지 않는 자들을 심판한다. 교회가 바르게 서지 못하면, 나라 전체가, 바르게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심판은 하나님의 집, 곧 교회에서 먼저 시작된다. 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는다. 예배의 모양만, 갖추지 말자.
2. 말씀과 기도로,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예수님은 일순간의 감정 폭발로 인해서, 즉흥적으로 과격한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한 데는, 분명한 이유와, 타당한 근거가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을 심판한 이유를 밝혔다. “기록된 바.” 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자의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아니했다(요8:28). 예수님은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게 말씀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했다. 예수님은 성경의 일점일획을, 소홀히 여기지 아니했다(마5:18). 예수님은 성경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여겼다.
따라서 우리도,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은, 성경 두 곳에서, 하나님 말씀을 인용했다. (사56:7)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에서 인용했다. (렘7:11)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에서 인용했다.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사56:7). 한나가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 아들을 달라고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삼상1장).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듣고, 사무엘을 아들로 주었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이와 같이 하나님께 기도했다.
(왕상8:28)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누구라도 성전에 올라와서, 조용히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
그러면서 자기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이 응답하는, 음성을 듣고 가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더 이상 그 곳은, 기도하는 집이 아니었다. 그 곳은 완전히, 강도의 소굴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 당시 성전 안에서, 짐승을 파는 자들과, 돈을 바꾸어주는 자들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은,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성전을 관할하는 대제사장들에게서, 막대한 이권을 받았기에, 시세보다 훨씬 더 비싸게, 모든 것을 팔았다. 대제사장들과 결탁이 되어있었기에, 그러한 일이 가능했다.
이처럼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들로 가득한 소굴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3:16-17). 하나님이 거룩하니,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거룩함을 지키지 못하면, 예루살렘 성전처럼, 우리도 심판을 받고 말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룩함을 지켜나갈 수 있는가?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과 성전에서의 기도를 강조했다. 이는 (딤전4:5) 말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거룩함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있다.
3.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예수님이 성전을 심판할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한 일들을, 직접 보고, 또한 예수님이 가르친 말씀을, 직접 들었을 것이다. 아니라면, 그 소식은 신속하게, 그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꾀했다.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의했다. 생각으로는, 당장 예수님을 죽이고 싶었지만, 예수님이 자신들의 권위를 짓밟고, 자신들이 하는 일을, 방해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죽일 수 없던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교훈을, 놀랍게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성전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비싸게 사야만 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교훈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예수님을, 두려워하여, 당장은 잡아 죽일 수는 없었지만,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에게서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무리를 선동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그가 그리스도라면, 우리 대적을 무찔러야 마땅할 것이다. 어찌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는 자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를 빌라도의 법정에 세울 터이니, 너희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질러라.”
이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드려져야 했기에, 유월절까지는 절대 죽임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유월절이 되었을 때, 예수님은 자신을, 유월절 양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꾀한 대로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고,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이루어졌다. (사53:3)에서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예수님은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막10:33-34)에서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졌다. 그리고서 온갖 능욕을 당한 후,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잊지 말자.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 각처에서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성 안에, 거처를 마련할 수 없었다. 따라서 성 밖에 거처를,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밤에 성 밖으로 나갔다가, 낮에 다시 성 안으로 들어왔다.
날이 저물자, 예수님도 그의 제자들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다니로 갔다. 그 곳에는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린 나사로와, 그의 두 누이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3가지 영적 교훈을 받았다.
① 하나님께 참 예배를 드려야한다. 예배의 모양만 갖추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 받는, 예배를 드리자. ② 말씀과 기도로,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타락한 세상에 물들지 말고, 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함을 지키자.
③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잊지 말고, 언제나 말씀 위에, 굳게 서자.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할 때, 우리의 구주가 될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할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할 때, 심판주가 아니라, 자신의 구주로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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