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9년 6월 30일 - 유대교를 배격한 예수님(막7:14-23)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9-07-01 |
첨부파일: 유대교를 배격하신 예수님.hwp(21K) |
유대교를 배격한 예수님(막7:14-23)
3월 마지막 설교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전통의 권위를 주장했지만, 예수님은 성경의 권위를 주장했다. 그 예를 고르반을 들어, 그들의 위선을 지적했다. 이제 무리들을 다시 불러서, 진짜 더러움이 무엇인지, 비유적으로 교훈하고 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씻지 않은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다. 유대교는 전통을 중시했고, 음식을 먹기 전에는, 꼭 손을 씻어야 했다. 씻지 않은 손은, 음식을 부정하게 만들고, 또한 부정해진 음식은,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나와, 제자들이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혔다.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의 안은, 깨끗하다고 믿었다. 더러운 것들은, 외부에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외부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를 위해 부정한 것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음식도 정한 음식만, 가려서 먹었다.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잘 씻었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의 깨끗함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렘17:9上)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그들의 마음이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더럽고, 깨끗한 것은, 밖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 안이 문제다.
1. 밖이 아니라, 안이 문제임을 깨달으라(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전통을 예수님을 비난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들어서, 그들에게 반박했다. 이제 예수님과 그들과의 대화가 끝났다. 이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분을 이기지 못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때 예수님은, 뒤로 물러가 있던 무리를 불러서, 이와 같이 말씀했다.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뿐만 아니라, 깨닫기를 바랐다. 그들의 마음에 새기기 바랐다. 따라서 그만큼 중요한 말씀을, 지금 하겠다는 뜻이다. (15-17)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이는 비유였다. 비유는 어떤 사실을 표현하려고, 비슷한 다른 사실을 예로 드는 것이다. 영적인 진리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단순한 일을 예로 들었다. 예수님이 말씀한 비유는, 표면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은, 우리를 더럽히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몸 안으로 들어간 음식물이, 위든지 아래든지 나오면, 그것이 우리 몸을, 더럽게 만든다. 이처럼 예수님의 비유를, 피상적으로는 이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슨 의도로 이 비유를 말씀했나? 이 비유 뒤에 감추어진, 진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비유를 말씀한 예수님이, 친히 설명해주어야만 알 수 있다.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물었다. 학생들은 욕을 하면, 자신이 멋있게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깎는 일이다. 선물을 주어도, 다른 마음으로 준다면, 그것은 오히려 그를 죽이는 독약이 될 수 있다.
2. 깨닫지 못해, 비유를 설명한 예수님(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고 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은, 이해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과거에 그들이 배웠던, 유대교의 가르침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잘 씻어야만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교의 전통을 무시했다.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고 가르쳤기에, 어떤 음식이든지, 먹을 수 있다고 말씀했다. 예수님의 말씀이, 유대교의 가르침과, 완전히 상반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내용 (마15:12-14)에는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이런 비유를 듣고 걸림이 되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맹인이라 했다. 그들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도, 맹인이라고 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 곧 지옥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을, 그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했다(마23:15). 그렇기에 (요이1:10) 말씀처럼, 이단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아예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교훈을 전하는 사람은,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다보면, 물들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쓴 책도, 읽지 말아야 한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한 자라도 더 읽어야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 비유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마15:5), 예수님은 깨달음이 없느냐고 했다.
(7:18中-19)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알지 못하느냐?”고 했다.
예수님에게 모여들었던 무리는, 비유의 의미를, 모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만큼은, 그 비유의 의미를 아는 것이, 마땅하다는 취지였다. 예수님은 음식물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음식물은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가기 때문이다.
음식물이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기에, 사람의 마음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사실 유대교는 겉만 깨끗하게 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회칠한 무덤같이, 겉에는 아름답게 보였다(마23:27). 그러나 무덤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듯이,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함이 가득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본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이 깨끗하기를 바랐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만들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들이, 더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고 했다.
(레11장)을 보면, 짐승과 새와 물고기 가운데,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모든 것들을, 다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환상을 보았다. 보자기에 있는 각종 짐승들을, 잡아먹으라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자기는, 속된 것을 먹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행10:15中)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했다. 사도 바울도 똑같이 말했다. (롬14:20中) “…만물이 다 깨끗하되…” 모든 음식물이 다 깨끗하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선하매, 감사함으로 모든 음식물을 받으라고 말씀했다(딤전4:3-4).
그러면 왜 하나님은, 어떤 것은 먹고, 어떤 것은 먹지 말라는, 율법을 주셨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깨끗한 마음으로 살기를 바랐다. 갈려져 쪽발이 된 것처럼, 구별된 삶을 살라고 했다. 항상 되새김질을 해야 한다. 이렇게 그들에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지침을 주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다. (롬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롬10:4).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고,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님은,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따라서, 깨끗한 음식물과 속된 음식물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이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했으므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음식물을, 감사함으로 다 받아먹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율법을 따라 음식을 가려먹으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은 깨끗한데, 밖이 더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러운 것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그들은 성경에도 없는 많은 전통을, 만들어서 지켰다. 그러나 예수님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했다.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면서, 유대교의 주장을 단호히 물리치며, 유대교를 정면으로 배격했다.
3. 비유의 결론을 내린 예수님(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러면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했을 때, 무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리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구토물이나, 배설물로 여겼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이 더럽지만 예수님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그래서 비유의 배후에 있는, 영적 진리를 말씀해주셨다.
(21-22)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사람에게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악한 생각들을 말한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을, 12가지로 열거했다. 악한 생각들 중 앞에 나오는 6가지,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은 복수형이다. 이것들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들, 반복적인 행동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들이다.
반면 악한 생각들 중에, 뒤에 나오는 나머지 6가지,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은 단수다. 따라서 이것들은, 악한 행동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자세와 태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겉으로는 깨끗하게 보였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온갖 악한 생각이 가득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살인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미워하는 마음이, 살인이라고 했다. 그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미워하면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까, 기회를 노렸다.
또한 자기들은, 간음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했다고 했다. 그러니 그들이, 남들보다 더 낳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마음도 똑같이 부패했다.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 비유의 결론의 말씀이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바라는 바는, 손을 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씻는 것이다.
유대교는 문제가, 밖에 있다고 했다. 그들은 언제나 깨끗하고, 이방인들은 언제나, 더럽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인들을 미워하고, 로마인들을 자기 땅에서, 쫓아내기 바랐다. 로마인들이 자신들을 더럽게 만든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문제가 안에 있다고 했다.
더러움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유대교의 전통으로는, 사람을 깨끗하게 만들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람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가?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는 새 마음을 받아야 한다.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새 언약을 맺으시면서, 새 영과 새 마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새 언약을 성취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 마음을 받는다. 그리하면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면서, 모든 악한 생각들을 떨쳐주고, 그 대신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번 주간도, 성령의 열매, 곧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풍성히 맺어, 성삼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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