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9년 8월 4일 - 어둠을 밝히는 예수님(막8:14-21)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9-08-04 |
첨부파일: 어둠을 밝히는 예수님.hwp(21K) |
어둠을 밝히는 예수님(막8:14-21)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다. 유대인만의 구주가 아니라, 온 세상 만민의 구주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기 바라서,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를 떠나, 이방 땅으로 갔다. 거기서도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위해서, 많은 권능을 행했다. 이로써 제자들은, 예수님이 온 세상의 구주임을, 밝히 깨달았다.
이제 다시, 유대인들이 사는 갈릴리로 돌아오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함께 예수님께 나왔다. 이들은 서로, 신학적 입장도 달랐고, 삶의 방식도 완전히 달랐다. 원수처럼 대적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 함께 뭉쳤다. 이것이 어두움의, 첫 번째 특징이다.
예수님을 힐난하고, 시험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다. 예수님의 표적들을, 전혀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의 어둠은 점점 더 깊어갔다. 어두움의 두 번째 특징이다.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고, 그들을 떠났다. 그들이 끝끝내 빛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어둠은 버림받는다.
이것이 어두움의, 세 번째 특징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서,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갔다. 그 배에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타고 있었다. 본문은 그 때 배 안에서, 제자들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내용이다.
1. 제자들은 빛과 함께 했다(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계속 거부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떠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유대사회의 지도자들이다. 만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등진다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유대교에서 출교당하고, 회당출입도 금지당할 것이다. 유대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척당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올랐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를 가든지, 늘 예수님과 함께 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첫 번째 특징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배에 올랐는데, 가다가 보니까 떡 가져오기를 잊었다. 배에는 떡 한 개밖에 없었다. 먹을 떡이, 준비되지 않았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지, 음식점이 많아서, 손쉽게 음식을 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음식점이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자신들이 먹을 떡을, 준비해야 했다. 식사 때가 다가오면서, 제자들의 걱정은, 점점 더해갔다.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떡 때문에 제자들이, 걱정하고 있었다. 한두 끼를 먹지 않는다고, 큰 일이 생기지 않는데, 걱정이 심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을 육적인 일에서, 영적인 일로 보고, 경고하여 말씀했다.
“삼가(호라테), 주의하라(블레페테)” 모두 명령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에, (마16:6)에는,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누룩은 가루를 부풀게 한다(마13:33).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진다(갈5:9). 누룩은 잘못된 신학과 부패한 정치를 말한다.
누룩의 상징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영향력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누룩 넣은 떡, 유교병을 먹지 못하게 했다. 더 이상 과거의 죄악 된 삶에, 영향 받지 말라는 뜻이었다. 애굽의 삶에서 온전히 벗어나, 전적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라는 의미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헤롯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끼칠 수 있는 나쁜 영향력은 무엇인가? 제자들이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할 것은 무엇이었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가리켜, “외식”이라고 밝혔다(눅12:1). 그들은 손만 씻었지, 마음은 씻지 않았다.
회칠한 무덤처럼,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였지만,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했다. 또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주장했다(행23:8). 예수님 말씀대로, 그들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다(마22:29). 요즘말로 하면, 사두개인들은 자유주의자들이었다.
헤롯은 로마의 권력에 의해서, 세움을 입은 분봉 왕이다. 그를 추종하는 헤롯당은, 힘써 세상 권력을 추구했다. 그들은 이 땅의 안일을 꾀하는, 세속주의자들이었다. 제자들은 빛인 예수님과 함께 하기에, 더 이상 어둠에,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의 외식주의와, 사두개인들의 자유주의와, 헤롯의 세속주의를, 주의하라고 했다.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이 때 제자들은 배고파서 영적인 일을 말씀하는데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의 생각에는, 온통 먹는 일에만 집중해 있었다.
아마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을 것이다. “배에서 내리면, 얼른 뛰어가서 떡을 사와야지. 그렇지만 예수님의 경고대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헤롯당이 만든 떡을, 사지 말자!”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한 의도가 아니었다. 땅에 것에 집착하면, 하늘의 것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 됨을 알고, 걱정하지 말아야 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 얼마 전에 떡5개로 5천명을 먹이고, 떡 7개로, 4천명을 먹인 분임을 기억해야 했는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같이, 영적인 어두움 가운데 있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영적인 어두움을 주의시켰다.
2. 제자들은 점점 더 밝은 빛 가운데로 나아갔다(17-21).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림을 알았다. 예수님은 그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덟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들을 통해서, 점차 그들을 깨우쳐나간 것이다.
①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일에, 힘써야 마땅했다. ②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③ “너희 마음이 둔하냐?” 말씀에 예민하지 못했다.
④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⑤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계속 말씀하는데도, 제자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한 말씀도 하지 못했다. 감도 잡지 못했다. 이런 어두운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⑥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 이니이다.” ⑦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겨우 대답했다. 마음이 둔해서, 실체를 보지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했다.
예수님은 벳새다 빈들에서, 떡 다섯 개로 유대인 남자만 오천 명을 먹였다. 그 때 남은 조각은 열두 바구니였다. 또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오른편에서, 떡 일곱 개로 이방인 남자들만, 사천 명을 먹였다. 그 때 남은 조각은 일곱 광주리였다. 제자들은 그 때의 일들을, 잊을 수 없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무리에게, 떡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니 너무 생생하게, 그 일들을 기억했다. 이렇듯 제자들은, 놀라운 일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그런데 수중에 떡이 없으니까, 그만 걱정에 빠지고 말았다. 예수님이 함께 함을, 깨닫지 못했다.
제자들은 풍성한 이적을 일으키는,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떡과 누룩에 대한 말씀을 듣자, 떡이 없는 것을 염려하였을 뿐, 예수님의 진정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넘치도록, 여러 가지 표적을 통하여, 자신의 실체를 거듭 계시해 주었지만, 마음이 둔하여 깨닫지 못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수도 없이 체험했다. 그러면서도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또다시 낙심하지 않는가? 다윗은 (시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했다. 진실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돌보아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잊어버린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아줌을, 깨닫게 될 것이다. ⑧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이제는 깨달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부드럽게 물었다. 이처럼 예수님은, 여덟 가지 질문들을 통해서, 그의 제자들을 점점 더, 밝은 빛 가운데로 인도했다.
바리새인들이나 제자들은, 다 같이 예수님의 크신 능력과, 표적을 보고도, 여전히 예수님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그들의 영적인 눈이, 세상적인 장애로, 가리어졌기 때문이다. 영적인 눈이 가리어지면, 진리를 보고도, 알지 못하며, 예수님을 보고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도, 탐욕에 영의 눈이 가리어, 예수님의 실체를 알지 못한 까닭이다. 오늘 세상에도, 이처럼 세상적인 것으로, 영안이 가리어, 주님을 보지 못하고, 멸망으로 가는 자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도 세상에 집착하면, 영혼의 눈이 가리어져, 지극히 잘못된 길로 행할 수 있다.
3. 제자들은 생명의 빛을 얻었다(마16: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특징은, 형식주의와 세속주의다.
어둠은 어둠과 어울린다. 어둠은 점점 더 깊어진다. 어둠은 버림을 받는다. 이것이 어둠의 특징이다. 이와 달리,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빛과 함께 한다. 점점 더 밝은 빛 가운데로, 나아간다. 생명의 빛을 얻는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특징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한 바를, 밝히 깨닫게 되었다. 빛과 함께 했다. 자연히 그들의 어둠은, 물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영적 어둠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환한 빛을 얻게 되었다.
(마13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쳤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나와, 비유로 말씀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마13:11中)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느니.”
아마도 그 때 제자들은 속으로, 이와 같이 말했을 것이다. “오! 주님, 우리도 모르고 있나이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르기는 똑같았다. 그러면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외인들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유를 설명하면서 가르쳤다. 여기에, 차이점이 있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떠나간 후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의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사십 일 동안도, 그의 제자들을 가르쳤다(행1:3).
그뿐 아니다. 예수님이 승천한 후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계속되었다. 누구를 통해서? (요14:26) 말씀 같이,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계속해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가르친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그 말씀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의 삶에 살아 역사하게 한다. 참 놀랍고, 엄청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영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로 경건의 훈련에 힘써야 하겠다.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작은 도약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비추는 빛을 받아서, 점점 더 밝은 빛 가운데로 나아갔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벳새다로 갔다(막8:22).
또 예수님을 따라, 빌립보 가이사랴로 갔다(막8:27). 이렇듯 제자들은, 늘 예수님과 함께했다. 드디어 예수님의 제자들은,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나중에 자신들의 신앙을, 예수님에게 분명하게 고백했다. (막8:29下)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예수님과 함께 한 그들은, 점점 더 밝은 빛 가운데로 나아갔다.
그래서 드디어, 생명의 빛을 얻은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의 어둠은 점점 더 깊어졌고, 결국 버림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겨, 거기서 영원토록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다. 늘 빛과 함께 했다. 그들은 점점 더, 밝은 빛 가운데로 나아갔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생명의 빛을 받아, 예수님이 그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빛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 우리 앞에는, 빛과 어둠이 있다. 선택은 각자가 해야만 한다.
늘 빛인 예수님과, 함께 하자. 점점 더 밝은 빛 가운데로 나아가자. 신앙에는 고비가 있다. 수련회에 했던, 천로역정을 기억하는가? 천국에 가는 길에는 많은 어려움도 유혹도 있다. 그러나 이겨야만 한다.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조명을 받아,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이길 수 있기를 바란다.
어둠의 권세와 사귀지 말라. 어둠에 머물러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이 들고 만다. 따라서 이 어두운 세상에서,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빛을 환하게 밝히자. 그러다가 장차 빛난 천국에서, 우리 모두 영생을 누리자.
"
이전글 : 세상에 빛, 예수님(막8:11-13) | |
다음글 : 2019년 8월 11일 설교 - 맹인을 고친 예수님(막8:22-26)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