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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8월 25일 - 그리스도의 사역을 밝힌 예수님(막8:31-33)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9-08-25
  첨부파일:   그리스도의 사역을 밝힌 예수님.hwp(21K)

그리스도의 사역을 밝힌 예수님(8:31-33)

 

예수님은 제자들을 시험하려고, 2가지를 물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다.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주는 그리스도이다.”고 말했다. 이 신앙고백을 들은 후에,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십자가와 부활 전이라, 복음의 내용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예수님을, 병 고치는 자, 놀라운 이적을 행하는 자, 정도로만 여겼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온 목적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온 목적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며, 부활하기 전까지,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했다. 그 대신 그리스도로서 해야 할 사역을, 분명하게 밝혔다.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그리스도를 잘못 이해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1. 그리스도의 사역(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했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동시에 사람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된 하나님이다. 왜 하나님인 예수님은 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왔는가? 그리스도로서 해야 할, 사역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칭할 때, 인자라는 칭호를, 즐겨 사용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4가지로 말씀했다. 많은 고난을 받는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된다. 죽임을 당한다. 사흘 만에 살아난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고난을 받는다. 질적으로, 심한 고난을 받았지만, 양적으로 많은 고난을 받았다. 지도자들의 질시, 사람들의 배척, 체포와 결박, 심문, 희롱, 침 뱉음, 주먹질, 옷 벗김, 채찍질, 가시관, 십자가에 못 박힘, 창으로 옆구리를 찔림, 정말 많은 고난을 받았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된다. 3종류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기관인 공회를 형성하는, 3대 구성원들이다.

장로들은 이스라엘의 지파나 부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대제사장들은 성전 업무를 맡은 자들로서, 사두개파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연구하며, 손으로 복사하며, 가르치는 자로, 바리새파에 속했다.

공회는 70명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가룟 유다를 매수했고, 거짓 증인들을 세웠다. 형식적으로 3번에 걸쳐, 예수님을 심문했다. 안나스 앞에서 심문을 받았다(18:13). 대제사장 가야바를 비롯한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았다(26:57).

다음날 새벽, 그들 앞에서 심문을 받았다(27:1). 3심 제도의 형식을 갖춘 후,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고, 신성모독을 했기에, 사형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죽임을 당한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그에게 온갖 거짓말로, 예수님을 고발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고, 놓아주려고, 분봉 왕 헤롯에게 보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때려서 놓아주겠다, 예수님과 바라바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라고 했지만, 결국 유대인들의, 강하고도 끈질긴 압박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서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뜻대로,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어, 죽임을 당하게 했다.

사흘 만에 살아난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에, 십자가에 달려서, 오후에 죽었다. 그 다음날 토요일, 곧 안식일에 예수님은, 무덤에 있었다. 그러다가 예수님은, 안식 후 첫 날, 곧 주일 새벽에 살아났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금요일에 죽임을 당해서, 주일에 살아났다.

유대인은 날짜를 계산할 때, 그 날이 몇 시간이든, 당일도 하루로 간주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금요일, 토요일, 주일,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바 되었고 죽임 당했다. 사흘 만에 살아났다. 4가지가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사역이다.

우리 성경에는 없지만, 헬라어 성경은 인자앞에 데이”(필히, 반드시)라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가 나온다. 4가지 사역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필히 해야 했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정해놓은 뜻이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세워놓은 계획이었다.

(53),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그리스도가 찔리고, 상해야만 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리스도는 징계를 받아야만 했다. 우리의 나음을 위해, 채찍에 맞아야만 했다. (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인용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했다(2:31). 그리스도는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는다. 죽임 당해도, 사흘 만에 살아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가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바 되며,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계속 말씀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이러한 사역들을, 필히 해야 했다.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확실하게 고백했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리스도를 잘못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예수님은, 비로소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해야 할, 본질적인 사역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쳤다. (9:31)에서도, (10:33-34)에서도, 예수님은 계속해서, 똑같은 가르침을 그의 제자들에게 주었다.

2. 베드로의 항변(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행해야 할 사역을, 드러내 놓고 말씀했다. 물론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을 밝힌 적이 있다(2:20).

그때는 은연중에, 묵시적으로 밝혔을 뿐이다. 지금은 드러내 놓고 말씀했다. 이 때 예수님의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방향으로, 잘못 이해될 소지도 전연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슨 뜻인지를 묻는 제자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예수님의 말뜻을, 분명하게 이해했다.

그런데 불쑥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다. 물론 다른 제자들도,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항변하다”(에피티마오), 아주 강한 어조를 나타내는 단어다. 같은 단어가 (30)에서는 경고하다, (33)에서는 꾸짖다로 번역되었다. 아마 베드로는, 예수님보다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또 조금 전에, 예수님께로부터 칭찬도 받았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씀했다. 그러다 보니까, 베드로는 자기가, 하나님의 대언자라도 되는 양, 자만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다. 예수님을 붙들고, 꾸짖고 경고했다. 예수님을 붙들었다. 이 때 베드로는, 자기 손으로, 예수님의 옷을 힘껏, 붙잡았을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도록, 붙들고, 항변했을 것이다.

(16:22)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지만, 실제로 자기가, 예수님의 주인처럼 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믿었지만, 예수님이 밝힌 그리스도의 사역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바 되며,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에게 이와 같이 구했다.

(10:37)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그들은 영광의 그리스도만,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으려하자, (13:6)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베드로는 비천한 그리스도를, 상상할 수 없었다.

(24),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슬픈 빛을 얼굴에 띠었다. 그리스도가 받은 고난을, 이해할 수 없어서, 슬퍼하며 당황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계속되는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로서 해야 할 본질적인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도, 이러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나,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이건 아니지요. 이 일이 결코 내게,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내게는 아무런 고난이 없고, 영광만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예수님은 어떠한 대답을 하는가?

3. 예수님의 책망(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3가지로 행동했다.

예수님은 돌이켰다. 베드로는 뒤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었기에, 예수님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향하여 그의 몸을 돌렸다.

제자들을 보았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했던 것도, 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한 것도, 제자들의 전체 의견을 대변한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을 둘러보았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꾸짖었다. 베드로를 대표적으로 꾸짖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의 책망을 받음으로,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도, 다함께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것이다. 곧이어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짖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예수님의 갑작스런 호통에, 분명 베드로와, 주변에 있는 모든 제자들은, 다 함께 큰 충격을 받았. 조금 전 베드로는, 마치 자기가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예수님을 책망하면서, 예수님이 가는 길을 막았다. 그러다가 곧바로, 예수님께 사탄이라는, 심한 말로 불리면서까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섰다고 생각하지 말고, 넘어질까 늘 조심해야 한다. 왜 예수님은 이 때,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불렀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할 때, 그 배후에 있는 사탄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고자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면, 사탄은 자기 머리가 상해야 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죄 값을 대신해서 지불하면, 사탄은 그들이 자기 권세에서, 벗어날 것도 알았다. 잘 아는 대로, 사탄은 광야에서 3, 예수님을 시험했다. 사탄은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이면서 말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사탄은 예수님에게, 십자가 없는 영광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 했다.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탄아 물러가라.”고 호통을 쳤다.

그리고 (4: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그 뒤로도 사탄은, 호시탐탐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을 기회를 노렸다. 그래서 이번에, 사탄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이용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고 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알았기에,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호통을 쳤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짖은 이유가, 구체적으로 설명되었다. (33)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나님의 일은 (31),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야 한다. 죽임을 당해야 한다.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 예수님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행하도록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정해놓은 일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은, 한 마디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영광을 얻는 것이었다. 이때 베드로가 생각한, 사람의 일은, 십자가를 원하지 않고, 영광만 바랐다.

그러니까 사람의 일은, 십자가의 고난 없이, 영광을 얻으려는 것이다. 사탄이 노리고 있는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함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는 사탄에게, 동조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호통 쳤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사역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 장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고난만 생각했다(8:18).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은 후에, 베드로는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사역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세히 설명했다. (벧전2:24)에서, (53:5)을 인용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사역을 분명히 이해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을, 고난을 통해서, 영광에 이르는 길을, 확실하게 전했다(벧전4:13~14). 고난을 받고 있는가?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 고난을 통해서, 영광에 이르게 됨을 생각하며, 위로 받기를 바란다. 고난은 잠깐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친히 우리를 온전하게 하며, 굳건하게 하며, 강하게 하며, 터를 견고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오늘의 고난을 통해, 내일의 영광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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