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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3월 17일 - 다 성함을 얻게 한 예수님(막6:53-56)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9-03-17
  첨부파일:   다 성함을 얻게 한 예수님.hwp(22K)

다 성함을 얻게 한 예수님(6:53-56)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들어서,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다. 예수님이 임금이 되면,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헤롯왕 일가도 제거하고,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주고, 병도 고쳐주며, 죽은 자를 살려주고, 이적으로 먹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에, 제자들이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재촉해서 배를 태워서, 건너편의 벳새다로 가게 했다. 순종하고 가는 도중에, 큰 바람과 파도가 일어났다. 힘겹게 노를 저었지만, 바다 가운데로 밀려났다. 곤경에 처한 그들을 보고, 예수님은 밤중에 바다 위로 걸어 왔다.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서 소리쳤고,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은 그쳤다. 배 안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절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말하며, 신앙을 고백했다.

오늘 말씀은, 그 후에 된 일이다. 예수님은 게네사렛으로 갔다. 그때 예수님에게 나아온 병자들이, 모두 다 성함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에게 나아온 우리의 영과 육을, 모두 다 성하게 하는, 이런 은혜가 넘쳐나기를 바란다.

1. 게네사렛 땅에 이른 예수님(53).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게네사렛은 동네 이름이 아니다. 가버나움 남쪽에 있는, 평원이다. 그래서 게네사렛이라고 하지 않고, ‘게네사렛 땅이라고 했다.

게네사렛에는 곳곳에 샘물이 솟아올라, 그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곳에서 경작되는 곡물은, 연중 3모작이 가능했다. 게네사렛은 풍요한 동산이란 뜻이다. 그 결과 게네사렛 주변에는 도시, 지방, 마을 등, 크고 작은 동네들이 산재해 있었다(53).

벳새다는 아르벨산 밑, 북동쪽에 있다. 가버나움의 서쪽에 있는 어촌이다. 그 전날, 예수님이 주신 떡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었던 사람들이, 다시 예수님을 찾아서, 가버나움으로 몰려왔다. 예수님이 행한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고, 그 날 아침도, 배불리 먹기를 원했다(6:26).

그러나 예수님은 더 이상, 떡과 물고기를 주지 않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사모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면서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이 때 그들은, “주님! 이제 우리는, 아침 식사를 원하지 않아요, 우리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주십시오. 우리가 주를 믿습니다.”라고 하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는 영생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썩을 양식에만 관심을 가졌다.

계속 예수님이 그들에게, 먹을 떡과 물고기를, 주기 원했는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주지 않자, 결국 그들은, 예수님 곁을 떠나가 버렸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예수님이 주는 영생을 거부했다. 그 결과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11)(10)을 보면, 예수님은 벳새다와 가버나움, 그리고 그 인근에 있는 고라신을 준엄하게 심판한다. (11: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있을진저 벳새다야!”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1: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경고한 대로, 심판 받게 된다. 행여 썩을 양식을 얻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오지는 않았는가?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예수님을 떠나려는가?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자. 그것을 먹어도, 또다시 주린다.

예수님이 주는 양식,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늘 사모하면, 결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사람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에게 (6:67) “너희도 가려느냐?고 했다, 베드로가 대답했다. (6:68)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썩을 양식을 구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생명의 떡인 예수님이, 주는 영생하는 양식을 사모했다. 시몬 베드로는, 자신들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이는 바다 위로 걸어온 예수님을 배로 영접한 후에,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경배하면서 드렸던, 그 때의 신앙고백과 같은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떠났다. 무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 곁을 떠나갔기에, 제자들을 데리시고, 게네사렛 땅으로 건너가셨다.

2. 병자들을 데리고 온 게네사렛 사람들(54).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예수님을 태운 배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예수님은 배에서 내렸다. 때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한 다음날, 오전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날 아침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게네사렛은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 곳은 갈릴리 서쪽에 위치했다. 길이 5km, 너비 2km되는 비옥한 평원이다. 예수님이 배에서 내릴 때, 그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예수님은 이미 2번에 걸쳐, 온 갈릴리에 다니며 사역했다. 예수님은 공생애 첫 해에, 갈릴리를 두루 다녔다(1:39).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당한 후, 갈릴리 모든 촌에, 두루 다녔다(6:6). 제자들도 갈릴리 온 지역을 두루 다니며, 전도여행을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능들을 행했다.

그 결과 (6:14) 이미 예수님의 이름은, 갈릴리 온 지역에 널리 알려졌다. 따라서 예수님이 게네사렛 땅에 왔을 때, 그 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곧 알아본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지 못하고, 단지 병을 고치는 자로만, 알았을 뿐이라는 점이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다면, 예수님에 나아와 엎드려, 경배해야 옳았다. 그러나 예수님께 경배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예수님께 얻고자 했을 뿐이다. (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 째로 메고 나아오니.”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으면, 예수님에게 달려와서, 엎드려야만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로 달려오지 않고, 게네사렛 주변에 있는, 여러 동네로 달려갔다. 그리고 병들어 있는 사람들을, 모두 다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다. 물론 예수님은, 한 곳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았다.

곳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여러 가지 권능을 행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신다는 말을 듣는 곳으로, 모든 병자들을 데리고 왔다. 자기 발로 걸어서, 오는 병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면서, 나아오는 병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2)에 나오는 중풍병자처럼,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병자들을, 사람들이 침상 째로 메고 오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병자라도 모두 다 고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1)에서 예수님은 열병을 앓던, 베드로의 장모를 고쳤다. 같은 장에서,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했다.

(2)에서 중풍병자를 고쳤다. (3)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쳤다. (5)에서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자를 고쳤다. 또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렸다. (1)(5)에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내쫓고,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 문 앞에 모인,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들을 다 고쳤다(1:34).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할 때도, 그 곳에 있는 병자들을 다 고쳤다(14:14). 예수님은 어떤 병자라도 다 고친다. 우리 몸을 창조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네사렛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그 곳에 있는 모든 병자들을 다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물론 그들이,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모든 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온, 그들의 사랑과 정성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예수님께 경배하러 온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왔을 뿐이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일이었다.

영혼의 질병을 고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줄,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사모하지 않았다. 그들도 역시, 썩을 양식을 구하고 있었다. 우리의 육신은, 병 고침을 받더라도, 다른 병에 걸린다. 그러다가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 영혼은, 영원한 하늘나라로 올라가든지, 아니면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지든지, 둘 중의 하나다. 그러므로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는 양식을, 사모하며 살자.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한 바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결코 주리거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기를 바란다.

3. 다 성함을 얻게 된 병자들(56).

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게네사렛은 비옥한 평원이라, 그 인근에는 많은 동네들이 있다. 작은 지방들과,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도시들이 있었다. 그리고 몇몇 집들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마을들도 군데군데 산재해 있었다. 이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후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 등, 이방지역으로 갔다가,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따라서 게네사렛의 여러 동네들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사역했을 것이다. 각 동네 어귀에는, 넓은 터가 있었다. 시장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동네에서 생긴 문제를, 상의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모든 병자들을 각 동네의 시장, 동네 어귀에 있는 광장으로, 다 데려다 놓았다. 예수님이 각 동네로 들어올 때, 사람들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댈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 깨끗이 나음을 받았다(5:28).

게네사렛 사람들은, 그들이 시장에 데려다 놓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어(합토마이, 합토, 고착시키다, 불을 붙이다.) 깨끗이 나음을 받기 바랐을 것이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는 예수님의 능력을, 그들이 믿었음은 분명하다. 이 점은 인정한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에게, 예의도 갖추었다.

예수님을 성가시게 해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병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대어주기를 간구하지 않고,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기 만을 구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기만 바랐다.

얻으면 그 길로, 예수님을 떠나가고 말았다. 물론 예수님은, 이런 사실을 다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결코 물리치지 않았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끝맺음을 한다.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바로 여기에 본문의 강조점이 있다.

게네사렛 사람들이 보여준,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정성이 아니다. 그들이 보여준 믿음이나 예의도 아니다. 본문의 강조점은, 오직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보여준, 능력과 긍휼에 있다.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었다. 성함을 얻지 못한 자도, 있었던 것이 아니다.

병의 일부만, 나은 것도 아니고, 병이 서서히 나은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는 순간, 병자들은 다 성함을 얻었다(소조). 온전히 구원 받았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병자들이 다 성함을 얻었다. 예수님의 능력을 강조하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긍휼도 강조한다.

예수님은 병자들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보지 않았다. 나아온, 동기도 물어보지 않았다. 예수님은 아무 차별 없이, 모든 병자들을 낫게 했다.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차별 없이 비친다.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비를 똑같이 내려준다.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다.

예수님도 긍휼이 풍성하다.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벳새다 빈들에 모인 사람을, 모두 다 배불리 먹여주었다. 예수님은 게네사렛 병자들을 구별하지 않고, 다 성함을 얻었다. 일반은총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에, 능력은 무한하며, 긍휼이 풍성하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동기로, 예수님께 나아왔든지,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긴다. 또한 예수님의 무한한 능력으로, 우리를 다 성하게 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기 원하는 것은, 썩을 양식이 아님을 명심하자. 썩을 양식은, 말과 같이 그대로 썩어서 없어진다.

그것이 건강이든지, 물질이든지, 또 어떤 문제의 해결이든지, 그 모든 것들은 썩어 없어질 것들이요, 일시적인 것들이다. 예수님이 주기 원하는 것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다. 영생하는 양식을 사모하면, 우리의 영과 육이 동시에 다, 성함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별은총이다.

예수님의 능력은 무한하며, 예수님의 긍휼은 풍성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내게 준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이 게네사렛 병자들의 몸을, 다 성하게 함으로, 나의 영혼을 성하게 해서, 내게 영생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들어,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고 싶어 하는, 간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육신의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축복이다.

우리는 건강한가? 물론 지금은 병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은 질병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이 병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따라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 앞에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오늘 본문에서, 병든 모든 사람들마다,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병이 깊을수록 더 간절히 주님을 찾게 된다. 따라서 병이 있다는 것은, 참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주님을 간절히 찾는다면, 오히려 복이 된다. 예수님은 화를 복으로 바꾸는 분이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자들을, 모두 고쳤다.

예수님의 무한한 능력과, 풍성한 긍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의 영과 육이, 다 성함을 얻기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삶이, 예수님 안에서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는 영생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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