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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12월 22일 - 천사들의 찬양(눅2:8-14)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9-12-22
  첨부파일:   천사들의 찬양.hwp(21K)

천사들의 찬양(2:8-14)

 

본문 앞에는,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5:2)에 의하면, 메시아 곧 그리스도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도록 되어있다. 이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다. 이를 위하여, 가이사 아구스도는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영을 내렸다.

수리아의 총독 구레뇨는, 호적 하는 기일을 정해주었다. 로마에 의해, 세움을 받은 헤롯왕은 각 사람이 자신의 고향에 가서, 호적하게 했다. 하나님은 가이사 아구스도와, 총독 구레뇨와 헤롯왕을 사용해서, 요셉과 마리아를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보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일에, 그들은 쓰임을 받았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 나그네를 위한 여관에는, 있을 곳이 없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그 곳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요셉과 마리아는, 여관에 딸린 마구간을, 임시 거처로 정했다.

그들이 마구간에 거할 때,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님을 낳았다.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강보로 쌌고, 아기 예수님을 구유(화트네),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에 뉘었다. 이처럼 아기 예수님은, 짐승과 같은 자들을 위해, 친히 먹이가 되어, 이 땅에 탄생했다.

요셉과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그 때 아무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전했다. 또한 수많은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했다.

1. 천사의 출현이다(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그 지역, 아기 예수님이 탄생한 유대 땅 베들레헴 지역을 말한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동남쪽으로 약10km 정도 떨어진 시골이다.

베들레헴 인근에 있는 어느 들에서, 목자들이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낮이면 양들은 이리저리 다니면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양들은 목자들이, 돌이나 나무 가지를 사용해서, 임시로 만든 우리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목자들은, 교대로 깨어, 들짐승이나 도적이 양 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지킨다. 그 때 잠을 자는 목자는, 우리 입구에 드러눕는다. 따라서 우리 안에서, 우리 밖으로 나가려는 양이 있으면, 양은 필히 목자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

그러면 목자는 깨어서, 우리 밖으로 나가려는 양을 붙들어, 다시 우리 안으로 집어넣는다. (10:7)에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했다. (10:11)에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불렀다. 목자들이 우리 안에 있는 자기 양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문에 드러눕는 것을 비유해서, 말씀한 것이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다. 또한 예수님은 양의 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우리 안으로 들어온 양들을, 결단코 우리 밖으로 내보내는 법이 없다. 예수님은 언제나, 그리고 영원토록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가깝다. 따라서 그 곳의 양들은, 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로 쓰였다. 그렇다면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맨 처음 알린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선한 목자인,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다.

또한 천사는 목자들에게, 희생의 제물이 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다. 이와 같이 천사가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처음으로 알린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주의 사자, 10절에서 그 신분이 밝혀진다. 천사였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에서 세 번째로, 천사가 나타난 셈이다. 사가랴 마리아 목자들에게 나타났다. 이 때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도, 역시 가브리엘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천사가 목자들 곁에 섰다. 물론 사전에, 어떠한 예고가 있지 않았다.

때는 어두운 밤이었다. 그렇지만 목자들은, 그 천사를 식별할 수 있었다. 이 때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주는, 하나님을 가리킨다(1:16). 하나님은 영이므로,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낼 때, 하나님은 빛난 영광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낸다. 이 때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한다. 아무튼 이 때, 아무 예고도 없이,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임재에 의한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다.

그러자 목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그들은 크게 무서워했다. 사실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죄인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그래서 (1:12)을 보면, 사가랴도 천사를 보고서, 놀라며 무서워했다. (1:30)을 보면, 마리아도 천사를 보고, 무서워했다.

따라서 목자들이 천사를 보고, 크게 무서워했음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왜 천사는, 목자들에게 나타났나? (2:38) 말씀처럼,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로 쓰일 양들을 치면서,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예루살렘을 속량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러기에 천사가, 메시아의 탄생을 알렸을 때, 그들은 이것저것 따지거나, 묻지 않았다. 천사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주저하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천사가 한 말을 확인한 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다. 사가랴도, 마리아도, 목자들도, 다 하나님을 경외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천사를 보내며, 귀하게 썼다. 우리도 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을 받기를 바란다.

2. 천사가 전한 소식이다(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목자들은 천사를 보고, 크게 무서워했다. 그러나 천사는 그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다.

천사가 그들에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기 때문이다. 천사가 전해 준 소식은,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소식이었다. 슬픔의 소식이 아니라 기쁨의좋은 소식이다. 작은 기쁨이 아니라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다.

몇몇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소식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목자들은 무서워할 이유가 전연 없었다. 그러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과연 어떤 내용인가?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오늘은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난, 바로 그 날을 말한다. (2:4) 말씀과 같이, “다윗의 동네는 유대 베들레헴을 가리킨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이 바로, 그 날 베들레헴에, 탄생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것이 바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었는가? 천사는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그 날 탄생한 아기 예수님에게, 3가지 칭호를 사용했다.

예수님을 구주라 불렀다. “구주는 구원자, 구속자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무엇에서 구원하는가? 물론 예수님은 모든 문제, 모든 질병, 모든 고통에서 우리를 구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은 온 백성이 가진, 공통적인 문제에서, 구원해야만 한다. 그것은 죄의 문제다. (1:21), 천사가 요셉에게 밝힌 대로, 예수님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한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했다.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심판에서 영생으로 옮겼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주 예수님의 탄생은, 분명히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불렀다. “기름 부음 받은 자”(삼하23:1)라는 뜻인데, 이를 히브리어로 메시아,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 한다. 구약시대에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들을 높였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는 왕으로 왔다(1:33).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는, 대제사장으로 왔다(3:1).

아울러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왔다(1:2).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왕이 되고, 대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되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온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다. 그러므로 천사의 말과 같이,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예수님을 주라 불렀다. “는 하나님을 뜻하는 칭호다(1:16). (9:6)에서 밝혔듯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아기 예수님은, 분명 전능한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지만,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구주로 났다. 우리를 위하여, 왕이요 대제사장이요 선지자인 그리스도로 났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여기에 표적은, 징표라는 뜻이다. 천사는 자기가 한 말이, 사실임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목자들에게 하나의 징표를 주었다.

그것은 구주, 그리스도, 하나님인 아기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다고 했다. 예수님이라고 해서, 찬란한 옷을 입은 채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예수님도 다른 아기들과 똑같이 알몸으로 태어났다. 예수님도 태어나서, 다른 아기들처럼, 강보에 싸였기에, 아기가 강보에 싸인 것은, 징표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천사는, 구체적인 징표를, 목자들에게 주었다. 그것은 아기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다는 것이다. 갓난아기가 구유에 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는, 목자들이 그들의 구주, 곧 그리스도 주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징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온 백성에는, 우리 모두도 포함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요, 그리스도요, 하나님이다. 따라서 죄에 끌려 다니며, 고통스러워하지 말자. 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크게 즐거워하며, 크게 감사하자.

3. 천사들의 찬양이다(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천군은 하늘의 군대, 천사들을 가리킨다. 이 때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내려왔는지는 모른다. 단지 그 수가 많다고만 밝히고 있다.

이 때 천사들은 홀연히,” 다시 말해서 순식간에, 갑자기 나타났다. (9)을 보면, 목자들은 단 한 명의 천사로 인해, 크게 무서워했다. 하물며 많은 천사들이, 홀연히 그들 앞에 나타났으니, 분명히 목자들은 크게 놀랐을 것이다. 그러면 왜 이 때, 수많은 천군이 내려왔는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하여 준,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했다. 우리말 성경은 여기서 그 천사들이라고 잘못 번역했다. 원문은 그 천사단수이다. 그 천사와 허다한 천군들이, 하나님을 찬송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예수님을 경배해왔다.

그러므로 천사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늘에서 누리던, 모든 영광을 잘 알고 있었다. 천사들은 사람의 타락도, 잘 알고 있었다. 천사들은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아낌없이 이 땅에 보낸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천사들은, 그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송했다. 곧이어 찬송의 내용이 나온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들의 찬양은, 두 절로 되어있는데, 첫 절과 둘째 절은, 서로 대칭을 이룬다. “지극히 높은 곳,” “하나님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그리고 영광평화,” 서로 조화를 이룬다.

먼저 첫 절에서, 천사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사들의 본분이,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따라서 이때도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45)을 읽어보면, 하늘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있다. 장차 우리도 하늘에서, 천군 천사들과 함께, 세세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둘째 절에서 천사들은, 이 땅에 평화가 있음을 찬양했다. 여기서 평화는, 마음의 평화나 심령의 고요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때의 평화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 곧 구원받은 결과로 주어지는 평화를 가리킨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원수로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님은, 자신을 화목제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 결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 구원의 평화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단서가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1:5)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서 예정되어,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이 평화가 주어진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어떤 자격이나 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주었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러기에 천사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을 돌렸다. 성탄의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큰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하자. 우리 모두 큰 기쁨과, 큰 즐거움과 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분명 하나님의 영광은,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를, 두루 비출 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의 영광은 여기에, 충만하게 임할 것이다. 그와 함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는 참 평화, 하나님과의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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