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9년 2월 10일 - 이름이 드러난 예수님(막6:14-16)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9-02-10 |
첨부파일: 이름이 드러난 예수님.hwp(21K) |
이름이 드러난 예수님(막6:14-16)
오늘 본문에, 예수님에 대한, 갈릴리 사람들의 견해가, 3가지로 소개되고 있다. ① 죽은 침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보는 견해다. ② 엘리야라고 보는 견해다. ③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보는 견해다. 물론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합당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처럼,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지폈다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에 대한 견해는, 전혀 합당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예수님의 권능도 보았다.
따라서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했다. (요20:28) 말씀처럼,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해야 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사람으로만 생각할 뿐, 하나님으로 믿지는 않았다. 믿음은 나의 선택이며, 나의 결단이다.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해야만 하는가? (막9:24)에서 귀신 들린 한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아뢴 것처럼, “내가 믿나이다.”라고 먼저 결단해야 한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은 후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해야 한다.
1. 예수님의 명성이 높아졌다(14上).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왕이 듣고 이르되…”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헤롯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갈릴리 각 마을로 파송했다. 예수님이 가르친 대로, 그들도 가르쳤다. 권능을 행한 대로, 그들도 권능을 행했다. 따라서 예수님이 혼자 사역할 때보다, 효과가 열두 배나 더해졌다. 세상의 권력도 진리인 예수님 앞에서는,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다.
제자들이 사역한 결과,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제자는,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높인다. (행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그들은 그 곳에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걸을 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그를 메고 왔다. 날마다 “미문,”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했다. 사람들의 종교심을 이용해서, 동정을 사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구걸하자,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다.
(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했다. 그러자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다. 그리고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7-8).
사람들은 크게 놀라면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 때 베드로가 이와 같이 말했다. (12中)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의 권능으로, 그 사람을 걷게 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확실하게 밝혔다.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높였다.
열두 제자들이, 갈릴리의 각 마을로, 파송 받았을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했고, 권능을 행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이, 당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헤롯왕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 성경을 보면, ‘헤롯’왕도 여러 명 등장한다.
(마2:1)을 보면, 헤롯의 이름이 처음 나온다.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왕이었다. 역사가들은 그를 가리켜서, 헤롯 대왕, 헤롯 1세라고 부른다. 그는 예수님이 탄생한 후에,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헤롯대왕에게는, 모두 10명의 아내가 있었다. 자연히 여러 이복형제와 자매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헤롯대왕이 죽고 난 뒤에, 그가 다스리던 영토는, 4지역으로 나뉘어졌다. 그리고는 각기 다른 사람에 의해 다스려졌다. 이 4명을 분봉 왕이라고 부른다. 헤롯 대왕이 다스리던 영토를, 4지역으로 나누어서, 다스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문의 헤롯왕은, 분봉 왕(테트라르케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를 가리켜서, ‘헤롯 안티파스’라고 불렀다. 분봉 왕 헤롯은, 갈릴리 해변에 수도를 세웠고,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서, 그 곳을 ‘디베랴’라 불렀다. 분봉 왕 헤롯은, ‘마캐루스’라는 곳에서 자주 머물렀다.
마캐루스는 베레아에 속한 곳으로, 사해의 북동쪽에 위치한 요새였다. 분봉 왕 헤롯은, 마캐루스에도 여름별장을 만들었다. 침례 요한이 한 동안 갇혔던 감옥도, 마캐루스에 있었다. 갈릴리와 마캐루스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그 동안 예수님과, 분봉 왕 헤롯은, 서로 접촉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이, 갈릴리의 온 지역에 드러났다. 분봉 왕 헤롯이 다스리는 갈릴리는, 온통 예수님의 소문으로 가득했다. 자연히 헤롯왕의 측근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그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2. 헤롯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14下~15).
“…이는 침례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헤롯왕이 들은, 예수님의 소문은, 3가지로 요약된다. 그가 들은 소문을 통해, 당시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① 죽은 침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성경은, 헤롯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 마치 그가 입을 열어서, 말한 것처럼 번역했다.
그러나 같은 내용(눅9:7)은, 지금 헤롯왕은 갈릴리 사람들이 말하는, 소문을 들었다. 갈릴리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죽은 침례요한이, 예수님에게 되살아났다고 보았다. 침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는, 본문 바로 다음에, 자세히 설명한다. 아무튼 갈릴리 사람들 중에 일부는, 예수님을 침례 요한이라고 보았다.
물론 예수님과 침례 요한 사이에, 비슷한 점이 더러 있다. 나이가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다. 두 사람 모두, 그 당시 어떠한 종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런데 본문은,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죽은 침례 요한을 보고자 했던, 주된 이유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그들은 예수님의 속에서 일어나는 능력이, 침례 요한 때문이라고 보았지만, 전혀 사리에 맞지를 않았다. (요10: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침례 요한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했지만,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않았기에, 예수님께 나타나는 능력 때문에, 예수님과 침례 요한을, 연결시킬 수 없었다. 아울러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다 권능을 행했다. 따라서 죽은 침례 요한을 연결시키려면,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에게, 되살아났다고 보아야 한다.
② 어떤 이는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보았다(15上.)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왕 아합 때, 타락을 신랄하게 꾸짖었던 선지자였다. 많은 권능을 행했다. (왕상17:22)에,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도 했다. (왕하2:11)은, 살아서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가, 다시 이 세상으로, 되돌아왔다고 보았다. (말3:1)과 (4:5)을 보면,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기 전에, 엘리야를 앞서, 보낼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 중에 더러는, 예수님이 메시아에 앞서 오게 된, 선지자 엘리야라고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와 같이 가르치지 않았다. (마11:13-14)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침례 요한이, 바로 엘리야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엘리야라고 가르치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이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의 가르침이었다. 이러한 가르침을, 확증시켜 주기 위해, 예수님은 그들에게 권능을 주었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은, 제자들의 가르침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 구주로 영접하지 못했다.
③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보았다. 같은 내용인 (눅9:8中)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그들은 예수님을,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여겼다. (마16:14)을 보면, 선지자 예레미야를 들고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선지자를 세웠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또 선지자는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다. 선지자 말라기 이래로, 이스라엘에는 사백 년 동안, 아무런 선지자가 세움을 받지 못했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회개를 요구했다.
거역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경고했으니, 사람들은 흥분했다. 또 예수님은, 놀라운 권능들을 행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큰 선지자”(눅7:16)로 여겼다. 예레미야와 같은, 옛 선지자들 중의 하나처럼, 크게 여겼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직업과 가족을 거론하면서, 비하하며 배척했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럴지라도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기는, 그들 모두가 매일반이었다. 행여 우리도 예수님을, 침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옛 선지자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분명하게 증언한다.
3. 헤롯왕은 예수님을 보고자 했다(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헤롯은 갈릴리 사람들 사이에 나도는 소문, 위에서 말한, 예수님에 대한 3가지 소문을 들었다.
헤롯은 주님과,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서, 천국의 능력이 증언되자, 기뻐하는 대신에, 오히려 자기가 죽인 침례 요한을 떠올리며, 스스로 두려움에 떨었다. 그렇다면 갈릴리 지역의 분봉 왕으로서, 천하를 호령하던 헤롯이, 일개 야인에 불과하고, 죽어 장사한 침례 요한을,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헤롯이 누구에게도, 변명할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즉 그는 침례 요한이, 의로운 사람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상황에 떠밀려 침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무서운 죄를 저질렀다. 따라서 부활소식만 듣고도, 질겁하며,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죄악은, 인간으로 하여금,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즉 죄악은 일시적으로는 사람에게, 쾌락을 줄지 모르나, 한번 죄를 범한 후에는, 끊임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들며,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드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아담과 하와도,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창3:8). 오늘이 땅의 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이 힘을 잃고, 이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복음을 외치지 못하는 이유도, 범죄에 원인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담대히 진리를 증언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이러한 죄악을, 우리 가운데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죄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서 헤롯은, 예수님을 보려했다. (눅9: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왜 보고자 했나? 자신이 목 벤 침례요한이 살아난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나? 사실 그는 예수님이, 누구든지 상관없었다.
예수님을 죽이고 싶었을 뿐이다. (눅13: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헤롯왕은 가룟 유다보다도, 더 악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한 뒤에,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그러나 헤롯왕은, 침례 요한을 죽이더니, 이제는 예수님마저도, 죽이고 싶어 했다. 그의 아버지 헤롯대왕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고자, 베들레헴의 사내아이들을 학살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분봉 왕 헤롯도, 침례 요한을 죽이더니, 이제는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의 권능을 보았다. 헤롯왕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 빌라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고, 믿지 않았고, 구원받을 수 없었다.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인가? 나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은 없다.
나의 대답에 따라서, 나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나의 답변에 따라서, 천국으로 가느냐, 아니면 지옥으로 가느냐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라는 증거를 보여준다. 따라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며, 나의 하나님임을 믿고, 고백해야 한다.
그러면 영생을 얻어, 천국의 백성이 된다. 반면 성경이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구원받지 못한다. 자신의 죄를 사함 받지 못하기에,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만 한다.
오늘도 예수님은 나를 부른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자. “내가 믿나이다.” 그래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자(요3:16). 아울러 예수님의 역사함과, 권능을, 날마다 매순간마다 풍성하게 체험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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