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9년 8월 18일 설교 - 우리에게 질문하는 예수님(막8:27-31)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9-08-18 |
첨부파일: 우리에게 질문한 예수님.hwp(21K) |
우리에게 질문하는 예수님(막8:27-31)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답변하는 것이다. 본문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문을 한다. (29上)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한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바르게 답하면, 천국으로 가지만, 대답하지 못하거나, 틀리게 대답하면, 지옥으로 가야 한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복잡하지 않고 어렵지도 않다. 간단하고도 분명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쉽게, 바르게 대답할 수 있다. 우리는 마가복음을 통해서, 계속해서 알아가고 있다.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다. 다른 복음서도 마찬가지인데, 복음서의 기록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다. 이와 같이 믿고 고백하면, 그 사람은 생명을 얻어, 영원히 산다.
그러나 이런 믿음과 고백이 없으면, 그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하기에, 영원히 멸망한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다.” 이와 같이 언제라도, 분명하게 믿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1. 예수님의 첫 번째 질문(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벳새다를 떠나, 빌립보 가이사랴로 갔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벳새다에서 북쪽으로, 약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빌립보 가이사랴의 본래 지명은 “파네아스”다. 헬라의 “판”신에게 바쳐진, 동네라는 뜻이다. “판”은 목양의 신이었다. 그 모습은 절반은 사람, 절반은 염소였다.
분봉 왕 빌립은, 그 곳에 로마황제, 가이사 신전을 세우고, 자기 이름 빌립과,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이름을 따서 그 곳을 “빌립보 가이사랴”고 했다. 그 곳에는 많은 우상이, 세워져 있다 보니까,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이, 많이 모여서 살았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척하는 유대인들과, 또한 자신을 억지로 붙잡아, 임금으로 삼으려는 유대인들을 피하여, 이방인들이 주로 사는, 빌립보 가이사랴로 갔다. 그 동안 예수님은, 이 년 반을,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많은 권능을 행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 드러냈다. 이제 예수님의 가르침은, 거의 끝났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기에, 제자들이 얼마나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비유적으로 학기말 단체 시험을 치러야 했다. 예수님이 출제한 시험 문제는, 2개의 질문이었다.
① 질문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침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가진 견해를, 3가지로 요약했다.
❶ 예수님을 침례 요한이라고 보는 견해였다.
침례 요한은 이미, 분봉 왕 헤롯에 의하여, 목 베임을 당했다(막6:16). 그러면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침례 요한으로 보았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회개하라 전파했고(6:12), 사람들은 회개했다(6:14).
사람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자, 곧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만이, 이러한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요3:28)에서 침례 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 앞에, 보냄을 받은 자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살아난 침례 요한이, 큰 권능을 행하면서, 메시아가 올 것을, 널리 알리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❷ 예수님을 엘리야로 보는 견해였다. 엘리야는 능력의 선지자요,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진 선지자다.
(말4:5)에 의하면, 선지자 엘리야는 메시아 앞서, 보내겠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 앞서, 보냄을 받은 엘리야로 보기도 했다.
❸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로 보았다.
(눅9:19) 말씀처럼,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보는 견해였다. (마16:14) 말씀을 보면, 그 대표적인 경우로, 선지자 예레미야를 들고 있다.
외경 마카비2서에 의하면, 예레미야가 메시아보다 앞서,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성전에 향단과 법궤를 회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레미야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3가지 견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늘로부터 온 선지자라고 보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지 않고, 메시아 앞서 보냄을 받은, 선지자로 여겼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예수님의 분명히 가르침과 놀라운 권능에도 불구하고,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2가지 이유 때문이다.
Ⓐ 그리스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12:34).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면, 이스라엘 땅에서 모든 적들을, 쫓아내실 것이라고 믿었다. 메시아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키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며, 영원토록 강성한, 이스라엘 나라를 이룰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로마에 맞서 싸우지도 않고, 로마에 의해서 세움을 받은, 분봉 왕들과도 맞서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씀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와 예수님은, 너무도 달랐다.
Ⓑ 사람들이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요12:42). 그 당시에,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는 것은, 사회에서 완전히 배척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를 꺼렸다. 그 대신 예수님을 침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와 같은,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보았다.
2. 두 번째 질문이다(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② 번째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올바른 대답은, 천국을 의미하지만, 잘못된 답변은, 지옥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서 “너희”가 강조되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침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로 보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도 나를 똑같이 보느냐? 아니면 너희는 나를 다르게 보느냐?”는 의도로 물어보았다.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했다. 물론 이 베드로의 대답은, 베드로가 즉흥적으로, 자기 개인적인 대답을 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 전체가 내린 결론을, 그가 대표적으로 대답한 것이다. 예컨대 갈릴리 바다에, 큰 광풍이 일어났을 때, 예수님이 명하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다.
그 때 제자들은 심히 두려워했다(4:41). 그러면서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권능들을 보면서, 또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을 들으면서, 예수님은 누구인지 계속 생각해왔다.
서로 깊은 대화도, 나누었을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침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보았다. 더군다나 유대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바알세불, 곧 귀신의 왕 사탄이 지폈다고 주장했다.
이 때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하였다. 그들의 대답은 명백했다. 예수님을 침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선지자들 중의 하나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바르게 믿고 고백했다. “주는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요, 하나님이 보내기로 약속한 구주이다.”
그래서 (눅9:20)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불렀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자세히 말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이 때 단 한번만 대답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대화 속에서, 여러 번 같은 뜻의 대답을 했던 것이다.
아무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성경이 밝히는 그대로, 예수님을 바르게 보고,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바르게 고백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믿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퀴리오스, 아돈)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주”는 유대인은 하나님을 말하며, 헬라인은 주인을 말한다. 로마인은 황제를 말한다. 나를 지배하는 황제요, 주인이요,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주로 섬긴다는 말은, 나의 삶을 주님 뜻대로 바꾼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5:18),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는다고, 죽이려 했고, 결국 죽였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다. 죄 없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의 신분을 말하고,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사명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다. 사람들은 멸망으로 가는, 넓은 길을 걸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로 믿었다. 그들은 생명으로 가는, 좁은 길을 걸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시간 우리도,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아무도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주님이며, 그리스도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생명을 얻는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요,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그렇게 사는 분들이 되기를 바란다. 주님이라고 고백할 때,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온전히 주님께 지배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부분만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연약한 자들을 비판하지 말고, 성숙한 사람들이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3. 예수님의 경고(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예수님은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마16:20).
이는 뜻밖의 경고요, 의외의 말씀이다. 언뜻 생각하면, 여기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야 할 것 같다. “이에 자기의 일, 곧 자기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사람에게 널리 전하라 명하시니라.” 이렇게 기록되어야,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러면 왜 이 때 예수님은, 본문과 같은 경고했는가?
한 마디로 말해, 아직 복음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일어나기 이전이다. 따라서 아직은, 복음의 내용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침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며, 로마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따라서 제자들이 나가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전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기필코 임금으로, 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온 목적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왔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기위해 분명히 왔다.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이때부터 예수님은,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드러내 놓고 말씀했다. 즉 예수님은 그의 죽음과 부활이 있기 이전에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있고 난 뒤에, 예수님의 명령은, 완전히 달라졌다.
복음의 내용이 완성되자 (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분명하게 명했다. 복음이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으면, 병을 고칠 수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문제도 해결된다. 예수님을 믿으면, 가정도 평안하고, 만사가 형통하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이 아니라, 복음의 일부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고,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살아났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어야, 생명을 얻는다.” 우리는 복음의 핵심을, 바르게 전해야 한다.
누구든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믿어야 하는데 (마16:17中)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했다. 인간의 지식이나, 노력으로는 이것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이 알게 해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는 자는, 다 예수님에게로 올 것이다(요6:37). 창세전에 하나님이 택한 자는 모두 예수님에게로 올 것이다. (고전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면, 이는 전적으로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님 안에서 택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구원하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자.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자.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세상에 널리 전하자.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며, 성령님의 열매를 맺자. (마16:18) 예수님은 이곳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친히 그의 교회를 세웠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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