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9년 12월 29일 -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교회(계1:1-3)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9-12-29 |
첨부파일: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교회.hwp(21K) |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교회(계1:1-3)
2020년 우리 교회표어는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교회”다. 본문인 (계1:3)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은 “복이 있나니”(마카리오스)하면서, 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복으로 끝을 맺는다. 따라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일에 힘써,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바란다.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이 하늘에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온 것은, 낮아짐에 대한 표시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지극히 낮췄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였다. 이어서 예수님의 높아짐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빌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신약성경에서 복음서를 비롯한 서신서들은, 낮아진 예수님을 말씀한다. 반면에 요한계시록은, 높임을 받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밝히 말씀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영광과 위엄을, 가장 밝히 드러내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스데반은 순교하면서, 잠시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는 하늘이 열리며,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순간적으로 보았다. 그렇지만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불 수 있다.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우리 모두 풍성하게 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1. 하나님의 뜻을 아는 교회가 되자(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을 시작하는 첫 단어는 “아포카뤂시스”다. 이를 우리말로 “계시”라고 번역했다.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필수다. 요한계시록의 본질은, 한 마디로 계시이다. 우리말의 계시는 “열 계(啓), 보일 시(示),” 말 그대로 “열어서 보이다”라는 뜻이다.
흔히 요한계시록은, 그 뜻이 감추어져서,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계시된 책, 뜻이 밝히 드러나는 책이다. 그러면 계시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계시한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22:16) 말씀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계시한다. 요한계시록의 주된 내용은, 예수님을 보여주는 계시다. 복음서에도, 예수님을 우리에게 계시하지만, 복음서는 낮아진 예수님에 관한 계시다. 반면 요한계시록은, 높임을 받은 예수님, 영광 가운데 다시 올, 예수님에 관한 계시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준 계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서, 자기를 지극히 낮췄기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기로 약속했다.
하나님은 약속한 대로, 예수님이 누릴 모든 영광을, 예수님에게 자세히 계시해주었다.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준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성도들에게도, 보이게 되어 있다.
(마13: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예수님이 말씀한 바와 같이,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인 우리에게는 허락되었다. 그러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불신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아니했다.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는, 이해가 되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는 계시된 책이지만, 불신자들에게는 봉인된 책이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이는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다.
(1: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이는 요한계시록의 전체 내용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씀이다. 먼저 요한이 환상으로 본 것, 곧 과거의 일을 기록했다. 그리고 2장과 3장은, 그 당시의 교회들에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 4장부터, 마지막 22장까지는, 모두 장차 될 일, 미래를 기록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장차 될 일을 말한다. 이와 같이 예언적 성격을, 강하게 띠는 책이다. 본문은 장차 될 일을 가리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라고 말씀했다. 예수님은 (22:7上)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말씀했다.
(22:12上)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또 (22:20中)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처럼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세 번이나 자신이 속히 오겠다고 했다. 예수님이 승천한지, 이미 이천 년 가까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님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러면 예수님의 약속은, 잘못 되었는가?
(벧후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베드로는 성도들이, 그런 말에 미혹 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벧후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영원한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다. 그러니 이천 년이라 해도, 영원한 주님께는 불과 이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 예수님의 약속은, 더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미 구원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 그리스도를 약속했다. 하나님은 약속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다.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의 대속물로 주었다. 예수님은 죽었지만, 부활했다. 예수님은 승천해서,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
하나님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냈다. 이제 남은 일은 단 한 가지뿐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는 일이다. 예수님이 영광 가운데 다시오면, 종들은 영화롭게 되어서, 예수님과 함께 무한한 영광을, 영원토록 누리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멸망에 처한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는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이다. (마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예수님은 약속한 대로, 반드시 속히 우리에게, 다시 올 것이다. 이 사실을 명심하면서, 늘 깨어 있기 바란다. “속히”는 “반드시”라는 말을 포함한다.
(1中)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여기서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천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종 요한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계시의 경로를 보여준다. 계시의 근원은 하나님이다. 예수님이 누릴 영광을, 예수님에게 계시했다.
예수님은 그의 천사를, 그의 종 요한에게 보냈다. 천사는 예수님에게 받은 계시를, 예수님의 종 사도 요한에게 알게 했다. 요한은 그가 천사에게서 받은 계시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예수님에게로, 예수님에게서 천사에게로, 천사에게서 요한에게로, 요한에게서 우리에게로 전해졌다.
요한계시록의 본질은 계시, 곧 높임을 받은 예수님을 보여준다. 요한계시록을 풀었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높인다면, 그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가짜다. 우리를 위하여 낮아진 예수님을, 높여드리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교회(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요한, 곧 사도 요한으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9)절 말씀과 같이, 요한은 당시에, 로마제국의 유배지로 사용되던 밧모라 하는 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요한은 요한계시록 이외에도, 요한복음과 요한1·2·3서를 기록했다. 그런데 요한복음과 요한1·2·3서에서는, 단 한 번도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를 않는다.
그만큼 요한은 겸손하게, 자기를 감추고, 오직 예수님만을 분명하게 드러내기를 바랐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만큼은, 자기 이름을 밝혔다. 첫 장에만 네 번,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한 번, 도합 다섯 번 그의 이름이 나온다. 그만큼 그가 받은 계시가 놀랍고, 본 환상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요한은, 그가 받은 계시와, 환상을 그대로, 참되게 증언했다. 요한은 그가 증언하고 있는 내용을 3가지로 설명한다. ① 하나님의 말씀. ②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③ 자기가 본 것이다. 여기서 세 가지는 다 똑같다. 이것을 다 증언하였다. 성도는 진리에 대해, 가감 없이 증언해야 한다.
①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한은 자기 생각이나, 자신 의견을,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것이 결코 아니다. 계시의 근원은 하나님이다. 요한은 천사를 통해, 그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요한계시록에서 증언했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에 의해서, 높임을 받은 예수님에 대한 증거이면서, 예수님 자신이, 교회들에게 한 증거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와, 예수님 자신의 증거를 요한계시록에서 증언했다.
③ 자기가 본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천사를, 그의 종 요한에게 보냈다. 천사는 요한에게 와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환상으로 그에게 보였다. 요한은 자기가 환상을 통해서, 본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증언했다. (2下) “…다 증언하였느니라.” 요한은 더 하지도 않고, 제하지도 않고, 충성스럽게 증언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충성스럽게 그대로 다 증언했다. (요21: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요한은 초림의 예수님을 참되게 증언했다. (요일1:1)에 초림의 예수님을 충성스럽게 증언했다.
요한은 그가 기록한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초림의 예수님, 낮아진 예수님을, 충성스럽게 증언했다. 이제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재림의 예수님을, 곧 높임을 받은 예수님을, 충성스럽게 증언했다. 이에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의 증인으로 삼았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다 충성스럽게 증언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3. 약속된 복이 있는 교회(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예언의 말씀”은 요한계시록을 말한다.
(1:19) 말씀처럼, 요한은 그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했다. (계4장)부터 마지막 (22장)까지는, 장차 될 일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예언의 말씀이다. 요한은 복이 있는 사람을, 3부류로 나누어 설명한다.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다.
앞에 나오는 “읽는 자”는 단수다. 반면에 가운데 나오는 “듣는 자”와, 뒤에 나오는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수형이다. 이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 누군가가 말씀을 읽고 설명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그가 선포하는 말씀을 듣는다.
그런 후에, 모든 사람들이 그 때 읽고, 듣고 한 말씀을 순종하며 지킨다. 여기에 사용된 “읽다”와 “듣다”와 “지키다”는, 모두 현재분사다. 이 예언의 말씀인, 요한계시록을 비롯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계속해서 읽어야 한다. 계속해서 들어야 한다. 계속해서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 우리 삶의 규칙이 되어야 한다.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주일 낮, 예배만큼은 반드시 드려야 한다. 이 날은 하나님이 정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요한계시록에 약속된 복을 누릴 수 있다. 본문은 이와 같이 끝난다. “때가 가까움이라.”
헬라어 원어성경을 보면, 이 말씀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시작한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할 이유를 말하는데, 때가 가깝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마지막 한 단계를 제외하고는, 모두 성취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단계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편에서 보면, 때가 아주 가깝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외에는, 이미 모든 단계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히10:25) 말씀과 같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때가 가깝기에, 더욱 하나님께 예배하며,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일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약속된 복을, 누릴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복에 대한 약속으로 시작해서, 복에 대한 약속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가운데, 복을 약속하는 말씀이 다섯 번 더 나온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 안에는, 복을 약속하는 말씀이, 모두 일곱 번 나온다. 일곱은 완전수다.
(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끝이 났다. 더 이상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게 직통 계시를 주었다는 말에 미혹 받지 말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또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다는, 어리석은 짓을 삼가야 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일에 힘써,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풍성히 누리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이전글 : 2019년 12월 22일 - 천사들의 찬양(눅2:8-14) | |
다음글 : 2020년 1월 5일 - 영광의 길을 가르친 예수님(막10:35-40)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