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9년 5월 19일 -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 자들에게(막16:9-18)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9-05-19 |
첨부파일: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 자들에게.hwp(22K) |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 자들에게(막16:9-18)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며, 부활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부인해도,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본 것은 믿으나, 보지 못한 것은, 못 믿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과 지각은, 엄청난 허점들이 있다. 사람의 청각은. 들을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눈도 볼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이 지구가 태양주의를 돌면서, 엄청난 속도로 우주여행을 하고 있다.
지구의 공전속도는, 초당 약29.7Km다. 소리 속도 345미터 이상을 달릴 때, 초음속이라 한다. 그런데 지구는, 초음속의 88배다. 그러니 얼마나 엄청난 속도인가? 그렇게 지구가, 우주를 날아가는데, 우리는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 돌아가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
또한 지구의 자전속도, 즉 지구가 스스로, 도는 자전속도는, 초당 약463m다. 이것도 소리의 속도, 즉 음속보다 빠른데, 이것을 느낄 수도 없으니, “나는 보지 못했으니, 못 믿겠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다.
하기야 예수님을 3년씩 따라다니며, 수없이 많은 이적과 표적을 본 그들은, 그들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았으면서도 믿지 않았다. 심지어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부활을 믿지 않은 자들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예수님을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셨던, 제자들이다. 그런데도 믿지 못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 수없이 여러 번 당신이 죽을 것을 언급하고 가르쳤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부활을 믿지 못했다.
(막16:11-13)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 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믿지를 못했을까?
(1) 약속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여러 번 예언했다(마17:23, 20:19, 눅9:22, 18:33, 막9:31, 10:34 등).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다,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설마 예수님이 죽으실 리가 있는가?” “그리고 왜 죽었다가, 다신 산다는 말인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니 듣기는 들었어도, 믿지를 못한 것이다.
성경을 아는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믿음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아도, 믿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약속으로 시작하여, 약속으로 끝을 맺는다. 구약 성경은 오실 메시아를 약속하였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오신 메시아를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오실 메시아를,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 약속을 믿지 못한다면, 믿음은 가짜다. 그 약속이 믿어지고,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신앙은 내가 이해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고, 내 생각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도,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믿어야 신앙이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과학을, 초월할 수 있는 전능자이다. 그러기에 성경의 약속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고, 믿음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주님 능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랐던 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한 것이다.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예수님이 오시자, 마리아와 마르다가 이런 말을 한다.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주께서 여기 없었기에 우리 오라버니가 죽었다.”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늦게 왔기에 죽었다. 예수님의 능력을, 공간적으로 제한하는 말이다. 여기 계셨다면 살았고, 여기 없었기에 죽었다는 것이다.
반면 (마8장)의 백부장은, 자기의 하인이 중병으로 쓸어 지자, 주님께 찾아온다. 그때 예수님이 그의 집으로 따라가려하자,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다.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그 차이는 주님의 능력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의 차이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능력을 믿는가?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이,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것은, 매우 간단한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능력을, 얼마나 믿는가? 믿는 만큼 복을 받는다. 내가 믿는 만큼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내 믿음이 크면 큰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복을 누린다.
주님이 한 말씀을, 기억하기 바란다.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그렇다. 하나님의 능력을 얼마나 믿느냐, 예수님의 능력으로 얼마나 믿느냐가, 우리 신앙의 성패를 좌우한다.
(3)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결정적 요인은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그토록 많은 기적을 행하고, 놀라운 일을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게 하려 함이었다. (요20장)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요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이적과 기적을 행했다. 그러면 왜 그것은, 다 빼고 기록된 것일까? 그 이유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게 하려고 한 것이고, 또 믿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나요? 믿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믿어지는 것일까?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기 바란다.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사건 3가지가 있다. ① 하나님이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사건이다. 지금 온 세계는, 그 사건을 가장 큰 사건으로 인정한다.
어떻게 인정하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달력을 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삼아, 지금이 2019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서기2019년이라 쓰지만, 실제는 주후 2019년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그날을 기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② 하나님이 죽은 사건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다. 이 사건도 세계가 인정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십자가는 흉악하고, 소름끼치는, 사형집행 기구였다. 그래서 누구도 좋아하지 않던 형틀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는, 십자가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표시가 되었다.
그래서 온 세상에, 십자가가 세워져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목걸이로 만들어 매고 다닌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그렇게 변한 것이다.
③ 죽었던 하나님이, 살아나신 사건이다.
이것도 온 세상이, 다 인정한다. 온 인류는,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는, 합창 소리로, 지구를 진동시키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에만 5만개의 교회가 있다. 모든 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송축하며, 축제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런데 만약 주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이처럼 웃기는 사건이 어디 있겠는가?
④ 하나님이 다시 오시는 사건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이다. 앞으로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사건이 될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살아계신 예수님이, 다시 이 세상에 재림하여 오는 사건이다. 그날은 온 세상 사람이, 다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세계 역사는, 예수님의 역사다. his story이다. 그분의 이야기다. 그래서 세계 인류역사는 예수님과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다. 그런데도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 되겠는가?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에게 말씀했다.
(요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그렇다면 예수님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어떤 자세를 보여주었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다.
2. 믿지 못한 제자들을 찾아온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했나?
(1) 믿지 않음을 책망했다(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예수님이 꾸짖었다. 더 나아가 그 마음의 완악함을 꾸짖었다. 무슨 말인가? 믿음이 없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완악하면,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완악한 마음은, 굳은 마음이며, 교만에서 나오는 마음이며, 무지와 불신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따라서 진리 가운데 거해야 하며, 온유한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만 한다. 믿음이 없음은, 주님의 책망을 받을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주님은 아무것도 안하신다.
예수님이 나사렛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예수님을 목수로만 알기에, 그들 가운데서 더 이상 기적이나 이적을 행치 않고 떠났다. 우리 생각에는 믿지 않는 그들 앞에서, 더 큰 이적을 행해, 당신이 메시아임을 입증하면 좋았을 텐데, 주님은 그들 앞에서,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이요, 목수라는 완악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교회 나오고, 예배를 드려도, 마음이 완악하고, 믿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소용없다. 그런 사람은, 믿음이 성장 할 수 없고,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된다.
마음 문을 열기를 바란다.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접하기를 축원한다. 그때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게 된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믿음이 있으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 결국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그처럼 믿음은,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 믿음을 성경을 통해, 약속으로 소유하기를 축원한다.
(2) 복음전파의 사명을 맡겼다(15-16).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주님은 부활을 믿지 못한 제자들에게, 엄청난 사명을 맡겼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닌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도 못하는데, 어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한단 말인가? 주님은 무엇을 보고, 그렇게 했나? 현재의 그들을 보고, 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권능을 받게 되면, 결국 온 천하에 다니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말씀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사람의 현재만을 보지 않는다. 제자들의 앞날을 내다본다. 결국 그대로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당시에는 부활도 못 믿어서, 꾸지람을 받았으나, 부활을 확인하고, 성령의 강림을 체험한 후, 그들은 엄청난 사람들로 변화되었다.
결국 그들은,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가롯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는 사람들이 다 되었다. 저는 여러분도, 현재 모습만을 보지 않기를 바란다. 장차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실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내다보기를 바란다.
그런 믿음이 있으려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명령을 내게 주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이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은 꿈이 있는 사람을 들어 쓴다. 그러나 그 꿈은, 내 욕심과 야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서 나온, 꿈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이 내게 명하는 약속은, 신실하게 붙잡고 믿기를 축원한다. 항상 말씀하지만, 우리 자녀들을, 현재의 모습으로만 보지 말라. 앞으로 10년, 20년, 하나님이 어떤 모습으로 그들을 쓸까, 내다보기 바란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우리 자녀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 것 같은가?
아니 어떤 모습으로 살기를 희망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두어도 좋은가? 예수님처럼 현재를 보지 말고, 꿈과 약속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기를 바란다.
(3) 능력을 주며, 일을 맡기셨다(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길 때, 그냥 맡기지 않고, 그들에게 엄청난 권능을 부여했다. 그래야 복음이 전파되고, 악한 세력을 감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능력이 생겨서,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일을 맡기며, 능력을 주는 것이다. 일을 맡기면서 능력을 준다고, 본문에도 약속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맡기면, 사양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멘하고, 순종하면서 일하면, 하나님이 행한다. 생각해 보세요. 일하는 자들에게, 연장을 안주고, 일하라고 하겠는가? 일하는 자에게, 먹을 것 안주고 일을 시키는가?
어떻게 갈릴리 어부 출신, 세리 출신들이, 복음의 대 사도가 될 수 있었나? 하나님이 능력 안주면 감당할 수 없다.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다.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가? 하나님의 전능함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바란다. 그리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버리지 않고, 꾸짖어 돌이키고, 사명을 맡겨서 일하는, 주님을 바라보라.
더 나아가 그들에게 권능을 주어서, 일하게 하는 주님을 믿기를 바란다. 그 주님은 우리도, 버리지 않고, 들어 쓰는 분임을 믿기 바란다. 우리 주님은 사망권세를 이기고 친히 부활해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다. 장차 우리도, 주님 오시는 그날에, 그와 같이 새 몸을 입고, 부활할 것을 믿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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