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9년 6월 9일 - 맥추 감사절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9-06-09 |
첨부파일: 맥추감사절.hwp(24K) |
맥추감사절(레23:15-22)
(레23장)을 보면, 7개의 절기가 나온다. 절기는 히브리어로 (모에드)인데, “정한 때, 정한 장소, 정한 모임”을 말한다. (레23:4) “여호와의 절기들”이라 했다. 따라서 절기는, 하나님이 지정한 때에, 지정된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준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언제, 어떻게 구원하려는지, 보여주는 시간표다.
맥추절은 밀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곳에 모여, 기쁨을 나누는 절기다. 칠칠절, 오순절이라고도 한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성취되었다(행2:1-4).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 정리가 안 되서, 성령강림절과 맥추절을 따로 지키고 있는데, 성경적으로 분명히 잘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간, 광야생활을 해왔다. 하나님이 주는 메추라기와 만나를 받아먹고 사는, 은혜의 생활이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며, 불평하며 살았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이, 100% 다 공급해 주셨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자, 하늘에서 주었던 만나와 메추라기가 끊어졌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며 농사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 받아먹으면서도, 감사할 줄 몰랐지만, 맥추절을 통하여, 자신이 노력해서, 거둔 수확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감사하며 나눌 줄 아는, 성숙된 신앙인이 된다.
1. 그러면 7절기는 무엇인가?
(1) 유월절은 양력이나 음력이 아니라, 유대력으로 1월 14인데(5),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양을 잡아 피를 뿌렸는데, 그 피를 볼 때에, 죽음의 사자가 지나갔다.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잡았다(출12:6). 이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주심으로 성취되었다. 예수님은 해가 지기 전, 환한 대낮인 오후 3시에 운명하셨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해질 시간이 아니지만, 초자연적으로 해가 빛을 잃게 하심으로(막16:33),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셨다.
(2) 무교절은 이스라엘의 모든 누룩을 찾아, 땅속 깊이 묻는 절기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누룩 같은 모든 죄를 지고, 무덤 속에 들어감으로 성취되었다. 무교절은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했다(6-8). 이는 죄 사함은 우리의 노력이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상징이다.
(3) 초실절은 가나안에 들어가, 농사지어 처음 수확한 첫 열매를, 안식일 이튿날 드리는 절기다(9-14).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됐다(고전15:20). 역사적으로 봄에 속한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루어졌다.
(4) 맥추절, 칠칠절, 오순절은 같은 절기로, 초여름에 있는 절기다(15-22). 현재는 말세대에 속한다. 여름(카이쯔)은 끝(케쯔)과 어원이 같다. 따라서 여름은 뿌린 씨를 가꾸고, 돌보는 기간이다. 이 절기는 신약의 오순절 때, 성령강림으로 성취되었다(행2:1-4).
(5) 나팔절은 유대력으로 7월 1일이다(23-25). 칠칠절과 나팔절 사이는, 가장 긴 4달이다. 이 4달의 기간을 “농사기간”이라고 부른다. 나팔절의 특징은 나팔을 분다. 나팔을 불면 백성들은, 다 같이 모여,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절기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성취된다(마24:30,31). 재림 때 성도들의 휴거가 있다(고전15:51,52). 구름 속으로 들림 받아,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살전4:16,17). 재림 언약 성취는, 마지막 나팔 때이다(계10:7, 11:15). 그러므로 재림 신앙으로 무장해야 한다.
(6) 속죄일은 유대력으로 7월 10인데, 대제사장과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덮는 날이다(26-32). 지금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준, 은혜의 선물인 예수님의 복음을 배척하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으려고 하기에, 민족적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속죄일 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준다(슥12:10-12, 13:1). 그래서 속죄일이 되면, 회개의 영이 임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여 구원받게 될 것이다. 이제 이방인의 때가 차면, 유대인에게 회개의 영이 임하여, 민족 공동체적으로 영접하게 된다(롬11:25-27).
(7) 초막절은 유대력으로 7월 15인데, 추수를 거두고 기뻐하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성되는 날이다(33-44). 추수를 마친 후에,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는, 하나님이 제정하고, 이미 이루셨고, 현재도 이루고 있고, 이루어 갈 것이다.
여호와의 7절기는 비밀인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골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지금도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이단 하나님의 교회이다. 이들은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안상홍의 생일이 1월 14일이에, 유월절이 안상홍이라고 한다. 성경에 어디가 그런가? 유월절의 실체는, 바로 예수님이다. 따라서 그림자나, 가짜를 붙들지 말고, 실체인 예수님을 붙들어야 한다.
절기는 구약의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약에서 그대로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신실함과, 성경의 정확함을 보여주니, 올바른 종말론이 정립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2. 맥추감사절의 의미
(1) 떡 두 개를 흔듦(17).
“너희의 처소에서, 십 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맥추절은 떡 2개를 가져다가, 처소에서 흔들어 드렸다(요제). 이 예언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성령으로 인하여, 죽었던 자들이 생명을 얻고, 하나 됨으로 성취되었다(고전12:3, 엡2:18, 3:6). 마귀는 자꾸 분열시키지만, 성령님은 하나로 뭉치게 해서, 연합과 일치를 이룬다.
무교절 제사에는, 누룩을 철저히 금했는데, 맥추절에는 누룩을 넣으라고 했다. 그 이유는 누룩에는, 2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의 누룩이 있다. 나쁜 의미는, 죄악의 부패성을 상징한다(출12:15, 고전5:6-8). 그러나 좋은 의미로 쓰일 때는, 천국의 확산을 비유한다(마13:33).
따라서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복음이 땅 끝까지 확산하여, 퍼져 나감을 보여준다(행1:8).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예수님이 승천하면서, 약속한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며,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강림은, 초대교회가 탄생하는 시발점이다.
맥추절은, 바로 교회의 탄생일이 되기도 한다. 이방인은 무시당하며 살았다. 그런데 성령님을 주어서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도록 했다. 이방인인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은혜를 주어,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게 함을 감사하며, 더욱 주님을 위해 살아가기 바란다.
(2) 제물이 희생됨(18-19).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이것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제물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제물로 드릴 것이요.” 하나님께 소제, 전제, 번제, 속죄제, 화목제물을 드렸다. 짐승들이 피를 흘려서, 희생제물이 되었듯이, 예수님의 피의 복음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제는 피를 부어드리는 제사다. 화제는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복음이, 충만한 곳에 성령님의 역사가 있다. 예수님의 보혈은 죄를 제거하고, 성령을 초청하고, 성령의 역사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드러낸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 하는 곳에, 복음이 충만하다.
하나님의 복음에는 절대로, 예수님의 피가 빠질 수 없다.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에, 예수님의 피의 증거가 나타난다.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충만하게 된다.
(3) 노동을 금함(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오순절에는 아무 노동을 하지 말아야 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은사를 받음은, 우리의 힘이나 공력으로 받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우리는 다만 기도할 뿐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성령강림한 역사는, 하나님이 한 일이므로, 우리의 노동이나 행위를, 자랑할 수 없다.
(4) 이방인을 위해 곡물을 남겨 두라(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 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밭의 곡물을 벨 때, 남겨두어야 했다. 그 이유는 2가지다.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해, 남겨두어야 했다. 가난한 자(아니)는 상속받을 것이 없는 자,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고백하는, 겸손한 자에게, 성령님의 은혜를 베풀어준다는 말이다. 또한 남의 나라에, 거하는 거류민을 위해, 남겨두어야 했다.
가난한 자와 거류민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의미한다.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의 은혜에는, 이방인인 우리가, 참여함으로 성취되었다. 자녀의 떡이 유대인에 의해 거절당했고, 가나안 여인 같은 우리 이방인에게, 그 부스러기가 떨어졌다(마15:26-28).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은 계속 거부한 반면,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다(행13:46). 그래서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져, 교회를 이루게 되었다. 성령으로 이방의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는 역사가,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된다.
3. 맥추절을 지키는 방법(신16:9-12)
(1) 감사할 것을 찾으라(신16: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풍부하게)…”라고 하였다. 내게 주신 복이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말이다.
어떤 청년이 더운 여름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한참 걸어서, 맥도널드 가게로 갔다. 햄버거 하나를 사서 밖으로 나와, 야외 벤치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며 먹고 있었다. 이때 자동차 한 대가 햄버거가게 앞에 멈추었다.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려, 햄버거를 사서, 자동차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가져다주었다.
이를 본 청년은, 부러운 눈길로, 그 남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챙겨주는 비서가 있어서, 저렇게 자동차 안에서, 햄버거를 편히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자동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던 남자는, 벤치에 앉아 햄버거를 먹는 청년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저 청년처럼 다리가 건강해서, 햄버거를 사먹으러, 집에서 이곳까지 걸어 올 수 있다면, 그리고 벤치에 앉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처럼 자기에게 없는 것, 자신이 갖지 못한 것만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인생을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 사람은 대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행복을 저울질한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항상 어린아이처럼 남의 손에 들려 있는 장난감을 바라보며, 불행을 느낀다.
소형차를 타고 다니면, 중형차를 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중형차를 타게 되면, 고급 대형차 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된다. 이렇게 욕심은 끝나지 않기에,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질 않는다.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러므로 감사할 조건을 찾아야 한다.
소중한 것들은, 다 하나님이 거저 주었다. 햇빛, 공기, 물은, 전부 공짜이다. “은혜”라는 말은 값없이 준다는 말이다. 생명, 구원, 자연 혜택, 해와 달과 별들, 천부적인 예술 감각까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았다. 은혜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감사는,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다윗은 하나님께, 많은 은혜들을 받았지만, 모든 죄악을 용서한 은혜를, 가장 으뜸으로 여겼다(시103:2-3). 따라서 감사할 조건을 찾아,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2) 감사를 표현하라. “예물을 드려라.”
표현은 더 큰 감사를 일으킨다. 표현하면 강력한 파장이 나타난다. 사람에게만 아니라, 우주가 진동한다. 말로 하든, 표정이나 물질로 하든, 자세로 하든, 표현은 파장을 일으킨다.
우리가 표현하면, 하나님은 본다. 가인의 표정을 읽고, 안색이 변함이 어찜이냐 했다(창4:6). (민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표현이 중요하다. 표현하는 능력이, 인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기도하면 죽게 되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단6:10). 우리는 어려운 일이 찾아오면, 당황하고 염려한다. 염려가 찾아오면, 힘이 빠지고, 의욕을 상실한다.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이 염려를 이기는 길은, 감사의 기도다. 감사는 습관이다. 감사하면 더욱 감사하게 된다.
감사가 흐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감사의 흐름으로 들어가면, 감사의 흐름을 타게 된다. 감사는 감사를 끌어오고, 감사의 환경으로 들어가게 한다. 감사하면 감사하는 자에게, 협조를 얻을 수가 있다. 사람에게 감사하면, 사람에게 협조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한 사람은, 이적을 맛보게 된다. (10中)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충분하게),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 감사는 느낌만으로는 안 된다. 표현해야 한다. 진심으로 사랑을 담아, 표현해야 한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라. (고후9:7-8)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많은 축복을 받은 성도가, 인색하면 안 된다. 없는 자가 빚을 내서, 헌금해도 좋지 않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둔다.
(3)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드릴 때, 자원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어떤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 억지로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해야 한다.
(행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께 거액의 헌금을 하고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보고, 믿음대로 이루어주신다.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넘치도록 드리자. 하나님은 절기를 지키는 자에게, 축복을 약속했다.
결론이다. 절기를 지킨다는 말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한다는 말이다. 절기를 감사함으로 지키는 자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영육간의 모든 평강의 복을 준다고 약속했다(출34:24).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바로 감사하는 생활이다. 감사의 절기는, 감사의 교훈을 새롭게 받고, 잃어버린 감사를 새롭게 하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다시 한 번 헤아려 보고, 감사하는 자가 되고, 감사가 넘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
이전글 : 2018년 6월 2일 -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삼하23:13-17) | |
다음글 : 2019년도 6월 16일 - 침례를 받자(마3:13-17)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