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9년 10월 27일 - 마지막 절기 초막절(레23:33-44)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9-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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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절기 초막절(레23:33-44)
구약의 절기들은, 장래일의 그림자다. 절기들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역사적으로 성취된 절기들(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이 있다. 현재의 절기인(오순절),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이 있다. 이를 알고 재림하는 예수님을, 올바로 맞이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
절기에는, 성경 역사의 큰 맥인, 하나님의 구속사를, 한 눈에 알게 해준다. 하나님의 구속사가 절기들 안에 있다. 성경의 7절기들 중에, 초막절은 마지막 절기로, 우리나라 추석과 같이, 가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이다. 유대력 7월 15일부터, 8일 동안 지키는 절기다.
구약성경에는 유대인이 꼭 지켜야 하는, 3대 절기가 있다. 유월절과 오순절, 초막절이다. 유대인들은 이때를, 순례의 절기라고 한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끌어냈다.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이 죄로부터 끌어내고, 해방시킴을 기념하는, 축제하는 절기다.
오순절은 두 덩어리 떡을 드리는 절기다. 성령님의 역사로 이방인도, 하나님이 받아준다. 초막절은 추수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고, 알곡은 창고에 쭉정이는 불에 태운다, 마지막에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해야 한다.
1. 마지막 때의 가장 큰 날(33-3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 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① 이스라엘 백성은, (이스라엘 달력으로) 7월 15일부터, 7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② “초막”(수카)은, 허름한 임시 가건물이다. 초막은 누워서, 지붕을 볼 때, 3개 이상의 별이 보이도록, 지어야 한다. 광야에서 거했던, “장막”과 연결시켜서, 초막을 만들었다. 출애굽 당시의 어려웠던 형편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히브리인들의 조상들이 거하던, 장막 안에 거주한 데서 기인하였다.
초막절은 올리브와, 포도추수를 마치는 시점에, 행해지는 절기지만(신16:13), 그들이 실제로 기억해야 했던 것은, 추수 자체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에서 함께 하고 인도하여, 기름진 가나안 땅에서, 풍성한 생활로 인도했음을 감사하며, 결실한 열매를 드리는 날이다.
초막절은 7일 동안, 초막생활을 하면서, 과거 조상들의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 생활을 추억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이다. 백성들이 거할 초막을 짓고, 그 초막에서 절기를 지키기에 초막절, 장막절 또는, 곡식들을 창고에 넣은 절기라, 수장절이라고 불렀다.
③ “절기”(하그)는, 다함께 기쁨으로 즐거워하며, 춤추는 절기이며, “여호와를 위하여” 절기를 지켜야 했다. 이는 지키는 자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말해 준다. 초막절의 관심은, 포도나 올리브의 수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있어야 한다.
④ 7일 (지키라). 하나님을 향해드리는, 감사와 헌신을, 온전하게 드린다는 의미다. 아무 노동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광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까지, 함께 하며, 지켜줌을 감사했다.
⑤ “화제”(잇쉐)는 “불”(에쉬)로 태워서, 없애 버리는 모든 제사를 지칭한다. 특별히 8일째 날에는, 따로 정해서, “거룩한 대회”(미크라 코데쉬, 불려내진 거룩해진 자)로 모였다.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성되는 날이므로, 가장 큰 날이다.
예수님은 이 초막절기 때,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초막절 행사 8일째 날을 가리켜서 (요7:37-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목마름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그런데 하나님이 동행하면서, 그들에게 단순히 목을 적셔 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
절기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스케줄, 시간표다. 구약의 절기는 그림자요, 모형이고 (골2: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또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했다.
2. 초막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유대인은, 제사장의 뜰에서 2가지 특별행사를 했다.
① 물을 붓는 전제의식이다. 초막절이 시작되면, 대제사장은 순례자 행렬과 함께, 실로암 연못에 가서, 물을 길어왔다. 이 물을 들고 “수문”을 통해, 제사장의 뜰로 들어갔다. 대제사장을 따르던 순례자들도,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실로암 연못에서 떠온 생수는, 번제단 위에 붓는 의식(전제)에 사용되었는데, 일반적인 제사에서, 포도주를 붓는 것과 달리, 초막절에는 포도주와 실로암에서 떠온 물을 함께 붓는, 독특한 전제 의식을 행했다.
마지막 때에, 물과 피를 하나님께 부어 드릴 수 없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 (요일5:6-8)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은 나팔을 불며, 이사야서 말씀으로 지어진, 찬양을 불렀다. (사12:2-3)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② 번제단 남서쪽에, 버드나무 가지를 세우고, 기도문을 낭송했다. 이 버드나무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는 “모짜”의 시냇가에서, 꺾어온 것을 사용했다. (시118: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이제 구원하소서.”(호쉬아 나)이다.
물이 없어서, 죽어가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물이 없으면,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곳이 광야이다. 그래서 실로암에서 떠온 물을, 제단 위에 붓고, 그 옆에서 말라 비틀어져 가는 버드나무 가지 주위를 돌면서, 이른 비를 간구했다.
※ 그런데 오늘, 유월절과 오순절은 기념하면서도, 마지막 초막절은 기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① 영적으로 교회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죽은 후에 부활, 천국, 재림 천년 왕국, 새 하늘과 새 땅은 생각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계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래서 가짜만 판친다.
② 또 하나의 이유는, 나라마다 추수의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11월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미국 사람들의 명절이다. 우리나라는 추석에 추수감사절이다. 이렇게 나라마다, 추수 시기가 다르기에, 함께 초막절을 지키지 못한다.
그들의 길을 인도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고, 반석에서부터 물을 마시게 한다. 우리의 삶도, 이 땅에서 장막에 살고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의 집에 늘 거해야 한다. 땅에 매여 살지 말고, 우리의 본향,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3. 초막절에 참여하기 위해
① 수많은 제물이 희생됨(레23:37-39).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드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너희가 토지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 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초막절에 가장 많은 예물을 드리고, 모든 제물을 불살라, 하나님께 드렸다. 모두가 예수님의 공로다. 구약의 5대 제사(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는 모두 화제로 드렸다. 모든 제물들은 예수님의 희생의 예표로, 죄사함과 성령의 은혜, 천국 가는 것까지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라는 말이다.
토지소산 거두기를 마쳤다. 농사하여 가꾼 토지소산을, 모두 마쳐야 했다. 1년 동안 농사하여 가꾼, 각종 곡식과 과일 등의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께 알곡을 바친 감사절이다.
② 초막절에 흔드는 네 가지 식물(40-41).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초막절에 흔드는 4가지 식물들(아르바 미님)이 나온다. ❶ 아름다운 나무 실과 ❷ 종려나무 가지 ❸ 무성한 나무 가지(하다스, 하닷사, 에스더) ❹ 시내 버들이다.
③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모두 참여하라(42-44).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초막절 행사에는 백성들은, 모두 다 참석해야 했다.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벌이 있다. (슥14:19) “애굽 사람이나, 이방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초막절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와야 하나, 지키지 않는 자는 벌을 받는다.
그때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다 불못에 던져진다. (계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21:27中)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초막절은 세상 끝 날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써 내려옴으로써 완성된다. 천년 동안 사탄이, 무저갱에 결박당하고(계20:1-6), 이 세상 끝 날에 마귀와 짐승(적그리스도)과 거짓 선지자와 불신자들은, 불 못에 던져진다(계20:7-15).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된다(21:1-22:5). 따라서 하나님의 구속사와, 성경 말씀이 모두 완성된다.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완성된다.
따라서 초막절은, 수장절에 대한 현재적 의미는, 우리가 더욱 교회에 모여서, 말씀으로 채우는 알곡성도가 되어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자. 종려나무처럼 승리의 삶을 살자. 무성한 나무 가지처럼, 불멸의 신앙으로, 끝까지 충성하자. 시내 버들처럼,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사모하자.
수확을 얻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의 열매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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