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9년 2월 17일 - 침례요한의 죽음(막6:17-29)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9-02-17 |
첨부파일: 침례요한의 죽음.hwp(22K) |
침례요한의 죽음(막6:17-29)
오늘 본문은, 침례 요한의 죽음을 설명한다. 본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자.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는 이두매 사람 헤롯을, 왕으로 세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했다. 헤롯은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다가 얼마가지 않아서, 심한 병에 걸려 죽었다. 역사가들은 그를, 헤롯 대왕이라고 부른다. 헤롯 대왕이 죽고 난 뒤에, 로마는 그가 다스리던 이스라엘을, 4지역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4사람을 세워서, 각기 한 지역씩 다스리게 했다. 이들 4사람을, 분봉 왕이라고 부른다.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은,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 왕이었다. 그가 갈릴리에 나도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바로 앞에서 밝혔던 것처럼, 그는 자기가 목 벤 침례요한이, 살아났다고 여겼다. 시대가 어지러울수록, 침례 요한처럼 성도는, 올바로 살다가 가야 한다.
1. 이 여자를 위하여 - 침례 요한이 투옥됨(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분봉 왕 헤롯은, ‘아레다’ 왕의 딸과 결혼했다. ‘아레다’ 왕은, 사해 남쪽에 위치한 나라면서, 아랍의 족속으로 이루어진 ‘나바티아’(Nabatea) 왕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분봉 왕 헤롯과, 아레다 왕의 딸은, 정략결혼을 했다. 그러던 중에 헤롯이, 그의 이복동생, 빌립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분봉 왕 빌립과는, 다른 빌립이다. 분봉 왕 헤롯, 분봉 왕 빌립, 또 본문의 빌립은, 모두 헤롯 대왕의 아들들로서, 이복형제들이다. 본문에 등장한 동생 빌립은, 분봉 왕이 아니기에, 다스릴 영토가 없었다. 따라서 헤롯 대왕의 아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평민으로 살았다.
빌립에게는 헤로디아라는, 아내가 있었다. 헤롯 대왕의 손녀였다. 그러니까 헤로디아는, 이복 삼촌인 빌립과, 결혼한 셈이었다. 그 둘 사이에는, 딸이 있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의 이름을 ‘살로메’라고 했다. 본문에 나오는, 헤로디아의 딸이다. 빌립의 집에서, 분봉 왕 헤롯과, 헤로디아가 만나게 되었다.
즉시 두 사람은, 근친상간을 했다. 분봉 왕 헤롯은, 헤로디아의 외모에 끌렸다. 헤로디아는, 분봉 왕 헤롯이 가진 권력에, 마음이 갔다. 분봉 왕 헤롯은, 아레다 왕의 딸과 이혼했고, 헤로디아도 그의 남편 빌립과 이혼하고, 두 사람이 결혼했다. 헤롯과 헤로디아는, 이복 삼촌과 조카사이에, 재혼한 셈이었다.
(17下) “…이 여자를 위하여”라는 말씀이 나온다. 헤롯이 침례 요한을, 옥에 가둔 것은, 헤로디아를 위한 것이었다. 왜 헤로디아는, 그의 새 남편 헤롯에게, 침례 요한을 잡아서, 옥에 가두라고 요구했나?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침례 요한이 헤롯을, 책망하는 말을 했기에, 헤로디아가 미워했다. 여기서 ‘말하다’는 미완료형이다. 그러니까 침례 요한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헤롯을 책망했다. 곧 이어서, 분봉 왕 헤롯도 책망했다.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분봉 왕 헤롯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자신의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강제적으로 이혼시키고, 자기의 아내로 취한 것이었다. (출20:14) “간음하지 말라.” (출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레18:16, 20:21) 참조.
‘근친상간을 하지 말라.’는 말씀들에 근거해서, 침례 요한은 헤롯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것이 옳지 않다고 했다. 헤롯이 돌이키고, 헤로디아를 내보내면, 어떻게 되겠는가? 헤로디아는 그것을 두려워서, 침례 요한이 떠들지 못하도록, 옥에 가두었다. 타락한 인간은 잘못을 지적하면 싫고, 죽이고 싶어진다.
(19-20)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원수로 여기다,” “죽이고자 하되”도, 계속적이고 반복하는 미완료형이다.
헤로디아의 마음에는, 침례 요한에 대한 원한이, 깊이 뿌리박고 있어서, 침례 요한을 계속, 죽이려고 했지만, 그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분봉 왕 헤롯은, 침례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면서, 하나님이 쓰는 사람인 줄 알고, 두려워하면서 보호했다. 헤롯은 침례 요한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헤롯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두려우면, 사람이 두렵지 않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람을 두려워한다. 헤롯은 침례 요한을 보호했다. “두려워하다,” “보호하다”도 다 미완료형이다. 그러니까 헤로디아가, 침례 요한을 해치려고 할 때마다, 헤롯이 침례 요한을, 보호했다.
침례 요한의 외침은, 사람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소리가 아니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마3:7中)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했다. 침례 요한은 헤롯에게 말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헤롯과 헤로디아의 관계는 근친상간으로 옳지 못하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고, 선포했을 것이다. 헤롯은 침례 요한의 말을 들을 때, 크게 번민했지만, 달갑게 들었다. 헤롯이 그의 아내를 버린 것도 잘못이고,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것도 잘못이다.
침례 요한을 옥에 가둔 것도, 잘못이었다. 이 시대가 힘들고 어렵다. 교회는 선지자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한다. 침례 요한처럼,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면, 우리가 두려워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두려워할 것이다.
2. 살인의 좋은 날 - 헤롯의 생일잔치(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 새.” 헤로디아는 침례 요한을 죽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칼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헤롯이 자기 생일을 맞이하여, 큰 잔치를 배설한 것이었다. 헤롯은 그의 생일잔치에, 많은 손님들을 초대했다. 3부류의 손님들이 왔다. ① 대신들이었다. 행정이나 세금 징수를 담당하는 자들이다. ② 천부장들이었다. 로마의 고급 군인들이다.
③ 갈릴리의 귀인들이다. 갈릴리에 사는 유대인들로서, 헤롯당에 속하는 자들이다(3:6). 헤롯의 왕궁은 갈릴리의, 디베랴에 있었다. 그 곳은 공동묘지 위에 세워졌기에, 유대인들은 그 곳을 부정하게 여기고, 그 곳으로 가기를 꺼려했기에, 요세푸스는 그 때의 생일잔치가, 베레아의 마캐루스에서 열렸다고 했다.
(22-23)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헤롯의 생일잔치는, 건전한 사교모임이 아니었다.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헤로디아도 그 자리에 없었다. 헤롯의 생일잔치는, 남자들만 모여서, 진탕 즐겨보겠다는, 방탕한 술잔치였다. 이때 무희들이 등장해서, 관능적인 춤을 추어서, 그 춤을 보는 이들을, 기쁘게 한다. 성적 욕망을, 자극시키는 춤이다.
그런데 뜻밖에,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들어왔다. 살로메는 춤으로, 헤롯과 그 자리에 있는 자들을, 기쁘게 했다. 왕의 딸이 그런 자리에서, 외설적인 춤을 추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또 헤로디아가 자기 딸을 그런 자리에 내보내서, 춤을 추게 한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의붓딸이지만, 살로메의 관능적인 춤을 보면서, 헤롯이 기뻐했다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헤롯 일가는, 수치를 몰랐다. 그들의 삶은, 막장 드라마, 그 자체였다. 살로메는 춤을 추면서, 계속해서 헤롯에게, 추파를 던졌을 것이다. 헤롯은 기분이 좋아서, 살로메에게 약속했다.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그리고 헤롯은 맹세까지도 했다.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사실 헤롯은, 분봉 왕에 지나지 않았다. 나라의 절반이 아니라, 십분의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헤롯에게는 없었다. 모든 권한은 로마에 있었다.
그는 자신을 과시해보고 싶어서, 허풍을 떨었다. 자기 분수를 모르면, 범죄에 빠지기 쉽다. (24-25)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침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침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살로메는 그의 어머니, 헤로디아의 조종을 받고 있었기에, 무엇을 구할 것인지 물었다. 헤로디아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침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고 했다. 살로메는 ‘곧’ 왕에게 ‘급히’들어갔다. 신속하게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술잔치의 분위기가 식기 전에, 얼른 그 자리로 되돌아갔다. 살로메는 헤롯에게, 침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소반은 큰 쟁반을 말한다. (마14:8)을 보면, “여기서” 그러니까 바로 그 자리에서,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헤롯은 침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 동안 헤롯은, 그를 두려워하여, 그를 죽이려는 헤로디아로부터, 줄곧 보호해왔는데, 살로메가 너무도 끔찍한 요구를 했다.
헤롯은 근심할 수밖에 없었다. “살로메야! 네가 내게 보석이나, 예쁜 옷이나, 비싼 향유를 구했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들을 네게 주었으리라. 그러나 너는 지금 내게, 큰악을 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런 요구는, 내가 결코 들어줄 수 없다.” 그러면서 헤롯은, 살로메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해야 했다.
그렇지만 헤롯은, 2가지 이유로, 살로메의 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① 그의 맹세들(홀쿠스) 때문이다. 맹세가 복수형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맹세했다. ② 함께 앉은 자들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러 번 공개적으로 맹세했는데, 그 맹세를 어기면, 그의 체통은,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심히 근심을 하면서도, 살로메의 요구를 들어주고 말았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았을 때, 선지자 나단이 그를 찾아가, 우리아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책망하자, 다윗은 회개하고서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러나 헤롯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침례 요한을 죽게 했다.
헤롯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에게 만족을 주려하다가, 큰 악을 행하고 말았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자. 침례 요한처럼 언제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기를 바란다.
3. 침례 요한의 처형(27~28).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살로메의 요구대로, 헤롯은 ‘곧’ 시위병 하나를 보냈다. 시위병은 왕을 경호하는, 병사를 가리킨다. 그 때 대신들도, 천부장들도 갈릴리의 귀인들도, 아무도 만류하지를 않았다. 그들 모두가, 침례 요한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 셈이 되고 말았다.
(3:6) 말씀대로, 헤롯당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다. 따라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침례 요한은 그들에게 가시였다. 그들은 먼저, 헤롯의 손을 빌어서, 침례 요한의 목을 벴고, 빌라도의 손을 빌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아무튼 왕이 명하는 대로, 시위병은 옥으로 가서, 침례 요한의 목을 베었다.
헤롯은 침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살로메에게 주었을 것이다. 살로메는 침례 요한의 머리를 들고 나가, 그의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주었다. 드디어 헤로디아는 자기의 원수를 갚았다고 생각하면서, 한 동안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얼마 뒤, 나바티아 왕국의 아레다 왕이, 헤롯을 쳐들어왔다. 자기 딸이 헤롯에게서, 버림을 받은 것을 문책하기 위해서였다. 헤롯은 싸움에서 크게 패했다. 헤롯은 로마군에 의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 후 로마의 황제 칼리귤라는, 헤롯을 분봉 왕의 자리에서 내쫓고, 멀리 귀양을 보냈다.
그래서 헤롯과 헤로디아는, 귀양살이를 하다가, 쓸쓸히 죽었다. 물론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헤롯과 헤로디아, 그리고 살로메는 의롭고 거룩한 사람, 침례 요한을 죽였다. 큰 죄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따라서 그들의 영혼은,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벌을 받아야만 했다.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마11:2)에서 보듯이, 침례 요한은 옥에 갇혔어도, 그의 제자들과 연락하고 있었다. 따라서 침례 요한의 제자들은, 침례 요한이 목 베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곧 침례 요한이 갇혀있던, 마캐루스로 달려왔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 빌라도에게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 침례 요한이 목 베임을 당했을 때도, 침례 요한의 제자들은, 헤롯에게 와서, 그의 시체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 헤롯의 허락을 받아, 목이 잘린 침례 요한의 시체를, 무덤에 장사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가서, 모든 사실을 아뢰고, 그 길로 예수님의 뒤를 따랐을 것이다(마14:12). 침례 요한은 목 베임을 당했지만, 그의 목을 벤 헤롯도, 그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줄 알았다. 예수님도 (눅7:28中)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인정했다.
기억하자. 이단들은 침례요한은 배신자, 배도자로 만든다. 그래야 멸망하게 되고, 다시 다는 구원자가 온다고 말한다. 요한을 배신자로 이야기 하는 자들은, 이단인줄 알면 된다. 침례 요한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쳤다.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인 그리스도가 주는, 의의 면류관을 받고, 영원토록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헤롯처럼, 헤로디아처럼, 살로메처럼 살다가,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침례 요한처럼, 하나님 앞에서 항상 의롭고, 거룩하게 살자. 이 땅 위에서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에 대한,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크고도 영원한 상이 있다. 이 상을 바라보고, 충성스럽게 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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